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가(燕行歌) 초(抄)                         - 홍순학-

         [1]  어와 쳔지간에 남자 되기 쉽지 안타.

          아아, 이 세상의 남자로 태어나기가 쉽지 않다.

        평생의 이 내 몸이 즁원 보기 원하더니

          내가 평생에 중국 구경하기를 원하였더니,

        병인년 츈 삼월의 가례 책봉 되오시매,

          병인년(고종3년) 3월에 가례책봉(嘉禮冊封)이 되니  

                                * 가례책봉 : 고종이 민치록의 딸인 민비를 맞아들인 것

        국가에 대경이요, 신민의 복녹이라.

          국가의 큰 경사요, 백성들의 복이구나.

        상국의 쥬청헐세 삼 사신을 내이시니,

          청나라에 청원할 때에 세 명의 사신을 뽑아 냈으니,

                                * 삼 사신 : 상사, 부사, 서장관의 세 사신

        상사에 뉴 승상과 셔 시랑은 부사로다.

          정사에는 우의정 유후조와 부사에는 예조시랑 서당보가 발탁되었다.

        행즁 어사 셔장관은 직책이 즁헐시고

          세 명의 사신 일행 중에 서장관이라는 직책은 무겁구나

                                * 서장관 : 외국에 보내는 사신을 따라 보내던 임시 벼슬

        겸집의 사복 판사 어영 낭쳥 띄여스니

          겸직으로 사복판사와 어영낭청을 하였으니

        시년이 이십 오라 쇼년 공명 장하도다.

          이때가 이십 오 세이니 일찍 출세함이 대단하구나.

         [2]  쳥녀는 발이 커셔 남자 발 갓트되,

          청나라 여자는 발이 커서 남자 발과 같으나,

        당녀는 발이 젹어 두 치즘 되는 거슬

          당나라 여자는 발이 작아서 두 치쯤 되는 것을

        비단으로 꼭 동이고 신 뒤츅의 굽을 다라

          비단으로 꼭 동여서 전족을 하고, 신 뒤축에 굽을 달아 신고 다니니

        위뚝위뚝 가는 모양 너머질가 위태하다.

          뒤뚱뒤뚱 걷는 모양이 넘어질까 위태하다.

        그러타고 웃들 마라 명나라 끼친 졔도

          그렇다고 하여 웃지를 마라, 명나라의 유풍은

        져 겨집의 발 하나니 지금가지 볼 것 잇다.

          저 여자들의 발 하나이니 지금까지도 볼 만한 일이다.

        아희들도 나와 구경 주룽주룽 몰겨 션네.

          아이들도 나와서 구경하느라고 옹기종기 모여섰네.

        이삼셰 먹은 아희 어른 연이 축케 안코,

          두세 살 먹은 아이는 여자 어른이 추켜 안고,

        오륙셰 되는 거슨 압뒤흐로 잇끄인다.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은 앞뒤에 세우고 간다.

        머리는 다 깍가다가 좌우로 한 모슴식

          머리는 다 깎아서는 좌우로 한 묶음씩

        빳죠하니 따하쓰며 불근 당사 당긔하고

          뾰족하게 땋았으며, 붉은 당사로 댕기를 하고

        북쥬 감토 마락기의 채색 비단 슈를 노화

          복주 감투와 마래기에 여러 가지 색깔의 비단으로 수를 놓았고

        거문 공단 션을 둘너 불근 단쵸 꼭 지르고

          검은 공단으로 선을 두른 붉은 단추를 꼭 잠그고,

        바지며 져고리고 오색으로 문흘 노코,

          바지와 저고리를 여러 색깔로 무늬를 넣고,

        배래기라 하는 거슬 보자기에 끈을 하여,

          턱받이라 하는 것을 보자기에 끈을 매어서

        모가지에 거럿스니 배꼽 가린 계로고나.

          목에 걸었으니 배꼽을 가린 것과 같구나.

        십여 셰 처녀들도 대문 밧긔 나와 셨네.

          십여 세 된 처녀들도 대문밖에 나와 섰네.

        머리는 아니 깍고 한편 엽헤 모화다가

          머리를 깎지 않고 한편 옆에 모아서,

        샤양머리 모양쳐로 졈쳠 졈쳠 잡아매고

          새앙머리 모양처럼 겹겹이 잡아 매고,

        끗 가지를 꼬자스니 풍쇽이 그러하다.

          거기에 꽃가지를 꽂았으니 풍속이 본래 그러하다.

        쇼쇼 백발 늘근 연도 머리마다 채화로다.

          호호 백발 늙은 여자들도 머리마다 비단으로 만든 꽃을 꽂았구나.

        무론 남녀 노쇼하고 담볘들은 즐기이네.

          물론 남녀노소들이 모두 담배를 즐겨 피네.

        팔구 셰 아희들도 곰방대를 무럿고나.

          팔구 세 된 아이들도 짧은 담뱃대를 모두 물었구나.

         [3]  하쳐라고 차자가니 집 졔도가 우습도다

          유숙하는 곳이라 하여 찾아가니, 집의 구조가 우습도다.

