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어법의 명수                       - 박범신 -

  이해와 감상

어머니의 반어적 애정 표현을 뒤늦게 깨달은 스스로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크다. 매정한 눈빛과 단호한 표정으로 호령해도 그것이 자식 사랑의 반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이다. 살아 생전 호의호식(好衣好食) 못하고 자식 뒷바라지만을 힘들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회고적, 반성적, 애상적)

표현 : 반어적 표현

주제 :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출전 : 산문집 <적게 소유하는 자가 자유롭다>

  작품 읽기

    어머니 / 백골로 씻겨 누워 계신 / 어머니 / 우리 엄니

    오늘도 아침 열 시 눈뜨는 내게 / 썩을 놈, 하신다.

    눈 찢어져라 흘기면서 / 썩을 놈

    숭년(흉년)에 밥 빌어 처먹을 놈, 하신다. / 어머니는 욕만큼 사랑을 갖고 있지만

    욕하지 않는 내겐 / 어머니만큼 사랑이 없다. / 썩을 놈이다.

* '썩을 놈'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

부끄럽지만, 이것은 남몰래 내가 써서 간직하고 있는 시 중 한 편이다.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지금 용인 근교의 어느 공원 묘지에 백골로 누워 계신다.  <중략>

아침 열 시도 넘어 눈을 떴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내 환영 속에서 어머니는 그 특유의 매몰찬 표정에다가 투가리(뚝배기의 전라도 사투리) 깨지는 소리로 썩을 놈, 하셨다. 나이가 쉰이 가까우면서도 아직 똥구멍에 해가 떠야 잠자리에서 일어나느냐 하는 질타의 소리였다. 나는 어머니에의 그리움 때문에 그날 이부자리 속에서 위의 시를 썼다.

* 시를 쓰게 된 동기

어머니를 생각하면 먼저 퉁명스러운 듯, 매몰찬 듯한 그 소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찢어져라 흘기는 그 사금파리 같은 눈빛이 떠오른다. 사랑을 말함에 있어서도 어머니는 부드러운 어법이 아니라 매몰찬 목소리, 정을 뚝 떼려는 듯한 차가운 눈빛을 썼다.

아, 어머니는 반어법의 명수였다.

*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몰찼던 어머니의 반어법

어렸을 때 나는 기골이 약해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게 힘이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밥을 남기는 걸 결단코 허락하지 않았다. 밥그릇을 반쯤 비우고 숟가락질이 시원하지 않다 싶으면, 어머니는 나쁜 계모 같은 눈빛이 되면서 내 밥그릇에 냉큼 물을 부었다.

"다 먹어라 잉."

퉁명스럽게 어머니는 말했다.

물 말아 놓은 밥을 남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려고 어머니는 짐짓 골난 표정을 짓곤 했다. 부드러운 말과 따뜻한 눈빛이었다면 나는 아마 어머니에게 저항했을 것이었다. 매몰찬 표정 뒤의 어머니 사랑이 사실은 너무나 뜨거웠다는 걸 내가 이해하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는 가난한 게 한이었다.

"숟가락 꽂아도 안 자빠지게 고깃국 한 그릇 먹고 싶다."라고 어머니가 했던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국그릇 속에 고기가 많이 들어 숟가락을 꽂아 놓아도 넘어지지 않을, 그런 고깃국 한 그릇 변변히 먹어 본 일이 없던 어머니였다. 남자 대신 농사 지으랴, 다섯 아이 거두랴, 사시사철 바쁘고 힘들어도 아들 자식 하나 쌀밥 먹이기도 힘들어 어머니는 늘 보리밥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눈감은 어머니의 얼굴은 살아 계실 때보다도 훨씬 이뻤고 또 단아했으며 편안해 보였다. 불화를 통해 화해에 이르렀던 어머니의 반어법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뒤 비로소 당신이 평생 짐져 왔던 것들을 벗어 놓고 편안해지셨던 것이다.

시신은 놀랍게 가벼웠다. 뼈조차도 제 묵가 다 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당신이 가져야 할 뼛골과 살까지 빼낼 수 있는 한 빼내어 자식들에게 주었다는 걸 훗날 깨달았다. 어머니는 최소한의 몸무게만 남겨 눈을 감으셨으며, 그 다음은 아주 편안해지셨다.

*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자식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