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선(滿船)(1965)                     -천승세-

● 줄거리

1965년 국립극장 현상모집에 당선된 천승세의 희곡 작품이다. 칠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가난한 어부 곰치 일가의 비극적 삶을 부서떼의 출현과 결부시키면서 가난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몸부림과 비극적 좌절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놓고 있다.

이 작품은 칠산 앞바다에 몇 십 년만에 나타난 부서떼를 계기로 시작된다. 가난하지만 노력한 어부이자 강한 자부심의 소유자인 곰치는 이제 고대하던 만선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 고리대와 가난에 시달려온 이들에게 고기잡이는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때 첫 번째 장애가 다가오는데, 선주 임제순의 고리대 변제 요구가 그것이다. 그는 선변제를 요구하며 배를 묶고 또 다른 열악한 계약을 강요한다. 곰치 일가의 꿈이 인간사회의 불평등한 구조 앞에서 좌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기잡이에 대한 욕구는 운명처럼 강렬하여 곰치는 아들 도삼과 함께 결국 바다로 나가지만 이미 부서떼는 이동해 버린 후였다. 이 두 번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지나치게 부서떼를 뒤쫓다가 배는 전복되고 곰치만이 구조된다. 이 과정에서 아들을 잃고 실성한 곰치의 아내 구포댁은 빚 변제 요구에 딸 슬슬이를 주막집 주인 범쇠에게 팔아 넘기고 어린 아기를 배에 실어 바다로 내보낸다. 배가 있는 범쇠에게 슬슬이를 시집 보낸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어린 아기는 뭍으로 보내 어부를 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그녀의 환상적인 해결 방식은, 결국 슬슬이의 자살을 야기하며 아기의 익사를 암시한다. 운명적인 가난을 벗어나려는 그들의 꿈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강한 암시가, 구포댁의 이러한 행동 속에서 더욱 처절하고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희곡 작품은 이러한 강한 주제로 인하여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긴박한 대사 처리와 호흡, 그리고 잘 짜여진 구성 때문에 모범적인 희곡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감상 및 이해

남해안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대자연과 싸워 나가는 어촌 사람들의 끈질긴 삶의 의지를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만선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는 곰치의 끈질긴 의지와 그에 맞서 하나 남은 갓난 아들을 지켜 내고자 하는 곰치의 아내 구포댁의 갈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만선을 둘러싼 인물 간의 갈등 외에도 인간과 자연의 갈등, 빈부 차이에 의한 갈등, 숙명과 의지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양상이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어촌을 배경으로 어민들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희곡이다. 억센 사투리로 짙은 향토성을 구현하고 있으며, 다양한 갈등 양상을 통해 어부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곰치가 만선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자연과 숙명에 도전하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 숙명과 인간의 갈등 양상을 보여 준다. 이러한 갈등은 숙명에 도전하려는 곰치와 숙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내의 대립을 통해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이 작품의 비극성은 실성한 아내가 갓난아이를 배에 실어 육지로 띄워 보내고 곰치의 딸인 슬슬이가 자살하는 데서 최고조에 이른다. 주인공의 굽힐 줄 모르는 집념과 의지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되는 비극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희곡, 장막극(3막 6장), 비극, 사실주의극

구성

* 발단 : 부서 떼가 몰려들자 만선의 꿈을 꾸는 곰치

* 전개 : 배를 묶어 이득을 챙기려는 선주 임제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곰치

* 절정 : 만선의 꿈을 이루지만 거센 풍랑에 잡은 고기와 도삼 연철까지 잃은 곰치

* 하강 : 곰치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임제순

* 대단원 : 구포댁은 갓난아이를 배에 태워 육지로 보내고, 슬슬이는 자살함.

배경 → 시간적(여름), 공간적(남해안의 어느 어촌)

갈등 →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 인물과 자연 간의 갈등, 빈부 간의 갈등, 숙명과 의지 간의 갈등

주제한 어부의 만선에 대한 집념과 도전 의지(인간의 도전과 좌절)

특성

1) 사투리와 비속어를 사용하여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냄.

2)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들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남.

● 참고자료

◆ 희곡의 구성 요소

1. 형식적 요소

⑴ 해설 : 희곡의 맨 처음에 나오는 지시문. 등장인물, 장소, 무대 등에 대한 설명을 해 줌.

⑵ 지문 : 대화 중간에 인물의 동작, 표정, 심리 상태 등을 설명하거나, 조명, 효과, 배경 등을 지시해 줌.

⑶ 대사

* 대사의 종류

① 대화 :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

② 독백 : 등장인물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

③ 방백 : 다른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에게는 들리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독백. 인물의 내면 심리나 의식 등을 관객에게 전달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음.

* 대사의 기능 → 대사는 행동의 한 양식으로, 사건을 진행시키며 분위기를 드러냄. 인물의 생각, 성격을 나타냄. 무대 밖 사건에 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해 줌.

2. 내용적 요소

⑴ 인물 : 의지적, 전형적, 개성적으로 창조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수나 성격 유형에 제한이 따름. 갈등과 의지의 투쟁을 보여 주는 인물을 등장시켜 극적인 효과를 뚜렷이 드러내야 함.

⑵ 행동 : 생략, 압축, 집중, 통일된 특성을 보임. 갈등과 긴장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함.

⑶ 주제 : 인생의 단면을 집약적으로 보여 줌.

 

◆ 희곡의 인물

희곡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을 극 비평에서는 다음 세 유형으로 나눈다.

