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 혜초 -

● 본문

이 녹야원(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곳)과 구시나(부처가 열반한 곳)와 사성(불교사상 최초로 정사가 세워진 곳)과 마하보리(사찰 이름)의 영탑(부처의 생애와 관련된 성지)이 모두 마가다국(인도의 고대 왕국으로 지금의 바하르임.) 경계 안에 있다. 이 파라나시국에는 대승 불교와 소승 불교가 같이 시행되고 있다. 마하보리사를 예방(예를 갖추는 의미로 인사차 방문하는 것)하는 것은 나의 평소부터의 숙원이었기 때문에 무척 기쁘다. 이 기쁨을 감출 길 없어 미숙하나마 이 뜻을 시로 읊어 보았다.

 

보리사가 멀다고 근심할 것 없었는데

녹야원이 먼들 어찌하리오.

다만 멀고 험한 길이 근심이 되나

불어 닥치는 악업(惡業, 나쁜 인과응보를 가져올 악한 행위)의 바람은 두렵지 않네.

여덟 개의 탑을 보기 어려움은

여러 차례의 큰 불에 타 버렸음이라.(인도가 분열되어 불교 유적이 타 버렸음을 뜻함)

어찌해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거나.

오늘 아침부터 이 눈으로 똑똑히 보오리.

* 마하보리사 예방의 기쁨과 감격을 시로 읊음

이 파라나시국에서 반 달을 걸어서 중천축의 국왕이 살고 있는 성에 도착하였다. 그 이름은 갈나급자(葛那及自)이다. 이 중천축국의 영토는 무척 넓고 백성이 많이 산다. 왕은 코끼리 백 마리를 가지고 있고, 그 밖에 큰 수령이 다 각기 3백 또는 2백 마리의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그 왕은 언제나 스스로 병마를 거느리고 싸움을 잘 하는데, 항상 주변에 있는 네 천축의 나라와 싸움을 하면 이 중천축국의 국왕이 이겼다. 싸움에 진 나라는 코끼리도 적고 병력도 적어서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곧 강화하기를 청하여 해마다 공물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휴전한다. 그리고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다.

*중천축국의 사정과 주변국 정세

의복과 언어, 풍속, 그리고 법은 다섯 천축국이 서로 비슷하다. 오직 남천축의 시골에 가면 백성들의 언어가 다른 곳과 차이가 있으나 벼슬아치들의 언어와 생활은 중천축국과 다른 데가 없다. 이 다섯 천축국의 법에는 죄수의 목에 칼을 씌우거나, 형벌로써 몽둥이로 때리거나 또는 가두는 감옥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죄인에게는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도 없다. 위로 국왕에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냥한다고 매를 날리거나 엽견(사냥개)을 사용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길에는 도적이 많기는 하나 물건만 빼앗고는 즉시 풀어 보내고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즉시 물건 주기를 꺼려하면 몸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천축국은 불교 국가인 만큼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구절임.)

*다섯 천축국의 사회상과 풍속

이 땅은 기후가 아주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을 볼 수 없다. 먹는 것은 오직 쌀 양식과 떡, 보릿가루, 우유 등이며 간장은 없고 소금을 상용한다. 흙으로 구워 만든 냄비에 밥을 익혀 먹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없다. 백성에게는 별로 받아들이는 세나 용(庸, 부역 대신에 물품을 바치는 것)은 없고, 다만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에서 다섯 섬만 왕에게 바치면 왕이 직접 사람을 보내서 그 곡식을 운반해 가고, 토지 주인은 곡식을 바치기 위해 운반하는 수고가 필요 없다. 그 나라 땅에 사는 백성은 빈자(貧者)가 많고 부자는 적은 편이다. 왕이나 벼슬아치, 그리고 부자 백성은 전포(氈布, 짐승의 털로 짠 모직물의 한 가지)로 만든 옷 한 벌을 입고, 스스로 지어 입은 사람(중류 계급)은 한 가지만 입고, 가난한 사람은 반 조각만 몸에 걸친다. 여자도 역시 그렇다.(천축국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 모습)

*다섯 천축국의 의식주 및 세금 제도

이 나라의 왕은 마냥 정아(政衙, 정사를 보는 관청)에 앉아 있으면 수령과 백성들이 모두 와서 왕을 둘러싸고 그 주위에 둘러앉는다. 각기 어떤 일에 대하여 도리를 내세워서 논쟁이 일어나고 소송이 분분하여 비상히 요란하게 입씨름이 벌어져도 왕은 못 들은 척하고서 듣고도 꾸짖지 아니하다가 거의 끝날 무렵이 되면 왕이 천천히 판결을 내리는데,

"너는 옳고, 너는 옳지 못하다."

