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탄(船上歎)                       - 박인로 -

[1] 수군으로 종군함(전선에서 적진을 바라봄)

   

<현대어 풀이>

(임금께서) 늙고 병든 몸을 수군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 을사년(선조 38년, 1605)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 국경의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만 있겠는가? / 한 자루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구태여(=감히) 올라 /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은 멀리 또는 가까이에 쌓여 있고(아직도 전운이 감돌고 있는 상황) / 아득한 푸른 바다는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

 

[2] 배 만든 이에 대한 원망

   

<현대어 풀이>

배 위를 왔다갔다 서성거리며 예와 오늘을 생각하며 / 어리석고 미친 듯한 마음에 헌원씨(중국의 전설상의 황제로, 배와 수레를 처음 만들었다 함)를 원망하노라. / 큰 바다가 끝없이 천지에 둘러 있으니 / 진실로 배가 없었으면 풍파가 이는 바다 만 리 밖에서 / 어느 사방의 오랑캐가 넘볼 것인가? /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비롯(시작)하였던가? / 오랜 세월에 무한한 큰 폐단이 되어 / 온 세상 만 백성의 원한을 키우는도다.

 

[3] 진시황과 서불로 인한 왜국 형성 개탄

   

<현대어 풀이>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구나. / 배가 비록 있다고는 하나 왜국을 만들지 않았던들 /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 누구의 말을 믿어 듣고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들어가게 해서 / 바다 가운데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왜적)을 남기어 두어서, / 통분한 수치와 욕됨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는구나. / 장생불사한다는 약을 얼마나 얻어내어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이나 살았던가? / (그러나 진시황도) 남들처럼 죽어가니, (사람들을 보낸 일이)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 / 아, 돌이켜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들이 매우 심하였구나. / 신하가 되어서 남의 나라로 도망을 하는 것인가 /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쉬 돌아왔더라면 / 수군인 나의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4] 배로 인한 풍류와 흥취(배의 유용성)

   

<현대어 풀이>

그만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 공연한 시비는 팽개쳐 던져 두자. / 곰곰히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지나친 고집이로구나. / 황제가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잘못이 아니로다. / 장한이 강동에서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해도 / 만일 작은 배를 타지 않았다면 / 하늘 넓고 바다 넓다 한들 무슨 흥이 저절로 났을 것이며 / 정승 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경치 좋은 강산에 / 물 위에 떠다니는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애가 / 한 조각의 작은 배가 아니면 무엇에 의탁하여 다닐 것인가?

* 장한 → 중국 진나라 사람. 청재(淸才)가 있고 글을 잘해서 제(齊)왕이 대사마(大司馬)를 삼았더니, 가을 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먹고 싶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다.

 

[5] 평화와 전시의 배(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다름)

   

<현대어 풀이>

 이런 일을 보면 / 배를 만든 제도야 지극히 묘한 듯하지만, /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 나는 듯한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 (소동파가 적벽강 위에 띄운)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게 흩어졌더니, / 오늘 (우리가 탄)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 같은 배이건만 가진 바가 다르니 / 그 사이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6] 해추흉모를 겪는 국운과 화자의 우국충정

   

<현대어 풀이>

때때로 머리 들어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 때를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리도다. / 우리나라의 문물이 한나라 · 당나라 · 송나라에 뒤지랴마는 /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들의 흉악한 꾀에 빠져 / 만고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고서 / 백분의 일이라도 못 씻어 버렸거든……, / 이 몸이 변변하지 못하지만 신하로 있다가 / 곤궁과 영달(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못 모시고 늙은들 /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향한 충성스러운 마음이야 어느 때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

 

[7] 왜구를 무찌르고 말겠다는 무인다운 기개

   

<현대어 풀이>

불의를 보고 의기가 북받치고 분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 씩씩한 기운은 늙어가면서 더욱 커진다마는 / 조그마한 이 몸이 병중에 있어서 / 분함을 씻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푸는 것이 어려울 듯하건마는 / 그러나 죽은 제갈도 살아있는 중달이를 멀리 쫓고, / 발이 없는 손빈도 그 발을 자른 방연을 잡았는데 /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갖추어 있고 목숨이 붙어 있으니 / 쥐나 개같은 도적(왜적)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하겠는가? / 나는 듯이 달리는 배에 달려들어 선봉을 잡으면 /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헤치리라. / 칠종칠금(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일컬음)을 우린들 못할 것인가?

 

[8] 태평성대가 돌아오기를 바람.

