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1959)                       -이근삼-   

● 줄거리

장녀와 장남이 나와 가족을 소개하고 나면, 아내가 돈 문제로 남편인 교수를 추궁한다. 교수는 중압감에 못 이겨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교수는 밤 8시 시계 소리를 듣고 아침인 줄 착각하고 출근하려고 하는 등 일상생활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감독관이 나타나 번역 원고 쓰기를 독촉하고, 아내는 원고 한 장이 나올 때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교수는 우연히 190칸만 있는 원고지를 발견하고 환상 속에서 젊은 날의 희망과 정열을 상징하는 천사를 만난다. 교수는 자신의 꿈을 찾아 줄 것을 갈구하나 천사는 곧 사라져 버리고 감독관이 나타나 번역하는 일을 독촉하자 또다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다. 신문은 과거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교수는 번역하는 일에, 아내는 장녀와 장남에게 용돈을 나누어 주는 일에 쫓기는 가운데 감독관은 또다시 번역을 독촉한다.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1959년에 발표된 이근삼의 등단작이다. 젊은 시절의 꿈과 이상을 잃어 버리고 돈 버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대학 교수와 그 가족을 통해 돈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꿈과 이상을 되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무력하기 짝이 없으며, 가족 간의 의사소통은 애당초 기대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부조리극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작중 인물이 해설자 역할을 겸하고 있다는 점, 작중 인물이 어떤 관념을 표상하는 존재라는 점, 비현실적인 상황을 구성하는 소도구가 등장한다는 점 등에서 이 작품은 실험극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떤 배경이나 특수한 심리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일상사 중의 한 토막을 다루어, 갈등을 느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갈등의 포기를 그리고 있다. 겉보기에는 근엄한 대학 교수와 그 가정의 이중성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소극(笑劇)의 형식으로 처리하여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성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아이러니컬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정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이 없이 하나의 상황을 희극적으로 과장하는 이 작품의 수법은 20세기의 새로운 연극인 부조리극의 대표적 형식이다. 부조리극에서는 전통극의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을 거부하고 허구적 과장, 희극적 형상화 등의 수법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며, 극적 몰입을 거부한다.

이 작품에서 유사한 행위가 반복된다든가 무의미한 대사가 반복되는 것은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 무가치함을 반영한다. 또한, 거대한 조직 사회 속에서 개인의 위치가 축소되고, 인간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형적으로는 가족 공동체이지만 유대감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가족으로서의 인간적 관계뿐만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채 기계적인 순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위기 등도 없이 다만 한 가족의 상황만 제시되고 있다. 그 상황의 한복판에 교수인 아버지가 서 있는데, 그는 자신의 직업인 번역하는 일에만 기계적으로 일상화된 반응을 보이는 무기력한 현대인이다. 또, 그 아내는 남편에게는 원고 독촉자(궁극적으로는 돈벌이를 재촉하는 일에 해당)이며 남편과 자녀를 잇는 중간 매개자로서, 현실적인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 장남과 장녀는 갖가지 명분으로 용돈을 타내고, 시끄러운 음악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과 인간 상호간의 소외를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허리에 쇠사슬을 매달고 원고 뭉치가 든 큼직한 가방을 수의 의상은 물론, 무대 배경까지 온통 원고지 무늬로 채웠다. 똑같은 소리가 되풀이되는 축음기, 하염없이 화장만 하고 있는 장녀, 돈 계산만 되풀이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대 배경인 원고지의 무늬와 어울려 현대인의 비인간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실제의 현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희극적으로 과장된 허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극적인 형상을 통해 단순한 웃음거리 이상의 교훈을 읽어내는 데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기법상으로는 전통적인 희곡에서 요구되는 인물의 전형성이나 사건의 유기적 흐름 등과는 거리를 둔 채, 희극적으로 과장된 인물 제시와 비사실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와 비극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단막극이다.

이 연극은 등장 인물을 사건의 해설자로 등장시킴으로써, 좀더 서사적인 형식에 근접하고 있다. 서구의 표현주의극이나 우리의 전통극에서는 이처럼 해설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생활의 모습과 부조리한 상황을 비판과 풍자의 시각으로 실험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특히, 교수가 3년 전의 신문 기사 내용과 오늘의 신문 기사 내용이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대목은 현대의 삶이 창조적이지 못하고 기계와 물질 속에 정체된 채로 단순한 순환만을 거듭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정리하기

▒ 갈래 → 희곡, 단막극, 풍자극, 부조리극(상황극, 반극), 서사극

▒ 성격 → 반사실적, 서사적, 풍자적, 실험적(전통적인 리얼리즘의 극작술을 벗어남.)