① 등장인물(person) : '정신적인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이 말은 라틴어의 'persona'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를 음미해 본다면 희곡에서의 등장인물은 곧 연극의 가면이라는 뜻이 된다.

② 형상인물(figura) : 이 낱말은 라틴어의 'figura'에서 연유된 말로 조형물 또는 형상물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작가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작가에 의한 인공적인 인물이다.

③ 성격(character) : 그리스어인 'charakter'에서 연유된 말로서 원래 낙인 인쇄, 각인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character'는 개성, 특성으로 이해하지만 전형이라는 개념과도 관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희곡 작품에서의 등장인물을 캐릭터라는 용어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정자, "글쓰기의 길잡이", 국학자료원, 2005

 

◆ 희곡의 인물 형상화 기법

희곡에서의 인물 형상화 기법은 크게 인물을 통한 방법과 내포 작가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둘을 각각 다시 명시적인 것과 암시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인물을 통한 방법을 명시적 기법과 암시적 기법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으며, 내포 작가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방법도 명시적 기법과 암시적 기법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1. 인물을 통한 기법

⑴ 명시적 기법 : 인물이 대사로 스스로나 타인을 형상화하는 경우이다. 독백이나 대화를 통한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언급은 인물의 시각에 의해 제한된 주관적인 이해를 표현한다.

⑵ 암시적 기법 :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이 있다. 비언어적인 것이란 인물의 태도, 행동, 외양, 표정, 의상, 소도구, 극적 공간 등을 통해 인물을 형상화하는 기법이다. 언어적인 것으로는 음색, 언어 표현 방식, 방언 등이 있다.

2. 내포 작가의 시각으로 형상화하는 기법

⑴ 명시적 기법 : 지시문을 통해 등장인물을 묘사하거나 인물의 특성을 직접 드러내는 이름 등을 이용하는 기법이다. 특히 지시문을 통해 인물의 외양을 묘사하고 작가가 해석을 덧붙인 경우 수용자의 독서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⑵ 암시적 기법 : 등장인물의 공존과 대립을 통해 형상화하거나 혹은 인물의 특성을 내포하며 은유하는 이름 등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탕으로 각 인물의 성격을 파악해 보자.

 

행동이나 태도

성격

곰치

만선에 대해 강하게 집착함.

강한 집념과 의지를 갖고 있으며 고집스러움.

구포댁

아들 도삼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아들을 뭍으로 떠나 보냄.

자식에 대한 강한 모성애를 갖고 있음.

성삼

만선에 대한 곰치의 고집을 만류하며 곰치와 구포댁의 갈등을 중재함.

상황을 감정적으로 판단하기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함.

 

2. 이 작품에 나타난 갈등 양상에 대해 알아 보자.

(1) 곰치와 구포댁의 갈등 양상과 그 의미를 정리해 보자.

곰치

 

구포댁

만선에 대한 집념을 갖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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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에 도전함.

바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육지를 지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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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함.

 

막내를 어부로 키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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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어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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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생명에 대해 집착함.

 

(2) 이 작품에 나타난 또 다른 갈등 양상을 찾아 보자.

* 인간(곰치)과 자연(바다)의 갈등 → 곰치와 구포댁의 갈등을 초래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

* 숙명과 의지의 갈등 → 곰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음. 이러한 의지는 곰치와 구포댁의 갈등을 초래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

 

3. <보기>는 희곡의 특성에 관한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 제시된 대사와 지시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자.

<보기>

희곡은 대사와 지시문에 의해 구성된다. 대사는 인물의 성격, 심리, 태도 등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며 사건을 전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무대에서 형상화되지 않은 '무대 밖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시문은 등장 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심리 등에 관한 행동 지시문과 작품의 배경, 무대 장치 및 소도구의 배치, 음향 효과 등에 관한 무대 지시문이 있다. 행동 지시문은 대사를 보조해 인물의 형상화를 도우며, 무대 지시문은 시 ·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때로는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사건 전개 방향을 암시한다.

▶ 곰치 :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면 한정 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속에 달린 목숨이여!

→ 곰치의 우직한 성격과 함께 만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심리,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어부 A : 자네 안 사람이 우실이네 배를 띄웠단 마시!

→ 구포댁이 우실이네 배에 갓난아기를 태워 육지로 띄워 보낸 무대 밖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 단말마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것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거린다.

→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비극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4. 인물의 내면 심리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다음 빈칸에 대사나 지시문을 자유롭게 추가해 보자.

곰치 : 배보다도 널쪽이 더 나어! 널쪽만 안 놓치면 집채 같은 파도 속에서도 널쪽은 안 부서져!

성삼 : 글씨 안 돼!

곰치 : 안 될 것이 믓잉가? 곰치는 해! 어서! 어서! (나간다.)

구포댁이 곰치의 말을 듣고 경기를 일으키며 실신한다.

곰치 : (놀라서 구포댁을 안는다.) 이 여편네가 왜 이런담. 정신 차려라. 얼렁, 정신 차려라.

구포댁이 정신을 차리자, 곰치는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구포댁, 허겁지겁 곰치를 쫓아 나가 버린다. 무대엔 침통한 얼굴의 성삼이 혼자 한동안 넋을 빼고 있다간 불현 듯 바삐 헛간 쪽으로 간다.