고 한다. 그러면 왕이 내리는 한마디로써 결정을 삼고 비록 불평이 있는 자도 다시는 말을 하지 않는다.(백성들이 왕에게 잘 복종함. 왕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

* 다섯 천축국의 정치 형태

이 나라의 왕과 수령 등은 삼보(三寶, 부처 · 불법 · 승려)에 대하여 심히 공경하고 믿는다. 왕과 수령 등이 만약 스승 되는 중을 대하게 되면 땅바닥에 그대로 앉고, 평상에 앉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왕과 수령이 자기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갔다가 올 때에는, 그 가는 곳까지 스스로 자기가 앉았던 상자를 가지고 자기 몸을 따라오게 하여 그곳에서도 자기가 전용하는 평상에 앉지, 다른 평상에는 앉지 않는다. 절이나 왕의 궁정은 모두 3층으로 지었다. 제일 밑의 층은 창고로 쓰고, 위에 있는 두 층은 사람이 거처하는데, 큰 수령들의 집도 이와 마찬가지다. 집은 모두 지붕이 평평하며 벽돌과 목재로 지어져 있다. 그러나 그 밖의 백성들의 집들은 초가집이다. 중국의 한옥과 같아서 빗물이 아래로 내려오도록 지었고, 또 단층들이다.

* 다섯 천축국의 삼보에 대한 존경과 주거 형태

이 땅의 물산(생산되는 물품)은 오직 전포와 코끼리 · 말들이 있고, 이 땅에 없는 금과 은은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다. 또 낙타 · 노새 · 당나귀 · 돼지 등의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이곳의 소는 모두 흰 것뿐인데, 만 수 중의 한 마리 정도가 털이 검은 것이나 붉은 것이 있을 뿐이다. 양과 말은 대단히 귀하여 그 나라의 왕이 이삼백 수의 양과 육칠십 필의 말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 한다. 이 밖에 수령과 백성들은 전부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다만 소를 기르고 있음은 우유와 버터를 벅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마음이 착하여 살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서나 가게에서 짐승을 잡아 죽이거나 고기를 파는 곳은 볼 수가 없다.(천축국 백성들의 순박하고 착한 모습)

*오천축국의 물산

뒷부분 줄거리 : 이후 남천축국으로 들어가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음을 확인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하다가 동 · 서양의 교통의 중심지였던 토하라에 들었을 때는 파사국 · 대식국 등의 나라의 정세와 풍물을 기록한다. 그리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에 도착하면서 여행기는 끝난다.

● 감상 및 이해

<왕오천축국전>은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 인도와 주변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돌아와 쓴 여행기이다. 여기서 '천축국'은 지금의 인도를 말하며, 당시 인도가 다섯 지방, 즉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앙천축으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오천축국'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往)'이란 말은 그곳에 갔다 왔었다는 뜻이다. 즉, <왕오천축국전>은 인도 지방 여행기라는 뜻이다. 원래는 세 권이었으나 앞 뒤가 잘려진 채 발견된 이 책은 8세기의 인도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중국과 인도를 잇는 도로 사정을 아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역사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경의 사료(史料)로 인도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의 정세와 풍습을 알게 해 주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자료이다. 또한 불교 유적 순례기로서 정세, 풍속 등이 담긴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국문학사적인 면에서도 외국 기행문으로 첫 작품이고, 풍물과 여정을 노래한 5언 율시가 5수 수록되었다는 점 등이 중시되고 있다.

이 책의 앞 뒤가 잘려 나갔기 때문에 인도의 각 지역과 물론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대한 서술이 간략하다. 어떤 곳은 지명이나 나라 이름 등에 관한 정보가 부정확하고, 또 언어 · 풍속 · 정치 등에 관해서도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묘사한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장(玄裝)의 <대당서역기>나 법현(法顯)의 <불국기> 등에 비해서 사료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편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전술한 여행기들은 육로 기행과 해로 기행인 데 비하여, 이 책은 육로와 해로가 같이 언급되고 있다. 둘째는  전술한 여행기들은 6세기와 7세기의 인도 정세를 말해 주는 자료이지만, 이 책은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셋째, 일반적인 정치 정세 이외에 사회상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돋보인다. 넷째, 이국적인 풍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대수필(기행문), 묘사적, 사실적

연대 → 신라 성덕왕 26년(727)

구성 → 병렬식, 추보식 구성

1) 중천축국의 세력

2) 오천축국의 정세

3) 오천축국의 사회상과 풍속

4) 오천축국 사람들의 생활 모습

5) 오천축국의 정치 형태

6) 오천축국의 삼보에 대한 존경과 주거 형태

7) 오천축국의 물산

특성

1) 여정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함.

2) 다방면의 사실을 병렬적으로 나열함.

3) 삽입시의 역할 → 혜초는 마하보리사를 예방한 것을 계기로 이 시를 지었다. 불교에 귀의한 승려로서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것을 평소의 숙원으로 삼았던 그가 읊은 이 시는, 승려로서 혜초가 지닌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혜초는 마하보리사에서 받은 종교적인 감동과 느낌을 직접 진술하지 않고 간결하고 절제된 시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출전 → <왕오천축국전>

의의 →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외국 기행문이며, 최초의 불교 유적 순례기임.

주제오천축국의 정세, 지리, 언어, 풍속, 정치, 주거, 생산되는 물품 소개

● 참고

◆ 혜초(慧超, 704~787)

신라의 고승. 당나라 광저우에 가서 인도승 금강지의 제자가 되고, 그의 권유로 인도 내역 불교 성적(聖跡)과 오천축국을 순례하였으며,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앙 아시아의 구자(龜滋)로 돌아왔는데, 이때의 여행 기록이 '왕오천축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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