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유통시킨 책 장수              - 조수삼 -

● 본문

조생이 어떠한 사람인지 아무도 모른다(조생의 신비한 면모). 다만 책 장수로 세상에 뛰어다닌 지 오래 됐기에 귀하고 천하고 어질고 어리석은 사람을 막론하고 그를 보면 누구나 조생인 줄 알았다.

조생은 해가 뜨면 나와서 시장으로, 골목으로, 서당으로, 관청으로 달려갔다. 위로 벼슬을 하는 대부에서 밑으로 어린 동자에 이르기까지 만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조생은 달리는 것이 마치 나는 듯하다. (조생의 부지런한 면모)

그는 가슴이나 소매에 잔뜩 책을 담고 다니며, 책을 팔아서 남은 돈을 가지고는 술집으로 달려갔다. 술을 사 마셔 취하고 날이 저물면 달려서 돌아갔다(조생의 풍류가적인 면모). 그러나 아무도 그가 사는 집을 모르며 또 그가 밥을 먹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조생의 신비한 면모). 그는 베옷 한 벌 짚신 한 켤레로 다니는데, 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었다(조생의 소박한 면모).

영조 신묘년(1771) 때의 일이다. 중국 청나라 사람 주린(朱璘)이 지은 <명기집략(明紀輯略)>에 우리나라 태조와 인조를 모독하는 문구(태조 이성계의 출신을 잘못 기록하거나 인조반정을 부정적으로 표현함.)가 있었다. 중국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라고 요청하는 한편 세상에 전하는 그 책을 거둬들여 불태우고 책을 팔았던 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당시에 나라 안 책 장수들이 모두 죽었으나 조생만은 미리 알고 멀리 달아나 죽음을 면했다(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알고 있음).

한 해 남짓 뒤에 조생은 다시 나타나 책을 들고 달렸다. 사람들이 이상해서 혹 물어보면 조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내가 여기 있지 않소! 내 어디로 달아났단 말이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웃으며,

"잊었소.(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조생의 대답)" / 라고 대답하였다.

후에 또 누가 물으면 서른 다섯이라고도 했다. 올해 물어본 사람이 다음 해에 다시 따져서,

"어찌하여 또 서른다섯이라고 말하오?" / 라고 하면,

"허허, 사람 나이 서른 다섯이 좋은 때라고 하기에, 서른 다섯으로 내 나이를 마칠까 싶어서 나이를 더하지 않았거든(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조생의 대답)." / 이라 말하였다.

또 말하기 좋아하는 자가 조생을 보고 말했다.

"조생은 나이가 수백 살이야!(조생이 신비한 면모를 보이고, 또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

그러자 조생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수백 년 일까지 아우?"

이러는 그를 사람들이 비난할 수가 없었다(이치에 맞는 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데 술김에 이따금 자신이 듣고 본 바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개 백수십 년 전 옛날 일들이었다(말하기 좋아하는 자가 조생의 나이를 수백 살이라고 한 이유).

"괴롭게 다니며 책을 팔아서 무엇 하겠소?" / 라고 하면,

"책을 팔아서 술을 마시지."

"책들이 다 당신 책이우? 책에 담긴 뜻은 이해나 하시오?" / 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비록 책은 없지만 예를 들면 아무개가 어떠어떠한 책들을 몇 해 동안 수장하고 있었는데 그 책의 몇 권은 내가 판 것이지. 난 글의 뜻은 모르지만 어떤 책은 누가 지었으며, 누가 주석(註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을 내었고, 몇 질 몇 책인지는 훤하다오.(조생의 뛰어난 기억력)  그러니 천하의 책은 다 내 것이지요. 천하에 책을 아는 사람도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야. 만약 천하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는 책을 팔러 달리지 않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천하의 책으로써 나에게 명한 셈이니, 나는 내 인생을 천하의 책으로 마칠까 하오(조생의 책에 대한 애정)."

