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혼 (夢魂)                        - 숙원이씨(이옥봉) -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달 비친 사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 이해와 감상 ]

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성이다. 이 시는 이러한 사무치는 연모의 정을 그려내고 있다. 승구(承句)에서는 그리움을 달빛에 비추어 하소연하였고, 결구에서는 꿈속의 발자취가 현실로 옮겨진다면 돌길이 반쯤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전구에서의 시상 변환이 특히 뛰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근한 물음을 통하여 자신의 그리움을 드러낸 표현이 돋보인다.

 [ 정리 ]

지은이 : 이옥봉, 숙원 이씨

형식 : 한시(7언 절구)

표현 : 과장법을 통해 정서의 깊이를 강조함.

구성

* 기 - 임의 안부를 물음.

* 승 - 달 비친 사창에 서린 나의 한

* 전 - 꿈속에 만난 임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함.(가정법을 사용한 내용의 전환)

* 결 - 문 앞의 돌길이 닳아서 모래가 됨(화자의 임에 대한 그리움을 과장하여 표현)

주제 : 연모의 정, 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 이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출전 : <옥봉집>

어구 풀이

* 달 비친 사창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 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빛에 감정을 이입하여 표현.

*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임을 그리워하여 얼마나 자주 나갔으면 돌길이 발에 밟혀 모래가 되었겠는가. 이것은 학수고대보다도 더한 그리움이다. '모래'는 화자의 마음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소재임.

 [ 참고 ]

◈『옥봉집』- 숙원 이씨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숙원 이씨의 시집이다. 옥봉은 숙원 이씨의 호로, 승지를 지낸 조원의 소실이다.

<옥봉집>의 서두에는 "시문에 능한 시들이 많으나 흩어져 없어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여기 권말에 붙여둔다."고 그 뜻을 밝혔다. 말미에는 조정만의 발문이 있다. 시집 속에는 5언절구 10편, 7언절구 14편, 5언배율 4편, 그리고 7언배율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승지 조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곳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원을 아느냐."는 물음에 조희일이 부친이라 대답하니, 원로대신은 서가에서 <이옥봉 시집>이라 쓰인 책 한 권을 꺼내보였다. 조희일은 깜짝 놀랐다. 이옥봉은 아버지 조원의 소실로 생사를 모른 지 40여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옥봉의 시집이 어떻게 해서 머나먼 명나라 땅에 있게 되었는지 조희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로대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40년 전쯤 동해안에 괴이한 주검이 떠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라 아무도 건지려 하지 않아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로 떠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시켜 건져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여자 시체였다. 노끈을 풀고 겹겹이 두른 종이를 벗겨 냈더니 바깥쪽 종이는 백지였으나 안쪽의 종이에는 빽빽이 시가 적혀 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씌어 있었다. 읽어 본즉 하나같이 빼어난 작품들이라 자신이 거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온몸을 시로 감고 죽은 여인 이옥봉, 이옥봉은 조선 명종 때 충청도에서 왕족의 후예 이봉지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옥봉은 신분의 굴레로 첩살이밖에 못함을 알게 되자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옥봉은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어울리며 단종 복위운동에 뛰어 들었고, 곧 시구나 짓는 선비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옥봉은 조원이란 선비를 사랑하여 첩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첩살이가 싫어 결혼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약해진 모양이다. 한데, 조원은 옥봉을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절대 시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했다. 여염의 여인이 시를 짓는 건 지아비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일이라면서. 옥봉은 맹세했다. 자신의 시는 외로움과 허망함의 발로였으니 지아비를 얻으면 시를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조원 집안의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조원과 친분이 두터운 파주 목사에게 손을 좀 써 달라 했다.

사정을 들어본즉 아전들의 토색질이 분명했다. 옥봉은 파주 목사에게 시 한 수를 써 보냈고, 산지기는 무사히 풀려났다. 그러나 이 일로 옥봉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조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내친 것이었다.

뚝섬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며 옥봉은 조원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으나 허사였다. 조원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10년 가까이 시혼을 억눌러오다가 산지기를 위해 한 수 지어준 일로 쫓겨나다니. 옥봉으로서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으리라. 옥봉은 애통한 마음을 담아 시를 읊고 또 읊었다. 더 이상 참을 까닭도 없었으니까.

조원을 단념한 옥봉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중국으로 가 마음껏 시심을 펴보려 했나보다. 그리고 자신의 시로 몸을 감고 낯선 바다에 뛰어들었나보다.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 규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는 여성은 천시하거나 사회적 보호 밖에 두었던 조선시대의 여성관에 죽음으로 항의한 셈이다. 사랑을 위해 시를 포기했지만 자신의 삶은 결국 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침묵으로 웅변하면서.

(*출처:한겨레 21.  1997.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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