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수요(拾穗謠)                               -이 달-

           

          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 이해와 감상 ]

손곡 이달 선생은 백광훈, 최경창과 더불어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정서적인 면을 중시하여 낭만적이고 풍류적인 시를 많이 남겼다.

이 시는 먹을 식량이 없어 밭고랑에서 이삭을 줍는 아이의 말을 통해 가난한 농민들의 삶과 탐관오리의 수탈을 고발한 작품이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이 시는 밭고랑에서 이삭을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삭줍기도 어려워 바구니가 차지 않고 관가의 수탈 또한 혹심하여 농민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시상 전개 방식을 주목하면, 화자는 철저하게 객관적 거리를 둔 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발화를 통해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정리 ]

형식 및 갈래 : 한시(7언 절구), 풍자시

특성

* 인용법과 대화의 형식을 활용하여 현장감을 살림.

* 탐관오리의 수탈로 인한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고발함.

* 원인을 나타내는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와 결과를 나타내는 '바구니가 안 찬다네'를 통해 화자의 비판 의식을 논리적으로 제시함.

구성

* 기 · 승 → 종일 이삭을 주워도 바구니가 차지 않는 현실

* 전 · 결 → 관가의 수탈이 극심해 벼 베는 사람들이 이삭을 남기지 않음.

주제 : 탐관오리의 수탈 비판

문학사적 의의 : 가렴주구를 비판하는 한시 중 우회적 수법을 사용하여 풍자의 효과를 높인 작품으로 알려짐.

 [ 참고 ]

◆ 삼당시인(三唐詩人)

조선 중종과 선조 대에 걸쳐 시명(詩名)을 떨친 세 사람의 시인으로 백광훈, 최경창, 이달을 이른다. 이들은 송시풍(사변적이고 주리적인 성격)을 배격하고, 당시(인정주의적)를 주로 하려는 경향을 띠었다. 이들은 정서적인 면을 중시하며 좀더 낭만적이고 풍류적인 시를 쓰려고 했으며, 성조(聲調) 감각을 중시했다.

 

◆ 이달(李達) : 1539(중종34)~1612(광해군4)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 · 서담 · 동리. 제자 허균이 전기문 <손곡산인전>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의 후손이다.'라고 밝혀 신평 이씨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시풍이 비슷한 최경창, 백광훈과 어울려 시사(詩社)를 맺어, 문단에서는 이들을 삼당시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봉은사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지방을 찾아다니며 시를 지었는데,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모였다. 임제, 허봉, 양대박, 고경명 등과도 자주 어울려 시를 지었다.

이달은 서자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과에 응시할 생각을 포기하였지만, 다른 서얼들처럼 잡과에 응시하여 기술직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고, 온 나라 안을 떠돌아다니면서 시를 지었다. 그러나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소외당하였다. 한때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겨서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중국 사신을 맞는 접빈사의 종사관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신분 제한에서 생기는 한과 애상을 기본 정조로 하면서도 따뜻하게 무르녹았다. 근체시 가운데서도 절구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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