▒ 배경 → 현대 어느 중년 교수의 가정

인물

* 교수 → 기계적으로 번역에 종사하는 인물. 한때는 꿈과 이상에 대한 정열과 희망을 품었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현실과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에 짓눌려 사고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하고 무의지적인 인물임.

* 처 → 인물 설정의 의도로 볼 때, 교수와 똑같은 부류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와 자식 사이의 줄을 잇고 있는 매개자로서, 현실에 대한 인식 상태도 교수와 자식들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이다. 남편을 현실에 묶어 두는 감독관이지만, 역시 현실이라는 감독관에 의해 다시 감독을 당하는 점에서 교수와 같다.

* 장녀, 장남 →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나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가득 찬 인물로 현대인의 현실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두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나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은 오직 육체적 ·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한다. 이들이 심하게 과장되어 있는 것은 현대인의 욕망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극의 해설자 역할을 하며 세속적 · 이기적인 인물이다.

* 감독관 → 관념적인 인물로, 교수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강압적인 힘을 상징한다. 인간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구속성의 상징.

* 천사 → 감독관과 상반되는 인물이다. 교수의 분열된 자의식으로, 잃어 버린 꿈과 희망을 상징함.

출전 →  <사상계>(1960), 희곡집 <제 18공화국>(1965)

제재 → 현대인의 인간성 매몰과 부조리한 현실 상황

주제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에 대한 풍자

▒ 특성

1) 특별한 사건 전개 및 뚜렷한 갈등 양상 없이 극중 상황만을 보여줌.

2) 인물의 전형적 성격보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에 중점을 둠.

3) 무대 장치, 소도구, 인물의 대사와 행동 등이 희극적으로 과장되어, 풍자와 반어적 의미를 드러냄.

 

● 참고자료

◆ 이근삼의 작품 세계

이근삼은 종래의 리얼리즘적인 극작술을 거부하고 무대 위에서의 연극적 재미를 십분 추구하는 희극 작가다. 따라서 그의 희극은, 셰익스피어류와도 다르고, 몰리에르의 작품과도 다르다. 오영진의 한국적 희극과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미국 희극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우리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극술(劇術)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지나치게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고, 현실 풍자를 위해 작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작위적인 데가 있고 경박한 감마저 주며, 그렇기 때문에 풍자 정신도 깊이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관념적 대사라든가 작위적인 것을 많이 극복하고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풍자한다.

① 리얼리즘극에 반발하여 부조리극을 시도함.

② 작품에 비상식적인 인물이나 의식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적인 요소를 동워낳여 연극적 재미를 유발시킴.

③ 현대인의 삶의 비극과 모순을 파악하려는 현실적 관심을 보임.

◆ 부조리극의 성격

부조리(不條理)란 인생의 무의미 · 무목적 · 충동성 등을 총칭한 표현이다. 부조리 연극은 1950년대 등장한 것으로 현대인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만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부조리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과 실존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는 이를 대표한다. 산의 정상에 바위를 올려 놓으면 곧 굴러 떨어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끌어 올리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원고지"도 이런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가르치고 있다.

◆ <원고지>의 실험적 성격

이 작품의 인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기계적인 순응만 보일 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가족들 사이의 진정한 의사소통이나 연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처럼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한 채 기형화된 삶을 아무런 자각 없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수법을 활용한 점이 사실주의 연극의 극작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작중 인물이 직접 해설을 한다든가 무대 장치와 소도구들은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과장한 것도 현대극의 실험적 수법을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극에서는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주로 사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사실적이며, 반표현적이어서 현대인의 정신적 상황을 대변해 주는 현대 희곡의 한 특징이 된다.

◆ '원고지'에서 교수가 주인공으로 설정된 것의 의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교수'이다. 교수는 학문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지식인 계급이다. 여기서 지식인이란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하여 자기가 속한 시대나 사회의 문제를 통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실의 문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교수는 한때 학문 추구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지식인은커녕 속물적 인간으로 변해 있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교수까지도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 상황을 보여 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강하게 풍자하고 있다.

◆ '원고지'에 쓰인 호칭과 그 효과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명칭이 이름과 같은 고유 명사가 아닌, '교수', '처', '장남', '장남' 등 보통명사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호칭은 가족 안에서 쓰이는 호칭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객관화된 호칭이다. 이처럼 보통 명사화된 호칭은 등장인물들이 개성을 가진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그 인물이 속한 집단을 대표하는 유형화된 인물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풍자의 범위를 사회 전체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등장 인물들이 한 가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호칭 사용을 통해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 관계 상실과 거리감을 보여 주게 되었다.