 

● 교과서 수록 부분 읽기

: 현대, 여름

: 남해안에 있는 조그만 어촌

등장인물

곰치 : 49세, 어부

구포댁 : 48세, 그의 아내

도삼 : 30세, 그들의 아들

슬슬이 : 19세, 그들의 딸

성삼 : 47세, 곰치의 친구, 어부

연철 : 28세, 도삼의 친구, 어부, 슬슬이의 애인

임제순 : 60세, 선주

범쇠 : 50세, 주막의 주인

마을 어부 A, B

이전 줄거리 : 칠산 바다에 부서 떼가 몰려들자 곰치는 며칠만 부서를 더 잡으면 악덕 선주 임제순에게 밀린 배 삯을 갚고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할 수 있다며 기뻐한다. 그러나 임제순은 그 돈을 갚을 때까지 배를 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이에 곰치는 다음 날까지 빚을 갚겠다는 각서에 손도장을 찍고 사나운 바람을 무릅쓰고 아들 도삼이와 아들의 친구이자 딸의 애인인 연철이를 데리고 바다로 나간다. 곰치는 만선의 꿈을 이루지만 거센 풍랑에 배가 뒤집혀 고기뿐만 아니라 도삼이와 연철이마저 잃고 자신만 겨우 구조되어 돌아온다.

제3막

(무대.

 전 장과 같은 무대, 전 막의 이튿날 한나절, 전 막에서보단 더 기세가 높은 바람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구포댁 홀로 마당 한가운데 풀썩 주저앉아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고 있고, 그 옆에 타다 만초 자루와 물 한 대접이 얹혀 있는 상이 놓여 있다. 전 막에서보단 판이하게 사색이 된 구포댁, 헝클어진 머리, 헤쳐진 앞가슴,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반공을 우러르고 있는 그네의 모습은 흡사 혼이 빠진 사람 같다. 기도를 드리느라 한 밤을 꼬박 샌 듯 가끔 자기도 모르게 꾸벅 졸다간 소스라쳐 깨며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한다. 무대엔 처절하면서도 몽상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슬슬이

(부엌에서 밥사발을 들고 나와) 엄니!

구포댁

 

(졸다 흠칫 놀다) 수신님, 수신니임 우리 도삼이― 우리 도삼이를 얼른 이 애미 품 안으로― 애미 품 안으로―. (기진한 듯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슬슬이

(간절하게) 엄니! 엄니!

구포댁

(그제야 옆의 슬슬이를 알아차리곤, 헛소리처럼) 뭇이?

슬슬이

(미음의 준말)이여, 밈! 한 사발 쭉 마시란 말이요!

구포댁

(여전히) 우리 도삼이를 빨리 이 애미한테 보내 주시게라우― 수신님, 수신니임.

슬슬이

 

후유. (밈 사발을 들고 어쩔 줄 모르다간) 엄니! 이것 잡수셔야 써라우! (입에다가 사발을 들이대며) 자아, 자아!

구포댁

 

 

(사발을 받아들곤) 밈? (먹으려다가) 안 되어! 우리 도삼이는 시방 물길 시엄쳐 오느라고 사지가 문드러져 빠질 텐디! 창자가 비어서 힘도 지대로 못 쓸 텐디 사대육신 멀쩡한 이 에미가 뭇을 목구멍으로 냉겨?

(미음 그릇을 놓아 버린다. 그 바람에 미음이 엎지러져 버린다.)

슬슬이

 

(발을 동동 구르며) 이고, 이고! 어지께부터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밈 그릇을 들며) 그나마도 겨우 쒔는디―.

구포댁

미쳤다고 밈을 써? 안 묵어! 아무것도 안 묵어! 도삼이 올 때까지는 침도 안 생킬란다!

슬슬이

오빠가 오드라도 엄니가 기운을 채려사 쓸 꺼 아니요?

구포댁

 

속이 불무질하는디 따대기지 말어라이! 아뭇 소리 말어어. (하늘을 우러르며) 그래도 이렇게 바람만 자꼬 자꼬 부르시능게라우? 예에?

슬슬이

(헛소리처럼) 오빠는 와! 반다시 오시고 말 거여! (옷고름으로 눈물을 씻는다.)

임제순, 노기 등등해서 등장. 그 뒤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범쇠따라 들어온다.

임제순

(방 안을 향해, 큰소리로) 곰치! 곰치이!

구포댁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슬슬이

나가셨어라우!

임제순

(들은 시늉도 않고) 곰치! 이런 빌어묵을 작자가 있어! 없어? 엉?

슬슬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치이!

임제순

(구포댁에게) 그놈의 곰친가 믄가 어디 갔어?

구포댁

(못 들은 체 앉아만 있다.)

임제순

이놈의 여펜네가 귓구멍이 곯았다냐? 아, 곰치 으디 갔단 말이여?

범쇠

 

(구포댁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아짐씨! 그라먼 못쓰지라우! 일이 기왕에 이렇게 돼 버린 이상 서로가 맞손잡고 타협해사지라우! 앙그라요?

임제순

(미친 듯) 아, 곰치! 곰치여!

슬슬이

(신경질적으로) 내가 나가셨다고 그란합디까?

임제순

(한쪽 발을 텅 구르며) 애끼, 보고 밴 데 없는 가시네 같으니라구! 으때 대고 소락때기를 치는 거엿?

슬슬이

(홱 돌아서며 분함을 참느라 애쓴다.)

구포댁

(풀이 죽은 소리로) 슬슬아! 사발 물 갈어다 놔.

