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궁가(歎窮歌)                                  - 정 훈 -


 

    * 삼순구식 : 삼십 일에 아홉 끼 먹는 가난한 생활

    * 십년일관 : 십 년 동안 하나의 갓만 씀. 지독히 가난한 생활을 이름.

    * 안표누공 : 안연의 표주박이 자주 빔. 안연이 가난하여 음식을 담는 표주박이 자주 비어 있음을 일컬음.

    * 원헌 : 공자의 제자로, 청빈의 대명사적인 인물

    * 환자 장리(還子長利) : 환자란 봄에 곡식을 빌리는 것을 말한다. 고리는 높은 이자

    * 요역 공부(役貢賦) : 국가에서 시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육체적 노동과 세금

    * 백이사지(百爾思之) : 백방으로 생각함.

    * 부증 : 떡 찌는 시루

    * 세시삭망(歲時朔望) : 세시 절기

    * 명일기제(名日忌祭) : 명절 때의 각종 잔치와 제사

    * 향사(響祀) : 제사를 받듦.

    * 후량 : 말린 음식

    * 일길신량(日吉辰良) : 길한 날

    * 추추분분(啾啾憤憤) : 시끄럽게 떠들며 화를 냄.

    * 자소지로(自少至老) :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 현대어 풀이 ]

* 하늘이 만드시길 일정하고 고루 하련마는 어찌된 인생이 이토록 괴로운고. 삼순구식을 얻거나 못 얻거나, 십 년 동안 한 개의 갓을 쓰거나 못 쓰거나, 안연의 곳간이 비었다고 해도 나같이 비었겠으며 원헌의 가난인들 나처럼 심할까. (가난에 대한 한탄)

* 봄날이 더뎌 뻐꾸기가 재촉하거늘, 동쪽 이웃집에 쟁기 얻고 서쪽 집에서 호미를 얻고, 집 안에 들어가 씨앗을 마련하니 올볍씨 한 말은 반 넘게 쥐가 먹었고, 기장피와 조팥은 서너되 안 되거늘, 춥고 배고픈 식구 이리하여 어찌 살리. (파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집안의 상황)

* 이봐 아이들아! 어쨌거나 힘 써서  살아가려고 죽을 쑤어 국물은 상전이 먹고 건더기(좋은 진국)는 종을 주었는데, (종놈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만 끼는구나. 올벼는 한 발만 수확하고 조와 팥은 다 묵이니, 살히피 바랑이 등 잡초는 나기도 싫지 않던가. 환자 장리는 무엇으로 장만하며, 요역 공부는 어찌하여 채워 낼까. 백방으로 생각해도 견딜 수가 전혀 없다. 잡초가 아무 걱정 모르는 것을 부러우나 어찌하리. (종들까지 상전을 무시할 정도로 가난한 상황)

* 시절이 풍년인들 지어미 배부르며, 겨울이 덥다 한들 몸을 어찌 가리울까. 베틀북은 쓸데없이 빈 벽에 걸려 있고, 시루 솥도 버려두니 붉은 녹이 다 끼었다. 세시절기 생일제사 무엇으로  해 올리며, 원근친척 내빈왕객 어찌하여 대접할까. 이 몰골 지니고 있어 어려운 일 많고 많다. (명절도 쇨 수 없는 가난)

* 이 원수 이 가난 귀신을 어찌해야 여의겠나. 술에 음식을 갖추어서 이름 불러 전송하여 좋은 날 좋은 때에 사방으로 가라 하니, 시끄럽게 떠들며 화를 내며 하는 말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기쁨과 슬픔을 너와 함께 하여 죽거나 살거나 헤어질 줄이 없었거늘 어디 가서 뉘 말 듣고 가라고 말하는가." 타이르는 듯 꾸짖는 듯 온 가지로 꾸짖거늘, 도리어 생각하니 네 말이 다 옳도다. (원수 궁귀와의 대화)

* 무정한 세상은 다 나를 버리거늘, 너 혼자 신의 있어 나를 아니 버리니, 일부러 피하여서 잔꾀로 여의겠나 하늘이 준 이내 가난 설마한들 어찌하리. 빈천도 내 분수니 설워 하여 무엇하리. (가난을 체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

 [ 감상 및 해설 ]