◆ '원고지'의 부조리극 형식

이 작품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일상사 중의 한 토막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별한 갈등 없이 극중 상황만을 전개해 가는 실험적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 버린 현대인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20세기 등장한 부조리극의 형식을 실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는 암시적인 무대 장치나 음향과 조명의 사용, 그리고 유사한 행위나 무의미한 대사의 반복 등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 '원고지'의 서사극적 특성

서사극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적 이론에 대립하는 새로운 연극 이론을 의미한다. 서사극에서는 이성, 판단, 객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무대의 사건은 어디까지나 '연극적인 것'이지, 사실 그 자체나 현실일 수 없다고 본다. 서사극의 특징은 첫째로 해설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극이 실제 상황처럼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해설자의 개입에 의해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게 되고, 관객은 그 극이 실제가 아닌 '연극'임을 인지하게 된다. 두 번째는 두 가지 이상의 장면이 서로 개입하거나 의식하지 않은 채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원고지'에서 '장남'이 '교수'와 '처'를 소개하고 있을 때, 같은 무대 위에 있는 '교수'와 '처'는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듣지 않은 것처럼 일련의 행위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실제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러한 서사극은 관객을 극에 몰입하는 존재가 아닌 극을 판단하는 존재로 만든다. 또한 관객에게 무대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 대본 읽기

막이 오르기 전, 요란스러운 통속 음악이 들린다. 음악이 차차 요란해질 무렵,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전면(막 앞) 중앙에 서 있는 장녀를 포착한다. 꽉 몸에 낀 화려한 색의 블라우스와 카프리 팬츠(7부 바지)를 입고 있다.

 

무지무지한 젖퉁이와 뒤로 사정없이 바그라진 엉덩이에, 관중들은 첫 장면에 위압을 느낀다. 입이 보통 여자의 서너 배는 된다. 빨간 칠을 한 아가리가 전 안면의 3분의 2는 차지한다. 스포트라이트에 번쩍이는 귀고리, 목걸이, 손목걸이가 관중들 눈에 거슬린다. 나이는 스물셋쯤, 이야기하는 동안 끊임없이 몸을 이리저리 흔든다. 음악이 멎는다.

장녀

 

 

 

 

 

 

 

 

 

 

 

 

 

 

 

 

(멋들어지게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바쁘신데 이렇게 많이 모여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 소개를 먼저 할까요? 여러분들은 저한테 소개할 필요가 없어요.

아까 여러분들이 이 극장(혹은 이 학교, 혹은 이 집) 문을 들어오실 때 저는 옆에서 자세히 여러분들을 보았어요. 죄다 연령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여기 오시기 전에 잡수신 저녁 식사의 찬거리도 다르지 않겠어요. 저는 여러분들을 잘 알아요. 그런데 모든 것이 제각기 다른 여러분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을 보니 누가 누군지 분간을 할 수가 있어야죠. 모두 똑같이 보이는걸요.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저에겐 여러 분들이 한 사람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모신 것은 다름 아니라, 근심, 걱정이 가득 찬 여러분들에게 우리 집 구경을 좀 시켜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집은 크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집 첫딸입니다. 장녀란 말입니다.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곧 소개하겠습니다만, 말이 자꾸 많아져 미안합니다. 그러나 저는 남자가 아닙니다. 말이 짧아지면 무엇으로 제가 여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어요. 저의 아버지는 참 훌륭한 분이에요. 아버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인데, 안 나가는 학교가 없어요. 이름이 나면 저절로 여기저기서 찾는 법인가 보죠? 그 동안 책을 열두 권이나 냈으니 말은 다 했지요. 물론 그 열두 권이 전부 번역 작품입니다만, 열두 권에는 틀림없지요. 아버지의 명성과 돈벌이가 이런데다, 저는 또 이렇게 현대적인 신여성이니 걱정할 게 뭐 있겠어요. 저의 남동생도 매마찬가집니다. 건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때, 서서히 막이 오른다.) 그럼, 저의 집으로 안내하겠어요. (장녀, 무대 좌측으로 걸어간다.) 이것이 응접실입니다.

