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친(思親)                               - 신사임당-


          千里家山萬疊峰(천리가산만첩봉)

          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寒松亭畔孤輪月(한송정반고륜월)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沙上白鷺恒聚山(사상백로항취산)

          波頭漁艇各西東(파두어정각서동)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更着斑衣膝下縫(갱착반의슬하봉)

             

            천 리라 먼 고향 만 겹 봉우리

            꿈에도 안 잊히는 가고픈 마음

            한송정 위아래엔 두 바퀴의 달

            경포대 앞을 부는 한 떼의 바람

            모래톱 갈매기는 뫼락 흩으락

            물결 위 고깃배는 동으로 서로

            언제나 다시 강릉 길 밟아

            색동옷 입고 어머니 슬하에서 바느질할꼬.

             

 [ 이해와 감상 ]

신사임당은 시 · 서 · 화에 걸쳐 두루 예술적 능력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시에 있어서 만큼은 현존하는 작품 수가 극히 적어 시문학의 전모를 밝히기가 매우 어려우며, 사임당의 시에 대한 고인들의 이렇다 할 평론 또한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존하는 사임당의 한시 작품을 보면 <사친>과 <유대관령망친정>의 2수와 낙구 2구가 전부이며, 그 내용은 한결같이 친정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들이다. 사임당이 이렇듯 친정 어머니에 대하여 남다른 효심이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사임당의 특별했던 성장과정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사임당은 외가인 강릉의 북평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였던 용인 이씨는 사임당의 외할아버지였던 최사온의 무남독녀였다. 아들이 없었던 최사온은 사임당의 어머니를 아들처럼 여겨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으므로, 사임당 또한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과 더불어 학문을 배웠고, 부덕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게 되었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 간이나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신사임당은 19세에 이원수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사임당의 부모 또한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을 둔 처지였고, 그 중 둘째 딸이었던 사임당을 특히 아껴 아들 삼아 키웠기 때문에,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얼른 시댁으로 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임당은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21세 때 서울로 올라와 시어머님께 정식으로 신 혼례를 드렸다. 서울 시댁으로 온 사임당은 그대로 서울에서 산 것이 아니고 시댁의 오랜 터전인 임진강가의 파주 율곡리에 가서 살기도 하고,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다. 셋째 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그러다가 38세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오게 된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사임당이 어머니로부터 받아온 가르침이나 사랑의 성격이 일반인들의 그것 이상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어머니가 아들 하나 없이 홀로 된 채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댁으로 향해야만 했던 사임당의 안타까운 심정이 어느 정도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친>이라는 작품은 평생을 모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임당의 간절한 심정이 표현된 작품으로, 자신의 운명적 삶에 대한 한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이 시에서는 작자의 의식의 흐름이 현실과 환몽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개되고 있어, 작자 내면에 자리한 간절한 그리움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하고 있다.

수련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다. 1구의 '천리'나 '만첩봉'은 친정과 시댁과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친정의 어머니를 혼자 남겨둔 채 시댁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각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형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구는 그러한 현실적 한이 무의식의 상태인 꿈속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어머니를 오매불망하는 작자의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귀심(歸心)'은 이 시 전체적 의미를 응축하고 있는 핵심어이자, 작자의 운명적 한의 내용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장존(長存)'은 사무친 한의 영속성을, 그리고 '몽혼중(夢魂中)'은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는 현실적 한의 존재와 그것이 지각되어지는 양상을 각각 나타내는 표현이다.

함련과 경련에서는 수련의 침울했던 분위기가 밝고 화사하게 전환되었다. 그러면서도 2구에 나타난 몽환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향인 강릉 일대의 자연경물에 대한 회상을 통하여 자신이 향수를 표현한 것으로, '장존(長存)'만큼이나 긴 회억이 전개되고 있다. '한송정', '경포대' 등 고향의 정취가 물씬 베인 시어나 그곳의 자연 경물에 대한 대구적 묘사는 마치 한 편의 자연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렇듯 침울한 가운데 전개된 화미한 분위기는 작자의 내면에 자리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그리움의 의미를 한층 더 선연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미련에서는 작자의 의식이 마치 달콤한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처럼, 엄연한 현실적 자아로 전환되어 또다시 현실적 한을 토로하고 있다. 함련과 경련에 나타났던 포근했던 고향의 정취가 여기에 나타난 작자의 한을 더욱 절실하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시'로부터 작자의 긴 한숨이 느껴지며, 마지막 구에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작자의 하염없는 그리움이 나타나 있다.

 사임당은 평소 가끔씩 비녀에게 거문고를 뜯게 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사임당이 평소 친정의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난 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나 효심 또한 일시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사임당이 평생 동안 한결같이 가졌던 마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요점 정리 ]

형식 : 한시. 7언 율시

주제 : 친정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참고 ]

◆ 신사임당의 생애(1504~1551)

시 · 글씨 · 그림에 능하였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본관은 평산, 아버지는 명화이며, 어머니는 용인 이씨로 사온의 딸이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19세에 덕수이씨 원수와 결혼하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었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으며, 얼마 뒤에 시집의 선조 때부터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으며, 셋째 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38세에 시집 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과 청진동에서 살다가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여름 남편이 수운 판관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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