임제순

(구포댁을 독살스럽게 흘기며) 인, 고약스런.

범쇠

 

 

아짐씨! 속이사 오죽 하겄소만은 말씀이랑 하시고 그러사제― (구포댁 옆에 쭈그려 앉으며) 범쇠도 도움이 되다먼 나도 힘껏 해 볼 탱께 아짐씨도 힘을 내서 일을 처리합시다! 예? 히히히. (구포댁의 어깨를 붙들며) 자아.

구포댁

(손을 홱 뿌리치며) 흥! (표독스럽게 범쇠를 쏘아본다.)

범쇠

(어색하게) 헛 참―!

슬슬이

(범쇠를 흘기고 나서, 상 위의 사발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임제순

아니, 곰치는 으디 갔어?

구포댁

아들 잡어무꼬 나서는 미친개처럼 쏘아댕기는디 내가 으찌께 알겄소! 뚝에다 볼라고 앉었겄제―.

임제순

 

에잇, 속상해서! 이놈의 곰치가 나하고 믄 원수길래 막판에는 내 배까지 잡아묵어? 그놈 성미에 아들이 견뎌 나?

구포댁

우리 도삼이는 와라우! 꼭 오고 말어라우! (못을 박아) 연철이도―.

임제순

흥! 쯧쯧쯧!

범쇠

 

아조 단념하시고 맘을 다시 묵어사제, 배가 부서지는디 사람이 으찌게 견뎌 난다요? 곰치야 으찌게 살아 왔지만―.

구포댁

못이라우? 그람 우리 도삼이가 죽었단 말이요?

임제순

(못마땅해서) 그람 살어?

구포댁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시상에 죄받을 소리 마씨요! 으짠다고 사람 맘들이 이렇게 모지까잉! 살어 있고말고라우! 지금 오고 있는디― (단호하게) 아암! 한참 오고 있고말고!

임제순

 

 

 

집이 아들이 살었든지 죽었든지 간에 오늘 당장 돈이나 내놔! 그 배가 으뜬 밴 줄이나 알어. 아암! 그라고말고! 그랑께 기왕 가라앉은 배 뜨지는 않을 테고 밀린 배삯이나 오늘 당장 치뤄! 대서방(대서소. 남의 부탁을 받아 관공서에 제출할 서류 등을 대신 써 주는 곳) 대꼬 와서는 집이고 뭇이고 싹 차압 붙이기 전에!

범쇠

(넌지시) 자아, 말은 떨어지고 말었소! 아짐씨! 으찌게 방도 캐사제?

구포댁

 

 

 

(못 들은 체 눈을 질끈 감고는) 현찰(남이 미루어 살핌을 높이어 일컫는 말) 고맹하신(고명하신) 수신님! 어서어서 호박불 연지불 키어 주시고 우리 도삼이 오는 물길 태평하게 해 주시게라우! (하늘을 우러르며) 하나니임! 바람 바람 싹 쓸어서 곡간에나 가두시고 일원청청 햇빛이나 쏟아 주시쑈. (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곤 고개를 조아린다.)

임제순

(못 보겠다는 듯이) 흥!

범쇠

 

아짐씨, 백 번 비셔도 인자는 이미 틀어진 일이요! 살어는 도삼이가 물고기라도 집채 같은 물결 속에서 한 밤을 새운다우?

임제순

(급하게) 이봐, 구포댁!

구포댁

(건성으로) 예에?

임제순

 

구포댁도 알 것이시! 이 제순이가 으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란 말이여! 오그든, 이봐 말을 듣는 것이여?

구포댁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예! 예에!

임제순

 

나중에 딴소리하먼 못써. 곰치 오거든 오늘 안으로 당장 배삯 청산하라고 전해 주어! 오늘 넘기고 나서는 괜히 이 임제순이만 매정하다 말고―알었제?

구포댁

(힘없이 고개만 끄떡거린다.)

임제순

나 아조 말했네! (다짐하듯) 알었제?

구포댁

(목멘 소리로) 엇따 알었소! (비명처럼 길게) 예에.

임제순

으음 됐어! 돈 관계는 분명해사 쓰는 것이니― (내뱉듯) 헛 참, 살다살다 기맥힌 꼴을 다 봐! (퇴장.)

범쇠

(다정하게) 아짐씨이!

구포댁

(벼락같이) 뭇이여? 뭇이란 말이여?

범쇠

(질려서) 이라지 마시요! 당최 이라지 말어!

구포댁

 

아니, 곰치하고 믄 원수길래 임 영감 섯바닥 피리에 장구치고 야단이여! 얹혀 묵은 뱃놈은 똥이고 배부르는 놈들은 다 양반잉가? 응?

범쇠

이 양반이 뭇 할 소리가 없네?

구포댁

내가 믄 못 할 소리를 했어?

범쇠

 

허어 아짐씨, 아짐씨가 그렇게 소락때기만 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우선 끄고 불 방도를 캐사제! 이래도 내 말이 틀린단 말이요?

구포댁

 

(조금 누그러지며) 그것을 누가 몰라! 아들놈은 살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 (치맛자락으로 눈두덕을 쓱 문지르고 나선) 바, 방도가 있어사제.

범쇠

(은근하게) 으째 방도가 없소? 생각해 보씨요.

구포댁

방도? ― (세게 고개를 내저으며) 없어! 없어!

범쇠

(갑갑하다는 듯이) 헛 참! 기를 쓰고 캐내사 있지라우!

