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의 처(1976)                      -오태석-   

● 줄거리

평양에 장사하러 간 춘풍이 기생 추월에게 빠져 돌아오지 않는다.(발단) 춘풍의 처가 춘풍을 찾아 나선다. 도중에 수중 세계에서 노모를 살리기 위해 더덕을 구하러 지상에 나온 이지와 덕중을 만난다. 이들은 은(銀)을 밀반출한 부자(父子)를 서울로 압송하는 중인데 그 상금으로 더덕 구입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부자를 놓아 주고 서로 신세 한탄을 하는데 춘풍이 나타난다.(전개) 춘풍에게 맞아 처가 졸도한다. 춘풍은 처가 죽은 줄 알고 출상을 하려는데 옥리들이 춘풍을 평양으로 잡아간다. 독경하러 왔던 봉사가 춘풍 처의 돈을 빼앗아 가고, 춘풍 처는 미물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덕중 조카의 자식을 낳아 준다.(절정) 평양 감사가 된 춘풍 처는 재판 중에 추월을 만나 싸우다 쓰러진다.(하강) 춘풍은 처가 죽은 줄 알고 곡을 하는 중에 처가 일어난다. 춘풍의 처는 춘풍과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난 뒤 기함하여 정말 죽는다. 굿이 치러진 뒤 이지와 덕중만 남는다.(대단원)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고전 소설 <이춘풍전>에서 소재를 취했으나, '봉산탈춤'의 미얄 과장의 내용과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즉, 춘풍만을 희극적 인물로 그려 놓은 '이춘풍전'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춘풍 처도 희극적 인물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 인물의 골계적 대사,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덕중과 이지에 의해 작품의 희극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춘풍, 처, 추월의 삼각 갈등도 첨예한 직선적 충돌을 거치지만 파국으로 가지는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비극을 웃음으로 감싸는 우리의 서민적 정서를 잘 재현했다고 할 수 있다.

● 정리하기

갈래 → 창작 희곡, 단막극(2장)

▒ 성격 → 해학적, 풍자적

▒ 인물

* 춘풍 처 → 전통적인 여인상과는 달리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남편을 개과천선시키는 적극적 인물

* 이춘풍 → 장사하는 시장 건달로, 여색을 밝히는 세속적이고 희극적인 인물

* 덕중과 이지 → 춘풍의 허위를 폭로하며 극에 희극적 성격을 부여하는 인물

▒ 배경 → 조선 후기, 평양

▒ 주제세속적 인물의 허위 폭로

▒ 특성

1) 전통극인 탈춤의 극적 형식을 창조적 원천으로 함.

2) 등장 인물들의 즉흥적인 대사와 행동이 극의 해학성을 높임.

● 참고자료

◆ '봉산탈춤'의 미얄 과장과 '춘풍의 처'의 비교

봉산탈춤의 미얄 과장

 

춘풍의 처

ː

 

ː

미얄과 영감은 난리통에 헤어짐.

……

평양으로 간 춘풍이 돌아오지 않음.

미얄은 악공과의 대화 후 영감과 만남.

……

춘풍 처는 덕중, 이지와의 대화 후 춘풍과 만남

첩인 덜머리집과 미얄 할미의 갈등

……

기생 추월과 춘풍 처의 갈등

미얄에게 가해지는 영감의 횡포

……

처에게 가해지는 춘풍의 횡포

미얄의 죽음

……

춘풍 처의 죽음

극락 세계로 보내는 무당굿

……

극락 세계로 보내는 굿

 

◆ '춘풍의 처'의 놀이성

'춘풍의 처'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놀이성'이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특징은 복잡한 인물들과 난해한 장면의 연결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놀이성이다. '춘풍의 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면의 연속이다. 변화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는 것이다.

* 인물도 하나의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변화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부자(父子), 세 아들들이다. 인물들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변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놀이성으로 작용한다. (부자(밀수꾼) → 봉사 의원, 세 아들 → 아버지 춘풍을 잡아가는 옥리)

*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까지 허물어 버린다. 춘풍의 처는 반복적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죽은 듯하지만 살아 있고 다시 죽은 듯하지만 또 살아 있다.

* 박치기의 장면 역시 놀이성과 연결된다. 덕중의 박치기는 갈등 상황과 그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박치기도 놀이성 속에서 유희적인 것으로 바뀐다.

* 고전 소설 '이춘풍전'의 낙관적인 결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춘풍의 처'에서 처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완전히 실패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현대의 냉혹하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기초로 한 것이다.

* 작가는 놀이의 '단순성'과 '가벼움'을 겉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복잡성과 무거움의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 얻을 수 있는 '단순성'과 '가벼움'이다. 즉, 작가의 놀이성 속에는 복잡성과 무거움의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

 

◆ 전통극과 현대극의 관계

한국의 전통극은 민간에서 행위로 전승되는 연극으로서 민속극이라고도 불린다. 본래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창작 연극이 없었다. 민간에서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거나 떠돌이 연예인들이 마을로 다니며 연행하던 자료, 그리고 무당굿에서 놀이되던 자료가 현재까지 전해져서 학자들이 채록해 소개한 것이 한국의 전통 연극이었다. 따라서, 이들 전통극에는 작가 개인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스토리나 플롯이 없다. 다만, 양반이 지닌 권위나 허위 의식을 부분적으로 풍자하는 단편들이 삽화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정도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극장이 세워지고 신극 운동이 전개되면서 판소리를 각색한 창극과 소설 등을 각색한 신파극이 공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은 한국의 전통극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서구 연극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현대적 의미의 연극이었다.