 

(장녀, 좌측으로 사라진다. 관객석 가까운 곳에 책상과 의자 하나가 전면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가 그득히 쌓여 있다. 소파는 흔히 볼 수 있는 형이지만 씌운 커버의 무늬는 원고지의 칸 그대로다. 무대 우측에 보이는 벽의 일부분과 후면에 서 있는 긴 벽의 모습도 흡사 원고지를 곧추세운 것 같다. 벽의 무늬들도 원고지의 칸 그대로다. 후면 벽 우단에 바깥하고 통하는 도어가 있다. 동물의 코끼리 우리 같은 철창을 방불케 하는 도어, 형무소의 철문 같다고 함이 좋을지도 모른다. 후면 벽에 큼직한 창이 뚫려 있다. 소파 앞에는 신문지가 몇 장 흩어져 있다. 좌측 무대 중간쯤에 플랫폼이 중앙을 향해 45도 각도로 위치해 있다. 플랫폼 후면에도 역시 벽이 있지만 이 벽은 화려한 색깔로 칠이 되어 있다. 이 플랫폼은 장녀 및 장남의 방이다. 한 구석에 역시 고운 색깔의 소파가 있어 이 위에 미끈하게 생긴 장남이 길게 누워 있다. 이 방에는 라디오, 축음기를 비롯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치품이 여기저기에 늘어져 있다. 큼직한 괘종시계도 하나. 전체적으로 소왕국 같은 인상을 준다. 우측에 비해 좌측 플랫폼의 방이 굉장히 밝다. 관객들도 우측 방과 좌측 방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측 방, 즉 응접실 소파 뒤에 굵은 줄이 친친 감긴 막대기가 하나 서 있다. 장남이 일어선다. 그러고서는 관중에게 이야기한다.)

 

장남

 

 

 

 

 

 

 

 

전 이 집(이 학교, 혹은 이 극장으로 표현되기도 함. 연극의 무대를 학교나 집으로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으로, 등장인물이 직접 말하고 있음.) 장남입니다. 이쪽 높은 방은 저하고 누이동생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아버지를 소개하기 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을 말씀드리겠어요. 아주 간단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됩니다. 밥 세 끼도 제대로 못 멕이고, 학비도 제대로 못 주는 부모들이 아들딸이 결혼할 때가 되면 아주 귀찮게 간섭을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집이 비교적 행복한 것도 우리 부모의 열렬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자기 손목시계를 보며) 지금이 저녁 일곱 시 반이니 아마 아버지가 곧 돌아오실 겁니다. 아버지는 늘 쾌활한 얼굴에다 발걸음은 참새처럼 가볍지요.

 

졸음이 오는 지루한 음악과 더불어 철문 도어가 무겁게 열리며(현실 생활의 중압감) 교수 등장. 아래위 양복이 원고지를 덧붙여 만든 것처럼 이것도 원고지 칸 투성이다.(교수의 삶이 원고지를 쓰는 것과 관련됨. 또한 규격화된 틀에 얽매여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냄.) 손에는 큼직한 낡은 가방을 들고 있다. 허리에 쇠사슬(현실의 구속과 압박)을 두르고 있는데 허리를 돌고 남은 줄이 마루에 줄줄 끌려다닌다. 쇠사슬이 도어 밖까지 나가 있어 끝이 없다.(끝없는 현실의 억압) 도어를 닫고 소파에 힘들게 앉는다. 여전히 쇠사슬을 끌고 다니면서 가방은 자기 옆에 놓고 처음으로 전면을 바라본다. 중년에 퍽 마른 얼굴,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고 찌푸린 얼굴은 돌 모양 변화가 없다(무의지적인 인물). 잠시 후 피곤하다는 듯이 두 손을 옆으로 뻗치면서 크게 기지개를 한다. '아아' 하고 토하는 큰 하품은 무엇에 두들겨 맞아 죽는 비명같이 비참하게 들려 오히려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장녀가 플랫폼에 나타난다.(보통 희곡에서는 장면 전환을 위해서 조명을 모두 끄고 무대를 바꾸는 막이나 장의 기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글은 무대 위에 응접실과 플랫폼이라는 두 개의 공간을 설정하고, 조명을 통해 장면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사실주의 극을 혁신한 서사 극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장녀

 

 

 

저의 아버지랍니다. 밖에서 돌아오시면 늘 이렇게 달콤한 하품을 하신답니다.(피곤에 지친 하품을 달콤한 하품으로 이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가족 간의 무관심을 암시함.) (교수는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고 있다. 코를 고는데 흡사 고양이 우는 소리(피곤에 찌든 교수의 삶)다.) 인제 어머님이 들어오셔요. 어머님은 늘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세요.

