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님 박씨 묘지명(銘)                                  - 박지원 -

● 본문

유인(孺人, 벼슬하지 못한 양반의 죽은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 휘(諱, 죽은 이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 모(某)는 반남(潘南) 박씨(전남 나주시 반남면이 본관인 박씨 집안)인데, 그 동생 지원(趾源) 중미(仲美, 박지원의 자)가 다음과 같이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 이씨 택모(박지원 누나의 남편인 이택모) 백규(伯揆, 이택모의 자(字))에게 시집을 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신묘년(1771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나이 마흔셋이었다. 남편의 선산은 아곡(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인 바 장차 그곳 경좌(庚坐, 남서쪽을 등진 묏자리) 방향의 묏자리에 장사 지낼 참이었다.

백규는 어진 아내를 잃은 데다가 가난하여 살아갈 도리가 없자 어린 자식들과 계집종 하나를 이끌고 솥과 그릇, 상자 따위를 챙겨서 배를 타고 산골짝으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사실을 짤막하게 기술함. 백규가 아내를 잃은 후 살림을 줄여 시골로 떠난다는 대목으로 보아 몰락 양반의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슬기롭게 남편을 보필하고 자식을 건사한 아내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임)

나는 새벽에 두뭇개(지금의 서울시 옥수동 동호대교 부근의 나루)의 배에서 그를 전송하다 통곡하다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얼굴을 단장하시던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발랑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다가 새신랑의 말을 흉내 내 더듬거리며 점잖은 어투로 말을 하니, 누님은 그 말에 부끄러워하다 그만 빗을 내 이마에 떨어뜨렸다. 나는 골을 내 울면서 분에다 먹을 섞고 침을 발라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으로 만든 자그만 오리 모양의 노리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노리개를 꺼내 나를 주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하였다(너그러이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고 장난감을 주어 달래던 모습에서 고인의 조숙하고 어진 인품을 알 수 있는 구절임).

지금으로부터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28년 전 누님이 시집가던 날 글쓴이와 고인만의 사적인 추억 회상으로, 서정적인 방법을 취하고 있는 단락임)

강가에 말을 세우고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이름 등을 기록하여 상여 앞에 들고 가는 긴 깃발)이 펄럭이고 배 그림자는 아득히 흘러가는데, 강굽이에 이르자 그만 나무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검푸른 빛이 마치 누님이 시집가는 날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당시의 거울 같았으며,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울면서 그 옛날 누님이 빗을 떨어뜨리던 걸 생각하니, 유독 어릴 적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그때에는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으며 세월도 느릿느릿 흘렀었다. 그 뒤 나이 들어 이별과 근심, 가난이 늘 떠나지 않아 꿈결처럼 훌쩍 시간이 지나갔거늘 형제와 함께 지낸 날은 어찌 그리도 짧은지.(다시 못 볼 누이와 함께한 짧은 세월을 아쉬워하는 연암의 심정이 잘 드러남.)

떠나는 이(누님) 정녕코 다시 오마 기약해도 / 보내는 자(연암)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늘

이 외배(외로운 배) 지금 가면 어느 때 돌아올꼬? / 보내는자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

(후반부에 놓이는 운문으로, '명(銘)' 부분임)

● 감상 및 이해

연암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처럼 따르던 큰누이를 떠나보내며 쓴 묘지명과 시이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단순 나열한 천편일률적인 묘지명에서 벗어나 형식적인 파격을 시도했다. 고인에 대한 자신의 추모의 감정을 여실히 표현하고자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의 원제는 <백자증정부인 박씨묘지명>이다. 이 글은 출가한 뒤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다 죽은 큰누님을 위해 지은 묘지명이다. 연암은 고인의 성명, 가문, 생전 경력, 졸일, 수년, 가족 관계, 장일, 장지 등 묘지명에서 항례적으로 기술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극히 간략하게만 적고 있는 반면 생전의 누님에 관한 한 토막의 추억과, 장지로 떠나는 누님의 영구를 강 언덕에서 전송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묘지명의 상투적인 기술 방식을 피하고, 인상적인 삽화와 극적 장면 위주의 묘사를 추구함으로써, 돌아가신 누님에 대한 작자의 애정과 슬픔을 더 한층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명(銘)

구성

1) 기 → 죽은 누이에 대한 소개

2) 승 → 누이가 죽자 누이의 남편 백규는 살림을 줄여 시골로 떠남.

3) 전 → 자신과 누이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슬퍼함.

4) 결 → 누이를 위한 명(銘)

특성

1) 추도적, 애상적

2) 제목 → 묘지에 대한 명문(銘文), 죽은 이의 덕과 공로를 글로 새기어 후세에 영원히 전한다는 뜻

주제죽은 누이를 보내는 슬픔

출전 →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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