옛날 모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책을 사들이고 몸도 출세하고 이름을 날리더니 이제 그 자손이 책을 팔아먹고 집이 가난한 것을 보기까지 했지. 나는 지금까지 책으로 많은 사람을 경험하였소. 세상에는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한(못나고 어리석음) 사람이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아니 하더라오. 내 어찌 다만 천하의 책을 아는 것에 그치겠소. 장차 천하의 인간사도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을 것이라오.(책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삶과 가치를 알게 됨을 뜻함.)

경원자(작자인 조수삼의 별호)는 말한다.

내가 일고여덟 살 때에 제법 글을 엮을 줄 알았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어느 날 조생으로부터 <팔가문(八家文), 당송을 대표하여 고문으로 손꼽히는 8인의 문장. 여기서는 그들의 문장을 수록한 책을 뜻함> 한 질을 사서 어린 나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저 사람은 책 장수 조생이란다. 집에 가지고 있는 서책은 모두 조생에게서 사들인 것이다."

겉모양으로 보면 조생은 마흔 살처럼 보였는데, 그때가 벌써 40년 전 일이다. 그런데 조생은 아직도 늙지 않았으니 정말 보통 사람과 다른 것 같다(40년 전에 마흔 살처럼 보였으면 80세 정도 되어 보여야 하는데, 늙은 것처럼 보이지 않음).

나는 조생을 따랐으며 조생 역시 나를 매우 사랑해서 자주 나에게 들렀다. 이제 두발이 희끗희끗해졌고 손자 놈을 안은 것도 벌써 몇 년 된다. 그러나 조생은 장대한 체구에 불그레한 뺨, 푸른 눈동자, 검은 수염이 옛날 그대로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한번은 조생에게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불결한 것이 싫어서 ……."

그러고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목숨을 늘리고 싶어 하나 약물로 되는 것이 아닐세. 효도하며 우애하는 것을 두텁게 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양기를 돋우는 덕(德)이라네. 자네, 나를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귀찮게 묻지 않도록 좀 깨우쳐 주시게."(조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

아! 조생은 참으로 도를 지니고 숨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닐까. 그가 내게 들려준 말은 일찍이 노자, 장자로부터도 듣지 못했다(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조생).

● 감상 및 이해

오직 책만 파는 데 열중하는 조생을 통해 조선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인물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으로, 책 장수 조생의 오직 책만 파는 생활 방식,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행동하는 장면, 책과 술을 벗삼아 자유롭게 사는 모습 등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새로운 인물상을 확인하게 해준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 수필,

구성

1) 도입 → 주인공 조생에 대한 소개

2) 전개 → 조생의 신비하고 독특한 면모와 삶에 대한 가치관이 드러난 일화

3) 마무리 → 조생과 글쓴이의 인연과 조생에 대한 예찬

특성

1) 교훈적이고 전기적인 성격

2) 새로운 인물형을 통해 당대 선비들의 바른 삶의 길과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함.

3) 조선시대 서적상의 존재와 장서가의 출현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임.

주제 책 장수 조생의 자유로운 삶과 인물됨

출전 → <추재집>

● 참고자료

◆ 조수사(1762~1849)의 자는 지원, 자익이며, 호는 추재, 경원이다. 어려서부터 시로 이름이 났으며 만년까지 1,500여 수의 시를 창작하였다. '송석원 시사'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했으며, 여항 시단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시를 통해 교우한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그이 시에 대해 두보의 시풍에 근접한다고까지 평한 바 있다. 그러나 중인 출신으로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벼슬하지 못하다가 83세에 이르러서야 노인에 대한 예우로 진사시에 급제, 오위장 벼슬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 사신의 보좌역으로 여섯 차례 청나라를 오가면서 중국 문인들과 교분을 쌓기도 했다. 이렇게 경험과 지식이 많지만 신분상 제약이 있었던 조수삼의 면모는 작품 속 조생과 비슷하다. 따라서 글쓴이는 새로운 가치관이 존재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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