● 대본 읽기

 

1장

(이지와 덕중이 부자를 결박해서 앞세우고 들어온다.)

 

부(父)

아니, 이것들이 한양으로 간다더니 여태 물가를 따라왔네.

이지

한양이 물가에 있다 하구서는.

저건 동네 물이고 한양을 끼고 도는 물은 한강이고.

덕중

이 물이고 저 물이고 다리 아파 죽겠소. 성님, 저것들 놔주고 그만 갑시다.

 

 

그 좋은 소리다. 여기서 한양이 여러 달 걸린다. 그러니 한양까지 갈 것이 없이 여기서 너희가 재판을 해서 우리 부자 중에 하나는 풀어를 다고. 우리 부자한테 딸린 처자가 스물이 넘어. 하나는 결단을 내더라도 하나는 처자께로 보낸다고.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덕중

재판을 한다.

이지

<천자문> 한 권 없는 니가 무얼 해?

덕중

하다가 맥히면 이것들한테 물어 봐 가면서 해 보십시다. 여보게, 시작이 어떻게 되나?

 

이 두 놈 부자가 나라에서 금하는 은을 내다가 왜놈한테 흥정을 붙여 팔아먹은, 시쳇말로 밀수꾼이라. 한양에서 백 냥 돈을 걸고 수배한 자들로 이 화상하고 꼭 닮았소.

덕중

(북으로 그린 화상을 펴 보인다.)

이지

그래 너희 두 놈 중에서 어느 놈이 수모(앞장서서 어떤 일을 도모함)를 했더란 말이냐?

자(子)

내가 관지기를 찾아가서 왜놈하고 거래를 터 달라고 일렀으니 내가 수모요.

그렇지가 않소. 관지기가 은값으로 받은 세포를 가지고 왔기로 은을 내주었으니 이놈이 수모로다.

덕중

그럼 둘 다 수모로구나. 일을 어찌하면 좋소, 형님.

 

아범이 비록 은을 내주었다 하나 말을 꺼낸 것이 이놈이니, 이 몸이 수범(범인 중의 우두머리)이오, 아범이 하수인이라.

 

 

자식이 말을 먼저 꺼냈다 하나 이 사람이 내준 은은 가중(家中)의 것이다. 그러하다면 집안의 물건이 분명한데 자식놈이 애비의 허가 없이 어찌 은을 팔겠다고 말을 냈겠느냐. 자식놈은 종범(정범을 방조하는 범죄, 또는 그 범인)이요, 이 몸이 수모자로 이치에 맞다.

이지

 

그러면 둘 다 죄가 없다. 자식은 애비의 말을 듣고 흥정을 했으니 죄가 없고, 애비는 자식이 흥정해 논 일에 물건을 내줬을 뿐이니 또한 죄가 없다.

덕중

옳다. 너희 둘 다 면죄로구나. 애비는 하수인으로 무죄여, 자식은 종범으로 무죄다.

이지

포승을 끊고 방면해라.

덕중

 

어어, 시원히 잘 됐다. 어서들 가거라.

 

(포승줄을 풀려고 허니 처가 등장.)

 

 

너희가 우매하기로 조정에서 법을 제정한 뜻을 그르치는구나. 너희가 미물로 인간의 지혜를 따르지 못하는구나. 아이고,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이냐. (그 자리에 덥석 앉아 퍼질러 통곡을 한다.)

덕중

이것이 계집이오 사내요, 참 못두 생겼소.

 

내 너희가 영험하다는 말을 듣기로 한양에서 예까지 죽을 고생을 하고 왔더라만, 아이고 이를 어찌여. 아이고.

이지

그러면 너는 이 둘 중에 누가 수범인 줄 아느냐?

 

 

법에 이르기를 집안 사람 중에 공범이 있을 때는 가장을 죄 준다 했으니 그 아범이 수모지, 그럼 자식이 수모란 말이냐. 너희들은 애비보다 자식을 윗사람으로 치느냐. 아이고, 어따 저런 후레자식들을 만난다고, 아이고.

이지

 

정히 합당하다.

 

(덕중이 불식간에 달려들어 부의 면상을 박치기하니 부는 눈을 잡고 뒤로 넘어간다.)

 

이지

그러다가 봉사가 되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봉사가 됐소.

덕중

제 자식놈 못된 짓 하는 것 보고도 놔 뒀으니 그 눈은 둬서 뭣 해. 어서 데려가거라.

꼭 좋은 말씀이오. (부를 끌고 나간다.)

이지

그러니 일을 어찌한다는 말이냐. 농약이나 얻어다 죽는 도리밖에 없다.

너희는 또 왜?

이지

저것들을 돌려보냈으니 한양 가서 받을 돈 백 냥은 어디 가서 받겠소.

돈 백 냥은 무엇에 쓰게?

이지

 

 

 

 

저 물 속에, 우리 팔순 노모께서 중환으로 누운 지가 수삼 년. 하루는 의원이 와서 하는 소리가 지상에 가서 더덕을 구해다가 구워 먹으면 회생하겠다고 해서, 저것이 내 외사촌이요. 저것하고 내가 문중에서 뽑히어, 그게 벌써 작년 이맘때, 영산포로 인간이 되어 올랐왔더니만, 더덕은 고사하고, 아직 더덕이 어찌 생겨 먹은 형체도 모르고서, 그래 하도 답답해서 돈 백 냥이나 손에 쥐면 구하지 아니할까 하고서. 그러니 이제는 죽을밖에.

그까짓 더덕을 구하는 데 돈은 뭘해?

