책                           -이태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책을 여성에 비유하여 책이 지닌 가치와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책을 단순히 읽기 위한 도구로만 보지 않고, 책 자체가 가진 가치와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글쓴이는 책에 대한 소유욕과 책을 빌려 주면서 느끼는 질투심 등을 통해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책을 빌리고 빌려 주는 행위를 진리와 예술의 공유로 인식하면서 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은 책을 단지 책에 담긴 의미의 측면에서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외적 형태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까지 심미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책의 가치는 물론 그것에 담긴 심오하고 풍부한 사상과 감정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물로서의 책조차 특별한 존재로서 다가오는 법이다. 글쓴이는 내용과 형태가 하나로 합쳐진 존재로서의 책에 대한 감상을 몇몇 에피소드와 함께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있다.

◆ 이 글의 독특한 문장

글쓴이는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세련된 문장을 쓰는 데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글쓰기 방법에 대한 실제적 이론서인 "문장 강화"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글은 독자들에게 뭔가 어색하고 서툰 느낌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다. 이를 테면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는 벌써 아니다.' 에서는 조사의 사용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처럼 감탄형인지 어법을 벗어난 명령형인지 구분이 모호한 것도 있다. 또 '집에 갔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 은 금방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빌리는 자나 빌려 주는 자나 책에 있어서는 다 도적 됨을 면치 못한다.' 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뭔가 빠진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이런 낯선 문장들이 점차 이해되고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들게 한다.

◆ 사물로서의 책

'책'을 뜻하는 한자 '冊'은 본래 종이가 없는 시대에 글씨를 쓴 얇은 대나무 조각(죽간)을 가죽끈으로 묶은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종이책도 종이를 묶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죽간을 묶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종이책과 '冊' 사이의 이질감은 별로 없었다. 글쓴이가 책만은 한자 '冊'으로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冊'자에 책의 원초적 특성이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이처럼 책의 형태에 대한 글쓴이의 취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신간 서적과 고서를 '소녀'와 '미망인'에 비유한 것은 내용뿐 아니라 그 형태적 특성을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인종'의 미덕을 찾고 있는 것도 역시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외적 형태가 가진 미적이고 실용적인 특징을 중요시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요점 정리

갈래 및 성격 : 수필, 감상적, 체험적 수필

표현

* 문답의 형식으로 대상에 대한 판단을 제시함.

* 비유의 방법을 통해 대상에 대한 애정을 보임.

* 체험을 제시하며 대상에 대한 태도를 밝힘.

주제 : 책에 대한 애정과 예찬(책은 모든 문화의 제왕이다.)

출전 : 수필집 "무서록"(1941)

  작품 읽기

책만은 '책'보다 '冊'(한자를 통해 대상이 지닌 시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지식을 얻는 것)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외적 형태를 감상하며 특별한 애정을 쏟는 것)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책의 형태에 담긴 미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담고 있는 그릇)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최고의 존재) 때문이다.

* 책의 가치에 대한 예찬  

물질 이상인 것이 책이다. 한 표정 고운 소녀(순수한 아름다움)와 같이, 한 그윽한 눈매를 보이는 젊은 미망인(성숙한 아름다움)처럼 매력은 가지가지다. 신간란(新刊欄)에서 새로 뽑을 수 있는 잉크 냄새 새로운 것은, 소녀라고 해서 어찌 다 그다지 신선하고 상냥스러우랴!(책이 소녀와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모든 책이 신선하고 정답게 느껴지는 것인지에 대한 감탄을 드러내고 있다. 책에 대한 글쓴이의 애정을 알 수 있음.) 고서점에서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것들은 자못 미망인다운 함축미(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면모.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글쓴이의 태도)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 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인정이 없는) 주인이 된다.

* 책이 지닌 매력과 책을 대하는 글쓴이의 태도  

가끔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가 있다. 나는 적이 질투를 느낀다. 흔히는 첫 한두 페이지밖에는 읽지 못하고 둔 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속삭여 주려던 아름다운 긴 이야기를 다른 사나이에게 먼저 해 버리려 가기 때문이다. 가면 여러 날 뒤에, 나는 아주 까맣게 잊어 버렸을 때 그는 한껏 피로해져서 초라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친구는 고맙다는 말만으로 물러가지 않고, 그를 평가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그 책에 대하여는 전혀 흥미를 잃어 버리는 수가 많다.(친구가 자신의 책 내용을 먼저 접하고, 평가까지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책에 대한 글쓴이의 강한 소유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빌려 나간 책은 영원히 노라(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으로, 자신이 단순히 남편의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해방된 새로운 생활을 찾아서 가출한다.)가 되어 버리는 것도 있다.

* 책을 빌려 준 것과 관련된 경험  

이러는 나도 남의 책을 가끔 빌려 온다. 약속한 기간을 넘긴 것도 몇 권 있다. 그러기에 책은 빌리는 사람도 도적이요 빌려 주는 사람도 도적이란 서적 윤리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일생에 천 권을 빌려 보고 999권을 돌려보내고 죽는다면 그는 최우등의 성적(천 권을 모두 돌려주기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남은 한 권 때문에 도적은 도적이다. 책을 남에게 빌려만 주고는 저는 남의 것을 한 권도 빌리지 않기란 천 권에서 999권을 돌려보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빌리는 자나 빌려 주는 자나 책에 있어서는 다 도적됨을 면치 못한다.(책을 빌려주기만 하고 빌리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책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모두 결국 돌려주지 못하는 책이 있기 때문에 '도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책은 역시 빌려야 한다. 진리와 예술을 감금해서는 안 된다.

* 책을 빌려 주고 빌리는 행위에 대한 옹호  

그러나 책은 물질 이상이다. 영양(令孃, 윗 사람의 딸)이나 귀부인을 초대한 듯 결코 땀이나 때가 묻은 손을 대어서는 실례다. 책은 세수는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책은 다시 깨끗하게 할 수는 없음.)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 된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菱花紙, 마름꽃의 무늬가 있는 종이)처럼 부드러워 한 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 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 글쓴이가 바라는 좋은 책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