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론(遺才論)                                  - 허균 -

● 본문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위정자)은 임금과 더불어 하늘이 준 직분을 행하는 것이니 재능이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디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풍부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 하여 인색하게 주지 않는다.(만인 평등 사상)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 초야(草野, 궁벽한 시골을 이르는 말)에서도 구하고 더러 항복한 오랑캐 장수 중에서도 뽑았으며, 더러 도둑 중에서도 끌어올리고 더러 창고지기를 등용키도 했다. 이들은 다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재능을 한껏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治積, 잘 다스린 공적 또는 정치상의 업적)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 방법(신분, 가문, 지역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중국같이 큰 나라도 인재를 빠뜨릴까 걱정하여 늘 그 일을 생각한다. 잠자리에서도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한다.

어찌하여 숲 속과 연못가(대유법. 초야에서의 생활)에서 살면서 큰 보배를 품고도 팔지 못하는 자(능력이 있으면서도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인재)가 수두룩하고 영걸찬(영특하고 용기와 기상이 뛰어난) 인재가 하급 구실아치 속에 파묻혀서(능력 있는 인재가 보잘것없는 관직에 있음) 끝내 그 포부를 펴지 못하는가? 정말 인재를 모두 얻기도 어렵거니와 모두 거두어 쓰기도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서 예부터 걱정거리였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더 좁아져서 대대로 명망 있는 집 자식이 아니면 좋은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바위 구멍과 띠풀 지붕 밑에 사는 선비(보잘것없는 집안의 선비)는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도 등용되지 못한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하고 비록 덕이 훌륭해도 과거를 보지 않으면 재상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은 재주를 고르게 주는데 이것을 명문의 집과 과거로써 제한하니 인재가 늘 모자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에 첩이 낳은 아들이 재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천한 어미를 가진 자손이나 두 번 시집간 자의 자손을 벼슬길에 끼지 못하게 한다.

조막만 하고 더욱이 양쪽 오랑캐(만주족과 왜구) 사이에 끼어 있는 이 나라에서 인재를 데재로 쓰지 못할까 두려워해도 더러 나랏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는데, 도리어 그 길을 스스로 막고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다."고 탄식한다.(인재 등용의 모순) 이것은 남쪽 나라를 치러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내달리는 것(연목구어.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자가당착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모순됨)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참으로 이웃 나라가 알까 두렵다.

한낱 여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마음이 언짢아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는데 하물며 원망을 품은 사내와 원한에 찬 홀어미가 나라의 반을 차지하니 화평한 기운을 불러오기는 어려우리라.

옛날 어진 인재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많이 나왔다. 그때에도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차별적인 인재등용)을 썼다면, 범증엄(어머니가 개가하여 낳은 인물)이 재상 때에 이룬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요, 진관과 반양귀(송나라의 충신, 서자 출신)는 곧은 신하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며, 사마양저(제나라의 병법가로 서자 출신임), 위청(한나라의 서자 출신 장수)과 같은 장수와 왕부(미천한 가문 출신의 사상가)의 문장도 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냈는데도 사람이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고도 하늘에 나라를 길이 유지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하면(인재를 차별하지 않고 고르게 등용하면) 나라의 명맥을 훌륭히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 감상 및 이해

이 글은 중국의 사례와 대비하여 우리나라에서 인재를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임을 밝히고, 인재 등용 방법을 개선할 것을 강한 어조로 촉구하고 있는 한문 수필이다. 글쓴이 허균의 정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글인데, 이는 <홍길동전>의 배경 사상과도 연관된다. 하늘이 낸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상층이건 하층이건 그 재능에 있어서는 하늘이 고르게 준 것인 만큼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조선처럼 땅덩이가 좁고 인재가 드문 나라에서 명망가의 자식이 아니면 벼슬을 할 수 없는 현실, 초야에 사는 재주 있는 선비들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현실, 특히 첩과 재가한 여자의 자식은 과거 응시조차 할 수 없는 불합리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서 허균은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서는 인재 자체가 적게 나는데, 그것조차 신분 제도에 의해 제한하고, 과거에 의해 제한하고 세족이냐 아니냐로 제한하니 이것은 남쪽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다'는 것은 실은 인재를 버리고서 한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겨냥한 것은 주로 적서차별에 의한 서얼들의 등용 제한이다. 그 자신도 평소 서얼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며 지원했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에서 길동이 서자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여자의 개가에 대한 긍정도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그 자신도 첩을 거느리는 등 일부 다처제의 모순을 자각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개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진취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발상의 근저에는 기본적으로 하늘이 낸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게 존재함을 뜻한다. 상층이건 하층이건 그 재능에 있어서는 하늘이 고르게 준 것인 만큼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허균의 정치사상은 문제적 인물의 사상답게 조선사회의 제도적 모순 및 구조적 모순에 직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논(論)

구성

1) 기→ 올바른 인재 등용 방법

2) 서 → 인재 등용의 현실과 모순 비판

3) 결 → 올바른 인재 등용 촉구

특성

1) 비판적이고 설득적인 어조

2) 제목 '유재'는 '인재를 버리다'의 뜻임.

3) 중국의 사례와 대비하여 인재를 버리지 말 것을 강한 어조로 촉구함.

주제인재 등용 현실을 비판하고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할 것을 촉구함.

출전 → <성소부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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