   

<현대어 풀이>

 꾸물거리는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려무나. /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으니 너희를 구태여 섬멸하겠는가? / 나의 왕(=선조)의 성덕이 같이 살기를 원하시니라. / 태평천하에 요순의 군민처럼 되어 / 해와 달의 빛이 아침이 거듭되거든(태평세월이 계속 되거든)  / 전투 배에 타던 우리 몸도 고기잡이 배에서 늦도록 노래하고 /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 있으면서 / 성군 치하의 태평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 일월광화 조부조 → 낮이면 햇빛으로 밤이면 달빛으로 항상 아침임.  여기서는 임금의 성덕

* 해불양파 → 태평성대

 -<노계집>-   

 [ 감상 및 해설 ]

‘선상탄’은 ‘태평사’와 함께 가사 문학사상 몇 안 되는 전쟁 가사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선조 38년(1605), 박인로가 통주사로 부산에 가서 왜적의 침입을 막고 있을 때 지은 전쟁가사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이지만, 전쟁의 아픔과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가라앉지 않은 때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직접 전란에 참여한 작자가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뼈져리게 되새기며, 왜적에 대한 근심을 덜고 고향으로 돌아가 놀이배를 타고 즐겼으면 하는 뜻과 우국 충정의 의지를 함께 표현한 것이다. 배의 유래와 무인다운 기개, 그리고 왜적의 항복으로 하루빨리 태평성대가 오기를 기원하는 내용도 아울러 표현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가사가 현실을 관념적으로 다룬 데 반해, 이 작품은 전쟁의 시련에 처한 민족 전체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가사가 개인적 서정이나 사상의 표출만이 아니라 집단적 의지의 표현에도 적합한 양식임을 실증하고 있다.

표현상 한문투의 수식이 많고 중국의 고사와 한시구를 그대로 인용할 뿐 아니라, 직서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결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전쟁 문학이 일반적으로 범하기 쉬운 속된 감정에 흐르지 않고 적을 위압할 만한 무사의 투지를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작가가 타고 있는 배를 중심 소재로 내세워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도 눈여겨 볼 만하다.

 [ 핵심 정리 ]

: 조선후기 가사, 전쟁 가사

연대 : 선조 38년(1605년). 노계 45세 때

: 3(4).4조 4음보 연속체

: 가사체, 운문체

: 인용법, 대구법, 은유법

성(짜임)

[1] 기 → 작자가 전선(戰船) 위에서 적진을 바라보는 정경

[2] 서 → 선상에서의 회포와 우국지정

               (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한 것을 배 때문이라 하여 배를 만든 헌원 씨를 원망함.

               흥취가 있었던 옛날의 배와 칼과 창밖에 없는 지금의 배의 비교.

               해추 흉모에 대한 적개심과 우국 단심

               왜구를 추풍 낙엽같이 무찌르겠다는 무인의 기개)

[3] 결 → 태평성대가 돌아오기를 기원함

: 우국지정(憂國之情)과 태평성대 기원

: ‘태평사(太平詞)’와 함께 전쟁가사의 대표작.

             감상에 흐르지 않고 민족의 정기와 무인의 기개를 읊었다.

: 표현상 예스러운 한자 성어와 고사가 지나치게 많다.

             왜적에 대한 적개심은 그럴 만하나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나타나는 점이 흠이다.

: <노계집(蘆溪集)>

 [ 참고 ]

 ◆ ‘선상탄’의 창작 배경

‘선상탄’이 창작된 시기인 1605년은 우리 민족이 참혹한 피해를 입은 전란인 임진왜란이 종료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로서, 악화된 대일 감정이 지속되고 있던 때이다.

따라서 반일과 극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일반적 정서였고, 또한 정세아(鄭世雅) 휘하의 의병으로 또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일본에 대항, 항전에 직접 참여했던 노계의 기본적인 정서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시적 재능을 지닌 노계가 전란의 기억이 생생한 시절에 다시 통주사로 나라 수비의 임무를 맡게 됨에 따라 반일과 극일의 정서, 나아가 우리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 애호의 정서를 뚜렷이 의경화한 의론지향의 시가인 ‘선상탄’을 지은 것은 매우 시의(時宜) 적절한 시가 창작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작품의 창작 배경은 조선 후기의 군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상과 굴욕적 침략을 현실적으로 견딘 후에, 이를 이상적으로 초극하려는 의지와 민족의 염원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런 문학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 ‘선상탄’의 구성

<선상탄>은 내용을 기준으로 삼을 때,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노계가 왕명으로 통주사가 되어 배 위에 올라 대마도를 굽어보는 모양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여기진목하여 대마도를 구버보니'에서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선상탄의 기본 정서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단락에서는 배를 맨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헌원씨와 왜국에 사람이 살게끔 함으로써 호전적인 족속을 만들어 놓은 진시황 및 그 사신이었던 서불(徐市)을 탓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침략의 주체, 도구의 근원에 대한 원망을 통하여 반일의 정서를 뚜렷이 한 단락이다.

셋째 단락에서는 배의 유용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였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넷째 단락에서는 비록 젊은 몸은 아니지만 우국충정으로 왜적의 무리가 무찌를 수 있다는 노계 자신의 기개와 기백을 토로하고 있다.

다섯째 단락에서는 왜인들이 항복하여 태평스러운 시대가 오면 고깃배를 타고 즐기는 생활을 영위하겠다는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 지은이 : 박인로 (朴仁老 1561-1642) 조선 시대 무신.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임진왜란 때에는 수군에 종군하였고, 3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만호에 이르렀으나, 후에 벼슬을 사직하고 독서와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안빈낙도하는 도학사상, 우국지정이 넘치는 충효 사상, 산수 명승을 즐기는 자연애 사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송강과 함께 가사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며, 가사 7편 <태평사>, <사제곡>, <누항사>, <선상탄>, <독락당>, <영남가>, <노계가>와 ‘오륜가’ 등 시조 72수가 <노계집(蘆溪集)>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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