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壞土室說)           - 이규보 -

● 본 문

10월 초하루에 이자(李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서는 이규보 자신을 가리킴.)가 밖에서 돌아오니, 종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어리석은 체하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집 안에다 무덤(토실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시각이 드러난 말)을 만들었느냐?"
하니, 종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입니다."
하기에,

"어찌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온화한 봄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 터지지 않으므로 참 좋습니다."(편리성과 실용적인 차원에서 만들었음을 알려주며, 인간의 유용함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입장으로, 반환경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 하인들이 토실을 만든 이유(객관적 사실)

이자는 더욱 화를 내며 말하기를,

"여름은 덥고 겨울이 추운 것은 사시(四時)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만일 이와 반대가 된다면 곧 괴이한 것이다. 옛적 성인이, 겨울에는 털옷을 입고 여름에는 베옷을 입도록 마련하였으니, 그만한 준비가 있으면 족할 것인데, 다시 토실을 만들어서 추위를 더위로 바꿔 놓는다면 이는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뱀이나 두꺼비가 아닌데, 겨울에 굴 속에 엎드려 있는 것은 너무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길쌈이란 할 시기가 있는 것인데, 하필 겨울에 할 것이냐? 또 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에 시드는 것은 초목의 정상적인 성질인데, 만일 이와 반대가 되다면 이것은 괴이한 물건이다. 괴이한 물건을 길러서 때 아닌 구경거리를 삼는다는 것은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뜻이 아니다. 빨리 헐어 버리지 않는다면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종들이 토실의 가치를 들어 옹호하자, 인간 삶의 방식과 계절의 순환 원리를 들어 자연의 섭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토실을 만든 행위가 부당한 이유를 밝히고 잘못을 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토실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반환경적 태도라는 작가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하였더니, 종들이 두려워하여 재빨리 그것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땔나무를 마련했다. 그러고나니 나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하였다.

▶ 토실에 대한 '나'의 생각(주관적 의견)

● 감상 및 이해

이 글은 토실과 관련된 일상 생활의 체험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편리를 위해 자연의 이치를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한문 수필이다.

이자는 생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토실을 만들었다는 하인들에게 이는 계절의 순환에 역행하는 행위이며, 하늘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라며 토실을 허물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이자의 말에선 인간의 편리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중시하는 자연 친화적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토실'로 상징되는 인간의 이기적 심성을 비판하고,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살 것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욕망과 이익 추구를 위해 자연의 질서와 생태계의 조화를 등한시한 채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 작품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 정리하기

갈래 → 고전 수필, 설(說)

성격 → 교훈적, 경험적, 자연 친화적

출전 → 『동국이상국집』

인물

   1) 하인들 → 토실의 효용성 강조(인간의 이기적인 태도)

   2) 이자(작가) → 자연의 섭리 강조(자연 친화적인 태도)

제재 토실(토실의 상징성 : 이 글에서 토실은 자연의 섭리나 생태계의 질서를 등한시한 채, 편리나 욕망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심성을 상징한다. '토실'을 '무덤'이라고 지칭하는 이자의 태도에서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주제 →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추구

특성

   1)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드러냄.

   2) 일상적 경험을 통해 주제를 전달함.

● 참고자료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 

동양을 비롯한 우리 옛 선조들은 자연을 더불어 살아야 하는 윤리와 도덕의 출발로 보려 했다.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없었던 원시 시대에도 터부(taboo) 형식으로든 토템(totem) 형식으로든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 적절한 규범으로 승화시켜 나름대로 발전된 사회적 윤리 체계를 만들어 살았던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은 옛 선조들에게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사람은 여기서 자연의 작은 일부분으로 여겨졌으며, 삶의 뿌리 속에 자연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예컨대,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음양의 조화로 풀이하려 노력했으며, 이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이른바 기(氣)가 살아 있는 자연이 함께 살아 숨쉰다고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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