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김인겸-

   [1] 평생의 소활(疎闊)하야 공명(功名)의 뜨디 업네.

      평생에 성격이 어설퍼서 나라에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네.

      진사 청명(淸名) 죡하거니 대과(大科)하야 무엇하리

      그리하여 진사의 청렴하다는 명망으로 만족하게 여겼으니, 높은 벼슬을 해서 무엇하리오?

      당듕졔구(場中諸具) 업시하고 / 유산(遊山) 행장(行裝) 찰혀 내여

      그래서 과거보는데 필요한 여러 도구를 없애고 /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여행을 다니는 차림으로

      팔도로 두루 노라 명산대쳔(名山大川) 다 본 후의

      팔도를 두루 돌아 명산대천을 다 본 후에

      풍월을 희롱(戱弄)하고 금호(錦湖)의 누엇더니

      음풍영월하며 금강 유역에서 은거하고 지내다가

      븍챵(北窓)의 잠을 깨야 셰샹 긔별 드러 하니

      서재에서 나와 세상 소식을 들으니

      관백(關白)이 죽다 하고 통신사(通信使) 쳥한다네.

      일본의 집권자 도쿠가와 이에시게가 죽고 우리나라에 친선사절단을 청한다는 말을 들었네.

    [2] 이 때난 어느 땐고, 계미(癸未) 팔월 초삼이라

      이때는 어느때인가? 계미년(1763년) 8월 3일이라.

      북궐(北闕)의 하딕(下直)하고 / 남대문 내다라셔 관왕묘(關王廟) 얼픗 지나

      경복궁에서 임금님께 하직하고 / 남대문에서 말을 달려 관왕묘를 얼른 지나

      젼생셔(典牲署) 다다르니 사행을 젼별(餞別)하랴

      전성서에 다다르니 사신의 행차를 전송하려고

      만됴(萬朝) 공경(公卿) 다 모닷네.

      만조백관들이 모두 모여 있네.

      곳곳이 댱막(帳幕)이오 집집이 안마로다.

      곳곳마다 장막이 둘러져 있고 집집마다 안장 얹은 말이 대기하고 있도다.

      좌우 젼후 뫼와 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 되여시니

      좌우 전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산과 바다와 같은 무리를 이루었으니

      졍 잇난 친구들은 손 잡고 우탄(우嘆)하고 / 쳘 모르는 소년들은 불워하기 측량(測量)업네.

      정다운 친구들은 손을 마주잡고 서운해 하고 / 철 모르는 소년들은 부러워하기 이를 데 없네.

      셕양(夕陽)이 거의 되니 낫낫치 고별(告別)하고 / 상마포(上馬砲) 세 번 노코 차례로 떠나갈새

      저물 무렵이 거의 되어서 서로서로 이별하고 / 출발 신호에 차례로 떠나갈 때에

      졀월(節鉞), 젼배(前陪) 군관(軍官) 국서(國書)를 인도하고

      절(절)과 부월(부월), 앞을 인도하는 군관이 임금님의 친서를 인도하고

      비단 일산(日傘) 슌시(巡視) 녕긔(令旗) 사신(使臣)을 뫼와셧다.

      비단으로 만든 양산과 순시 영기 깃발이 사신을 중심으로 모여 섰다.

      내 역시 뒤흘 따라 역마(驛馬)를 칩더 타니

      나도 역시 뒤를 따라 역마를 올라타니

      가치옷 지로나쟝(指路羅將) 깃 꼿고 압희 셔고

      까치옷으로 단장한, 길을 인도하는 나장이 깃을 꽂고 앞에 서 있고

      마두셔자(馬頭書子) 부쵹하고 쌍겻마 잡앗고나.

      역졸과 군총이 부축하고 쌍두마를 잡았구나.

      셰패놈의 된소래로 권마셩(勸馬聲)은 무슴 일고 / 아모리 말나여도 전례(前例)라고 부대하네.

      청파 역졸이 큰소리로 지르는 권마성은 무슨 일인가? / 아무리 말리어도 전례라고 하면서 계속하네.

      백슈(白鬚)의 늙은 션배 졸연(猝然)히 별성(別星) 노릇

      허옇게 센 수염의 늙은 선비가 갑자기 사신 노릇을 하니

      우습고 긔괴(奇怪)하니 남 보기 슈괴(羞愧)하다.

      우습고 어색해서 남 보기에 부끄럽다.