 

 

적당한 곳에서 처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살도 쪘지만 현재는 몸이 거의 헝클어져 있다. 퇴색한 옷을 입고 있다. 소리를 안 내고 들어와 잠자는 교수의 주머니를 샅샅이 턴다. 돈을 한 주먹 쥐고 이어 교수의 가방을 턴다. 돈 부스러기를 몇 장 찾아내고 그 액수가 적음에 실망을 한다.(남편보다 돈을 중시하는 속물적 근성) 잠시 후 교수를 흔들어 깨운다.

 

 

장녀

제 말이 맞았지요?

 

 

플랫폼 방 불이 서서히 꺼진다.

 

 

여보, 여기서 그냥 주무시면 어떡해요, 옷도 안 갈아입으시고.

교수

깜빡 잠이 들었군.

 

 

 교수 일어선다.

 

 

 

 

 

 

어서 옷을 갈아 입으세요.

(처는 교수 허리에 칭칭 감긴 철쇄를 풀어 헤치고 소파 뒤의 막대기에 감겨 있는 또 하나의 굵은 줄을 풀어 교수 허리에 다시 감아 준다.)(철쇄와 굵은 줄은 현대인의 삶을 구속하는 현실적인 압박을 상징한다. 교수가 집에서도 이러한 구속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음.)

옷을 갈아 입으시니 한결 시원하시지 않아요?

교수

난 잘 모르겠어.(다시 같은 상황에 처함.)

김 씨 만나 봤어요?

교수

아니, 원체 바빠서.

그렇지만 김 씨 만나는 일이 제일 바쁘지 않아요? 내일까지 내야 하는데 전 어떡해요.

교수

내일 만나, 내일 만나.

내일 누구가 누구를 만난단 말이에요?

교수

내가 그 이 씨를 만난다니까.

이 씨는 또 누구요?

교수

당신이 만나라는 출판사 주인 말이야.

그 주인이 왜 이 씨예요? 김 씨지.

교수

그래, 김 씨랬어.

이름도 못 외고 어떻게 해요?

교수

 

 

 

(화를 내며) 김 씨면 어떻고 이 씨면 어때? 박 씨면 또 어때? 아닌 게 아니라 누가 누군지 분간을 못하겠어.(과도한 업무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교수를 통해, 현대인의 정신적인 면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현대인들의 인간관계 단절을 암시하기도 한다.) 누굴 만난다고 찾아가다가 보면 영 딴 사람한테 가게 된단 말이야. (잠시 사이) 거 애들보고 음악이나 한 곡 틀라고 하시오.

 

(순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방을 향하여)(가식적인 모습) 얘들아, (잠시 후) 얘들아, (대답이 없다. 여전히 부드럽게) 얘들아.

장남

(처의 소리와는 정반대로 호령이나 하듯이) 왜 그래요?

가벼운 음악이나 한 곡 틀어라. 아버지가 피곤하시단다.

장남

알겠어요!

 

 

옆방에서 축음기 소리가 난다. 시끄럽고 귀가 아픈 곡이면 어떤 음악이건 상관없다. 판이 고장이 난 듯 똑같은 곡이 되풀이된다.(시끄러운 음악이 반복되는 장면은 교수의 피로를 자극하게 된다. 이는 새로울 것 없으며 지루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일상의 의미를 강하게 나타낸다. 또한 장남이 처의 부탁과 다른 음악을 튼 것은 가족 간 인간관계 단절을 암시하기도 함.) 처는 무표정한 얼굴, 교수는 시끄럽다는 듯이 손으로 귀를 막는다. 참다 못해 교수는 손을 흔들며 중지하라는 시늉을 한다. 음악이 멎으면 옆방이 밝아진다.(장면의 전환) 소파에 앉아 무엇을 처먹고 있는 장남과 아무렇게나 앉아 화장을 하고 있는 장녀가 보인다.(교수의 상황과 대조되는 모습)

 

 

교수

저런 시끄러운 음악을 무엇 때문에 틀까?

왜 시끄러워요?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교수

좋건 나쁘건 간에 왜 똑같은 곡을 되풀이하느냐 말이오?

당신이 음악을 몰라 그래요. 애들은 좋다고 하던데.

교수

그 곡 이름이 뭐지?

'찬란한 인생'이라나요.

교수

'찬란한 인생'이라. 찬란한 인생이 자꾸 되풀이된다는 말이군.

그런가 보죠.

 

 

교수가 소파 앞에 굴러 있는 신문지를 집어 본다.

 

 

교수

 

 

 

 

(신문을 혼자 읽는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애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내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폼이 착취사(搾取社)에서 다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군.

 

 

처가 신문지를 한 장 다시 접는다. 날짜를 보더니

 

 

당신두 참, 그건 옛날 신문이에요. 오늘 것은 여기 있는데.

