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가(鳳仙花歌) -작자미상- |
◆ 서사 향규(香閨)의 일이 업셔 백화보(百花譜)를 혀쳐보니, 봉선화 이 일홈을 뉘라서 지어낸고. 진유(眞游)의 옥소(玉簫) 소리 자연(紫煙)으로 행한 후에, 규중(閨中)의 나믄 인연(因緣) 일지화(一枝花)의 머므르니, 유약(柔弱)한 푸른 닙은 봉의 꼬리 넘노는 듯. 자약(自若)히 붉은 꼿은 자하군(紫霞裙)을 헤쳣는 듯. 규방에 할 일이 없어 백화보를 펼쳐 보니, /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어 냈는가. / 신선의 옥피리 소리가 선경으로 사라진 후에, / 규방에 남은 인연이 한 가지 꽃에 머물렀으니, / 연약한 푸른 잎은 봉의 꼬리가 넘노는 듯하며, /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의 옷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 본사(1) 백옥(白玉)섬 조흔 흘게 종종이 심어내니, 춘삼월(春三月)이 지난 후에 향기(香氣) 업다 웃지 마소. 취(醉)한 나븨 미친 벌이 따라올가 저허하네. 정정(貞靜)한 기상(氣像)을 녀자 밧긔 뉘 벗할고. 고운 섬돌 깨끗한 흙에 촘촘히 심어 내니, / 봄 삼월이 지난 후에 향기가 없다고 비웃지 마시오. / 취한 나비와 미친 벌들이 따라올까 두려워서라네. / 정숙하고 조용한 저 기상을 여자 외에 누가 벗하겠는가?
◆ 본사(2) 옥난간(玉欄干) 긴긴 날에 보아도 다 못보아 사창(紗窓)을 반개(半開)하고 차환(叉환)을 불너내어, 다 핀 꼿을 캐여다가 수상자(繡箱子)에 다마노코, 여공(女工)을 그친 후의 중당(中堂)에 밤이 깁고, 납촉(蠟燭)이 발갓을 제 나음나음 고초 안자, 흰 구슬을 가라마아 빙옥(氷玉)같은 손 가온데 난만(爛漫)이 개여내여, 파사국(波斯國) 저 제후(諸候)의 홍산궁(紅珊宮)을 혀쳣는 듯, 심궁 풍류(深宮風流) 절고에 홍수궁(紅守宮)을 마아는 듯, 섬섬(纖纖)한 십지상(十指上)에 수실로 가마내니, 조희 우희 불근 물이 미미(微微)히 숨의는 양, 가인(佳人)의 야튼 뺨의 홍로(紅露)를 끼쳣는 듯, 단단히 봉한 모양 춘나옥자(春羅玉字) 일봉서(一封書)를 왕모(王母)에게 부쳣는 듯. 긴긴 날 옥난간에서 보아도 다 못 보아, / 사창을 반쯤 열고 차환을 불러 내어, / 다 핀 봉선화꽃을 따서 수상자에 담아 놓고 / 바느질을 중단한 후 안채에 밤이 깊어 밀촛불이 밝았을 때 / 차츰차츰 꼿꼿이 앉아 흰 백반을 갈아 부수어 / 옥같이 고운 손 가운데 흐무러지게 개어 내니, / 페르시아 제후가 좋아하는 붉은 산호를 헤쳐 놓은 듯하며, / 깊은 궁궐에서 절구에 붉은 도마뱀을 빻아 놓은 듯하다. / 가늘고 고운 열손가락에 수실로 감아 내니, / 종이 위에 붉은 물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모양은, / 미인의 뺨 위에 홍조가 어리는 듯하며, / 단단히 묶은 모양은 비단에 옥으로 쓴 편지를 서왕모에게 부치는 듯하다.