조선 중기 문신 정훈이 지은 가사이며, 6단 84구로 되어 있다. 자신의 빈고(貧苦)한 생활상을 소재로 안빈낙도를 읊은 작품이다. 주제는 소박하지만 표현 방법은 직선적이고 개성이 있으며, 작자가 유교사상의 지배하에서 그 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의식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탄궁가>는 가난한 선비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탄궁가>의 구조를 살펴보면, 서사에서 자신과 빈곤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본사에서는 빈곤의 극복 노력(현실적), 빈곤의 상태와 극복 노력(관념적)으로 반복되다가 결사에서 체념에 이르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하늘에서 생긴 빈곤이 중국의 성현과 비교해도 자신의 빈곤의 깊이가 제일 심하다고 표현한다. 그러하 빈곤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집안에 들어가 씨갓쌀을 마련한다'의 시행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빈곤의 현실 앞에 무력함을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빈곤 상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그러한 빈곤이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없게 되자 정신적, 관념적 극복 노력이 희곡 형식의 대화체로 나타나게 된다. 빈곤과 대화를 하는 부분은 희극적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그 안에 비극을 포함하고 있다. 주인은 빈곤을 탄식하고 빈곤을 수레에 태워 보내려 한다. 그러나 빈곤이 도리어 함께 있자고 꾸짖으니, 주인은 빈곤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세상은 모두 믿음이 없어 나를 버리나, 빈곤은 혼자 믿음이 있어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식을 보여준다. 빈곤을 보내기 위해 수레와 마른 반찬을 준비하고 가라 하고, 빈곤은 도리어 정으로 이루어진 사이라 한다는 내용은 절망의 상태를 오히려 웃음으로 가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 처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탄궁가의 결사에서는 빈천을 분수로 여기며 산다는 체념의 정서로 탄궁가를 마무리하고 있다.  

 

 [ 핵심 정리 ]

◆ 갈래 : 조선시대 가사, 양반가사

◆ 주제 : 가난으로 인한 근심과 고통,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

◆ 표현

1. 박인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한 현실 인식을 보여줌.

2. 가난을 의인화하여 가난으로 인한 고통을 희화화함.

3. 곤궁한 생활을 탄식하면서 안빈낙도하려는 뜻을 노래함.

4. 가난에 대한 화자의 내적 갈등에 대해 가난을 의인화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깨달음을 얻음.

5. 관련 작품 : 박인로의 <누항사>(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안빈낙도의 삶의 자세)

◆ 구성

♠ 기(起) → 작자와 궁핍(가난에 대한 한탄)

♠ 서(敍) → 춘계와 빈곤, 대책없는 빈고(貧苦), 아내외 빈핍(貧乏), 궁핍과 가권

♠ 결(結) → 탄식과 체념

 

◆ 참고

1. 작가의 현실 인식

정훈의 작품을 보면 그의 현실 인식이란 그다지 비판적이라거나 사회 전체를 향하여 열려 있지는 못하다. 그가 한숨 쉬면서 읊조리는 안빈낙도라는 것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당대의 현실인식이라기보다는 자기 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을 통해 당대의 어려움이나 궁핍함을 생생하게 엿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정훈은 당시의 격렬했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살면서 현실 문제를  타개해 나가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가난한 현실 속의 자기 한계를 노출하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2. 지은이 : 정훈

정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혼란기에 남원 지방에 살았던 인물로, 자는 방로, 호는 수남방옹을 사용했다. 고려 때 대제학인 정현영의 후손으로, 평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이괄의 난 때에는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모병하여 출동하였고, 정묘호란 · 병자호란 때에는 두 아들을 출정시켰다. 그는 20수의 시조와 5편의 가사를 남겨 17세기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고조 때 경제적 이유로 하여 한양에서 남원으로 낙향한 몰락한 집안이었는데, 정훈 당대에 이르러서도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청빈했던 정훈의 집안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생활의 궁핍으로 하여 한양에서 시골인 남원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정상적 학문의 길을 걷지 못하였으나 항상 학문에 대한 열의를 버리지 않았다. 이런 형편은 당대에 와서도 풀리지 않았다. 즉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이어져 그는 어릴 때부터 산림에 묻혀 자연과 벗하여 손수 자경(自耕)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난 중에도 부모를 봉양할 것이 없으면 손수 어망과 그물을 짜서 어린 노비로 하여 하루 세 번 고기를 잡게 하고 혹은 친히 가서 그것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는 비록 노비를 거느리고 있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 스스로 그물을 짜야만 하는 한미한 향반이었다.

 

3. 작가의 세계관

이 작품은 가난을 궁귀(窮鬼)로 설정하여 대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가난을 궁귀로 설정한 것은 그만큼 가난이 자신의 일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혀 왔기 때문일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일생을 괴롭혀 온 이 궁귀를 마침내 내치려 하는데, '궁귀'는 화를 내며 오히려 화자를 나무란다. 일생 동안 희로우락을 함께 했는데, 이는 생각지 않고 어디서 어떤 요사한 말을 들었기에 자신을 내치려 하느냐고 꾸짖는다. 이에 화자는 궁귀의 말을 옳게 여기고 얕은 꾀로 궁귀를 내치려 한 자신을 후회하게 된다. 이러한 대화 속에서 궁귀는 화자는 깨닫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궁귀는 화자의 어리석은 생각을 준엄하게 꾸짖음으로써 화자로 하여금 얕은 꾀로 자신을 물리치려 한 것을 후회하게 하고, 결국 가난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여기서 화자가 가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내 궁(窮)도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궁귀의 역할로 보건대, 궁귀는 작가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목소리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가난을 둘러싼 작가의 내면적 갈등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어렵게 살아온 작가는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가난을 되돌아보면서 이를 과연 하늘이 부여한 자신의 분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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