    [3] 댱풍(壯風)의 돗찰 다라 뉵션(六船)이 함끠 떠나,

      거센 바람에 돛을 달아 여섯 척의 배가 함께 떠나게 되니

      삼현(三絃)과 군악 소래 산해(山海)를 진동하니,

      환송하는 풍악 소리가 굉장하게 울려 퍼지니

      믈 속의 어룡들이 응당이 놀라도다. / 해구(海口)를 얼픗 나셔 오뉵도(五六島) 뒤지우고

      물 속의 고기와 용들이 당연히 놀랄만도 하구나. / 부산항을 얼른 떠나 오륙도 섬을 뒤로 하고

      고국을 도라보니 야색(夜色)이 창망(滄茫)하야 / 아모것도 아니 뵈고 연해 변진 각 포(浦)의

      고국을 돌아보니 밤경치가 아득하여 /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연해변에 있는 각 항구의

      불빗 두어 뎜이 구름 밧긔 뵐 만하니. / 배방의 누어 이셔 내 신셰를 생각하니

      불빛 두어 점이 구름 밖에서 보일 만하구나. / 선실에 누워 있으면서 내 신세를 생각해보니

      갓득이 심난한듸 대풍이 니러나니 / 태산 갓튼 셩낸 믈결 텬디의 자옥하니

      가뜩이나 심란한데 큰 바람이 일어나서 / 태산같은 성난 물결이 천지에 가득하니

      크나큰 만곡주가 나모닙 브치이듯 / 하늘의 올라다가 디함의 나려지니

      만 석을 실을 만한 큰 배가 마치 나뭇잎 나부끼듯 /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땅 밑으로 떨어지니

      열 두 발 쌍돗대는 챠아처로 구버 잇고 / 쉰 두복 초셕 돗츤 반달쳐로 배블럿네

      열두 발이나 되는 쌍돛대는 척척 굽어진 나뭇가지처럼 굽어 있고 / 쉰두폭 돛은 반달처럼 배 불렀네.

      굵은 우레 잔 별악은 등 아래셔 딘동하고 / 셩낸 고래 동한 뇽은 믈 속의셔 희롱하네.

      큰 우레 소리와 작은 벼락은 등 뒤에서 진동을 하고 / 성난 물결과 파도는 더욱 심학 출렁거리네.

      방 속의 요강 타고 쟛바지고 업더디고 / 샹하 좌우 배방 널은 닙닙히 우는구나.

      선실 속에서는 넘어지고 엎어지고 / 선실 사방에 있는 널빤지들은 배가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각자 소리를 내는구나.

      이윽고 해 돗거늘 장관을 하여 보세. / 니러나 배문 열고 문셜쥬 잡고 셔셔

      한참 있다가 해가 돋거늘 장한 구경을 하여 보세 / 일어나 배문 열고 문설주를 잡고 서서

      사면을 바라보니 어와 장할시고 / 인생 텬디간의 이런 구경 또 어데 이실고.

      사면을 바라보니 아아! 굉장하구나 / 인생 천지 사이에 이런 굉장한 구경이 또 있을까

      구만 니 우듀 속의 큰 믈결쁜이로세. / 등 뒤흐로 도라보니 동내 뫼이 눈섭 갓고

      넓고 넓은 우주 속에 큰 물결 뿐이로세./ 등 뒤로 돌아보니 동래의 산이 눈썹만큼이나 작아 보이고

      동남을 도라보니 바다히 가이 업네, / 우 아래 프른 빗치 하날 밧긔 다하 잇다.

      동남을 돌아보니 바다가 끝이 없네 / 위 아래 푸른 빛이 하늘밖에 닿아 있다.

      슬프다 우리 길이 어대로 가난쟉고. / 함긔 떠난 다섯 배난 간 데를 모랄로다.

      슬프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인가? / 함께 떠난 다섯 척의 배는 간 곳을 모르겠도다.

      사면을 두로 보니 잇다감 믈결 속의 / 부체만 쟈근 돗치 들낙날낙 하난구나.

      사면을 두루 살펴보니 가끔 물결 속에 / 부채만한 작은 돛이 들락날락하는구나.

      션듕을 도라보니 저마다 슈질(水疾)하야, / 똥물을 다 토하고 혼졀하야 죽게 알네.

      배 속을 돌아보니 저마다 배멀미를 하여 / 똥물을 토하고 까무러쳐 심하게 앓네.