        오량각 이 간통에 벽돌을 곱게 깔고

          들보가 다섯이나 되는 큰 집의 가운데 통로에 벽돌을 곱게 깔고

        반간식 캉을 지여 좌우로 대캉하이.

          반 칸씩 캉(화덕)을 지어 좌우로 마주보게 하였다.

        캉 모양이 엇더트냐 캉 졔도를 못 보거든

          중국식 온돌인 캉의 모양은 어떠한가? 캉의 모양을 못 본 사람을 위해 말해본다면

        우리 나라 붓두막이 그와 거의 흡사하여

          우리나라의 부뚜막이 중국의 캉과 비슷하다.

        그 밋테 구들 노코 불을 때긔 마련하고,

          그 밑에 방구들을 놓고 불을 때게 만들어 놓고

        그 우희 자리 깔고 밤이면 누어 자며

          긔 위에다 자리를 깔고 밤이면 누워서 잠을 자며

        낫지면 숀임 대졉 걸터안기 가장 죳코,

          낮에는 여기에서 손님 대접을 하고, 또 걸터앉기가 안성맞춤이다.

        채유헌 완자챵과 면회(面灰)하온 벽돌담은

          기름칠을 한 완자창과 회를 바른 벽돌담은

        미쳔한 호인들도 집치레 과람(過濫)코나.

          미천한 중국인들 치고는 집 치장이 지나치구나.

        때 업시 먹는 밥은 기장, 좁쌀, 슈슈쌀을

          식사 때가 일정하지 않고 때없이 먹는 기장과 좁쌀과 수수쌀을

        농난(濃爛)하계 살마내여 냉슈에 차와 두고,

          푹 삶아내어 냉수에 담가두고,

        진긔는 다 빠져서 아모 맛도 업는 거슬

          진기가 다 빠져 아무 맛도 없는 것을

        남녀 노쇼 식후대로 부모 형제, 쳐자 권숄(眷率)

          남녀노소 식구대로 부모와 형제, 온 가족들이

        한 상의 둘너안져 한 그롯식 밥을 떠다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한 그릇씩 퍼다가

        젹가치로 그러 먹고 낫부면 더 떠온다.

          젓가락으로 긁어 먹고 부족하면 더 떠다 먹는다.

        반찬이라 하는 거슨 돗헤 기름, 날파 나물

          반찬이라 하는 것은 돼지기름과 날파나물이며,

        큰 독의 담은 장은 쇼곰 물에 메쥬 너코,

          큰 독에 담은 간장은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날마다 각금 각금 막대기로 휘져으니,

          날마다 가끔가끔 막대로 휘저으니,

        쥭갓튼 된쟝물은 쟝이라고 떠다 먹네.

          죽같이 생긴 된장을 간장이라 하여 떠다가 먹네.

         [4]  호인의 풍속드리 즘생치기 슝상하며

          중국인의 풍속이 짐승 기르기를 좋아하며,

        쥰총(駿聰)갓흔 말드리며 범갓흔 큰 노새를

          좋은 말과 범처럼 큰 노새를

        굴네도 아니 지고 재갈도 아니 먹여,

          굴레로 씌우지도 않고 재갈도 물리지 않고서

        백여 필식 모라다가 한 사람이 모라다가,

          백여 마리씩 몰고 다니다가, 한 사람이 몰아다가 (넣어 두어도)

        구률의 드러셔셔 갈내는 것 못 보겠네.

          구유에 들어서서 싸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양이며 도야지를 슈백 필을 떼지여

          양과 돼지를 수백 마리씩 떼지어

        죠고만 아희놈이 한두리 모라가되,

          조그만 아이 한두 명이 몰고가도

        대가리를 한데 모와 허여지지 아니하고,

          머리를 한 곳에 모아 서로 흩어지지 않고

        집채갓흔 황쇼라도 코 안 뚤고 쟐 부리며,

          집채처럼 큰 황소도 코를 뚫지 않고 잘 부리며,

        죠고마헌 당나귀도 맷돌지를 능히 하고,

          조그만 당나귀도 맷돌질을 매우 잘하고,

        댓닥 당닥 오리 게유 괴 개거지 다 기르며,

          댓닭, 당닭, 오리, 거위, 고양이, 개까지 다 기르며,

        발발이라 하는 거슨 겨집년이 품고 자데.

          발발이는 여자들이 품고 잠을 자네.

        심지어 죠롱 쇽의 온갖 새를 노핫스니,

          심지어 조롱 속에는 온갖 새를 넣어서 기르니

        앵무새며 백셜죠는 사람말 능히 헌다.

          앵무새와 백설조는 사람의 말을 아주 잘 한다.

        어린 아희 기른 법도 풍쇽이 괴상하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방법도 풍속이 아주 괴상하다.

        행담의 쥴을 매여 그늬 매듯 츄켜 달고,

          여행 때 가지고 다니는 상자에 줄을 매어서 그네를 매듯이 추켜달고,

        우는 아희 졋 먹여서 강보의 뭉둥그려,

          우는 아이는 젖을 먹여서 포대기에 뭉뚱그려,

        행담 쇽의 누여 두고 쥴을 잡아 흔들며는,

          상자 속에 뉘여 놓고 줄을 잡아 흔들면

        아뭇 쇼래 아니하고 보채는 일 업다 하데.