덕중

값이 그만하답니다.

 

 

너희 외사촌 간에 내 말을 또 들어 보거라. 내가 길쌈 장사 수삼 년 만에 천하 부자 석숭이(중국 역사상 가장 부자였다고 함.)도 못 당할 만큼 쇠값은 벌었으니 세상 부러울 일이 있겠느냐마는 똑 한 가지로 내가 태냇병신으로 서방한테 소박을 맞았어.

덕중

언청이냐?

육손이다.

덕중

어디 보자. 말이 좋다. 이것은 곰배팔이(팔이 꼬부라져 붙거나 팔뚝이 없는 사람)로구나.

내 형색은 이래도 우리 서방님이 웬만한 계집은 깔고 앉는다.

이지

함자가 무어요?

춘풍이, 이 춘풍.

이지

지금 어딨소?

 

 

 

나랏돈 집엣돈 다 긁어서 가지고서는 장사를 한답시고 평양 가서는 평양 명기 추월네로 작은집을 삼아 날 가는 줄 몰라. 내가 지난 달에 홧병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이 글의 중심 내용은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춘풍'과 '그를 찾아 나선 처'와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도 일관된 줄거리로 풀어 가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운 연상과 전환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한다.)

덕중

숟가락을 놨어? (죽었다는 말의 희극적 표현)

식은 방귀뀄어.(죽었다는 말의 희극적 표현)

덕중

냄새가 났어?

 

 

아, 이 자가 말을 어찌 듣나, 노랑머리 박박 긁구 두 손뼉 탁탁 치구 벽제로 갔어. 그렇게 기별을 보냈더니, 아이고, 저게 오는구나. (당당하던 기세가 까무러져 발까지 절며 서둘러 댄다.) 내 두 눈 성한 걸 보면 개 잡듯이 두들겨 팰 것이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나 좀 살려 다고.

덕중

그러면 식은 방귀 새 나가지 못하게 밑구멍을 꼭 잡으시오.

꼭 잡고.

먹중

숟가락을 꼭 잡고.

숟가락이 어딨나?

덕중

짚세기라도 벗어 잡구려.

짚세기 벗어 잡고.

(덕중이 박치기를 하니 처는 벌렁 나자빠진다.)(거짓으로 죽은 시늉을 하는 것으로 춘풍 처와 호흡이 잘 맞고 있음.)

이지

 

 

(염을 하며 곡을 한다.) 가련하다 춘풍의 처, 침재 길쌈 능란하며, 오 푼 받고 새 버선 짓고 서 푼 받고 한삼을 짓고…….(춘풍의 처가 바느질과 길쌈으로 가게를 꾸려 왔음을 말한 것으로 춘풍이 기생에게 장사 밑천을 탕진한 것과 대조된다.)

(춘풍이 등장한다. 염을 하는 것을 보고 슬피 운다.)

춘풍

어이, 어이!

덕중

두 푼 받고 헌 옷을 깁고…….

춘풍

어이, 어이!

이지

 

 

 

 

 

겨울이면 무명 나이,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을 하기, 이럼서 사시 장철 주야로 쉴새없이 거둔 돈을 장리에 월수 일수 놓아 수천 금을 모았구나.(춘풍의 처는 전통적인 여인상과는 달리 난봉꾼인 춘풍에게 희생만 당하는 선인의 이미지가 아니다. 남편을 찾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조력자(이지, 덕중)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또, 가게를 꾸려 나감에 있어서도 침재, 길쌈뿐만 아니라 월수까지 하여 돈을 모으기도 한다. 따라서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도 남편보다 우월하다. 오히려 여색을 밝히는 어리석은 남편을 전략을 세워 개과천선시키기까지 한다. 결국 춘풍의 처는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여인상이라 할 수 있다.)

춘풍

잠깐, 이보게 그것이 무슨 소린가?

덕중

염라국 십전대왕께 제문을 올리시는 중이오, 참견을 하려거든 글로 하시오.

춘풍

 

 

 

 

 

추월의 얼굴 모습 들어 보게. (곡을 붙여서) 사챙을 반개하고 녹의홍상 두르고 천연히 앉았으니 영광은 십오 세라. 해당화 저리 가고, 서시는 이리 가고, 양귀비는 이저리 가고, 세월 가고, 소리도 다 가고 나서 남은 것이 추월이다.(춘풍은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거짓 통곡을 한다. 이는 '봉산탈춤'에서 영감이 본처인 미얄 할미의 죽음을 겉으로는 슬퍼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것에 빌려 온 모티프이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오로지 기생 추월이 생각만 하는 부분이다.내 이것을 천자문 보듯 두고 보려고 그러한다. 그 돈 수천 금은 꼭 나를 다고.(춘풍의 방탕한 기질이 잘 드러남.)

덕중

 

원, 사람이 누웠거든, 문상은 놔 두고 문안이나 한 마디 해 보시오.(아내가 죽은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생 추월만 생각하여 돈만 챙기려 하는 춘풍의 언행을 비꼬아서 한 말이다.)

춘풍

 

내가 지금은 상거지가 돼서 그 집(추월의 집) 물 져 나르는 사환 노릇을 하고 있어. 먹느니 이 빠진 헌사발에 누른밥에 토장(된장)덩이 한 가지로 연명을 하는 지경이여. 그 돈 수천 금은 나를 꼭 다고.

 

애고, 이것이 무슨 소린가. 어디 마모색(생김새)이나 봅시다. (형색을 살피고 내처 운다.) 애벌레 망건 쥐꼬리 당줄 통영갓은 어디 두고 파립 파관(찢어진 갓과 의관)이 웬일이오?