      다행할샤 죵사샹(從使上)은 태연이 안자시구나, / 배방의 도로 드러 눈 감고 누엇더니

      다행이도다, 종사상은 태연히 앉았구나 / 선실로 다시 들어와 눈감고 누웠더니

      대마도 갓갑다고 샤공이 니르거늘 / 고쳐 니러 나와 보니 십 니는 남앗고나

      대마도가 가깝다고 사공이 말하여 / 다시 일어나 선실 밖으로 나와보니 십 리 정도는 남았구나.

      왜션 십여 척이 예션차로 모다 왓네. / 그제야 돛을 치고 뱃머리에 줄을 매어

      왜선 열 두 척이 다른 배를 끌고 가려고 마중을 나왔네. / 그제서야 돛을 치고 뱃머리에 줄을 매어

          왜선에 던지니 왜놈이 줄을 받아 / 제 배에 매어 놓고 일시에 내리니

                왜선에 던지니 왜놈이 줄을 받아 / 제 배에 매어 놓고 한꺼번에 내리니

 

          선행(船行)이 안온하여 좌수포(佐須浦)로 들어가니

              선행이 편안하여 좌수포(쓰시마 섬 남부 서쪽에 있는 포구)로 들어가니

 

          신시는 되어 있고 복선(卜船)은 먼저 왔다.

              신시(오후5시~7시)는 되었고, 짐을 실은 배는 먼저 와 있었다.

 

          포구(浦口)로 들어가며 좌우를 둘러보니

              포구로 들어가며 좌우를 바라보니

 

          봉만(峰巒)이 삭립(削立)하여 경치가 기절(奇絶)하다.

              봉만(꼭대기가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이 깎아지른 듯이 서 있어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도다.

 

          송삼(松杉) 죽백(竹柏) 귤유(橘柚) 등감(橙柑) 다 모두 등청일세.

              소나무와 삼나무, 대나무와 잣나무, 귤과 유자나무, 감귤류 등이 모두 푸른색 일색일세.

 

          왜봉(倭奉) 여섯 놈이 검도정(劍道亭)에 앉았구나.

              왜봉(통신사를 영접하로 온 왜인) 여섯 놈이 검도정에 앉았구나.

 

 

    [4] 졈심먹고 길 떠나셔 이십니는 겨요 가셔 날 져물고

      점심을 먹고 길을 떠나서 겨우 이십 리쯤 가서 날이 저물고

      대우(大雨)하니 길이 즐기 참혹하야 밋그럽고 쉬는디라.

      큰 비가 내리니 땅이 진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미끄러워 자주 쉬어야 하는지라

      가마 멘 다섯 놈이 서로 가며 쳬번(遞番)하되 / 갈 길이 바히 업서 두던에 가마 노코

      가마 멘 다섯 놈이 서로 교대를 하며 가는데 / 갈 수가 없어 둔덕에 가마를 놓고

      이윽이 쥬뎌(躊躇)하고 갈 뜻이 업난지라 / 사면을 도라보니 텬디(天地)가 어득하고

      이윽고 시간이 지나도 주저하고 갈 뜻이 보이지 않는지라 / 사면을 돌아보니 천지가 어둑해지고

      일행들은 간 데 업고 등불을 꺼뎌시니 지쳑(咫尺)은 불분(不分)하고

      일행들은 간 데 없고 등불은 꺼졌으니, 아주 가까운 거리도 분별이 안되고

      망망한 대야듕의 말 못하는 예놈들만 의지하고 안자시니

      망망한 큰 들판 가운데서 말을 알지 못하는 왜놈들만 의지하고 앉았으니

     오늘밤 이 경상(景狀)은 고단코 위태하다. / 교군(轎軍)이 다라나면 낭패(狼狽)가 오작할가.

      오늘밤 이 정경은 고단하고 위태하다. / 가마꾼이 달아나면 그 낭패가 오죽할까

     그놈들의 오슬 잡아 흔드러 뜨잘 뵈고 / 가마 속의 잇던 음식 갓갓지로 내여 주니

      그놈들의 옷을 잡아 흔들어 뜻을 보이고 / 가마 속에 있던 갖가지 음식을 내어주니

     지져괴며 먹은 후의 그제야 가마 메고 촌촌 젼진하야

      떠들며 먹은 후에 그제야 가마 메고 조금씩 나아가니

     곳곳이 가 이러하니 만일 음식 업듯더면 필연코 도주할쌔

      가는 곳마다 그렇게 하니, 만일 음식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도망갔을 것이다.

