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 득오 -

      去隱春皆林米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
      目煙廻於尸七史伊衣
      逢烏支惡知作乎下是
      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삼국유사>-

 [ 현대어 풀이 ]

간 봄을 그리워함에,  /  모든 것이 울면서 시름하는구나.  /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하는구나  /  눈깜짝할 사이에  /  만나보게 되리.  /  낭이여, 그리워하는 마음에 가는 길  /  다복쑥 우거진 구렁(험한 마을)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밤도 있으리.

 

[다른 해독의 예]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 살아 계시지 못하여 울어 말라 버릴 이 시름 / 눈두덩 불두덩 좋으신 / (영정의)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 가도다. / 눈의 돌음 없이 저를 /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 랑(郞)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 다복 굴헝에 잘 밤 있으리.

 [ 배경설화 ]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고 하는 급간(級干:신라 관등의 제 9위)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 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전(幢典:오늘날의 부대장에 해당하는 신라 때의 군직) 모량부(牟梁部- 사람이름)의 익선아간(益宣阿干:아간은 신라 관등의 제 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 곡식창고를 지키는 직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지랑은 이 말을 듣고,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그 곳에 갔다면 찾아 볼 필요가 없지마는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다고 하였다. 죽지랑은 익선의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지금의 밀양)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 안으로 싣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변통성이 없는 것을 품위가 없고 천하게 생각하여, 가지고 가던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득오를 보내오록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진절사지(珍節舍知-신라 관직의 제13위)가 쓰는 말안장을 더 주었더니 드디어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신라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관직)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씻어 주고자 하였는데, 도망쳐 버렸으므로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때는 동짓달 몹시 추운 날인데 성 안의 못에서 목욕을 하게 하여 얼어 죽게 하였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모량리 사람은 모두 벼슬에서 몰아내게 하였고, 승복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반면 간진의 자손에 대하여는 평정호손을 삼아서 표창하였다. 결국 죽지랑은 부산성 창직에서 고생하는 득오를구하게 된 것이다.

 

처음 술종공이 삭주 도독사가 되어서 장차 임명받은 곳으로 가려하니 때마침 삼한에 병란이 일어나 기병 3천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하였다. 일행이 죽지령에 이르렀을 때 한 거사가 고개의 길을 닦고 있어 공이 보고 찬미하였는데, 거사도 역시 공의 위세가 혁혁함을 좋게 여겨 서로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술종공이 부임지에 간 지 한 달이 되었는데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으므로 더욱 놀랍고 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었더니, "거사가 죽은 지 며칠이 되었다."고 하였다. 돌아와 말하니 죽은 그 날이 꿈꾼 날과 같았다. 공이 생각하되 거사가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라 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하게 하고 돌미륵 하나를 세웠다. 그 아내가 꿈꾸던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죽지라 하였다. 자라서 벼슬에 나아가 유신공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무의 4대에 재상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이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었다.

당의 식언에 격분하여 도륙하던, 하나 대속자가 된 죽지 원수를 애도한다.

이 노래는 유사 권 2 효소왕에 죽지랑 조에 실려 있다.

술종공이 朔州都督使가 되어서 임소에 가는 길에 그 때는 삼한이 병란이 있는 때라, 기병 삼천으로 호송하였는데, 죽지령에 다다르니 웬 한 거사가 그 산 길을 평평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술종공은 탄복하였는데, 거사도 거사도 공의 위풍을 보고 감심하여 서로 의기가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공이 삭주에 도임 하여 다스리기를 한달 뒤에 꿈에 거사가 방에 들어온 것을 보았고, 공의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놀랍고 괴이해서 이튿날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까 거사는 일전에 죽었다 한다. 더욱이 그 죽었다는 날짜와 꿈의 날짜가 꼭 맞는다. "거사가 우리 집안에 인제 태어나리라" 공은 이렇게 말하고, 사람을 시켜서 거사의 주검을 영상 북쪽 봉우리에 후히 장사하고, 돌로서 미륵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 주었다. 부인은 꿈 꾼 날부터 태기가 있어서 아이를 낳은 뒤에 죽지랑이라 이름 지었다. 자라서 벼슬에 나아가 김유신과 함께 부수가 되어 삼한을 통일하고 진덕, 태종, 문무, 신문 네 임금의 재상이 되고, 나라를 안정 하였다.

