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西浦漫筆)                                  - 김만중 -

● 본문

송강(松江)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전후 사미인가(前後 思美人歌)는 우리나라의 이소(離騷,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참소를 당하여 조정에서 쫓겨난 후, 그 슬픔을 읊은 시부)이나, 그것은 문자(文字, 한문. 한자)로써는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악인(樂人, 노래하는 사람)들이 구전(口傳)하여 서로 이어받아 전해지고 혹은 한글로 써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칠언시로써 '관동별곡'을 번역하였지만, 아름답게 될 수가 없었다(국어로 쓰여진 '관동별곡'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그 내용은 전달되지만, 원작의 표현의 맛이나 묘미가 살아나지 않으므로 아름답게 될 수가 없다). 혹은 택당(澤堂,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이식의 호)의 소시(小時)에 지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옳지 않다.

▶ 송강의 가사는 뛰어난 작품임.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말하기를, "천축인(天竺人, 인도인)의 풍속은 가장 문채(文彩)를 숭상하여 그들의 찬불사(讚佛詞)는 극히 아름답다. 이제 이를 중국어로 번역하면 단지 그 뜻만 알 수 있지, 그 말씨는 알 수 없다."하였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 문학은 자국어로 표현되어야 함.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의 가락이 있는 것이 시가문부(詩歌文賦)이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서 가락을 맞춘다면, 다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을 통할 수가 있는 것은 유독 중국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 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초동급부)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하다 하여도 그 진가를 따진다면, 정녕 학사(學士) 대부(大夫)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고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논할 수는 없다.

▶ 자국어로 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

하물며 이 삼별곡(三別曲)은 천기(天機)의 자발(自發)함이 있고, 이속(夷俗, 오랑캐의 풍속)의 비리(鄙俚)함도 없으니, 자고로 좌해(左海)의 진문장(眞文章)은 이 세 편뿐이다. 그러나 세 편을 가지고 논한다면, '후미인곡'이 가장 높고 '관동별곡'과 '전미인곡'은 그래도 한자어를 빌려서 수식을 했다.

▶ 송강의 가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 감상 및 이해

이 글은 김만중이 송강 정철의 가사를 우리 나라의 진정한 문학으로 극찬하면서, 국문 문학의 당위성을 논하고 있는 시화(詩話)이다. <서포만필>에 실린 글 중에서 김만중의 문학관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부분으로, 김만중은 문학의 기본 요소를 사람의 입으로 표현된 '말'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유교적 문학관과는 뚜렷이 대조되면서 국문 문학의 가치를 내세우는 근거가 되고 있다. 김만중은 내용 전달에 치중하는 한문학으로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우리말의 가락을 표현할 수 없으므로 우리말 문학이 진정한 문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글은 한문학만을 문학으로 인정하던 당시의 지배적인 견해를 물리치고 한글 문학의 가치를 인식함으로써 자주적인 문화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비평문(평론)

특성

1) 문화적 자주의식이 드러남.

2) 예시를 통해 논거를 제시함.

3) 비판적, 주관적, 비평적 성격

주제진정한 국문학의 제고(提高)

출전 → <서포만필>

● 참고자료

◆ 서포만필

2권 2책으로 된 김만중의 수필집이다. 중국 제자백가(여러 사상가)의 학설 중에서 의문시되는 대목을 번역 · 해명한 책으로, 불가(佛家) · 유가(儒家) · 도가(道家) · 산수(算數) · 율려(律呂) · 천문(天文) · 지리(地理) 등의 구류(九流)의 학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라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유명한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평하였다. 특히 송강 정철의 가사 작품을 평하면서 국문학의 우수성을 주장한 것은, 단테가 서양에서 지방어(민족어) 문학을 주장하고 '신곡'을 지음으로써 근대 문학의 첫 장을 연 사실에 견줄 만한 것이다.

 

◆ 조선후기의 비평 문학

비평 문학의 흐름은 임진 · 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실학사상과 더불어 매우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는 문학의 개성적 성격(표현의 사실성과 자율성 존중)을 강조하는 '탈재도적 문학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국문 시가에 대한 가치의 새로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문 시가에 대한 가치의 새로운 인식은 서포 김만중에게서 비롯되었는데, 김만중은 그의 문집 <서포만필>에서 송강 정철의 가사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참문장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 김만중의 국문학사적 위치

김만중은 김시습과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 문학의 거장으로 등장하여, 두 편의 한글 소설('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을 남겼다. 이것은 소설을 천시한 당대 분위기에서 국문 소설의 가치를 인식한 것으로, 이후 국문 소설의 황금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과 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함으로써 문학 이론에서 진보적인 정신을 보여 주었다.

 

◆ 김만중의 문학관

서포 김만중은 국어로 표현된 문학만이 진정한 문학이라고 보고, 국어 존중론에 입각한 국문학론을 주창함으로써 조선 시대 비평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말을 절묘한 리듬으로 살려 낸 정철의 가사 작품인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동방의 이소'라 하여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속미인곡'이 우리말을 잘 살렸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그의 문학관은 한자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대에 국어의 가치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문학을 도(道)를 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것으로 보고,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꾸밈보다는 진실에 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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