     삼경냥은 겨요하야 대원셩(大垣城)을 드러가니 / 두통하고 구토하야 밤새도록 대통하다.

      삼경 쯤 겨우 되어서 대원성에 들어가니 / 두통이 생기고 구토하며 밤새도록 크게 앓았다. 

      <중략>

    청포에서 수기를 보고 부러워함.

    이십칠 일 사상네가 관소(館所,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던 숙소)에 잠간 내려 / 음식 받고 잠간 쉬어,

    저물도록 행선(行船)하여 청포(靑浦)로 올라오니 / 여염(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도 즐비하여

    물가에 성을 쌓고 경개(景槪, 자연의 모습, 경치)가 기이하다.

    물속에 수기(水機, 물기구) 놓아 강물을 자아다가 / 홈으로 물을 끌어 성안으로 들어가니,

    제작(製作)이 기묘하여 본받음직 하고나야.

    그 수기 자세히 보니 물레를 만들어서 / 좌우에 박은 살(뼈대가 되는 나무오리)이 각각 스물 여덟이오,

    살마다 끝에다가 널 하나씩 가로 매어 / 물 속에 세웠으니,

    강물이 널을 밀면 물레가 절로 도니 / 살 끝에 작은 통을 노끈으로 매었으니,

    그 통이 물을 떠서 돌아갈 제 올라가면 / 통 아래 말뚝 박아 공중에 나무를 매어,

    말뚝이 걸리면 그 물이 쏟아져서 / 홈 속으로 드는구나.

    물레가 빙빙 도니 빈 통이 내려와서 / 또 떠서 순환하여 주야로 불식(不息)하니,

    인력을 아니 들였어도 /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높은 위에 물이 절로 넘어가서,

    온 성안 주민들이 이 물을 받아 먹어 / 부족들 아니하니,

    진실로 기특하고 묘함도 묘할씨고 / 지명은 하내주(河內州)요 사십 리 와 있구나.

     

    ● 화려한 행장으로 왜성을 향해 감.

    이십팔 일 출발할 새 수백 필 금안 준마(金鞍駿馬, 금으로 꾸민 안장과 날랜 말)

    중하관(中下官)을 다 태우니 기구(器具, 간단한 기계)도 장할시고.

    각 방 사내종들도 호사(豪奢)가 과분하다.

    좌우에 쌍견마(雙肩馬)요, 한 놈은 우산 받고 / 두 놈은 부축하고 담배 기구 한 놈 들고

    한 놈은 등불 들고 한 놈은 그릇 메어, / 한 사람의 거느린 수 여덟씩 들었구나.

    나하고 삼 문사는 가마 타고 먼저 가니, / 금안(金鞍) 지운 재고 큰 말 두 마리 말로 앞에 섰다.

    여염도 왕왕 있고 흔할 손 대밭이라. / 토지가 비옥하여 전답이 아주 좋이.

    이십 리 실상사(實相寺)로 가 삼사상(三使相) 예복 입을 제,

    나는 내리잖고 왜성(倭城)으로 바로 가니, / 인민이 부유하기 대판(大阪, 오사카)만은 못하여도,

    성에서 동에 가기 삼십 리라 하는구나.

     

    ● 왜성의 수려함과 풍요로움을 보고 시기함.

    관사(官舍)는 봉국사요 오층 문루(門樓) 위에

    여남은 구리 기둥 운소(雲소, 구름 낀 하늘)에 닿았구나.

    수석(水石)도 기이하고 대나무도 정취 있네. / 왜황(倭皇)의 사는 데라 사치(奢侈)가 측량없다.

    산세가 웅장하고 수세(水勢)도 감싸 안아

    옥야천리(沃野千里, 비옥한 땅이 천리나 이어져 있음) 생겼으니, 아깝고 애달플손

    이리 좋은 천부(天賦) 금탕(金湯, 방어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성) 왜놈의 기물(器物, 자기 물건)되어

    황제를 자칭하며 자손에게 전수하니, / 개돼지 같은 비린 것들 모두 다 소탕하고,

    사천 리 육십 주를 조선(朝鮮) 땅 만들어서,

    왕화(王化, 임금의 덕화)에 목욕 감겨 예의 국민 만들고자.

