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삼긴 사람 ~                             - 신 흠 -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 노래를 만든 사람은 시름도 많기도 많구나
  • 말로 다 하지 못해 노래를 불러서 풀었던가
  • 진실로 (노래를 불러서) 풀릴 것 같으면 나도 불러 보리라.

[창작 배경]

작자 신흠이 정적(政敵)에 의해 공직에서 물러나 전원생활을 할 때 지은 시조이다. 광해군때 영창 대군의 사건이 일어나자, 선조의 유교 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관직을 빼앗기고, 향리인 춘천으로 돌아가서 지내면서 지은 작품이다. 작자는 인조 반정후 다시 복귀되어 영의정까지 지냈으며, 한문학 4대가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해 및 감상]

 억울하게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작자에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 바로 노래였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름'과 '노래'는 서로 대조되고 있다. 시름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키고, 노래는 음악성을 겸비한 시를 가리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시는 시름과는 달리 마음 속 깊이 맺힌 것을 푸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름과 노래를 통한 '한의 맺힘'과 '한의 풀림'을 내면적인 구조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신흠의 시조관과 '노래' → 신흠은 시조에서도 표현의 격조를 존중했던 작가였다. 그는 한시로 나타내지 못하는 심정은 시조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시조는 기존의 관념을 확인하기 위해 소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직접적인 술회에 머무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신흠은 노래로서의 흥취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조는 한시와 달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 시조를 지을 때 작가는 비록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당쟁을 일삼고 있는 조정과 광해군이 난정을 일삼는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보며 나라 걱정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더구나 신흠은 영창대군을 옹호하다가 억울하게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술로 마음을 달래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근심이 풀리지 않아서 노래를 부름으로써 시름을 잊고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리]

성격 : 평시조, 단시조, 한탄가

표현

-. 영탄법, 연쇄법

-. 초장과 중장에서 전제를 제시하고 종장에서 결론을 내리는 연역적 전개 방식을 보임.

구성

-. 초장 : 노래를 만든 사람의 심리 추리

-. 중장 : 노래의 효용 추리

-. 종장 : 노래를 통한 근심의 해소 소망

문학사적 의의 : 신흠은 당쟁과 광해군의 폭정으로 인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 생활을 하며 여러 편의 시조와 한시를 지었음. 이 작품의 경우 그러한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창작한 것임.

주제

* 노래의 해한성(解恨性)

* 노래를 통해 시름을 풀어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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