춘풍

 

(귀찮아서 뿌리치며) 그래, 내가 집 나올 적에 돈 한 푼 팔 푼이며, 자식 삼 형제를 살기 좋게 마련을 해 주고 훨훨 단신 나온 나를 웬 송장 시늉까지 해 가며 이리 추잡하게 찾아다닌단 말인가.

 

그래, 그 돈 한 푼 팔 푼은 당신이 집 떠날 적에 하도 섭섭해서 청어 한 못 사가지고 당신 한 마리 나 아홉 마리 안 먹었소.

춘풍

그래, 자식 셋은 다 어쨌나?

큰놈은 나무하러 가서 정자나무 밑에 낮잠 자다가 솔방울 맞아 죽고. (춘풍 섧게 운다.)

둘째놈은 앞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다가 물에 빠져 죽고.  (춘풍 섧게 운다.)

셋째놈은 하도 귀여워 어루다가 경기로 풍에 걸려 죽었소.

 

(춘풍 섧게 울다가 홧김에 휘둘러치니 처는 졸도를 한다.)

 

이지

아니, 돈 수천 금을 꼭 달라고 해서 말을 붙여 보라고 살려 놓았더니 기껏 도루 죽이나.

춘풍

아들 삼 형제 죽어 버렸는데 세간은 남겨서 뭘해.

덕중

세간 없이 추월이는 어찌 보구?

춘풍

아참, 그렇지. 의원, 의원!

이지

급상한이라 난치병이여.

춘풍

봉사, 봉사님.

(지팡이로 앞을 더듬거리며 나온다.) 어디서 불렀소?

춘풍

여기요 여기. 어서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읽어 주시오.

성씨가 무엇이오?

춘풍

심달래 심씨.

 

(지팡이 끝에 달린 요령 소리를 내고) 해동 조선국 서울시 남산 거주 심달래 심, 운이 불길하여 우연 졸도, 명재경각하였으니 천지 신명은 대자대비하옵소서. (요령 소리)

 

돈부(콩의 일종) 따는 저 처자야

니 머리 끝에 드린 댕기

공단이냐, 아하하 헤헤이요.

비단이면 무얼 하고 공단이면 무엇을 하까. 아하하 헤이요.

 

춘풍

경을 다 읽었소?

경을 다 읽으면 살겠소.

춘풍

경을 얼마나 읽었나?

경을 꼭 절반.

춘풍

어서 읽게.

복채를 내시오.

춘풍

얼만가?

돈 꼭 천 냥.

춘풍

 

 

그만둘라우. 치우시오.(집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던 춘풍은 감히 자신의 처를 때릴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처를 쳐서 졸도를 시키고, 처를 살리는 경 읽기 복채가 비싸다는 이유로 그만두라고 한다. 이로 보아 이춘풍은 비정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대로 중도막에 끝내 두면 죽었다 살아났다 이승 저승을 오락가락하여 나중에 성가셔서 어쩔라고.(죽은 처를 살리는 주문의 대가를 천 냥이나 요구하자, 춘풍은 그만두고 그냥 출상하자 한다. 그러자 '부'가 춘풍을 협박하는 말이다. 주문을 중간에 끝내면 춘풍 처가 귀신이 되어 헤매며 괴롭힌다는 은근한 협박의 말로 보아 '부'는 엉터리 무당이다. 게다가 협박의 말이나 그에 대한 춘풍의 반응이나 모두 해학적이어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춘풍

 

수천 금 너 다 주고 나는 이 병신 업고 장마다 구걸을 다니고? 치워. 갖다 묻어야겠어.(죽은 아내보다 아내의 돈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춘풍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남)

그럴라면서 뭐하러 경을 읽으라고 불렀나. 그냥 편케 가게 놔 두지.

춘풍

 

이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네. 이것이 생기기는 찌그러졌어도 명색이 처자여. 가 향도꾼이나 부르게, 출상을 하여야겠네.

출상은 뭣하러 하나, 여게 그냥 묻지.

춘풍

 

 

내가 이것이 죽었단 소릴 듣고 와서 아직 후행을 못하였어. 내 저를 버린 것은 기왕지사요. 내 후행이나 한자리 신명지게 놀아야겠네.(춘풍이 아내의 죽음을 거짓으로 슬퍼했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안에 대고 소리친다) 향도, 향도꾼!

 

(옥리 차림새를 한 세 장정이 지쳐 들어온다. / 상청에 절하듯 곡하고 큰 절.)

 

옥리1

내가 솔방울에 맞아 죽은 자식이오, 아부님 데릴러 왔소.

옥리2

내가 미꾸라지 잡다 죽은 자식이오, 큰성님 따라왔소.

옥리3

 

내가 경끼로 풍에 걸려 죽은 자식이오, 두 성님 쫓아왔소.

 

(옥리들 슬피 울더니 불식간에 달려들어 춘풍을 떠멘다.)(죽은 아들의 재등장 →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춘풍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통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우스꽝스런 상황은 작품의 해학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 외에도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착각, 과장, 의도적으로 잘못 알아듣기, 엉뚱한 말하기 등을 통해 해학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춘풍

 

(소리친다) 이것들아 죽은 것이 내가 아니여! 저기 죽어 자빠져 누웠는 너희 어멈이 안 보인다 말이냐. 어째 생사람을 떠메느냐! 고려장을 간다는 말이냐!

옥리

평양을 가오.

