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종수기(新山種樹記)                              - 심노숭 -

● 본문

나의 남원(南園, 남산 아래) 집은 예전에는 꽃과 나무가 많았는데 날로 황폐해졌다. 내 게으른 성격 때문에 가꾸지 않은 것이지만, 집이 낡아서 그 꽃과 나무까지 아울러 가꾸기 싫은 데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아내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집들을 보면 남편이 꽃과 나무에 대한 벽(癖, 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버릇)이 심하여 어떤 이는 방에 들어와 비녀와 팔찌를 찾아 팔기까지 한다는데 당신은 이와 반대로 집이 낡았다고 꽃과 나무까지 팽개쳐 두고 계십니다. 집은 비록 낡았어도 꽃과 나무를 잘 가꾼다면 또한 집의 볼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 하고 하였다. 나는,

"그 꽃과 나무를 가꾸려 한다면 집 또한 손볼 수 있을 것이오. 다만 나는 여기 오래 살 생각이 없으니 어찌 남의 볼거리를 위해 마음 쓸 필요가 있겠소? 늙기 전에 당신과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따서 제사상에 올리거나 부모님께 바치고, 꽃은 구경하면서 당신과 머리가 다 세도록 서로 즐기려는 게 내 생각이라오." / 라고 말하니 아내가 희희낙락하였다.

지난해 고향 파주에 조그만 집을 새로 지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제 당신 뜻을 이룬 건가요?" / 라고 하였다. 정원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의 위치를 잡는 것을 아내와 상의하여 하였다. 공정(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하나하나의 작업 단계로 '공사 과정'을 의미함.)이 끝나기를 기다려 꽃과 나무를 심으려 했는데, 일이 끝나기 전에 아내는 병들고 말았다. 나는 아내의 병이 조금 차도가 있으면 바로 파주로 와서 일을 도왔다. 일이 끝날 무렵 아내는 병이 위독해져 거의 죽게 되었다. 아내가 내게 말하기를,

"파주 집 곁에 저를 묻어 주세요." / 라고 하니 서로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집이 파주로 이사 오던 날 아내는 관(棺)에 실린 채 왔다. 아내의 무덤 자리를 정하였는데, 집에서 백 보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 기거하고 음식을 먹을 때 아내의 넋이 통하는 듯했다.

우리 산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많아 그 울창함을 서도(西道, 황해도와 평안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여러 산들이 바라보고 있다. 아내 무덤 자리는 조부의 묘 아래에 썼는데 나무를 더 심지 않아도 될 만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무덤 주변의 나무를 쳐 덩굴이 뻗치고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막고, 또 가시나무들을 베고 소나무 · 잣나무 · 삼나무 등만을 남기고 나니 조금 성기게 되었다. 이에 나무를 좀 더 심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한식 날 삼나무 치목(어린 나무) 30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봄 · 가을로 나무 심기를 의식으로 삼을 것이라 다짐했다.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래된 계획이었다. 남원을 버리고 파주로 가겠다던 그 계획을 이제야 이루었는데 아내와 하루도 함께 거하지 못하였으니 뒤에 죽는 것이 다만 슬픔만을 더한즉 사람이 구구히(잘고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가 구차스럽게) 삶을 도모하여 스스로 오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또한 미혹된 짓 아닌가!

돌아보면 나는 심기가 약해 홀홀히(근심스러워 뒤숭숭한 상태로)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지 못하였으니 남은 생애를 생각해보니 불과 삼십여 년이요, 한 번 죽고 나면 천백 년 무궁할 것이다. 이에 내가 택할 바를 알겠으니 그것은 남원 집이 아니라 파주 집일 것이다. 살아서는 파주의 집을 얻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서로 파주의 산을 얻을지니 즐거움이 그지없다. 이것이 내가 신산(新山)에 나무를 심고, 집에다 심어 본 것의 품등(품질과 등급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헤아려 하나같이 산에다 옮기는 까닭이니, 나의 뜻을 갚고 나의 슬픔을 부치는 것이요, 또 나의 자손, 후인으로 하여금 내 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훼상치 말지어다.(자신이 죽어 흙으로 돌아간 뒤 부부가 함께 영원히 파주의 산을 얻어 행복을 누리자고 축원함.)

어떤 이가 말하기를,

"그대는 장차 살 것은 도모하지 않고 사후의 계책만 세우고 있는가? 죽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무슨 계획을 한단 말인가!" / 라고 하였다. 나는 말한다.

"죽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진정 참을 수 없는 말이다.(심노숭에게 있어서 아내는 결코 죽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런 존재일 수가 없었던 것임.)"

계축년(1793) 4월 3일, 태등은 분암에서 쓰다(태등은 심노숭의 자로, 즉 심노숭 자신이 아내의 무덤 밑에 있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

● 감상 및 이해

정조 때의 문인 심노숭이 31살에 동갑내기 아내를 잃고 아내의 무덤가에 나무를 심게 된 연유를 '기(記)'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이처럼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시문을 '도망문(悼亡文)'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도망시 26수, 도망문 20편 등 수십 편을 묶어 책으로 내면서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표현했다.

아내가 죽은 뒤, 아내를 기억하며 무덤가에 나무를 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글쓴이는 아내가 죽은 뒤에도 아내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래서 집에서 백 보도 되지 않는 곳에 아내의 무덤 자리를 정하고, 무덤가에 나무를 심음으로써 아내를 기억하려 했다.

조선시대 사회 풍토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글쓴이처럼 아내에 대한 사랑과 추모를 주제로 삼은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이처럼 애절하면서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한 예는 드물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기(記)

구성

1) 기 → 아내와 파주에 집을 짓고, 꽃과 나무를 심어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함.

2) 승 → 파주에 집을 지었으나 아내는 죽음

3) 전 → 100보 밖에 아내를 묻고 그 주변에 나무를 심음.

4) 결 → 아내 무덤 옆에 나무를 심은 이유를 밝힘.

특성

1) 회고적, 애상적

2) 옛 사랑의 표현은 지금처럼 직접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무미건조하고 근엄한 것만도 아니었음.

주제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애정

출전 → <효전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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