 [ 이해와 감상 ]

득오가 죽지랑이란 화랑을 추모 또는 사모한 노래이다. 죽지랑은 이름난 화랑이며 장군으로, 진덕왕 때 김유신과 함께 국사를 논의하던 술종공의 아들이며 진골 출신이다. 아버지가 미륵상을 세운 뒤 그 공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찬에까지 올랐으며, 미륵의 화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이 숭앙된 인물이다. 작자인 득오는 원래 죽지랑의 낭도였다가 익선에게 매여 고난을 겪던 중 죽지랑이 이끌고 온 무리들에 의해 구해졌다는 이야기가 이 노래의 배경설화에 나타나 있다.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이 시 전체에서 간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지랑과 고락을 같이하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이미 가 버린 돌이킬 수 없는 봄'이란 은유적인 기법을 사용, 청춘 즉 죽지랑과 함께 지낸 시절에 대한 회상과 아쉬움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죽지랑의 죽음에 대한 애도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슬퍼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죽지랑의 인품을 한 차원 높이고 있으며,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 7,8행은 10구체 향가의 낙구인 9,10구와 같은 감탄사를 가진 유사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절묘한 은유적 표현으로 전개되어 있다. '그리워할 마음의 가는 길'이라는 감정의 구상화와 '다북쑥 마을'이 지니는 황촌(荒村)은 곧 작자 득오가 낭을 만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정신적 초토(焦土)나 폐허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자의 정서적 처절성이 가열하면 해질수록 죽지랑이라는 화랑의 인품과 덕의 높음을 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죽지랑을 사모하는 간절한 이러한 마음은 당시 의리에 충실하고 의리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화랑의 정신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재상, 나아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몸소 찾아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마음은 남다를 것이다.

 [ 핵심정리 ]

성격 및 갈래 : 8구체 향가, 정형시, 추도시, 추모시

* 1,2행 : 돌이킬 수 없는 봄에의 회한(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한 슬픔)

* 3,4행 : 죽지랑의 늙음에 대한 안타까움(임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 5,6행 : 죽지랑을 보고 싶은 애정의 충동(임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

* 7,8행 : 만날 수 없음에 대한 탄식(임을 만나기를 희망함)

정서와 태도 : 죽은 죽지랑을 예찬하며 그를 간절히 그리워함.

표현 : '과거 - 현재 - 미래'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여 추모의 정을 극대화함.

주제 : 화랑 죽지랑에 대한 추모의 정

문학사적 의의 : 8구체 향가 중 순수 서정시로 문학성이 높으며, 화랑 역시 향가의 창작층이었다는 것을 알려줌.

 [ 참고 ]

◆ 배경설화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지고 있다. 전반부는 '죽지랑이 그 낭도를 이끌고 모량부 부산성으로 가서 익선에게 매여 있던 득오를 갖은 어려움 끝에 데려온다는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술종공 부부가 임지로 가던 중 죽지령에서 만난 신이한 노인을 어느 날 밤 꿈에서 보고 그 노인의죽음을 확인하였는데, 그 날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고 이름을 죽지랑이라 했으며, 이후 그 아이가 자라 훌륭한 업적을 이룩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전반부의 내용은 "득오와 죽지랑의 관계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득오가 <모죽지랑가>를 짓게 된 동기와 관련된 것"이다.  후반부의 내용은 "죽지랑의 탄생담으로 신이한 영웅의 출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보면, 향가는 작자의 문학적 수준 이외에 찬양 대상의 사회적 숭앙의 정도, 또 찬양의 객체와 주체 간의 특별한 관계 등에 의해서도 창작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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