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객(有客)                               -김시습-

           

          有客淸平寺(유객청평사)

          春山任意遊(춘산임의유)

          鳥啼孤塔靜(조제고탑정)

          花落小溪流(화락소계류)

          佳菜知時秀(가채지시수)

          香菌過雨柔(향균과우유)

          行吟入仙洞(행음입선동)

          消我百年愁(소아백년수)

           

              청평사의 어떤 나그네,

              봄 산을 마음대로 노니네.

              산새가 지저귀나 외로운 탑은 고요하기만 하고,

              꽃잎이 떨어져도 작은 시냇물 절로 흐르네.

              좋은 나물은 때를 아는 듯 돋아나고

              향기로운 버섯은 비를 맞아 부드럽노라.

              길 가며 읊조리며 신선의 계곡에 들어서니,

              나의 백년 근심이 녹아지도다.

               

 [ 이해와 감상 ]

작가는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1481년 47세에 돌연 환속하여 세상사에 뜻을 보이는 듯하였으나, 이듬해 '폐비윤씨사건'이 일어나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시 관동지방 등지로 방랑의 길에 나섰다. <관동일록>에 있는 100여 편의 시들이 이 때 창작된 것인데, 이 시는 작가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한적한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산새가 울어도 고요한 탑처럼 꽃잎이 떨어지든 말든 저 흐를 대로 흐르는 계곡물처럼 세상의 일에 초월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 정리 ]

형식 : 한시(5언 율시)

특성

* 대구적 표현과 시 ·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자연의 생기 있고 유유자적한 모습을 그리고 있음.

*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저마다 생명의 본질을 얻는 자연(물)에 대해 기뻐함.

구성

* 수련 : 봄 산(청평사)을 유유자적하는 화자(나그네)

* 함련 : 한가로운 본 산의 모습 - 뜻 있는 이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실

* 경련 : 자연의 질서에 따라 자라는 자연(나물과 버섯)

* 미련 : 자연을 벗하며 세상 근심을 잊음.

주제 : 세속적 번뇌로부터 초월하여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즐거움

출전 : <동문선>

 [ 참고 ]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문인이며 사상가인 기시습의 자연에 몰입되어 행복했던 어느 날의 의식의 편린을 보여주는 시다.

수련 → 어느 봄날 작가는 청평사에 왔다. 물론 나그네 처지로 말이다. 그리고 그즈음 그에게는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는 듯하다. 그는 세상에 얽매임이 없는 처지다. 그는 특별한 생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봄 산(春山)을 마음대로 노닌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계절은 봄이요, 작가가 서 있는 공간은 청평자 주변의 산이다.

함련 → 여기서는 장소의 묘사가 구체화되고, 작가를 자극한 그 장소에서의 사물과 그 사물이 놓여진 정황이 소개된다. 그는 이제 산에서 절로 점차 접근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탑이다. 탑 하나만이 서 있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직 들려오는 소리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새소리였다. 그 울음은 마음에 어떤 느낌을 줄 만큼 맑고도 깊었을 것이다. 여기서 새의 소리는 탑의 고요함을 더욱 드러낸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 때, 꽃과 개울이 작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꽃은 떨어지고 떨어진 꽃은 개울물에 흘러가는 것이다. 끝없이 하염없이 말이다. 작가도 그 흐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만 그는 자신을 잊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연의 일부가 된 것이다.

경련 → 맛있는 나물도 때를 알고 돋아나고 있다. 여기서 '가채(佳菜)'는 좋은 나물, 맛있는 나물로 해석된다. 그렇다. 그는 나물 맛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기만 맛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는 나물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또 알고 있다. 때를 알고 돋아나는 나물은 맛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계절의 힘과 향기와 빛깔을 제대로 다고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이 때에 맞아야 가장 효과적이지 않은가. 또 작가의 눈에 들어오는 식물이 있으니 버섯이다. 버섯도 계절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비를 맞아 부드럽다는 것은 검은 버섯이 비에 많이 자라나 있다는 것과 그것이 비를 맞아 윤기와 향기를 더 많이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봄 산에 내린 비는 생명의 비요, 산을 더 맑고 깨끗하게 정화하는 비라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는 이 순간 아주 상쾌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주변의 인간잡사는 모두 잊고 있었을 것이다.

미련 → 주위의 풍물에 젖어 부지런히 걸어 시를 읊으며 이제 절로 통하는 길 옆으로 흐르는 개울로 접어든다. 어디선가 쏴 하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물소리에 수간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는 봄 경치와는 또 다른 청각적인 맑은 물소리의 울림에 다시 한번 감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생의 온갖 근심이 다 씻겨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사실 골짜기에 모여든 물은 모든 생명들을 키우며 다 구경하고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물은 골짜기 모든 생명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의 물소리는 산에 사는 모든 생명의 소리가 한 곳에 합쳐진 소리인 것이다. 갑자기 달라진 자연의 경물에 작가는 몰입되고 만 것이다. 이 순간 천재이기에 당해야 했던 명분에 피해 입고 정치에 상처받은 불우한 김시습의 찢어진 마음, 그 마음을 봉합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사상적인 모색과 방랑생활을 하고 있는 김시습의 분노와 우수가 이 시간 단숨에 치료되고 만 것이다. 김시습이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먼 날의 어느 봄날이 이 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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