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공 가(雇工歌)                               - 허 전-

     

    [1]집의 옷 밥을 언고 들먹난 져 고공(雇工)아,

          집의 옷과 밥을 제쳐 놓고 이집 저집 빌어 먹는 저 머슴(조정의 신하)아,

         우리 집 긔별을 아난다 모라난다.

          우리 집 소식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 오는 날 일 업슬 제 삿꼬면셔 니라리라.

          비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면서 말하리라.

         처음의 한어버이 사롬사리하려 할 제,

          조부모님(조선을 건국하신 이성계)께서 살림살이하려 하실 때,

         인심(仁心)을 만히 쓰니 사람이 졀로 모다,

          어진 마음을 많이 쓰시니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서

         플 뼛고 터을 닷가 큰 집을 지어 내고,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 집을 지어 내고

         셔리 보십 장기 쇼로 전답(田畓)을 긔경(起耕)하니,

          써레, 보습, 쟁기, 소로 전답을 일으키니,

         오려논 터밧치 여드레 가리로다.

          올벼 논 텃밭이 여드레 동안 갈 만한 넓이로구나.

         자손에 전계(傳繼)하야 대대로 나려오니,

          자손에게 이어 전하여 대대로 내려오니,

         논밧도 죠커니와 고공(雇工)도 근검터라.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들도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더라.

    [2]저희마다 여름 지어 가암여리 사던 것슬,

          저희마다 농사를 지어 부유하고 풍요롭게 살았는데,

         요사이 고공들은 혬이 어이 아조 업서,

          요즈음 머슴들은 어찌하여 사려분별도 전혀 없어,

         밥 사발 큰나 쟈그나 동옷시 죠코 즈나,

          밥 그릇이 크나 작으나, 겨울옷(동옷:남자가 입는 저고리)이 좋거나 나쁘거나,

         마음을 닷호는 듯 호슈을 새오는 듯,

          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戶首, 5호의 우두머리)를 시기하는 듯,

         무삼 일 걈드러 흘긧할긧 하나산다.

          무슨 일을 꺼려서 반목(反目)만을 일삼느냐?

         너희네 일 아니코 시절(時節) 좃차 사오나와,

          너희들이 일을 안 하고 시절조차 사나워(흉년조차 들어서),

         갓득의 내 셰간이 플러지게 되야난데,

          가뜩이나 내 살림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엇그제 화강도(火强盜)에 가산(家産)이 탕진하니,

          엇그제 왜적들에게 약탈되어 가산이 탕진되니,

         집 하나 불타 붓고 먹을 껏시 전혀 업다.

          집은 모두 불타 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네.

         큰나큰 셰사을 엇지하여 니로려료.

          크나큰 세간살이를 어찌하여 일으키려는가?

         김가(金哥) 이가(李哥) 고공들아 새 마음 먹어슬라.

          김가와 이가 머슴들아, 새 마음을 먹으려무나.

     

    [3]너희네 졀머난다 혬 혈나 아니산다.

          너희들이 젊었다고 해서 생각하려고 아니하느냐?

         한 소테 밥 먹으며 매양의 회회(恢恢)하랴.

          한 솥(한 조정)에 밥 먹으며 항상 관대하고 여유있게(서로 아웅다웅하는 모양) 하겠느냐?

         한 마음 한 뜻으로 티름을 지어스라.

          한마음 한뜻으로 농사를 짓자꾸나.

         한 집이 가암열면 옷 밥을 분별(分別)하랴.

          한 집이 부자가 되면 옷과 밥을 인색하게 하겠느냐.

         누고는 장기 잡고 누고는 쇼을 몰니,

          어떤 이는 쟁기를 잡고 어떤 이는 소를 모니,

         밧 갈고 논 살마 벼 셰워 더져 두고,

          밭 갈고 논 갈아 벼 심어 던져두고,

         날 됴흔 호미로 기음을 매야스라.

          날이 잘 드는 호미로 김을 매자꾸나.

         산전(山田)도 것츠럿고 무논도 기워간다.

          산에 있는 밭도 잡초가 무성하고 무논도 김이 무성해져 간다.

         사립피 말목 나셔 볏 겨테 셰올셰라.

          도롱이와 삿갓을 말뚝에 씌워서 벼 곁에 세워 보자.

         칠석(七夕)의 호미 씻고 기음을 다 맨 후의,

          칠석에 호미를 씻고 김을 다 맨 후에,

         삿 꼬기 뉘 잘 하며 셤으란 뉘 엿그랴.

          새끼꼬기는 누가 잘 하며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가마니)은 누가 엮으랴?

         너희 재조 셰아려 자라자라 맛스라.

          너희 재주를 헤아려 서로서로 경쟁하거라.

         가을거둔 후면 성조(成造)를 아니하랴.

          추수를 한 후면 집 짓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

         집으란 내 지으게 움으란 네 무더라.

          집은 내가 지을 것이니 움(겨울철에 화초나 채소를 넣어 두기 위해 땅을 파고 거적 따위로 덮은 것)은 네가 묻어라.

         너희 재조을 내 짐작하엿노라.

          너희들이 잘 하는 재주를 내가 짐작하였노라.

         너희도 머글 일을 분별을 하려므나.

          너희도 먹고 살 일을 깊이 생각하려무나.