◆ 본사(3) 춘면(春眠)을 느초 깨여 차례로 풀어 노코 옥경대(玉鏡臺)를 대하여서 팔자미(八字眉)를 그리래니, 난데 업는 불근 꼿이 가지에 부텃는 듯, 손으로 우희랴니 분분(紛紛)이 흣터지고, 입으로 불랴 하니 석긴 안개 가리왓다. 여반(女伴)을 서로 불러 낭랑(朗朗)이 자랑하고, 쪽 압희 나아가서 두 빗흘 비교(比較)하니, 쪽닙희 푸른믈이 쪽의여서 푸르단말 이 아니 오를손가. 봄잠을 늦게 깨어 열 손가락을 차례로 풀어 놓고 / 거울 앞에서 눈썹을 그리려고 하니, / 난데없이 붉은 꽃이 가지에 붙어 있는 듯하여, /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 하니 어지럽게 흩어지고 / 입으로 불려고 하니 입김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 여자 친구를 불러서 즐겁게 자랑하고 / 봉선화 앞에 가서 꽃과 손톱을 비교하니, / 쪽 잎에서 나온 푸른 물이 쪽빛보다 푸르단 말, 이것이 아니 옳겠는가?
◆ 결사 은근이 풀을 매고 돌아와 누었더니, 녹의 홍상(綠衣紅裳) 일여자(一女子)가 표연(飄然)이 앞희 와서, 웃는 듯 찡기는 듯 사례(謝禮)는 듯 하직(下直)는 듯, 몽롱(朦朧)이 잠을 깨여 정녕(丁寧)이 생각하니, 아마도 꼿귀신이 내게와 하직(下直)한다. 수호(繡戶)를 급히 열고 꼿수풀을 점검하니, 따우희 불근 꼿이 가득히 수노핫다. 암암(암암)이 슬허하고 낫낫티 주어담아, 꼿다려 말 부치되 그대는 한(恨)티 마소. 세세(歲歲) 연년(年年)의 꼿빗은 의구(依舊)하니, 허믈며 그대 자최 내 손에 머믈럿지. 동원(東園)의 도리화(桃李花)는 편시춘(片時春)을 자랑 마소. 이십번(二十番) 꼿바람의 적막(寂寞)히 떠러진들 뉘라서 슬허할고. 규중(閨中)에 남은 인연(因緣) 그대 한몸뿐이로세. 봉선화(鳳仙花) 이 일홈을 뉘라서 지어낸고 일로하야 지어서라. 은근히 풀을 메고 돌아와서 누웠더니 /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홀연히 내 앞에 와서, /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사례하는 듯 하직하는 듯하구나. / 어렴풋이 잠을 깨어 곰곰이 생각하니, / 아마도 꽃귀신이 내게 와서 하직을 고한 것이도다. / 수호를 급히 열고 꽃수풀을 살펴보니, / 땅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서 가득히 수를 놓았다. / 마음이 상해서 슬퍼하고 낱낱이 주워 담으며 / 꽃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한스러워 마소. / 해마다 꽃빛은 옛날과 같으며, / 더구나 그대(봉선화) 자취가 내 손톱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 동산의 도리화는 잠깐 지나가는 봄을 자랑하지 마소. / 이십 번 꽃바람에 그대들(도리화)이 적막히 떨어진들, 누가 슬퍼하겠는가? / 안방에 남은 인연이 그대 한 몸뿐일세. /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 이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로구나. |
[주요 어구 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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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및 해설] |
작자 · 창작 연대 미상의 가사로, 필사본인 <정일당잡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이 허난설헌의 문집에 들어 있는 '염지봉선화가', '선요(仙謠)', '선사(仙詞)', '광한전백옥루상량문' 등의 일부 구절과 일치하는 대목이 있고, 시상이나 시경(詩境)이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단정한 바 있다. 그러나 '봉선화가'와 이들 허난설헌의 작품 사이의 유사성은 그 소재나 극히 짧은 일부 구절에 한정된 것이어서, 전체 구조상의 유사성이 없는 한 동일 작가로 추정하는 견해는 타당성이 없다. 더욱 허난설헌의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허균 자신이 그의 문집에서 정철의 '사미인곡', '권주사' 등의 가사 작품은 높이 평가한 데 반해, 그의 누이의 가사 저작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는 점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과 '염지봉선화가'의 차이는 후자가 시종일관 봉선화로 물들인 아름다운 손톱의 묘사로 전개되는 데 반해, 전자는 봉선화를 단지 여인의 장식물이나 여인의 한 · 원망 · 그리움의 투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살아 있는 개체로써 깊이 있는 생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 중에 "춘라 비단에 옥자를 써서 서왕모를 맞이하고"라는 구절과 '봉선화가'의 "춘라옥자 일봉서를 왕모의게 부텻난듯"이 같은 화소이고, '동선요'의 "자주퉁소소리 가락 속에 붉은 구름 흩어지면"이란 구절은 '봉선화가'의 '진유의 옥소소래 자연으로 행한 후에"와 유사하지만, 이러한 부분적 유사성은 동일작가뿐 아니라 상이한 작가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작품의 형식은 4음 4보격 무한 연속체라는 가사의 율격을 대체로 충실히 지켰으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이 몇 군데 보인다. 