교수

 

 

 

 

 

(보던 신문 날짜를 읽고) 옳아, 삼 년 전 신문을 읽고 있었군. 오늘 신문 이리 주시오. (오늘 신문을 받아 가지고 다시 읽는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애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내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폼이 악마사(惡魔社)에서 나왔어. 이 씨가 또 당선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군.

참, 세상도 무척 변했군요. 삼 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당신 피곤하죠?

장녀

 

(옆방에서 화장을 하며, 장남에게) 얘, 시계가 좀 늦은데 일어선 김에 밥이나 좀 줘라.

 

장남 시계에 밥을 준다.

 

여기 좀 계세요. 저 밥을 좀 지을게요.

교수

괜찮아, 밥 먹었어.

어디서요?

교수

여기서 먹었던가? 아니야, 거리서 먹었던 것 같기도 하구.

언제요?

교수

 

오늘 아침에도 먹었고. 점심도……. 글쎄…… 그러다 보니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분간을 못 하겠군.

지금 하시는 번역은 언제 끝나요?

교수

지금 하는 번역이 몇 가지나 있지?

 

그러니까 밤낮 원고료를 짤리우지요. <자존심의 문제>, <예술에 있어서의 창조성>, <검둥이와 미녀>, <어떤 여자의 고백>…… 이렇게 넷뿐인가요?

교수

그렇겠지. 아이 피곤해.

어떤 것이건 빨리 끝내야지, 어떻게 해요. 집도 수리해야겠고, 또 이 달에 아버지 생일도 있잖아요.

교수

밤낮 생일을 치르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거요? 어제도 아버지 생일 잔치를 했는데.

당신두 참! 어제 당신 아버지가 생신이었어요. 이번엔 우리 아버지 생일이고.

교수

그저께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 만 환을 내지 않았소?

그건 대식이 동생 사촌의 며느리뻘 되는 여자의 아버지 생일이래서 그랬지요.

교수

그 바로 전날에도 누구 아버지 생일이라고 해서 돈을 냈는데.

그건 순자 언니 조카뻘 되는 며느리 시누이의 아버지…….

교수

 

됐어, 됐어. (크게 하품을 하며) 아이 피곤해.

 

이 때, 밖에서 시계가 8시를 친다. 교수는 깜짝 놀라 일어선다.

 

교수

8시야! 8시! 늦겠군.

어디 가세요?

교수

어디 가긴 어디 가. 나 가는 데 모르시오? 옷 갈아입어야지.

전번 모양 철쇄를 졸라맨다. 이어, 도어 쪽으로 가서 철문 같은 도어를 열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온다.

 

왜 또 돌아오세요? 나가시기가 바쁘게.

교수

 

8시를 치기에 아침 8신 줄 알았지. 대학에 강의하러 나간다고 나섰더니 밖이 캄캄하지 않아. 생각해 보니 밤 8시군. (소파에 누우면서) 오늘 밤은 좀 푹 쉬어야겠군.

공부는 안 하세요?

교수

공부?

아, 번역 말이에요.

교수

좀 쉬어야겠어.

그럼 좀 쉬시다 일어나세요. 전 옆방에 좀 갔다 오겠어요. 참, 당신도 옷 좀 갈아입으세요.

전번 모양 철쇄를 바꾸어 맨다. 이어 퇴장.

 

교수

아이 피곤해.

이 때 고요한 음악이 들린다. 눈을 감고 자는 교수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돈다. 잠시 후 응접실 불이 서서히 꺼지고 플랫폼 방이 다시 나타난다. 소파 앞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처와 소파에 자리잡고 있는 장남, 장녀.

 

장녀

(처에게 명령조로) 양말, 하이힐!

장남

(처에게 명령조로) 잠바, 마후라!

처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순응한다.

 

장녀

용돈, 교과서, 과자.

장남

떡국, 만두국, 설렁탕.

장녀

영화값, 연극값, 다방값.

장남

교재비, 차비, 동창회비.

장남, 장녀 같이 손을 내밀면서

 

장녀

돈!

장남

돈!

장녀

자식에 대한 책임!

장남

자식에 대한 책임!

플랫폼 방의 불이 꺼지며 다시 응접실이 밝아진다. 소파에 누워 철쇄마저 어느 사이에 풀어헤치고 행복하게 잠자는 교수가 보인다. 시계가 9시를 친다. 시간이 한 시간 경과하였음을 표시한다. 이 때 창문을 열고 감독관이 방 안을 들여다본다. 얼굴이 흉칙하게 생긴데다 아래위를 까만 옷으로 차리고 있어 지옥의 옥리를 방불케 한다. 긴 회초리를 든 손을 방 안에 밀어넣더니 잠자는 교수를 회초리로 때린다. 교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감독관

원고! 원고!