구포댁

(야릇한 표정으로 범쇠를 올려다본다.)

범쇠

(바싹 다가앉으며) 아짐씨! 죄다 살고 봐야 합니다! 죄다 살어야지라우!

구포댁

 

(그 말에 제정신이 든 듯) 아문! 살어사제! 우리 도삼이는 살어 있응께 으찌게라도 방도는 있겄지라우.

범쇠

(감격해서) 예에! 고, 고맙소서 나온다.

이 때 지서 순경 어두운 얼굴로 들어온다. 구포댁 애기를 안고 벌떡 일어나 순겨에게 다가선다.

구포댁

(숨가쁘게) 아자씨!

순경

(난처한 표정으로 뒤통수만 긁적거리며 말이 없다.)

구포댁

아자씨, 예에?

순경

진정하셔야제―.

구포댁

아니, 으찌게 됐소?

순경

지금은 수색을 못 합니다. 바람이 자야제 다시 시작하게 되지라우!

구포댁

그람 우리 도삼이 있는 물 속이나 알었단 말이요? 분명히 살어는 있지라우?

순경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시체 인양 작업 말이지라우― 벌써 두 분은―.

구포댁

(펄쩍 뛰며) 시체?

순경

 

익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시체라도 건질라고 노력은 합니다만 그것도 거의 불가능이지라우! 워낙 바다가 깊어서―.

구포댁

아니, 그라믄 우리 도삼이가 죽었단 말이요? 예에?

순경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돌아가신 거야 뻔하지라우―.

슬슬이

(몸을 못 가누며) 아아, 오빠아!

구포댁

뭇이라고? 뻔해?

순경

글씨―시체 인양이 성공할는지는 모르겄소만 하여튼 바람 자는 대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퇴장.)

구포댁

아니, 여보쑈! 여보쑈, 예!

순경을 쫓아 구포댁 허겁지겁 따라 나간다. 범쇠 넋 나간 듯 서 있는 슬슬이의 눈치를 살피며 서성댄다. 범쇠, 애욕에 타는 눈으로 슬슬이에게 슬금슬금 다가간다.

슬슬이

(들고 있던 사발을 떨구어 버리며) 오빠! 오빠아. (그 자리에 꿇어앉아 흐느낀다.)

범쇠

 

(떨리는 목소리로) 스, 슬슬아! 그만 해 둬―. (어깨에 손을 얹곤) 자아, 일어나―. (손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며 등을 쓰다듬는다.)

슬슬이

(땅을 치며) 오빠! 오빠아! 연철씨마저―. (오열.)

범쇠

자! 일어나, 슬슬이. (애욕에 불타, 어깨를 번쩍 일으켜 세운다.)

슬슬이

(범쇠의 손에 부축되어 일어서선, 범쇠의 가슴패기에 얼굴을 묻으며) 으흐흐흐, 오빠아!

범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와락 끌어안으며) 스, 슬슬이! (한쪽 손으로 등과 둔부를 우악스럽게 쓸어 간다.)

슬슬이

 

(고개를 들어 범쇠의 얼굴을 바라보곤, 그제야 기겁하게 놀라며) 음매? 엄니이!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범쇠

못 놔! 슬슬아! (더 힘줘 끌어안으며) 못 놔! 나하고 살어.

슬슬이

놔! 놓란 말이요! 아이고 엄니이.

범쇠

 

니가 이러면 느그 집 꼴이 으찌께 되는질 알어? 자아, 슬슬아! (헛간 쪽을 바라보며) 저기, 저기로―응? 집을 생각해―.

슬슬이

예에? (한동안 몸을 맡기고 서 있다간 다시) 놔요! 이 더러운 손을 놔! (팔을 문다.)

범쇠

아야!

슬슬이 재빨리 빠져 나와 도망친다. 범쇠 미친 사람처럼 슬슬이를 뒤쫓는다. 두 사람 온 마당을 뱅뱅 돌아다니다가 슬슬이 헛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범쇠 따라 들어가려 할 때, 곰치 노기등등해서 등장. 헛간 벽에 바싹 붙어 선 범쇠를 보지 못한 듯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곰치

 

 

 

(마루에 풀썩 주저앉으며) 슬슬아! 아, 슬슬아! 이놈의 가시네가 으디 갔어? (아무도 없음을 알자) 흥! 곰치가 지금 곧 죽어나자빠질지 알어? 숨이 질 때까지 내가 그물을 놔? 죽을지 알어? 자식도 죽이고 사는 이 곰친디― (손바닥으로 눈두덕을 쓱 쓸어 버린다.) 눈물이 뭇이냐? 물 속에서 죽는 뱃놈 팔자 그만하먼 됐제― 흥! 범쇠 이놈―.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잰다.)

범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어쩔 줄 모르다가, 곰치 담배 재는 틈에 허겁지겁 도망쳐 버린다.

곰치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서) 아, 슬슬아! 이런 지길. 어디들을 퍼갔어? 아, 구포댁! 원 이것들이― (휘 방문을 열어 보곤) 애기도 없어?

이 때 구포댁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다. 슬슬안은 갓난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당을 빙빙 돈다. 한눈에 미친 것 같다.

곰치

으디를 쏴댕겨?

구포댁

(여전히 갓난애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 채) 모실(마실) 갔다 왔소!

곰치

모실? 아니 믄 청승에 모실이여?

구포댁

(하늘을 쳐다보며) 그냥 구경하고 댕겼제 머…….

