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혼                           -이강백-

◇ 대본읽기   

● 줄거리

빈털터리 사기꾼이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결혼에 대해 간절히 소망하자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저택과 하인과 부자로 보일 만한 여러 소품들을 빌리는 데에 성공을 하게 된다. 다만 빌린 물건들은 모두 제한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이 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먼저 여성 잡지에 실린 <사교란>에서 여자를 골라 맞선을 보기로 하였다. 맞선을 보기로 한 여자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미 '책'은 빼앗기게 되고, 드디어 여자를 만났다. 여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빌렸던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되돌려 주어야 했고, 빼앗는 역할은 하인이 맡게 된다. 라이터, 구두, 넥타이, 소지품, 구두, 결국에는 저택까지 빼앗기게 된다.

빌린 물건들을 되돌려주는 동안에 여자는 하인의 무례함을 탓하기도 하고, 남자의 겸손함과 진심에 빠져들 게 된다. 남자가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결국에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 감상 및 이해

이강백의 초기 작품인 <결혼(1974)>은 카페 떼아뜨르에서 '자유극장'에 의해 초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남자'는 자신을 가능한 한 부유학 화려하게 치장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벌여놓은 후, 결혼 상대가 될 '여자'를 초대한다. 그러나 그 빌린 물건들은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 돌려주어야 하므로 '여자'와 만나는 동안 '남자'는 점점 빈털터리가 되어간다. 결과적으로 '남자'는 사기꾼의 실체를 드러내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인의 존재와 역할 → 하인은 대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존재를 지문에 씌어진 행동을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하인은 남자가 빌린 물건의 시간이 지나면 무뚝둑하고 기계적인 태도로 그 물건을 빼앗아 버린다. 극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중심 개념인 시간의 역할을 하인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방증으로 하인은 쟁반만큼이나 큰 회중시계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남자가 빌린 물건을 빼앗는 것에 대해 항의할 때는 시계를 보여주며 남자를 수긍시킨다. 즉, 물건과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하인의 역할이다.

소품의 기능과 효과 → 작가 노트에 명시되어 있듯이 이 작품에 쓰이는 소품은 관객들의 것이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것이지만, 연극에서 자신이 사용하는 소유물이 남자의 몸에 있을 때, 여기서 관객은 남자와의 동일시에 한층 더 빠져들 수 있다. 중요한 의미는 등장 인물에 착용된 효과이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하인에게 빼앗기는 순간이다. 자신의 눈에 익은 물건이 빌린 시간이 지나서 하인에게 매몰차게 빼앗길 때의 상황은 원주인인 관객에게 극의 의미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물건을 빼앗기는 느낌은 하인뿐만 아니라 남자에게서도 관객은 극중에서 받게 된다.

관객을 상대로 한 극적 행위 → 우리나라의 전통극인 마당극의 특징적인 요소가 '관객을 상대로 한 극적 행위이다. 남자는 초조하거나 극속의 상황이 답답할 때, 무대 밖의 관객에게 하소연하거나 동의를 구한다. 남자는 태연히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깨고 관객석에 난입한다. 그것도 모자라 여성 관객에게 말을 걸고 어여쁘다고 농을 걸기까지 한다. 이는 극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나 극의 흥을 더해주는 기능으로 보아도 마당극의 행위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희극의 긴장을 높이고, 관객의 극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행위이다. 또한 관객들의 소유물을 이용한 소품과 마찬가지로 극이 자신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게 만드는 역할도 두루 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 → 여자는 자신을 '덤'이라 하고, 남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잠시 '빌린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둘은 세상에 '덤'으로 혹은 잠시 '빌린 것'으로 나온 것이다. 이 극에 나온 남자와 여자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의 우의인 것이다. 결국 작가가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은 모두 잠시 '덤'을 나와 있는 것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빌린 것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고 잘 아꼈다가 시간이 되면 꼭 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덤'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빌린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이강백이 극의 끝에서 표현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청혼을 수락하는 이유와 주제의식 → 작품의 마지막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머니에게 오른손을 들어 한 맹세까지 저 버리고) 여자는 남자의 청혼을 수락한다. 그것은 '덤'과 '빌린 것'들로만 이루어진 인생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돌려주어야 하기에, 이러한 인생을 더욱 값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참되고 영원한 '사랑(결혼)'이라는 깨달음을 여자는 얻은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온통 빌린 것과 덤으로만 이루어진 우리네 인생을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사랑(결혼)을 하라는 것이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단막극, 풍자극, 실험극

인물

* 남자 → 이야기책 속의 주인공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가난한 사기꾼으로 처음에는 결혼을 하기 위해 부자처럼 보이게 하는 물건을 빌리지만, 그것들을 다 빼앗긴 후 소유의 본질과 헌신적 사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결혼을 위해 여자를 설득한다.

