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피천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계절의 봄을 인생의 봄과 서로 교차하고 대응시킨 이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서정시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수필이다.

봄이 되면 겨우내 입었던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고, 방안에만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 따뜻한 햇살이 퍼져 있는 생동하는 대지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 봄은 이처럼 마음과 몸을 짓누르던 무거움으로부터 가벼움을 되찾게 해 주고,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생명이 약동(躍動)하는 열린 공간을 호흡하게 해 준다. 여기에는 비상(飛翔)의 꿈과 자유의 기쁨이 있다. 삶에 대한 성취 의욕이 다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자는 이러한 봄이 바로 인생에 있어서는 젊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청춘과 젊음은 안타까운 미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나간 젊음에 대해 아쉬움과 한탄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향수인 동시에, 생기 넘치는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매년 찾아오는 봄, 그 봄의 의미를 알뜰히 가꾸어 더욱 성숙된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무디어진 지성과 감수성의 회복이기도 하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서정적 수필

표현 : 간결하고 부드러운 문체

             쉽고도 명료한 단어와 서정시처럼 아름다운 문장 구사

주제 : 봄을 맞는 기쁨과 그 의미

  작품 읽기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자켓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幻滅)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知性)과 둔해진 감수성(感受性)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智慧)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93퍼센트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40년이라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놈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4천 년 전이 이역(異域)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不死鳥)라는 화려한 말을 써 본 것이다. 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幽閉)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황무지>에 나오는 구절

* 키츠 :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셸리 등과 함께 탐미주의의 극점을 이룸. 그의 시 중에 <나이팅게일에게 부침>이 있다.

* 룻 : 구약에 나오는 모압 여자로 이스라엘 사람을 남편으로 맞았으나 그가 곧 죽자 시어머니와 함게 이스라엘로 와서 보리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함.

* 사향장미 : 사향내가 나는 장미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