     

 [ 이해와 감상 ]

<일동장유가>는 김인겸이 영조 39년(1763)에 일본 통신사(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11개월 동안 보고 들은 일본의 문물 제도와 인정, 풍속 등을 순국문으로 기록한 8,000여구에 달하는 장편의 '기행가사'이다. 가사의 장편화는 소설이나 사설시조에서 보이듯 조선 후기에 두드러진 산문정신의 확대와 실학 정신의 영향, 그리고 작자층의 확대 및 견문의 다양화 등으로 인한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 등이 주된 요인이 되었다.

연경 기행의 경험을 쓴 홍순학의 <연행가>와 함께 대표적인 기행가사로 꼽히는 이 작품은, 당시 우리나라 친선 사절단의 규모와 조선과 일본의 외교 상태, 그리고 일본의 산천 경치와 인물, 풍속 등을 객관적인 관찰과 더불어 주관적인 비판까지 곁들여 쓰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까지도 글의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담아내고 있다. <일동장유가>는 외교적 측면에서의 귀중한 자료로 기행문적 요소를 충실히 갖춘 기행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순 국문으로 기록된 것으로, 가사문학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행문의 성격을 지닌 수필문학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이다. 지은이의 공정한 비판, 기발한 위트, 흐뭇한 해학 등을 맛볼 수 있다는 점과 정확한 노정과 일시의 기록, 보고와 자연환경의 묘사, 여행 중의 생활 등을 개인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행문으로서 요건을 훌륭히 갖추었다고 하겠다.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은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뉘어지는데, 첫째 단락은 여행 동기와 행장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 둘째 단락은 목적지인 동경까지의 노정과 견문에 대한 소감을, 셋째 단락은 목적지인 동경에서의 관경(觀景) 소감을, 마지막 단락은 돌아오는 길의 노정과 창작 동기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 요점 정리 ]

연대 및 작가 : 영조 40년(1764), 김인겸

갈래 및 성격 : 조선후기가사, 장편기행가사, 사행(使行)가사, 기행수필

표현 및 형식

* 3,4조의 4음보의 연속체.  약 8,000여구

* 일본의 풍속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 대구법, 과장법, 직유법 등 다양하고 참신한 표현법이 사용됨.

주제 : 일본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의 풍속과 제도 등 여러 견문들

의의 : 작가가 계미 통신사의 삼방서기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견문하고 체험한 바를 기록한 장편의 기행가사로, 우리말로 쓴 최장편 기행가사임. 당시의 외교상의 미묘한 갈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외교사적 자료로도 평가됨.

출전 : <가람문고본>

구성

[1] 세상을 등지고 자연 풍광을 즐기며 지내다가, 일본이 사절단을 청한다는 세상소식을 듣게 됨.

[2] 사절단의 출발 모습과 그 일행을 전송하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분위기

[3] 부산항 출발광경, 풍랑으로 인한 고생, 폭풍이 지난 뒤의 바다의 장관, 배멀미로 고생하며 대마도에 도착함.

[4] 곤경에 처한 사절단을 잘 보살피지 못하고, 자기들의 이익만 챙기는 야비한 일본인들의 모습.

 [ 참고 사항 ]

◆ 일동장유가의 노정과 전체 구성

1. 노정 : 영조 39년(1763) 계미년에 일본측에서 수교를 청하여 왔으므로 우리나라에서 통신사를 보내게 되었다.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항,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오사카에 도착, 목적지인 에도(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하였으니 얼마나 긴 여행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았다. 에도를 떠난 것이 3월 11일, 부산에 도착한 것이 6월 22일, 서울에 돌아와 경희궁에 복명(復命)한 것이 7월 8일이었으니, 11개월의 기간에 걸친 수륙 만여 리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2. 전체 구성

▶ 제1권 : 일본에서 친선 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8월 3일 서울을 출발하여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영천,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 제2권 : 10월 6일, 부산에서 승선하여 발선하는 장면에서부터 대마도, 일기도, 축전주, 남도를 거쳐 적간관에 도착하여 머묾.

▶ 제3권 : 정월 초하루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로부터 오사카, 교토, 와다와라, 시나카와를 거쳐 에도에 들어가 사행(使行)의 임무를 마침.

▶ 제4권 : 3월 11일 귀로에 올라, 6월 22일 부산에 귀환, 7월 8일 서울에 와서 영조께 복명함.