         명셕의 벼를 넌들 됴흔 해 구름 깨여,

          멍석에 벼를 말린들 좋은 해가 구름에 끼어,

         볏뉘을 언제 보랴.

          햇볕을 언제 보겠느냐?

         방하을 못 찌거든 거츠나 거츤 오려,

          방아를 못 찧었는데, 거칠고 거친 올벼가,

         옥갓튼 백미(白米) 될 쥴 뉘 아라 보리스니.

          옥 같은 백미가 될 줄을 누가 알아 보겠는가?

    [4]너희네 다리고 새 사리 샤쟈 하니,

          너희들을 데리고 새 살림을 살고자 하니,

         엇그제 왓던 도적 아니 멀리 갓다 하되,

          엊그제 왔던 도적(왜적)이 멀리 가지 않았는데,

         너희네 귀눈 업서 져런 줄 모르관듸,

          너희들은 듣고 보지를 못해서 그런 줄도 모르고,

         화살을 전혀 언고 옷 밥만 닷토난다.

          화살을 모두 제쳐놓고(방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옷과 밥만 다투느냐.

         너희네 다리고 팁는가 주리는가.

          너희들을 데리고 행여 추울세라 굶을세라.

         죽조반 아참 져녁 더하다 먹엿거든,

          죽조반 아침 저녁까지 더해서 먹였는데,

         은혜란 생각 아녀 졔 일만 하려 하니,

          은혜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제 일만 하려 하니,

         혬 혜는 새 들이리 어늬 제 어더 이셔,

          사려 깊은 새 머슴이 어느 때 어느 곳에 있어서

         집일을 맛치고 시름을 니즈려뇨.

          집안 일을 맡기고 근심을 잊을 수 있겠는가?

         너희 일 애다라 하며셔 삿 한 사리 다 꼬괘라.

          너희 일을 애달파하면서 새끼 한 사리를 다 꼬았도다.

    - 잡가(雜歌)-  

 [ 감상 및 해설 ]

이 작품은 진사를 지낸 허전이 조선 선조 때 지은 총 52구 110행으로 이루어진 가사이다. 농부의 어려움을 국사(國事)에 비유하여, 농가의 한 어른이 바르지 못한 머슴들의 행동을 나무라는 표현 형식을 취해, 정사(政事)에 게을리하는 조정 백관의 탐욕과 무능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교훈적인 노래이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직후에 선조가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고, 실제의 작가는 허전이라고 한다.

한편, 이 <고공가>에 대한 화답의 형식으로 만든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가 있다. 이 작품 역시 영의정에 있던 이원익이 정사보다는 당파 싸움에 정신을 쏟는 신하들을 나무라고 나라와 임금을 경계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원익이 답가를 했을 정도로 허전이 꽤 유명한 사람이었으리라 짐작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 작품의 작자를 <고공답주인가>와 마찬가지로 이원익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작품은 우의적으로 당시 사회상과 관리들의 정치적 무능을 비판한 글이다. 어느 한 어버이(이태조에 비유)가 살림을 시작하였을 때, 여드레 길이나 되는 텃밭(조선의 팔도)을 가지고도 모든 머슴들(조정의 신하)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더니, 요즘의 머슴들은 사려 분별도 없이 밥 그릇의 크고 작음(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가지고 다투며 겨울옷이 좋고 나쁨만을 가리고, 강도(왜적)에게 가산을 약탈당하여도 다시 세간살이를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여드레 길'이란 조선의 8도(都)를 비유한 것이고, '강도'는 침범한 왜적을 나타내고, '가산'은 나라의 살림인 경제를 비롯한 자치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왜적에 대한 경계 태세를 준비하지 않고서 옷과 밥만을 서로 다투는 관리들을 비유해, 한 어른이 새끼를 꼬면서 머슴을 깨우치고 경계하는 형식으로 타이르고 있는 작품이다. 요컨대, 이 태조의 조선 건국 이후에 왜적의 침입을 받고도 당파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나라 일에 게을리하는 백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임진왜란 직후의 피폐한 민중들의 모습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으며, 이처럼 사회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당파 싸움에 밀려나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 핵심 정리 ]

◆ 갈래 : 조선후기 가사, 경세가(警世歌), 풍자가

◆ 성격 : 풍자적, 비유적, 우의적, 현실비판적

◆ 연대 : 조선 선조(임진왜란 직후)

◆ 시적 상황 : 머슴들의 반목으로 인해 폐해가 심각한 상황

◆ 표현

* 3  · 4조 4음보의 율격을 사용하여 음악성을 확보함.

* 나라의 일을 한 집안의 농사일로, 화자를 주인으로, 탐욕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머슴으로 비유하여 표현

◆ 구성

[1] 집안(나라)의 내력

[2] 머슴들의 반목으로 인한 폐해 - 벼슬아치들의 탐욕과 무능함으로 인한 폐해

[3] 머슴들(벼슬아치들)의 각성을 촉구함.

[4] 사려 깊은 새 머슴(벼슬아치)의 출현을 염원함.

◆ 주제

* 임난 직후 백관들의 탐욕과 정치적 무능 비판

* 분별과 계획이 없는 관리들을 풍자함.

◆ 의의 : 선조가 지은 것으로 잘못 전해져 내려오다 <지봉유설>에서 허전이 지은 것으로 밝혀진 가사로, 임진왜란 때 깨져 버린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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