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촌 (江村)                                -  두보 -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 <분류두공부시 언해 초간본> -

 

 [현대어 풀이]

  • 맑은 강물의 한 굽이가 마을을 안고 흐르나니
  • 긴 여름의 강촌(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 일마다 운치가 그윽하도다.
  • 저절로 갔다고 저절로 오는 것은 집 위에 깃들인 제비요,
  • 서로 친하며 서로 가깝게 노니는 것은 물 가운데의 갈매기로다.
  • 늙은 아내는 종이에 장기판을 그려서 만들고 있고
  • 어린 아이들은 바늘을 두드려 고기를 낚을 수 있는 낚시를 만들고 있도다.
  • 많은 신병(身病) 때문에 구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약물이니,
  • 미천한 이 내 몸이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

 [ 이해와 감상 ]

두보가 49세 때 청두(成都)의 완화계(浣花溪) 가에 초당을 짓고 한가로이 지내던 어느 여름에 지은 시로서, 여름날 강촌 마을에서 욕심없이 살아가는 한가로운 생활을 진솔하게 7언 율시의 형태로 읊었다.

이 노래는 일찍이 우리의 서도 민요인 '엮음 수심가'에 삽입되어 애송되어 온 것으로,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명시(名詩)이기도 하다. 당대의 전란과 혼탁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살다가 초당에 정착한 두보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림 장만도 하고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이 시에는 잠시 평온을 얻은 두보의 안도감이 흐르고 있으며, 이제 신병만 고쳤으면 하는 솔직하고 만족함을 아는 마음이 엿보이고 있다.

수련, 함련, 경련의 전 6구는 긴 여름 강촌의 일상을 보고 들은 소견사(所見事)을 그리고 있는 부분으로, 그 가운데 수련(1~2행)은 이 시의 공간적 계절적 배경 및 분위기를, 함련(3~4행)은 자연(사물)의 그윽하고 여유로움을, 경련(5~6행)은 인사(人事)의 그윽함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미련(7~8행)은 신병 속에 살아가는 기구한 자신의 처지를 읊었다.

특히 이 시에는 3행과 4행, 5행과 6행이 각각 빈틈없는 짝을 이루는 대구의 묘미를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3행과 4행에서는 지붕 위에서 오락가락하는 제비와, 강물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 자신의 물아일체, 자연친화사상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5행과 6행에서는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면서, 흑백의 대결(바둑), 굽고 바름(곡직:낚시 바늘)의 대결로 서로 물고 헐뜯는 당대의 세태를 풍자적으로 그린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평화로운 강촌의 자연 속에서 오랜 지병으로 약물에 의탁하여 사는 작자의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그려나가는 중에 어지러운 세태를 은연중에 풍자한 작가 정신이 이 시의 묘미를 더해주는 듯하다.

 [ 요점정리 ]

형식 : 한시. 7언 율시.

성격 : 서정시, 강호한정가

압운 : 평성 '尤(우)'의 운통(韻統)을 따른 '流, 幽, 鷗, 鉤, 求'

주제 : 긴 여름날 강촌의 한가로운 생활(知足의 생활)과 정감.

연대 : 상원(上元) 원년 (760)

표현 : 대구법, 풍자와 상징

 [ 참고 ]

<두시 언해>에 대해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이고, 호는 '소릉(少陵)' 또는 '두릉(杜陵)'이다. 이백(李白) ·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당나라의 3대 시인으로 손꼽히며, 후에 사회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두보의 시는 약 1,450여 편에 이르는데,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내용상으로는 평민적이고 인간적인 진솔함이 성실하게 나타나 있으며, 표현면에서는 사실적인 기법이 돋보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도주의(人道主義)적인 성향과 사회 부정, 인간적인 고뇌 등을 그려내고 있다. 또 애국애족적인 내용과 함께 현실적인 사실주의의 시풍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두보의 시들을 처음으로 유윤겸이 세종의 명에 따라 정리 · 분류하고, 한문으로 주해를 달아 놓았다. 다시 이것을 바탕으로 성종의 지시에 따라 조위와 의침이 언해하여, 마침내 성종 12년(1481)에 전 25권 17책으로 된 <분류 두공부시언해>를 간행하였으며(초간본), 이어서 인조 10년(1632)에는 당대의 현실에 맞는 언어를 참작하여, 중간(重刊) 간행을 마무리하였다(중간본).

<두시언해>의 문학적인 의의는 국문학사상 최초로 번역한 시집이란 점과, 한시의 모범이 되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초간본과 중간본 사이에 생겨난 우리말의 음운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로, 중세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두보의 시는 유교 사상과 우국의 시풍에 대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두 보(杜甫)의 사상

시대와 생활은 한 인간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절정으로 치솟아 오르던 당나라가 안녹산의 반란을 계기로 급전 낙하하는 전환기에서 두보는 사회적으로 통치 계급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전란의 비참함과 역적의 포악으로 빚어진 암흑 난세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수난을 목도했고, 개인적으로 자신이 바로 가난을 뼈저리게 맛보았던 것이다.

이에 천성이 선(善)하고 성실한 휴머니스트인 두보는 그러한 암흑 · 부조리 · 악덕 · 비참 · 고난을 성실한 리얼리즘과 인간애가 넘치는 휴머니즘의 문학으로 승화하여 결정지었던 것이다.

두보의 사상의 바탕은 유가(儒家)의 인애(仁愛)다. 두보는 스스로 유가임을 자처했다. 비록 현실 사회에 실망하여 스스로 부유(腐儒)니, 노유(老儒)니 하기도 했으나, 그는 평생을 두고 임금을 보좌하여 백성을 안락하게 해 줄 수 있는 정치 참여를 갈망했다. 이는 바로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충군애민(忠君愛民)의 유가 정신이었다. 동시에 두보는 절용애민(節用愛民)에 투철하여 위정 계급의 부패 · 무능 · 안일 · 낭비와 역적들의 포악 · 무질서 · 난동을 격렬하게 미워했으며, 동시에 무절제한 변경 학대 정책에 의한 국민 생활의 경제적 파탄과 생명 및 가정의 위협을 에누리없이 고발했다. 두보의 인애 사상은 철저한 평화와 '민위방본(民爲邦本)과 민위귀(民爲貴)'의 사상이기도 했다. 특히, 불의를 규탄하고 사회악을 고발하는 데 과감했던 두보는 유가의 소극적인 '명철보신(明哲保身)'이나 궁즉독선기신(窮則獨善其身)'하고자 움츠러들지 않고 끝까지 그의 휴머니즘 정신을 발휘했다.

-출처:<한샘종합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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