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 허난설헌-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愁依小屛風 (수의소병풍)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찬 바람이 장막 속에 스며들 제

            뜬 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 <난설헌집> -     

 [ 이해와 감상 ]

이 시는 전반부에서 공간적, 시간적 배경을 묘사하고 후반부에서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시의 일반적 시상 전개의 방식인 선경후정의 구성을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 후반부인 서정 부분에서도 오히려 사물의 정경 묘사인 4구가 핵심을 이루는데, 이는 이 작품이 정경 묘사를 통해 화자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병풍에 기대어 선 채로 봄비에 떨어지는 살구꽃을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에서,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자신의 젊음을 한탄하는 애잔하고 고독한 정서가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과 처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정경의 묘사에 기대어 적절한 감정을 표현해 낸 절제된 어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기구 - 연못에 소리없이 봄비가 내리고 있다. 시름에 젖어 있는 화자의 모습을 생각할 때 이 장면은 분명 쓸쓸함을 자아내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봄비'는 화자의 쓸쓸한 정서를 대신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라 할 수 있다.
  • 승구 - 찬 바람은 비가 내리는 봄날의 쌀쌀한 기운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화자의 외로운 처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찬 바람' 또한 객관적 상관물이라 할 수 있다.
  • 전구 - 외로움과 시름에 잠긴 화자의 모습이 비로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 결구 - 시름에 젖은 화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살구꽃'은 봄날 한때 피었다가 금방 지는 꽃으로서, 인생의 짧은 젊음 또는 여인의 짧은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즉, 화자는 봄비에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살구꽃을 바라보며, 자신의 젊음이 속절없이 허망하게 지나가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살구꽃'은 이렇게 화자 자신과 동일시되는 소재이며, 외롭고 쓸쓸한 화자의 심사를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할 수 있다.

    * 暗(암) : 여기서는 연못에 봄비가 알 듯 모를 듯 소리없이 내리는 모양을 나타냄.

    * 輕寒(경한) : 가벼운 추위. 여기서는 비 내리는 봄날의 쌀쌀한 기운을 뜻함.

    * 杏花(행화) : 살구꽃. 여기서는 시적 화자와 동일시되는 소재

 [ 요점정리 ]

연대 : 조선 명종 때

◆ 형식 : 5언 절구의 한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독백적, 서정적

◆ 어조 : 쓸쓸하고 독백적인 목소리

◆ 표현 : 선경후정(선경-시공간적 배경, 후정-화자의 외로운 정서)에 의한 시상 전개

               객관적 상관물(봄비-쓸쓸함, 찬 바람-외로움, 살구꽃-아쉬움)의 적절한 활용

◆ 구성 

* 기 - 연못에 봄비가 내리는 쓸쓸한 정경

* 승 - 이른 봄의 추위가 외로움을 더해 줌.

* 전 - 시름에 잠긴 화자의 모습

* 결 - 허망하게 지나가는 젊은 날

◆ 주제 : 규중 여인의 외로운 심사

◆ 출전 : <난설헌집>

 [ 참고 ]

■ 지은이 : 허난설헌(1563 - 1589)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 호는 난설헌.  허엽의 딸이고, 허균의 누나이다. 집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집안과 교분이 있던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8세에 상량문을 지어 신동이라 불렸고,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하였으나 원만한 결혼생활을 못했다. 남편은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시 213수가 전하는데, 그 중 신선시가 절반이 넘는 128수이다. 동생 허균이 뒤에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그녀의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 유고집 <난설헌집>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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