춘풍

 

 

아니, 그러면 너희가 추월이가 보낸 사환이로구나. 옳거니, 추월이가 내 본마누래 보러 갔다고 앙탈이 났구만 그것이.(평양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곧 추월이를 연상해 내는 춘풍을 통해 상황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고, 춘풍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대사임)

옥리

 

 

평양 감사가 보냈소. 나랏돈 썼다고 국문을 하잡디다.(춘풍의 죽은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던 앞의 대사와 비교해 볼 때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이 전통극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춘풍

 

아이고, 영낙 죽었구나.

 

(상여를 메듯 메고 나간다.)

 

옥리들

저 건너 저것이 북망산이냐, 어서 가고 바삐 가자. 니난실 난뇨, 니난실 나뇨.

이지

(부에게) 어서 읽어라. 경을 읽어.

복채가 천 냥이오.

이지

그 돈은 너 다 가지고 성님이나 살려 내어. 저 서방님 끌려가는 게 안 보인단 말이냐.

 

 

(신명지게 요령을 울리고) 자손이 늘어서 평토제(장례 때 무덤을 만든 뒤에 지내는 제사)를 지낼 제, 칠팔촌 강건지척 처자공 자식공이 지절하게(지극히 간절하게) 늘어 엎쳤으니 송장공은 어서 반짝 눈을 뜨시오. (하면서 처의 허리에 두른 전대를 끌러 품에 넣는다. 따라서 처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저자가, 왜 남의 허리는 뒤져 가나, 저놈 도적놈! (부는 급히 나간다.) 아니, 뭣들 하고 서 있는 게냐. 이놈들, 너희가 저것하고 한통속이었더란 말이냐, 그럼!

덕중

기껏 살려 내니 보따리 내란다더니 이건 경우가 아주 급살(갑자기 닥쳐오는 재액)을 맞았소.

이지

 

성님,  그 전대는 목숨하고 바꾼 것이니 잊어 버리시오. 잊고, 성님, 성님이 아직 자식을 놀 재간이 있겠소?

자식은 또 왜?

이지

그 재간만 있으면 벼슬을 하는 길이 있소. 벼슬을 해야 서방님을 구하겠소. 안 되겠소?

그러게 한 배 꼭 남겨 둔 것이 있기는 있다만.

이지

그럼 됐소. 벼슬을 합시다.

되기는, 서방님이 안 계신데 한 배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 된다는 말이냐.

덕중

 

그럴 만한 힘깨나 쓰는 조카가 하나 있는데, 성님이 가서 그 애 한 배 놔 주고 벼슬을 받아 오시면 되오.

그러면 뒤에 서방님 얼굴을 무얼로 보고?

덕중

아니면 꺼멓게 죽은 얼굴이나 보지.

이지

성님!

꼭 한 배 남겨 두었어.

덕중

고만둡시다. 그럼.

인정도 없구나.

이지

 

독하게 삽시다.

 

(천둥이 친다. 덕중과 이지가 엎드려 소리를 한다.)

 

합창 :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놓아라.

         거북아 거북아

         목을 내놓아라.

 

(천둥이 친다. 처는 마치 천둥 소리, 번갯불하고 놀아나는 듯 몸을 뒤친다. 불길처럼 논다.)

 

 

2장

(처가 벼슬을 했다. 이지와 덕중은 휘양(추울 때 머리에 쓰던 모자의 하나. 남바위와 비슷하나 뒤가 훨씬 길고 목덜미와 뺨까지 쌈.)을 썼다. 젊은 남녀가 결박되어 앉혀져 있다.)

 

이지

재판을 한다.

덕중

계집이 먼저 고하거라.

화조

 

 

시어머님 생신날이요, 이 서방님이 기첩(기생첩)을 불러다가 노래시키고 춤추시고 해서 눈꼴이 시어(불쾌하리만큼 보기가 싫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들쓰고 누웠더니, 그것을 가지고 시어머님께 헌수(장수를 비는 뜻으로 술잔을 올림)의 예를 행하지 않았다고 고소를 합디다. 그러니 아녀자는 눕는 것도 죄가 되오?

 

 

<곡례>에 이르기를 아들이 그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도 부모가 좋아하지 않으면 이혼하고, 아들이 그 아내를 좋지 않게 생각해도 부모가 잘 한다고 말하면 종신토록 부부의 도리를 다한다고 일렀으니 가르치었건만, 거꾸로만 하려고 드니 더 못살겠소.

너희 집에 개를 기르느냐?

황구가 한 마리 있는데 송아지만 하오.

 

예전에 포영이란 사람은 자기 아내가 시부모님 앞에서 개를 꾸짖었다고 그 아내를 버리었다는데, 네 아내가 그러하더냐?

꾸짖기보다는 숫제 후려칩니다.

 

 

 

 

예전 같으면 아내를 버려도 무방하다. 허지만 요새는 세상이 달라졌어. 당초 네가 개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부모 앞에서 개를 때리는 불경한 짓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그런 줄 알면서 역부러(일부러) 개를 가져다 길렀으니, 니가 고의로 부모 앞에 불경한 죄가 더욱 크다. 네놈이 수모다. 저 불효 막심한 놈을 내다가 면상을 부수고 계집은 종범으로 돌려보내거라.

 

(덕중이 박치기를 하니 자는 면상을 잡고 쓰러지고, 화조가 놀래어 잡고 운다.)

 

이지

아니, 성님.

첩을 얻었다기로 밉살맞아서 그랬네.

이지

그러면 장차 서방님도 박살을 내실 참이요?

아참, 그렇지. 이보게 일을 어쩌나!