곰치

슬슬이년은 으디 갔어?

구포댁

(고개를 살래살래 내젓는다.)

곰치

(마루 위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며) 이고, 도삼아아―.

구포댁

(무표정한 얼굴)

곰치

 

 

(드러누운 채) 아무 말도 아니여! (처절하게) 그래, 뱃놈은 물 속에서 죽어사 쓰는 법이여……. 그것이 팔짜니라아―. (열을 올려) 나는 안 죽어! 그여코 배를 부리고 말 것이여! 돛 달 때마다 만선으로 배가 터지는 대가 반다시 있고말고!

구포댁

 

 

(마당을 서성대며) 흥! 그 꼴로 에미를 보다니……, 눈은 희멀겋게 뜨고는 머리는 산발하고는, 옷은 믓을 입었더라? 옳제! 생모시 저고리 바지를 입고는 ……. 그 옷은 해 주지도 않았었는디 으디서 빌려 입었단 말잉가? 연철이 옷이등가? (도삼이의 죽음이 암시됨.)

곰치

믓이라고? 믄 소리여?

구포댁

(내뱉듯) 우리 도삼이 말이요!

곰치

(벌떡 일어나 앉으며) 믓이라고 도삼이?

구포댁

아암! 나는 도삼이를 봤어!

곰치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도, 도삼이를 봐?

구포댁

 

 

봤고 말고! 이 에미 손목을 떨어져라 흔들어 댐시러는 믓이라고 했샀드만은 새끼(비속어의 사용)가 말소리도 똑똑하게 안 하고 실실 웃기만 하고는 ……, 그러다가 …… 그러다가 ……. 그냥 가 부렀어! (몇 걸음 부리나케 달려가다 우뚝 서며 찢어질 듯) 도삼아! 도삼아!

곰치

저것이 …….

구포댁

 

(사방을 휘둘러 보고 나선) 아니, 아니 ……. 이 매정스런 놈의 새끼가 으디로 가 부렀어? 아 도삼어으 ―― 도삼어으 ――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으흐흐흐! (운다.)

곰치

(침통하게) 도삼이는 죽었다!

구포댁

죽었어? 연철이도 죽고?

곰치

아암! 벌써 죽었어!

구포댁

 

 

 

그짓말! 내가 아까참에도 봤는디?(구포댁이 제정신이 아님을 드러냄.)

* 구포댁이 실성한 이유 → 구포댁은 모성애가 강한 인물이다. 아들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아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성애가 강한 만큼 아들의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임.

곰치

(구포댁의 어깨를 툭툭 치며) 여봐! 정신 채려!

구포댁

 

시상에 내 청대(사철 푸른 대) 같은 아들놈이 으째 죽는단 말이여?(구포댁의 강한 모성애)  다, 다아 그짓말이여 그짓말! 도삼이는 살었어!

곰치

 

아니, 이것이 참말로 미쳤단 말잉가? (우악스럽게 어깻죽지를 잡아 흔들어 대며) 여봐! 으째 이려 응? 정신을 채려! 자네까지 이라고 나서먼 곰치는 참말로 죽어 나자빠진 줄 안단 말이여!

구포댁

그래, 우리 도삼인 참말로 죽었오? 참말? (도삼이의 죽음을 거듭 확인함.- 모성애)

곰치

(비통하게) 아암! 주 죽었어――

구포댁

 

그람 남은 놈은 ……. 남은 ……. (애기를 들어 보이며) 이놈 하나란 말이제? (구포댁의 위기의식이 드러남.)

곰치

으음 ―― 그놈이 열 살만 되면 그물을 손질할 놈(어부가 될 것임)이여!

구포댁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놈도 그물을 칠 것잉고? 열 살이면?

곰치

아암! 열 살만 되먼 그물을 치고 말고! (곰치의 집념)

구포댁

(애기를 들어 눈앞에다 세우고는 뚫어지게 쳐다본다.)

곰치

나한테 남은 것은 그물하고 이놈하고 슬슬이뿐이여! (허탈하게) 다아 잃었어! 다 …….

구포댁

 

 

 

(불현듯) 우 참! 우리 슬슬이! 아조 범쇠한테 시집보내! → 구포댁이 범쇠에게 슬슬이를 시집보내고자 하는 것은 범쇠가 배를 갖고 있어 슬슬이에게 안정된 생활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식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모성애의 발로로 볼 수 있으며, 도삼이를 잃은 상황에서 갓난아기까지 어부로 만들고자 하는 곰치에 대한 반발로 볼 수도 있다.

곰치

(깜짝 놀라) 믓이라고?

구포댁

 

제발로 얹어 묵는 놈한테 시집 가서는 안 되제! 그래도 범쇠는 배를 부링께 …….(자신의 안위를 걱정함)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슬슬어으 ――

곰치

미친 소리! 나가고 없어!

구포댁

(애기를 들쳐 업으며) 그람 찾어사제! 범쇠는 배가 있어!

곰치

 

 

(막아서며) 안 된다! 이 곰치 두 눈이 멀뚱할 때까지는 절대 안 돼1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탄다! 으뜬 배라도 타고 만다! 칠산 바다 부서는 아직도 사태(沙汰, 사람이 물건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오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여! → 만선에 대한 곰치의 집념

구포댁

 

(갑자기 간드러지게) 흐흐흐흐 ―― 부서가 사태? 그람 내일도 당장 만선이겠네? 흐흐흐흐 ―― (만선에 대한 곰치의 집념을 비웃음)

곰치

(질려서) 아니? 니가 참말 …….