교수

(일어나며) 네, 곧 됩니다. 또 독촉이군.

김독관

(책상을 가리키며) 원고! 원고!

교수, 소파 한 구석에 나동그라져 있던 가방을 갖고서 황급히 책상에 가 앉는다. 가방에서 원고를 끄집어 내고 책을 펼친다.

 

감독관

원고! 원고!

이윽고 교수는 번역을 시작한다. 감독관이 창문을 닫고 사라진다. 처가 들어온다. 큰 자루를 손에 들고 있다.

 

 

 

 

 

 

 

 

 

어마나, 그렇게 벌거벗고 계시면 어떡해요. (막대기에 감긴 철쇄를 줄줄 끌어다 교수 허리에 감아 준다.) 감기에 걸리면 큰일나요. (교수는 말없이 번역을 한다. 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교수 옆에 앉더니 큰 자루를 벌리고 교수를 주시한다.) 빨리! 빨리! (교수가 말없이 원고지 한 장을 쭉 찢어 처에게 넘겨준다. 처는 빼앗듯이 원고지를 가로채더니 자루 안에 쓸어 넣는다. 그리고) 3백 환!  (재빨리 다음 페이지의 번역을 끝낸 교수가 다시 한 장을 찢어 처에게 넘긴다. 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6백 환!  (이어) 9백 환!  (플랫폼 방이 다시 밝아진다. 달콤한 음악과 더불어 장남 장녀가 또 무엇을 처먹으면서 거울 앞에 가더니 얼굴의 여드름을 짠다. 옆방에서는 여전히 교수와 처가 결사적으로 일을 한다. 처의 요란스러운 셈 소리가 3천 환을 훨씬 넘었다. 감독관이 다시 창가를 지나가며 기웃거리고 사라진다. 일하던 교수가 갑자기 붓을 놓고 쓰던 원고지를 보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왜 그러세요?

교수

참, 신기한 일이야.

3천 환을 겨우 넘었을 뿐인데 무엇이 신기해요?

교수

 

이 원고지 말이오. 다 200자 칸이 있는데 이 종이만은 190자 칸밖에 안 들었어. 10자 모자라. 어째서 그럴까? 원고지가 행결(한결) 크고 시원해 보이는군.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이상한데 이상해.

교수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전면을 바라본다. 이때 무대 전체가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가 교수만을 포착한다. 잠시 모든 것이 조용해지며 과거를 상기시키는 감상적인 음악이 고요히 흘러나온다. 교수 전면에 또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투사되며 천사가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레를 추면서 들어온다. 교수는 천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교수

(한참 있다) 오라, 생각이 나는 것 같아. 그래 바로 그거야.

천사

(과거의 교수 자신)를 완전히 잊은 줄 알았어요.

교수

(일어서며) 분명 그래. 아직 잊지를 않았어. 나의 희망, 나의 정열의 옛 모습이야.

천사

쥐꼬리만 한 기억력이 아직 남아 있군요.

교수

 

 

언제 어떻게 돼서 당신과 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게도 불타는 듯한 정열이 있었어요. 그래요. 생각이 납니다. 밤을 새워 가며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진리를 위해 온 생애를 바치겠노라고 떠들던 때……. 아,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버렸어요?

천사

 

 

당신이 나를 떠났지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나한테 되돌아오기는 너무 늦었어요.(교수가 정열과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현재 교수가 구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현실의 늪에 깊숙하게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교수

 

 

내 꿈을 도로 찾아 주십시오. 생각할 힘을 주시오. 요즈음은 통 사고(思考)를 할 수가 없습니다.(현실의 구속과 중압감 때문에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소중한 가치를 상실한 채 물질만을 위해 비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냄.)

천사

사고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사고(事故)가 난 걸요.

교수

 

함정(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에서 뛰어 나가고 싶습니다. (천사가 서서히 사라진다.)(절망적인 상황) 가지 마시오! 내 희망, 내 정열은 어떻게 되는 거요. 꿈을 주십시오! 내 꿈! 내 꿈!

 

꿈을 잃은 교수는 맥없이 전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어둠 속에서 창을 여는 소리가 나며 감독관이 얼굴을 나타낸다.('감독관' 역시 '천사'와 같은 환상 속의 인물이다. 꿈과 물질적 가치 속에서 내면적 갈등을 겪던 교수가 결국 물질적 가치의 의미를 지니는 감독관이 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보여줌.)