덕중

걱정도 팔자시오. 아, 다음부터는 서방은 방면시키고 첩년의 면상을 부수거라, 그러시오.

 

같은 일을 두고 첨엔 서방을 부수고, 나중엔 첩년을 부수고 그런단 말이냐. 내가 마지막 한 배 남은 것을 놔 주고 얻은 벼슬이여, 이 말같이 허망한 벼슬이 아니여.

덕중

 

버선을 깁어 주니 허리에 차더라니, 버선은 발에 꿰라는 것이오. 벼슬은 성님 구미대로 하라는 벼슬이지, 지체는 뭐고 허망은 또 뭐란 말이요, 이 마당에.

그러면 벼슬이 버선이냐? 그렇다면 벗어 주마. 너 신고 다녀. 난 치울란다.

덕중

허어, 내 참.

뭐가 참이여!

이지

 

여게가 평양 관영 안뜰이오. 지호지간에 서방님이 큰칼을 쓰고 앉았는데 그를 살릴 생각은 통 잊으셨소?

오냐, 내 인제는 저 애 말대로 하마.

추월

 

 

 

(함지박을 안고 들어와 화조 내외가 있는 데로 가서) 나으리, 얼마나 시장하시겠소. 우선 해갈을 하시고 기운을 차리시고, (박살이 난 자의 면상을 들어보고) 에구머니, 여청 여귀(못된 돌림병으로 죽은 귀신) 같은 년이 내 서방을 죽였네. 아이고, 이 일을 어찌여. 이년, 너 죽고 나 죽자. (머리채를 잡고 두 몸이 뒹군다.)

저 사나운 것이 첩이냐?

덕중

평양 명기 추월이오.

 

 

 

아따 그년 못두 생겼다. 얼굴에 새얼기미 끼면 물에서 물내나고 쌀에서 쌀내 난다더니만, 저것이 들어서니까 이놈 저놈하고 맨날 낮잠만 처자빠져 자고 밑물(아랫도리만 물로 씻는 것)도 한 번도 안 해서, 에구 냄새. 어서 저 못두 생긴 면상을 부솨 묻어 버려. 에구 냄새.

 

(덕중이 박치기를 하니 화조가 면상을 잡고 뒤로 넘어간다.)

 

아니, 이것아. 왜 애먼(아무 잘못이 없이 원통한 책망을 받아 억울하다) 것을 쳐 죽여.

덕중

틀렸소?

너는 눈에 새얼기미가 끼었나 보다.

덕중

아니 그럼 추월이 모색이 저것만 못하다는 말이요?

그것은 또 견해차니라.

이지

내가 보기에도 아우의 말이 옳소.

나는 암만 보아도 동태 동생 같고 못다 살고 간 여청 여귀만 같다.

덕중

이봐라. 저 어른께 바짝 나서서 인사를 올리거라, 어른 눈에는 네가 잘 보이질 않는가 보다.

추월

나으리, 소첩 추월이옵니다.

견해차니라.

추월

예?

이지

니가 얼굴 말고 내놓을 것이 또 무엇이냐 여쭈신다.

추월

소리를 좀 합니다.

이지

그럼, 그 소리 한번 들어 보자.

추월

 

 

 

(창으로) 갈 테면 가세꾸먼 / 백천으로 말하면 소개 같은 데, / 연안으로 말하면 송청 같은 데 / 수안으로 말하면 무란이 같은 데 / 황주에 누릉지 같은 데 / 봉산에 양아동 같은 데 / 재령에 쑥우물 같은 데 / 해주 독굿 같은 데 / 갈 테면 가세꾸먼

(사설조로) 큰 대촌에 기와집 짓고, 일 년 열두 달 달마다 자식 놓고 철마다 양식 거두고.

달마다 자식을 놓으면 그럼 니 배는 달마다 열둘을 낳는단 말이냐?

추월

윤달이 들면 열셋을 놓소.

이년, 너 혼자 다 놔라!

(불식간에 달려들어 박치기를 하는데, 박치기를 당한 추월이는 멀쩡하고 처가 면상을 잡고 넘어간다.)

 

이지

성님!

추월

(뛰어나간다.) 의원! 의원!

덕중

봉사, 봉사님!

(들어오며) 어디서 불렀소?

덕중

여기요, 여기.

성씨가 무엇이오?

이지

심달래 심씨요.

(맥을 짚으며) 에구 냄새. 벌써 반 넘어 썩었구나. 이러면 복채가 많아.

덕중

얼마나?

돈 천 냥.

이지

한 푼 팔 푼으로 하세.

가 향도꾼이나 부르시오. 상여로 내가야겠소.

덕중

식은 방귀 뀌었나.

숨 넘겼소.

덕중

거 시원히 잘 됐소. 향도, 향도꾼.

이지

그러면 후행은 누가 하고?

후행이 없소?

이지

 

나랏돈을 썼다고 옥에 갇혔어. 그래서 이 성님이 그 양반을 구한다고 벼슬을 해 가지고 당도하였는데 하면서 이 지경을 당했으니 일을 어쩌나.

그래도 후행이 없이 상여가 뜨나.

(처가 벌떡 상체를 세운다. 비몽사몽간에) 이보게.

이지

성님, 나 여기 있어요.

내 면상을 받아서 급살을 낸 것이 추월이가 분명한가?

덕중

말은 바로 하시우. 성님이 먼저 받았지 어디.

 

그년 소리 한 번 잘 하더라. 그것 보구서 내 후행을 하여 소리나 들려주면 내가 어서 북망산에 가겠네만.