* 여자 → 처음에는 결혼의 조건으로 물질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남자의 설득으로 진정한 사랑에 대해 눈을 뜨고 결혼을 받아들이다.

* 하인 → 한 마디의 대사도 하지 않으면서 남자에게 시간의 경과를 알리고, 빌린 시간이 끝난 물건들을 하나씩 회수한다. 그 과정에서, 물건을 뺏기지 않으려 하는 남자와 희극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관객들로부터 소도구를 빌려오는 역할도 한다.

주제소유의 본질과 진정한 사랑(결혼)의 의미

특성

1) 우의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소품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상징화함.

           (빌린 집 : '인생'의 우의,   하인 : '시간'의 우의)

2) 소품의 기능과 효과

    → 소품은 관객의 물건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극적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함.

3) 관객을 상대로 한 극적 행위

    → 전통극인 마당극의 특성으로, 극의 긴장도를 높이고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행위

4) 인물의 상징성

     * 남자, 여자 → 현세를 살아가는 모든 여자와 남자를 상징

     * 하인 → 우리의 인생에 주어진 '시간'의 상징

                   물건과 시간을 관리하는 존재

                   대사 없이 행동을 통해서만 인식하게 하는 존재

5) 무대장치나 조명, 특수효과가 거의 필요없으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다.

● 참고자료

◆ '결혼'에 나타난 실험적 기법과 그 효과

항목

내용 및 효과

무대장치

일반적인 희곡과 달리 이 작품은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소극장이나 응접실 등에서 행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대 장치를 통해서 관객이 극중 인물에 대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되며, 관객의 극중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상징적 소재와 인물의 행위

시간을 상징하는 회중시계를 소재로 활용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인이 물건을 회수하는 등 상징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 주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전달하게 되는데, '빌리다'라는 어휘의 반복 사용을 통해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배우의 대사

주인공이 어떤 이야기책을 읽는 데서 대사가 시작되는데, 그 책의 내용과 극중 사건이 일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관객에게 극중 상황을 자연스럽게 알려 주는 효과를 얻게 된다. 또한, 등장 인물이 관객에게 질문을 하는 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관객의 역할

관객의 물건을 연극의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사건 전개 과정에서 관객을 증인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관객이 연극에 동참하여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뿐 아니라 극중 인물의 가치관과 정서를 드러내며 극적인 리듬을 조절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소유의 절대성이 약화되는 경험을 하는 등 작품의 주제를 보다 실감 있게 느끼게 된다.

 

◆ '결혼'에서 '시간'의 기능

'결혼'은 시간에 관한 희곡으로 볼 수 있다. 시계로 측정되는 물리적 시간이 극을 끌어가는 기본 축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극에 나타난 시간 경험 자체가 극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에서 극중에 설정된 시간은 실제 극이 상연되는 시간의 길이와 일치한다. '결혼'은 남자 주인공이 저택을 빌린 '45분간'의 시간 동안 진행된다. 그리고 45분이 다 하고 남자 주인공이 쫓겨나는 순간 끝을 맺게 된다. '결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품은 결말을 향해 긴장을 가속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무대에서 사라지는 물건들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즉, 이 극에서 소품은 단순히 소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주제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의미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 극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는 남자 주인공에 의해서만 23번 사용된다. 이는 물리적 시간이 남자 주인공에게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는 시간에 대해 초조해 하고, 강박 관념을 느끼며 마치 시간의 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하인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다.

 

◆ '결혼'의 주제의식

'결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를 빌렸다가 되돌려 준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젊음, 생명, 자연 현상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빌리고 또 되돌려 주어야 할 것들로 형상화해 놓았다. 그 밖에도 이 작품에서 '시간 속에서 빌림 · 되돌려 줌'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것으로 애정,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을 들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공들여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간 속에서의 빌림 · 되돌려 줌'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작품의 표제가 보여 주고 있듯이 이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과 결합 양식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드는, 어찌 보면 미처 덜 다듬어진,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희극이라 평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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