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悲歌)                           -이정환-

         

        반 밤중에 혼자 일어나 묻노라 이내 꿈아

        만리(萬里) 요양(遼陽)을 어느 사이에 다녀온고

        반갑다 학가선용(鶴駕仙容)을 친히 뵌 듯하여라

         

        풍설(風雪) 섞어친 날에 묻노라 북래사자(北來使者)여

        소해 용안(小海容顔)이 얼마나 추우신고

        고국의 못 죽는 고신(孤臣)이 눈물 계워 하노라

         

        후생(侯生) 죽은 후에 항왕(項王)을 뉘 달래리

        초군(楚軍) 삼년에 간고(艱苦)도 그지없다

        어느 제 한일(漢日)일 밝아 태공(太公) 오게 할꼬

         

        박제상 죽은 후에 임의 시름 알 이 없다

        이역 춘궁(異域春宮)을 뉘라서 모셔 오리

        지금에 치술령 귀혼(歸魂)을 못내 슬퍼하노라

         

        모구(旄丘)를 돌아보니 위(衛) 사람 어여쁘다

        세월이 자로 가니 칡줄이 길었어라

        이 몸의 해어진 갖옷을 기워 줄 이 없어라

         

        조정을 바라보니 무신(武臣)도 하 많아라

        신고(辛苦)한 화친(和親)을 누구를 위해 한 것인고

        슬프다 조구리(趙廐吏)가 이미 죽으니 참승(參乘)할 이 없어라

         

        구중 달 밝은 밤에 성려(聖慮) 일정 많으려니

        이역(異域) 풍상(風霜)에 학가(鶴駕)인들 잊을소냐

        이 밖에 억만창생을 못내 걱정하시는구나

         

        구렁에 난 풀이 봄비에 절로 길어

        알을 일 없으니 그 아니 좋을소냐

        우리는 너희만 못하여 시름 겨워 하노라

         

        조그만 이 한 몸이 먼 곳에 떨어지니

        오색 구름 깊은 곳에 어느 곳이 서울인고

        바람에 지나는 검줄 같아서 갈 길 몰라 하노라.

         

        이것아 어리석은 것아 잡말 말아라

        칠실(漆室)의 비가(悲歌)를 뉘라서 슬퍼하리

        어디서 탁주 한 잔 얻어 이 시름 풀까 하노라

         

 [ 현대어 풀이 ]

 

  •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 스스로 묻노라, 이 내 꿈아
  • 만리나 떨어진 요양(심양)을 어느 사이에 다녀왔는가
  • 반갑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친히 뵌 듯하구나
  • 눈보라가 뒤섞여 몰아치는 날에 묻겠노라 북쪽 심양에서 온 사자여
  • 왕세자의 모습은 얼마나 추워하고 계시는가
  • 고국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외로운 신하가 눈물을 금치 못하고 있노라
  • 후생이 죽은 후에 초나라 항우를 누가 달랠 것인가
  • 초나라 군사가 된 지 삼 년에 고생이 끝이 없구나
  • 어느 때나 한일(한나라 세상)이 밝아 강태공과 같은 지혜로운 신하가 나오게 할 것인가?
  • 박제상 죽은 후에 임금님의 근심을 알 사람이 없다
  • 멀리 이국 땅에 있는 왕세자를 누가 모셔 올까
  • 지금 치술령 고개 귀혼을 못내 슬퍼하노라
  • 중국의 모구를 돌아보니 위나라 사람 (없으니) 가엽구나
  • 세월이 빠르게 흐르니 칡넝쿨이 길어졌구나
  • 이 몸의 헤어진 털가죽 옷을 기워줄 사람이 없구나
  • 조정을 바라보니 무신들이 많기도 하구나
  • 고통스러운 화친은 누구를 위해 한 것인가
  • 슬프다, 조구리가 이미 죽었으니 모실 사람이 없구나
  • 구중궁궐 달 밝은 밤에 임금께서 걱정이 많으시니
  • 다른 지역(청나라)의 바람과 서리에 학가(왕세자)에 대한 걱정이 없겠는가?
  • 그 외에도 온 백성을 다 걱정하는구나.
  • 구렁에 나 있는 풀이 봄비에 저절로 자라
  • 나라 상황에 아는 바가 없으니 그 아니 좋겠느냐
  • 우리는 너희보다 못하여 병자호란의 국치에 대해서는 근심에 겨워 하노라
  • 작은 이 몸이 먼 곳에 떨어지니
  • 오색 구름 깊은 곳에 어디가 서울인지 모르겠구나
  • 바람에 쓸려 지나가는 낙엽과 나뭇가지 같아서 갈 길을 모르겠구나
  • 이것아! 어리석은 사람아, 부질없는 말하지 말려무나
  • 어두운 방구석에서 부르는 슬픈 노래를 누가 슬퍼하랴
  • 어디서 막걸리나 한 잔 얻어와 이 시름을 풀어 볼까 하노라

