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인(送人)                                - 정지상-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강둑 위에 풀빛이 진한데

            남포에 임을 보내니 노랫가락마저 구슬프구나.

            대동강의 물은 어느 때에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만 푸른 물결을 더해 가노니.

             

  [ 이해와 감상 ]

고려 시대 한시의 대표작으로 그 애상적인 정서와 독창적인 시적 발상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이별가이다. 임을 보내는 정한이 담긴 7언절구의 한시로서 시적인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고, 언어를 함축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서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동강을 배경으로 하여 벗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읊은 한시이다.

제1행(기)은, 이제 마악 피어나는 봄의 싱그럽고 선명한 서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2행(승)은, 1행과 대조(자연사와 인간사의 대비)를 이루면서, 임과 이별을 해야 하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남포는 이별의 장소이며, 슬픈 노래는 이별의 노래이며 청각적 소재에 해당한다.

제3∼4행(전,결)은, 도치와 설의와 비유와 과장을 통해 임과의 이별로 인한 한과 슬픔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결코 마를 수 없는 '대동강의 깊고 푸른 물'은 이별의 아픔이 해마다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소재이다. 임과 이별한 화자의 눈물이 끊임없이 강물에 보태어져, 언제까지고 대동강이 마르지 않는다는 표현은 과장이 되긴 했지만, 그만큼의 슬픔을 나타낸 시적인 기교로 이별의 한의 극치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별 눈물'은 화자의 눈물이면서 동시에 이별하는 사람들의 눈물이라는 중의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시에 강물은 이별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시는 강변의 푸른 언덕과 파란 강물의 아름다운 색조를 대비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이별의 슬픔의 정도를 강물에 비유한 것도 인상적이다. 대동강이나 남포와 같은 구체적인 지명의 사용은 이 시의 구체성과 함께 향토적인 정서를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이 시는 조선에 전해져 오면서 7언 절구의 빼어난 한시로 평가받고 있으며, 도치와 과장을 통해 시적 자아의 내면적 정서를 기발하게 드러냄으로써 '이별시의 백미'로 우뚝 서게 된 작품이다.

  [ 요점 정리 ]

형식 : 한시, 7언 절구, 송별시, 서정시

연대 : 고려 인종 때(12세기 초)

성격 : 우수적, 애상적

구성

* 기 - 강변의 서경(자연의 싱그러움)

* 승 - 이별의 전경(이별의 슬픔)

* 전 - 시상의 전환(대동강 푸른 물)

* 결 - 이별의 보편적 의미 인식(대동강에 보태지는 숱한 이별의 눈물)

주제 : 석별의 슬픔, 벗을 보내는 이별의 정

표현

* 이별의 상황에 처한 시적 화자의 처지와 자연의 싱그러움을 대조시켜 슬픔의 정서를 부각시킴.

* 이별의 눈물과 대동강 물을 동일시함으로써 슬픔의 깊이를 확대해서 강조함.

* '물'의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함.(비, 대동강, 물, 푸른 물결 → '눈물'의 이미지 → 이별의 한 심화)

* 도치법, 과장법, 설의법으로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하였다.

출전 : <파한집>

  [ 참고 ]

■ 작품에 대한 후대의 평가

이 작품은 대동강에서 친한 벗과의 이별을 하는 데 대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으로 김만중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고려 정사간의 '남포' 절구는 곧 해동의 위성삼첩이다. 끝구의 '별루년년첨작파(別淚年年添作派)'를 '첨록파'라 하기도 하는데, 익재는 마땅히 '녹파(綠波)'를 좇을 것이라 했고, 사가는 '작(作)'자가 낫다고 했다. 생각건대 심휴문의 '별부'에 이르기를 '春草碧色 春水綠波 送君南浦 像如之何''라 했으니, 정사간의 시가 바로 심휴문의 말을 썼으므로 '녹파'로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으며, 허균은 그의 '성수시화'에서 정지상의 '서경시(西京詩)'는 아직도 절창이다. 누선(樓船)의 제영(題詠)들을 조사(詔使)가 올 때마다 철거하고 이 시만을 남겨둔다고 말했으며, 이인로는 그의 '파한집'에서 '서도는 고구려의 서울이었다. 산을 끼고 강을 둘러 기상이 수이하여 예로부터 기인(奇人)이 많이 났다. 예왕 때에 정성을 가진 이름모를 준재가 있었는데, 소년 때에 '송인'을 지었다. ……그말이 표일(飄逸 : 빼어나게 훌륭함)하고 속세를 벗어난 것이 다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 '送元二使安西(송원이사안서)'

'송인'과 쌍벽을 이룬다는 당나라 왕유의 작품이다.

    渭城朝雨邑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 땅 아침 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여관집 둘레 푸른 버들 빛 더욱 산뜻해라.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권하노니 다시 한 잔의 술을 들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 땅에 나가면 벗이 없느니라.

'원이(친구)를 안서 땅에 보내며'라는 뜻을 지닌 이 시는 전반 2행의 서경과 후반 2행의 서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서정시이다. 1~2행에서는 비가 내려 흙먼지가 가라앉고 푸른 버들잎이 산뜻하게 빛나는 풍경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경치의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경의 확대를 통해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즉, 3행에서 친구에게 술잔을 건네 이별의 아쉬움을 말없이 드러낸 다음, 4행에서 양관을 나가면서 만날 수 없게 되는 친구의 사정을 이해해 준다. 이러한 시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선경후정의 원리로 설명된다. 눈으로 관찰한 경치를 객관적으로 그린 다음 그러한 풍경을 가슴 속에 받아들인 시인의 내면이 주관적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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