이지

여기 없소. 벌써 갔소.

그러면 그년 입던 저고리나 한번 입어 보면 어서 북망산 가겠네만.

덕중

그럼 어서 가져오리다. (뛰어나간다. 처는 도로 눕는다.)

 

 

이 송장이 엎쳤다 뒤쳤다 하는 것이 아무래도 여게 토주신(지신으로, 집안을 보호함)이 부정을 탔는가 보오. 동태(동티의 사투리, 흙을 잘못 다루어 지신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앙) 나기 전에 토주관(백성이 그 고을의 수령을 일컫던 말) 불러 돈 한 푼 팔 푼 주고 살풀이를 하시오.

이지

토주관이 어디 계신가?

여기 있소.

이지

어디?

여기 나.

이지

 

 

옛다, 한 푼 팔 푼. (불식간에 부의 면상을 받는다. 부는 얼굴을 싸 쥐고 달아난다.) 내가 토주관을 할 터이니 너 한 번 들어 보거라. (심란하게 소리를 한다) 저―건네 묵은 밭에 쟁기가 없어서 묵었는가. 임자가 없어서 묵었는가.

(향도꾼들, 소리 받으며 무리져 들어온다. 처를 상여처럼 든다.)

 

향도꾼

아하하 헤헤요.

이지

 

잘된 데는 차조(찰기가 있는 조) 갈고 못된 데는 모조(찰기가 없는 조) 갈아 머리 머리 돈부(동부의 사투리, 콩과의 한해살이 식물) 심어.

향도꾼

아하하 헤헤요.

(덕중이와 춘풍이 들어온다. 덕중은 추월의 치마저고리를 가져다 처의 몸을 덮어 준다. 춘풍이 들어서면서 곡을 한다.)

 

춘풍

 

아이고, 야속한 일이다! 전생에 인연이오 이승에 기약이라더니 너는 벌써 잊었더란 말이냐. 혼자 먼저 떠나느냐. 불쌍하고 가련하다. 추월이 신세가 처량하다. 어디를 가느냐? 어이, 말없이 누웠느냐?

이지

아니 이자가 누구 후행을 한단 말이냐. 추월이가 무어냐?

덕중

 

이 치마저고리를 보자 추월이 것인 줄 알고서는 무슨 변고가 났느냐고 그래서, 하도 밉살 맞어서 뒈졌다고 그래 버렸더니 저렇게 처웁니다.

이지

이 사람아 송장이 틀렸어.

춘풍

아이고, 아이고―.

덕중

아무러면 어쩌요. 후행을 하마고 왔으니, 상여가 떴으니 됐지. 추월이고 매월이고 통 귀찮아 죽겠소.

춘풍

아이고 아이고―.

덕중

 

어서 울어. 어서. 그 기생의 것이라고 임자고 넘자고 없어. 후행이 없어 못 나가던 판에 아주 잘 됐소. 어이, 어이― (따라 곡을 도와 준다.)

[처의 소리] 이보게,밖에 뭣이 그리 소란하단 말이냐?

이지

토주관이 거리 귀신을 멕이고 있는게요, 지금.

[처의 소리] 대체 어떤 급살할 놈이 거리 귀신을 먹이는데 아이고 데고, 깊은 잠을 깨운단 말이냐. 어디 그놈의 상판 좀 보자. (샹도꾼들 머리 위로 상체를 세운다.)

덕중

성님, 여태 안 죽었소!

춘풍

추월아!

이지

얼굴이 쬐끔 빠지기는 했어도 영락없는 추월이요.

덕중

허어, 사람 잡네.

춘풍

 

죽은 사람 생면(살아 있는 모습을 봄)을 했으니 시비를 말고 축수를 하시오. (큰절을 하며) 축수로다 축수로다 염라국 십전 대왕님께 축수로다. (큰절을 한다.)

(희생이 만면하여) 이보게.

이지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좋아해야 되나 성을 내야 하나, 공경을 해야 되나 허우를 해야 되나?

이지

서방님한테 공경을 하시고 저희들한테는 해라 하시고, 생시(살아 있을 때) 성님이 하시던 대로 해요.

 

뒤가 괜찮을지 몰라. 나중에 내가 추월이가 아닌 줄 알게 되면 어찌하나. 여기서 그만 큰 소리로 성을 내나.

덕중

 

 

성님도, 추월이면 어쩌고 매월이면 어쩝니까. 서방님 가차이 뫼시면 되지. 아무 염려 말고 편케 지내세요. 그저 동생 둘 잘 둬서 서방님 한 번 더 뫼시는구나 하면 돼요. 말이 그렇지 요새 어디 이렇게 두고두고 뫼시는 동기간이 있간디요.

풍신에 자찬하고 자빠졌네. 그럼 나보고 지금 신명지란 말이냐, 좋아서!

덕중

왜 소리치시우.

그럼 웃으랴.

덕중

나 치울라우. 자식 섬기기보다 어렵소.

어딜 가느냐?

덕중

갈 데 간다.

 

 

 

 

 

에고, 기함을 하고 죽을 노릇이구나. 내가 지금 속이 있는 년이냐 몸이 성하단 말이냐. 피가 거꾸로 돌고 손발이 외로 틀고 창지는 소금에 절고, 발을 디디니 내딛는다 하랴, 사방을 둘러보니 사처를 분별하랴. 이놈아! 니게는 지금 내가 산 것처럼 보여서 내게 그렇게 해 대느냐. 저런 미물이 다 말을 놓고. 서방이 무에냐. 무어간대 이리 수모를 하느냐. 오냐, 너 돌아가거라. 나도 고만이다. 서방님도 고만이다. 어허, 시원하다. 훨훨 날아간다. 가노라, 가노라. 나 돌아간다. 청춘가로 너 정청거리구, 얼씨구 내 돌아가노라. (손뼉을 치며) 치고 치는 파도산 산천을 울리구요. (춤을 덩실덩실 춘다.)