 

 [ 이해와 감상 ]

병자호란의 국치(國恥)를 통분히 여겨 지은 연시조로 모두 10수이다. 첫째 수는 한밤중에 꿈을 깨어 혼자 일어나 청(淸)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학가선용(鶴駕仙容)을 만나고 온 이야기의 술회로 시작된다.

여섯째 수에서는 조정에는 무신(武臣)도 많건만 화친(和親)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되물어 안타까운 마음을, 마지막 열 번째 수에서는 '이거사 어린 거사 잡말 마라스라 / 칠실의 비가를 뉘라셔 슬퍼하리 / 어디서 탁주 한 잔 얻어 이 실람 풀까 하노라."라고 하여 국치의 비분강개를 꾸밈없는 직선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각 수의 뒤에는 자신의 한역시(漢譯詩)를 붙였는데, 한결같이 5언 6구의 직역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송암유고』에 전할 뿐, 다른 시조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이로 보아 이 작품이 가창을 통해서는 유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을 내용으로 한 대표적인 시조 작품이며, 특히 연시조 형식으로는 이 작품이 있을 뿐이다.

원래 제목은 '국치비가(國恥悲歌)'이며, 작자의 문집인 『송암유고』에 실려 있다.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작품의 소재인 병자호란의 국치와 이정환의 사망 연대로 보아 1636(인조 14)에서 1673(현종 14) 사이로 추정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자와 왕자 대신들이 볼모로 잡혀간 데 대한 비분강개의 심정과 왕세자를 비롯해 잡혀 간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노래이다. 전 10수로 된 연시조로 원래 제목은 '국치비가'이다. 병자호란을 내용으로 한 연시조 형식의 유일한 작품인 이 시조는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절실한 언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청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꿈에서 만나고 온 이야기로 시작하여 국치의 비분강개를 꾸밈없고 직선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시인인 작자가 병자호란의 국치를 당한 뒤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 비분강개하여 지은 시조이다.

 [ 정리 ]

◆ 형식 및 갈래 : 평시조, 연시조, 우국시, 국치비가

특성

* 중국의 고사를 인용

* 상징과 대조법이 돋보임

* 영탄적, 비탄적 어조

구성

* 제1수 :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꿈에서 봄(창작 동기).

* 제2수 : 왕세자에 대한 염려(세자에게 바치는 지극한 충정)

* 제3수 : 세자와 대군을 모시고 돌아올 사람이 없음을 한탄함.

* 제4수 : 왕자를 구해 올 사람이 없음을 탄식함.

* 제5수 : 자신의 신세와 나라의 형편을 한탄함.

* 제6수 : 화친파를 비난하고 무신들을 질책함.

* 제7수 : 근심 많은 임금님에 대한 걱정

* 제8수 : 시름 많은 사람의 한평생을 노래함.

* 제9수 :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 제10수 : 국치의 울분을 술로 달래고자 함.

*

◆ 주제 : 국치에 대한 비분강개 / 존명배청(尊明排淸)의 선비의식

문학사적 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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