진술 양식은 1인칭 시점의 독백체 서술로서 주관적인 감흥을 서정적 양식에 담아 노래하였다. 작품의 내용은 먼저 화자가 봉선화를 대하게 된 연유와 봉선화라는 이름의 유래, 봉선화의 아름다움과 향기 없음, 춘삼월에 봉선화를 심는 일 등 봉선화라는 제재의 주변적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긴긴 여름날 여공(女工)을 모두 끝낸 밤에 일하는 아이와 함께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모습과 그 과정을 노래하고, 다음날 거울 앞에서 눈썹을 그리려 하니 거울 속에 꽃이 만발한 듯한 아름다움과 꽃 앞에 나아가 그 아름다운 빛을 비교하는 모습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한 여인이 나타나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사례하는 듯, 하직하는 듯함을 본다. 잠을 깨어 생각하니 꽃귀신일 것 같아 급히 꽃수풀에 나아가니 땅 위에 붉은 꽃이 가득히 수놓아졌음을 보고 꽃밭에 떨어진 봉선화의 운명을 애석히 여기면서도, 다른 꽃과 달리 여인의 손톱 위에 오래 남아 그 절조를 나타냄을 강조했다. '봉선화가'는 '규원가'와 더불어 허난설헌이 지었다는 전제 아래 규방가사의 첫 작품으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 이 작품의 작자를 허난설헌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그러한 견해를 부정하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이 교술적인 계녀가(誡女歌) 계통에서 거리가 먼 점, 음수율이 4 · 4조보다 3 · 4조가 우세한 점, 시작과 종결의 형식, 어휘 구사의 방식 등에서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규방가사와는 상당히 다르고, 단지 꽃을 대상으로 한 언어유희라는 점과 자기 탄식에 그친 노래라는 점에서 양반가사에 귀속시키는 견해도 있다. 그 밖에 이 가사의 문학적 성격 면에서 차라리 규방가사가 아닌 일반가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 노래의 후반부에 여인의 섬세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고, 조선시대 여인들의 정서생활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점, 깊은 규중에 갇혀 화초를 벗삼아 꿈을 키우던 여인의 상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규방가사의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는 또 다른 작자 미상의 '봉선화가'와 '화가' 등 많은 꽃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는 이러한 계통의 가사 중 원형적 작품으로 주목된다. |
[핵심 정리] |
◆ 갈래 및 형식 : 조선후기 가사, 내방가사 ◆ 특성 *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 섬세한 감각으로 밝은 생활의 정서를 나타냄. *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봉선화를 대하는 정감이 섬세하게 표현됨. * 백화보에서 봉선화를 보고 봉선화의 아름다움을 예찬함. ◆ 주제 : 봉선화에 대한 여인의 정회 ◆ 구성 * 서사 : 백화보에서 본 봉선화의 아리따운 모습 * 본사(1) : 정숙한 여인의 기상인 향기 없는 봉선화 * 본사(2) :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 모습 * 본사(3) : 봉선화물이 든 손톱의 아름다움 * 결사 : 규중 여인(화자)과 봉선화와의 인연 ◆ 문학사적 의의 : 작자와 연대가 미상인 내방가사로 봉선화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직유법에 의한 생생한 묘사가 뛰어나며 리듬이 경쾌하여 흥겨운 느낌을 불러일으킴. |
[참고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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