구포댁

아암! 미쳤다! 미쳤어! (홱 빠져 나간다.)

곰치

저런 육실헐 …….

성삼 들어오다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구포댁의 모습을 의혹에 찬 눈으로 쳐다보다간 불안한 얼굴에 곰치에게 다가선다.

성삼

(어리둥절해서) 아니, 갑자기 믄 일잉가?

  곰치

(퉁명스럽게) 내 버려 둬!

성삼

얼굴이 사색인디?

곰치

미친 것! 흥! 곰치는 안 죽어! 내가 죽나 봐라!(삶에 대한 의지)

성삼

자네 그 소리 좀 고만 허게! 아짐씨도 오죽허먼 저래? 시상에 한나 남은 도삼이까지 물속에다 처박었으니 ……. (손바닥을 털며) 말이 아니여!

곰치

일일이 눈물 쏟음시러 살려면 한정 없어! 뱃놈은 어차피 물속에 달린 목숨이여!

성삼

자네도 그만 고집(만선에 대한 고집) 버릴 때도 됐어! → 성삼이의 역할(곰치와 구포댁의 갈등 중재)

곰치

(불만스럽게) 고집?

성삼

(못을 박아) 아니고 믓잉가?

곰치

 

 

 

 

 

 

(꼿꼿이 서선) 나는 고집 부리는 것이 아니다! 뱃놈은 그렇게 살어사 쓰는 것이여?('그렇게'는 '만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말을 통해 곰치가 만선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으며 어부로서의 삶을 숙명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는 아들 잃고 춤춘다냐? (무겁게) 내 속은 아무도 몰라! 이 곰치 썩는 속(아들 잃은 슬픔)은 아무도 몰라 ……. (회상에 잠기며) 내 조부님이 그러셨어, 만선이 아니면 노를 잡지 말라고 ……. 우리 아부지도 만선 될 고기 떼는 파도가 집채 같어도 쌍돛 달고 쫓아가라 하셨어! (쓸쓸하게) 내 형제 위로 셋, 아래로 한나 남은 동생 놈마저 죽고 말었제 ……. 어 ……. (허탈하게) 독으로 안 살먼 으찌께 살어?

성삼

그래. 조부님이나 춘부장 말씀대로만 하실 참잉가?

곰치

(단호하게) 내일이라도 당장 배 탈 참이다! 흥! 임 영감 배 아니면 탈 배 없어?

성삼

도삼이 생각도 안 나서?

곰치

(격하게) 시끄럿! (침착하게) 또 있어! 아들은 또 있어…….

성삼

갓난쟁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후유 ―― 지독한 놈!

곰치

그 놈도 …… 그 놈도 ……. 열 살만 묵으면 그물 말어 …….

이때 어부 A 숨이 차서 들어온다.

어부 A

곰치! 크 큰일 났네!

곰치

아니, 믓이 큰일나?

어부 A

배가 떴어!

두 사람

(영문을 몰라) 배가 떠?

어부 A

자네 안 사람이 우실이네 배를 띄웠단 마시!

곰치

믓이라고?

어부 A

벌써 한가운데 만큼이나 떠밀리고 있을 것이여!

곰치

(말문이 막혀 혼을 빼고 서 있다.)

성삼

이것이 또 믄 소리여?

어부 A

 

돛까지 올려 띄웠으니 잡을 수도 없고, 그나저나 바람이 왠만해사 잡을 엄두라도 내제? 또 으디로 떠밀릴지 알기나 해서?

곰치

안, 믄일로? 응?

어부 A

 

내가 알어? 진작 봤드라면 내가 배 띄우게 놔 둬? 배삯도 못 치르는 판에 배 한나 또 부서지게 생겼으니 ……. (쓴 입맛을 다지며) 자네도 큰일이여!

성삼

대체 믄 곡절(순조롭지 아니하게 얽힌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이나 까닭)일까?

어부 A

(입에 손을 갖다 대며) 쉬잇! (사립문께를 힐끗하고 나선) 물어보게나! 나, 가네! (급히 퇴장)

구포댁 뭐라 중얼대며 들어온다. 그네의 등엔 애기가 없다.(아기를 배에 띄워 보냄.)

곰치

(와락 달려들어) 아니, 으쨌다고 남의 배를 띄웠나? 엉?

구포댁

(실실 웃으며) 나 배 안 띄웠어! 참말!

곰치

 

(목을 움켜쥐고) 말을 했! 어서! (구포댁의 등을 보곤 기겁해서) 아니, 애기는? 애기는 으따 뒀어? 엉?

구포댁

 

 

(손을 내저으며) 몰라! 나는 몰라! 숨줄이 끊어져도 참말로 몰라!(구포댁의 강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갓난 아들마저 어부로 만들려는 곰치에 대항하여 아들을 지키고자 하고 있다. 즉 아들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임.)

곰치

믓이? 말 안해? (목을 바싹 졸라대며) 이래도? 이래도?

성삼

 

(황급히 곰치의 손을 떼어 놓으며) 이라먼 못 써! 물어봐사제, 이라먼 못 써! (구포댁에게) 아짐씨, 나 성삼인디 나, 알지라우?

구포댁

(연방 고개를 내저으며) 애기는 몰라! 나는 몰라!