          조용히 누워 있고 보채는 일이 전혀 없다 하네.

 [이해와 감상]]

고종 3년, 고종이 왕비를 맞이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유후조를 정사(正使)로 한 사신 일행이 중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 사신의 서장관(書狀官)이었던 홍순학이 지은 작품이다. 고종 3년 4월 9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같은 해 8월 23일 돌아올 때까지의 총 133일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이국의 문물과 풍속, 인물 등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객관성있게 비판적으로 기록하고 소개한 기행가사이다.

가사 작품으로는 드물게 장편인 탓에 노정이 자세하고 서술 내용이 풍부하여 다른 가사에 비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양반 가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후기 가사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곡(曲)을 전제로 한 노래가 아니요, 주정적이고 주관적인 서정시도 아니고, 산문정신과 영합하여 다분히 서사적인 수필 내용에 가까워, 조선전기가사의 음풍영월(吟風詠月)적인 서정의 세계에서는 벗어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시각(관점)을 보면, 홍순학의 관심은 어느 한 곳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먀, 우리의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기행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의 현장마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관을 토대로 한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한편 작가는 반청의식(反淸意識)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부분 친명반청(親明反淸)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양인에 대한 서술은 더욱 부정적인 시각에서 행해지는데, 서양인을 '서양국놈' 혹은 '양귀자놈'이라고 표현하고, 여인네들은 흉칙하며 아이들에 대해서는 '잔나뷔 삭기들과 이상이 갓도갓다 / 졍녕이 짐승이요 사람의 종자 아니로다'라고 표현하였다. 몽고 승려들에 대해서도 '몽고놈들 볼작시면'이라고 한 것을 보면, 작가는 한족과 우리 민족 이외는 모두 오랑캐라는 보수적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점정리]

연대 및 작자 : 고종 3년(1866), 홍순학

갈래 및 성격 : 조선후기 가사, 장편 기행가사,

◆ 형식 및 표현

① 3,4조의 4음보.   3,924구(句)의 장형

② 치밀한 관찰을 통해 대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함.

③ 중국 고사나 한시를 거의 사용하지 않음.

④ 해학과 유머가 돋보이는 표현이 있음.

주제 : 청나라 연경을 다녀온 견문과 여정

구성

[1] 삼사에 뽑힌 자랑스러움과 무거운 책임감

[2] 구경나온 중국의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

[3] 청나라의 풍속과 문화 (주거문화, 음식문화)

[4] 청나라의 풍속과 문화 (짐승치기, 아이 기르기) 

문학사적 의의 : 고종의 왕비 책봉 사실을 알리기 위한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에 간 홍순학이 130일 간의 여정과 견문을 노래한 작품으로,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와 함께 조선후기 기행 가사의 대표작으로 평가됨.

 [참고사항]

< 연행가 내용에 대해서 >          *출처 : 국어국문학 자료 사전에서

" --- 서울을 떠나 고양, 파주, 임진강, 장단, 송도, 평산, 곡산, 황주, 평양, 가산, 정주를 거쳐 의주까지 국내에서만도 거의 한달이 걸린 여정이었다. 압록강을 건너면서 비로소 "허박하고 약한 기질 만리행역 걱정일세."라 하며 떠나는 외로움과 집과 나라에 대한 생각에 무거운 나그네의 심회를 말하고 있다. 국내에서 융숭하였던 지공(支供), 지대(支待)와는 달리, 무인지경 만주 벌판에서의 군막생활의 어려움과 봉황성에서 만난 호인남녀(胡人 男女)의 기괴한 옷차림과 생활, 낯선 이국의 풍물 등을 소상히 관찰하여 그의 특유의 익살로 표현하였다. 청석령을 넘으며, 효종의 수욕(受辱)을 통분하였던 이야기며, 요동 700리에서 뽐낸 사내의 호기가 번뜩인다. 북경의 문루, 사우(寺宇), 고적을 소견하고, 시전(市廛)을 두루 살펴 환희(幻戱), 요술을 참관하고, 인사를 방문하여 인정을 교환하였던 일 등 당시의 정황을 밝혀 주고 있다. "눈깔은 움쑥하고 콧마루는 우뚝하며 머리털은 빨간 것이 곱슬곱슬 양모 같고 키꼴은 팔척장신 의복도 괴이하다. 쓴 것은 무엇인지 우뚝한 전립같고 입은 것은 어찌하여 두 다리가 팽팽하냐, 계집년들 볼짝시면 더구나 흉괴하다. 퉁퉁하고 커다란 년, 살빛은 푸르스름 --- 새끼놈들 볼 만하다. 사오륙 세 먹은 것이 다팔다팔 빨간 머리 샛노란 둥근 눈깔 원숭이 새끼들과 천연히도 흡사하다"라고 하며 북경 길가에서 만난 초견(初見) 서양인을 익살로 표현한 대목에서 조선 선비의 오기를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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