춘풍

(어우러지며) 산아 산아 옥매산아, 비가 오면 방죽산아―

 

(둘 사이에 춤판이 벌어진다.)

 

[덕중의 소리] 성님, 왼쪽 다리를 어찌하여 아니 저오?

 

(처는 곱사춤을 춘다.)

 

[덕중의 소리] 성님, 왼쪽 손등에 사마귀 삼 형제 엇다 갖다 버렸수?

 

솔방울 맞아 죽고, 미꾸라지 잘라 먹고, 풍 걸려 제물에 떨어졌다.

 

[덕중의 소리] 성님, 금비녀 은비녀 엇다 버리고 동강난 젓가락 비뚝 꽂아수?

 

 

은비녀 금비녀 전당포 맡기고 염라국 왕복길 노잣돈 하였다. 쉬― (춤을 그치고) 에고 영감, 여러 회포 만이로다.

춘풍

 

소싯적에 어여쁘고 어여쁘던 얼굴이 율묵이(뱀의 일종)가 마빡을 때렸나 우둘투둘하고 땜쟁이 발등 같고 보리 먹은 삼잎 같고 비틀어지고 찌그러지고 어째 이리 못두 생겼나.

 

그런 말 마오. 영감이여, 우리가 오래간만에 천우신조로 이렇게 반갑게 만났으니 얼싸안고 얼려 보세. (불림조로) 반갑도다, 좋을시고―.

 

(서로 춤으로 얼른다. 처는 춘풍에게 매달려 노골적으로 음란한 짓거리를 한다. 춘풍이 넘어지니 처는 춘풍의 머리 위로 기어 나간다.)

 

(고통스러운 소리로) 아이고 허리야. 이보게.

이지

나 여기 있어요.

내가 기함을 할 것 같으니 손 좀 잡아.

덕중

 

(손을 잡아 부축이며) 아니, 전번에 한 배 남은 것마저 다 없애고서는 뭘 또 놓겠다고 길거리서 사람 둘러 세워 놓고 이러신데요. 남부끄럽게.

 

연 만 칠십에 생 남자(사내를 낳다) 하였으니 이런 경사 어데 있나. 어찌 너는 부끄럽다 그런단 말이냐. (땅바닥에 버둥거리는 춘풍을 뒤돌아보고) 에고, 크기도 해라! (기함을 한다.)

이지

성님!

덕중

급하게 굴더라니, 체했소?

(고통스레) 아들 보니 좋을시고. (숨을 거둔다.)

이지

에고, 성님!

덕중

욕심도 좋지만 서방을 자식으로 놨으니 그게 온전할 것이오.

춘풍

 

 

 

(처가 죽은 것을 보고) 이것이 죽지 않았나. 아이구, 추월이가 영 죽었네. 한참 좋은 나이에 이렇게 갑자기 죽는단 말이 웬 말이냐! 약을 쓴다. 약을 써. 감기에는 패독산, 관격에는 소체환, 구감에는 감언탕, 설사에는 위령탕, 대변불통에 육신환, 소변 불통에 우공산, 그러니 어서 반짝 눈 좀 뜨거라! 약 한 첩 못 써 보고 죽었으니 이런 기막힐 데가 어디 있나! 어이, 어이. 추월이가 가련하다. (곡을 한다.)

이지

기구하고 가여운 일이다만 기왕지사 죽었으니 죽은 혼이라도 극락 세계로 가라고 굿이나 하리라.

(추월이 부채와 방울을 들고 들어와 굿을 한다.)

추월

 

 

 

 

 

 

 

모혈이라 모혈이라 계성 마누라 모혈이라 가문 마누라 모혈이라 모혈이라 계성이계로 모혈이라 에헤에에 불쌍하고 가련하다.

 

(사설조로) 왔소 왔소. 만신(여자 무당을 대접하여 일컫는 말)의 입을 빌고 몸을 빌어 내가 왔소. 어어어, 생전에 먹은 맘 이루지 못하고 황천객이 되어 왔소. 어어어 (운다.) 넋은 넋은 넋반에, 혼에 혼은 혼반에 담아 연화봉으로 가소서. 얼싸!

 

(방울 울리며 춤을 도와 모두 나간다.)

이지

좋은 곳으로 가라고 굿을 치니 좋을 곳으로 가시오.

덕중

성님 우리 둘만 남았으니 이제 우리도 갑시다.

이지

우리가 여게를 왜 왔나?

덕중

산삼을 캐러 왔소.

이지

그도 아니다.

덕중

도라지를 캐러 왔나?

이지

그도 아니다.

덕중

아이고 성님, 잊어번졌소!

이지

뭐여, 네 이놈이 팔순 노모를 어찌 한단 말이냐 그럼! 에고, 죽어라, 뭐 할려고 살어!

(덕중, 이마를 치고 뒤로 넘어간다.)

이지

 

에고, 이보게 일어나게! 이거 무슨 성민가, 나는 정에 겨워 그랬는데, 이거 가랑잎에 불붙는 성미라. 이보시오들, 거기 우리 아우가 급창이 났으니 의원을 좀 불러 주시오. (잠시) 의원, 의원.

(기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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