 

감독관

(회초리를 흔들며) 원고!  원고는 언제 쓰는 거야?(감독관이 현실의 중압감을 상징하는 인물임을 보여줌.)

 

이 소리에 교수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현실로 다시 돌아옴) 다시 비참한 표정으로 번역을 계속한다. 이러는 사이에 무대 전체가 암흑화된다. 잠시 후 새소리, 닭 우는 소리와 더불어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아침이다.(변하지 않은 암울한 현실) 교수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자고 있다. 플랫폼 방에서는 장남이 반나체가 돼서 아령을 쥐고 운동을 하고 있다. 장녀가 아침 신문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온다.

 

장녀

 

 

 

 

 

 

 

(관객들에게)(장녀는 관객에게 인물과 극적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극의 허구성을 노출하고, 관객의 극적 환상을 파괴한다. 이로써 관객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무대와 실제 현실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벌써 아침이 됐습니다. (자고 있는 교수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연구하시다가 가끔 그대로 책상에서 주무신답니다. 그야말로 학자지요.(반어적 표현) 여러분은 아침에 어머니가 먼저 안 나오시고 제가 이 방에 대신 왔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이 아버지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로 달려 갔으니 이렇게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시겠지요. 아버지가 밤늦도록 수고하시니 저도 아버지를 위해 한 가지 좋은 일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께 신문을 읽어 드립니다. (교수를 깨운다.) 아버지. (교수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든다.) 아버지, 아침 신문 왔어요. 읽어 드리겠어요.

교수

(하품을 하고) 그래, 읽어 다오.

장녀

 

 

 

 

 

 

(신문을 읽는다.) 비가 많이 왔어요. 강원도 쪽의 눈이 굉장한 모양이에요. 또 살인입니다. 이번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애비를 죽였대요.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히 무너졌답니다.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요.(비현실적인 사건으로, 현대인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함.) 아버지의 '개성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책이 악마사에서 다시 나왔어요. 이 씨가 또 당선됐답니다.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군요. 끔찍도 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 맞았대요.(교수가 전에 읽은 신문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기사의 내용은 사회 전체가 참다운 발전과 생명력이 없이 무의미한 순환을 반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수

 

 

 

하룻밤 사이에 참 신기한 사건도 많아라.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야 어디 살 수 있겠니? 너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뭐냐?(교수는 종이를 보면 번역을 떠올리고 종이에 적힌 모든 활자를 반드시 번역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교수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희극적인 웃음을 유발하고 있으며, 일상에 매몰되어 무의미한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서글픈 단면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장녀

이거요?

 

영자 신문을 교수에게 준다. 교수는 받기가 무섭게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다.(교수가 영자 신문을 보자마자 번역을 하는 행동은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적 과장에 해당한다. 이는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을 나타낸다.)

 

장녀

뭘 번역을 하세요?

교수

이 영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거야.(그대로 번역을 한다.)

장녀

아버지두! 참, 그거 오늘 아침 영어 신문이에요.

교수

 

 

 

(신문을 보더니) 그렇군! 난 영어길래 곧 번역하려구 했지.(일상에 억눌려 판단력을 잃은 교수) (시계가 여덟 점을 친다. 교수는 무엇에 놀란 듯 황급히 일어나 가방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가 철쇄를 바꾸어 맨다.) 벌써 8시야. 빨리 가야지. 빨리 가야지. 이번엔 분명 아침 8시겠지. (무겁게 철문을 열고 퇴장하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장녀

 

모레가 일요일이구 내일이 국경일이니까 오늘은 금요일이군요.

 

교수 퇴장. 장남 등장. 장남과 장녀는 소파에 앉아 고약한 세리(세금 받는 관리)처럼 버티고 처의 귀가를 기다린다. 이윽고 처가 철문을 열고 돌아온다. 피곤에 못 이겨 허둥지둥 하면서도 돈 보따리는 꼭 끼고 있다. 현기증과 갈증이 심한 듯 소파 앞에 무릎을 떨어뜨리며 주저앉는다. 장녀와 장남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번쩍 내민다. 처는 보따리를 헤치고 그 돈을 나누어 준다. 돈을 받자 두 자식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처가 마루에서 일어나 소파에 주저앉아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더니 다시 감독관이 회초리로 처를 친다. 처가 깜짝 일어선다.

 

감독관

연탄 준비! 김장거리! 빨랫감!

아이, 또 독촉이군. (책상 쪽으로 가 천천히 흩어진 책이며 원고지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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