 

◆ 창작 배경이 된 계미 통신사의 활동

조선 통신사는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된 공식 외교 사절이다. 세종 때 통신사가 파견된 후 임진왜란으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단절되었다가, 일본이 조선과의 국교 회복을 열망하며 다시 통신사를 파견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조선이 일본과 조약을 맺고 다시 통신사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김인겸이 참여한 계미 통신사는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시게가 1760년에 아들인 도쿠가와 이에하루에게 관백(관백)의 자리를 물려주고 죽게 되자 도쿠가와 이에하루가 막부 쇼군(장군)의 지위까지 계승하면서 그의 세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선에 통신사 파견을 청한 것에 응해 꾸려졌다.

기간은 1763년 8월 3일부터 1764년 7월 8일까지 장장 11개월간이었으며, 대마도와 오사카, 에도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통신사 일행은 정사 조엄과 부사 이인배 외 477명의 장대한 규모로 꾸려졌으며, 그 인원은 실력 있는 문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김인겸은 이 수행원에 포함되어 삼방서기로서 사행을 기록하는 한편, 일본의 문사를 맞아 이들을 문장으로 응대하는 일을 맡았다.

 

◆ 사행 가사(使行歌辭)로서의 특징

이 작품은 형식상 사행 가사의 범주에 드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사행 가사는 기행 가사의 한 갈래로서, 국가나 임금으로부터 부여받은 공식적인 외교 임무를 띠고 파견된 사신이나 그 일행으로 동반했던 작가가 외국의 풍물이나 문물을 경험하고 이를 기록한 가사를 말한다. 이러한 사행 가사는 작가가 사신의 일행으로 공적인 임무를 띠고 기록한 것이지만 실제 작품은 개인적 보고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공적 · 사적 성격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일동장유가>에서 작가는 일본 통신사 일행의 기록을 담당하는 삼방서기로 동행하며 여정과 풍경, 외국의 문물과 풍속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묘사하였다. 또한 작가가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느낌이나 평가 등을 적절하게 섞어 전달하고 있어 기행 문학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사행 가사의 대표작으로는 '일동장유가'을 비롯하여, 심방의 '연행별곡', 홍순학의 '연행가', 박권의 '서정별곡', 이태직의 '유일록' 등이 있다.

 

◆ '일동장유가'의 의의와 한계

이 작품은 국문으로 된 해외 장편 기행 가사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서 일본의 독특한 풍물이나 풍속, 자연 등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통신사 일행 등의 모습이나 일본 사람들의 접대하는 모습 등 구체적인 인물의 상황까지 전달하고 있다. 당시의 일본 사정을 국문으로 기록하여 국내에 알렸다는 점, 조선 후기 가사에 일본 체험 내용을 부여하면서 그 외연을 확대시켰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이다. 더구나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우리 외교 사절단의 규모와 한일 양국의 외교 방법, 그리고 당시 일본의 풍속 등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일본에 대한 시선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 아직도 가시지 않은 대왜(對倭) 감정을 알 수 있어 외교사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작가가 문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고 평생 유교적 가치관을 신봉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지니고 있던 탓에 일본에 대해 낮잡아 보고 일본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이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작품 속에서 한 · 중 · 일 3국의 도시 경제를 비교하면서 일본의 도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해 있고 중국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 그밖에 일본의 민중이나 학술, 기술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상공업의 발전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여 가던 일본과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 자세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된다.

 

◆ 일본의 문물에 대한 우월주의적 시선

작가는 일본에 대한 조선의 우월 의식을 바탕으로 그들의 문물을 미개하고 열등한 오랑캐의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가 일본을 섬나라 오랑캐라고 인식하는 것은 중화주의적 화이관(華夷觀)에 기인한 것으로, 이러한 태도는 일본 대마도에 도착하여 그들의 집이나 의복, 외양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대상을 낮추어 보는 데서 알 수 있다.

 

◆ 조선전기가사의 대표격인 송강의 <관동별곡>과 비교해 보자.

→ <일동장유가> 역시 여행의 체험을 가사라는 양식으로 형상화한 기행가사라는 점에서 <관동별곡>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관동별곡>의 경우 작자 의식은 철저히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바탕하고 있다. 때문에 작자가 접하는 사물 역시 그러한 이데올로기 안에서 새로이 환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일동장유가>의 작자는 대상을 자체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관심을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사용 자체의 서술과 작자의 느낌이 더불어 표현되므로 나열,병치의 서술 경향을 드러낸다. 이같은 작자 의식의 차이는 가사의 형식 자체에도 영향을 주어 <관동별곡>이 '서사-본사-결사'라는 정형화된 구조를 지니는 데 비해, <일동장유가>는 여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열거해 나가는,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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