곰치

 

(다시 구포댁의 목을 졸라 잡고) 이것을 나 죽이고 말거여! 말 안 할래? 애기 으따가 뒀어? 응? 어서 말을 해!

구포댁

갔다! 가 부렀어!

곰치

믓이? 가?

구포댁

쩌그 뭍으로 갔다! 가 뿌렀어!

곰치

배에다 실어 보냈구나! 응?

구포댁

 

 

아문! 뭍으로 가야 안 죽어! 지 명대로 살라먼 뭍으로 가야 해! 좋은 사람 부모 만나서 호강하고 크라고! 그래사 지 명대로 살탱께! 쩌그 뭍으로 배 타고 갔다! → 바다에서는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구포댁의 강한 모성애가 나타남.

곰치

이런 육실헐! (살기등등한 눈으로 사정없이 목을 조른다.)

구포댁

(숨이 막혀) 오냐아, 오냐, 주죽여라아 ――. 어서어 ――. 내새, 새끼는 갔다! 무, 뭍으로 가 뿌렀어 ――.

곰치

(목을 조르다 밀어 붙이며) 뒈져! 어서 뒈져 뿌럿!

구포댁

 

(뚱 ―― 나가 떨어지며) 히히히 ――, 만선인디 내가 으째 죽어? (일어나 마당을 뱅뱅 돌며) 슬슬아아 ――. 너도 범쇠한테 가그라아 ――. 범쇠는 배를 부리지야! (닭 쫓는 시늉을 하며) 어서어! 어서어!

성삼

(얼굴을 감싸 버리며) 후유!

곰치

 

(절규하듯) 이 미친 것아! 몇 년 있으면 그물 손질할 내 새끼를 으따가 띄워 보냈어 어엉? (미친 사람처럼 살기등등해서 구포댁에게 달려든다.)

구포댁

 

 

 

(훌훌 도망쳐 다니며) 갔어! 갔어어 ――. (찢어질 듯 날카롭게) 쩌그 뭍으로 갔당께에? (손을 입에 모으고 부르는 시늉) 슬슬어으! 슬슬어으! (우편 방 속을 향해서) 나도 얼른 범쇠한테 시집가! 범쇠 맘 변하기 전에 싸게 싸게 가랑께? (혼자 샐쭉 해선) 바보 같은 가시네, 아 범쇠는 배가 두 척이야, 두 척 (훨훨 활개를 치며) 어서 이렇게 걸어가란 말이여! 어서!

곰치

 

(살기 찬 눈으로 구포댁을 바라보고 서선) 저 육실헐 것을! 그냥 ……. (성삼에게 급하게) 성삼이! 얼른 가 보세! 붙잡어사제! 엉? 어서!

성삼

이 바람통에 으뜬 미친 놈이 배를 내 줘? 코딱지 만한 동네 나루로 배가 밀리는 판에?

곰치

 

(나가려다) 헛간에 널쪽(널빤지의 조각) 있네! 그 놈이라도 타고 쫓아가사제! → 곰치가 무서운 집념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거친 풍랑으로 배도 위험한 상황에서 널쪽을 타고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삼

널쪽? 배가 부서지는 판에 널쪽을 타고 쫓아?

곰치

배보다도 널쪽이 더 나어! 널쪽만 안 놓치먼 집채 같은 파도 속에서도 널쪽은 안 부서져!

성삼

글씨 안 돼!

곰치

안 될 것이 믓잉가? 곰치는 해! 어서! 어서! (나간다.)

구포댁

 

(곰치의 가랑이를 쥐어 잡고) 못 가! 못 간다! 내 버려 둬! 뭍에 가서 지 명대로 살게 내 버려 두어 ――. 못 간다아 ――. 못 가아 ――. → 자식의 목숨을 지키려는 강한 모성애

곰치

이것 안 놔? 안 놀 것이여? (사정없이 발로 차 버리곤 부리나케 나가 버린다.)

구포댁

못 가! 못 간다는디! 내 버려 두어!

구포댁, 허겁지겁 곰치를 쫓아 나가 버린다. 무대엔 침통한 얼굴의 성삼이 혼자 한동안 넋을 빼고 있다간 불현 듯 바삐 헛간 쪽으로 간다.

성삼

 

 

 

 

(처절하게) 기가 막혀! (꺼질듯) 후유 ――. (헛간 속에 발을 들여놓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헛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 사이 ―― 기겁해서 뒷걸음질 쳐 나오며) 엉? 스, 슬슬이가! 스, 슬슬이가 모, 목을 매고 죽었구나! 슬슬이가 죽었어! 슬슬이가 죽어! (신음처럼) 허어 ―― 슬슬이가 죽다니 ――. → 곰치가 헛간에 있는 널쪽이라도 타고 쫓아가야겠다고 말한 것이 성삼이가 헛간에 가서 목을 맨 슬슬이를 발견하는 사건에 필연성을 부여해 주고 있음.

성삼, 감전당한 듯 그 자리에 넋 빼고 서 있다간 미친 듯이 달음질쳐 나가 버린다.

성삼

 

 

곰치야아 ―― 이놈아아 ―― 이 만선에 미친 놈아 ――. → 성삼이의 마지막 대사는 곰치의 만선에 대한 집념 때문에 도삼이 죽고, 구포댁이 실성하여 갓난 아들을 배에 태워 보내고, 슬슬이마저 자살을 하자 곰치에 대한 성삼이의 반감이 폭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극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며 비극성이 심화되고 있다.

단말마(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것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거린다.

 

- 급히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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