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사(萬言詞) -안조원(환)- |
◆ 1~4행 : 비 온 후에 봄이 찾아옴. 간 밤에 불던 바람 천산에 비 뿌리니 구십(九十) 동군(冬軍)이 춘광(春光)을 자랑하듯 미쁠손 천지 마음 봄을 절로 알게 되니 나무 나무 잎이 피고 가지 가지 꽃이로다.
◆ 5~10행 : 창 밖의 꽃을 보며 고향을 생각함. 방초(芳草)는 처처(處處)한데 춘풍 소리 들리거늘 눈 씻고 일어 앉아 객창을 열어 보니 객창에 수지화(樹持花)는 웃는 듯 반기는 듯 반갑다 저 꽃이여 예 보던 꽃이로다 낙양 성중에 저 봄빛 한가지요 고향 원상(園上)에 이 꽃이 피었는가.
◆ 11~21행 : 꽃을 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함. 지난해 오늘날에 웃음 웃어 보던 꽃은 청준(淸樽)에 술을 붓고 꽃 꺾어 산(算)을 놓고 장진주(將進酒) 노래하고 무진무진 먹자 할 제 내 번화(繁華) 질김으로 저 꽃을 보았더니 올해 이날에 눈물 뿌려 볼 줄 알까 아침에 나쁜 밥이 저녁에 시장하니 박잔에 흐린 술이 값없이 쉬울쏘냐 내 고생 슬픔으로 저 꽃을 다시 보니 아마도 이 고생이 수유간(須臾間)의 꿈이로다. 전년 꽃 올해 꽃이 꽃빛은 한가지나 전년 사람 올해 사람 인사(人事)는 다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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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어구 풀이] |
* 구십 동군 → 석 달 간의 겨울날을 의미함. * 미쁠손 → 믿음직스럽도다. * 방초는 처처한데 → 향기로운 풀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 수지화 → 의인화를 통해 반가움의 정서를 드러냄. * 낙양 성중 → '고향 원상'과 마찬가지로 화자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공간임. * 청준 → 맑은 술을 담은 술동이 * 산을 놓고 → 마신 술잔의 수를 헤아리고 * 장진주 → 중국 당나라 때 이백이 지은 고사. 술 권하는 노래 * 번화 질김으로 → 번성하고 화려함을 즐기면서 * 웃음과 눈물 → 지난날의 웃음과 오늘날의 눈물이 대비되면서 화자의 처지가 부각됨. * 수유간 → 잠시 동안 * 전년 꽃 올해 꽃이 꽃빛은 한가지나 → 자연의 불변성 * 전년 사람 올해 사람 인사는 다르도다 → 인생의 가변성 |
[감상 및 해설] |
안조원이 지은 유배가사임. 또는 안조원인 지은 6편의 가사 작품집. 가사 작품 <만언사>는 총 1,454구의 장편가사인데, 전래 문헌에 따라 작품 이름과 작자가 다르게 밝혀져 있다. 가람본은 안조원의 <만언>,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작자 미상의 <만언>, 연세대본은 작자 미상의 <만언사>, 동양문고본은 안도원의 <만언사>, 경도대학본은 작자 미상의 <만언사> 등으로 전한다. 작품의 내용으로 볼 때 안조원이 34살 때 추자도로 귀양가서 풀려날 때까지의 비참하였던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고, 작품명도 문헌에 따라 서로 달리 표기되고 있지만, 안조원의 <만언사>로 통일하고 확정해야 할 것이다. 작자의 나이 34세 때 국고 재물로 주색 등 경박한 생활을 하다가 추자도로 유배되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심정과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내용의 애절한 노래이다. 작가가 인편으로 이 가사를 서울로 보냈는데, 궐 안의 궁녀들이 이것을 잃고 모두 눈물을 흘리니 이 사실을 왕이 알고 석방했다고 한다. 그는 약 1년 간의 유배생활에서 위선과 허식을 벗고 진실한 인간으로서의 체험과 느낀 바를 진솔하게 표현한 사실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수록 부분> 유배지에서의 심회를 자연물과 인간사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가 봄에 핀 꽃을 보며 작년 이맘때 술을 마시고 즐기며 감상했던 꽃과 오늘날 유배지에서 굶주리며 고생하는 가운데 보는 꽃이 같음에 비애를 느끼고 한탄한다. 유배 문학에 속하는 가사이나, 다른 가사와는 달리 연군지정보다 자신의 실제 체험과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 놓은 사실적인 작품이다. |
[핵심 정리] |
◆ 갈래 및 형식 : 조선후기(정조) 가사, 장편가사, 유배가사 ◆ 특성 * 김진형이 지은 장편유배가사인 '북천가'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임. ◆ 주제 : 귀양에서의 고통스런 삶과 지은 죄에 대한 회개 ◆ 구성 * 01 : 추자도로 귀양가는 신세 한탄 * 02 : 11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 의탁하여 지냄. * 03 : 혼인한 이후 여유 있는 생활로 향락적 풍류에 탐닉함. * 04 : 마음을 다잡고 공부한 끝에 벼슬에 올랐으나 공무를 잘못 처리하여 유배를 가게 됨. * 05 : 부모 친척과 이별하고 경기, 충청, 전라도 등을 거쳐 유배지 추자도에 이르는 노정에서의 체험과 감상 * 06 : 추자도 사람들의 박대로 인해 거처도 못 구하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고, 거친 음식으로 겨우 연명함. * 07 :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고자 하나 경험이 없는 일이라 포기하고, 결국 동냥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신세를 한탄함. * 08 : 허름한 거처에서 한 벌의 옷으로 사계절을 지내며, 때로 굶기도 해야 하는 궁박한 삶 속에서도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임. * 09 :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유배에서 풀려나기를 기원함.(수록 부분이 해당함) * 10 : 이웃 사람이 유배객에게,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참으면서 자신의 도리를 다할 것'을 타이르며 위로함. |
[참고하기] |
◆ 유배 문학으로서의 특수성 유배 문학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하게 된 상층부의 양반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억울함의 하소연, 그리고 임금의 은총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데 중심을 둔다. 그러나 '만언사'의 작자는 정치와 관계 없이 공무상의 개인적 비리로 인해 유배되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유배 생활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다.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나 충성심이 지배적 정서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다만, 유배 생활 자체에서 느끼는 고통이 사실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만언사'는 권력 상층부에 속한 양반들의 관념적인 충의 표현을 뛰어넘어 화자의 체험과 감정을 숨김없이 표백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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