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과기(接果記)                   - 이규보 -

● 본문

일 중에 처음에는 망탄(妄誕, 허망하고 터무니없음) 환괴(幻怪, 덧없고 괴이함)한 듯하다가 나중에는 진실한 것이 있으니, 그는 바로 과목(果木)을 접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나의 선군(先君, 남에게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 때에 키다리 전 씨(田氏)라 불리는 이가 과수의 접목을 잘하였으므로 선군이 시험 삼아 시켜 하게 하였다.

동산에 나쁜 배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전 씨는 모두 톱으로 자르고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한 배나무를 구하여 몇 개의 가지를 깎아서 자른 나무에 꽂고 기름진 진흙으로 봉하였다(과일 나무 접붙이기의 좋은 예로 과일 나무의 접붙이기를 잘 하던 키다리 전씨의 방법임). 그때에 그것을 보니, 허탄한 것만 같았고, 비록 싹이 뾰족이 나오고 잎이 필 때에 이르러서도 또한 괴이한 요술만 같았다. 그러다가 여름에 지엽(枝葉)이 무성하고 가을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게 된 다음에야 마침내 진실이라는 것을 믿어서, 망탄 환괴하다고 여긴 의심이 비로소 마음에서 없어졌다.

선군이 별세하신 지가 무릇 아홉 해라 나무를 보고 열매를 먹으니, 그 엄하시던 얼굴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고, 혹은 나무를 부여잡고 목이 메어서 차마 떠나지 못한 적도 있다.(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배나무)

또 옛사람은 소백(召伯)과 한선자(韓宣子)의 일 때문에 감당(甘棠, 팥배나무,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을 꺾지 않고 아름다운 나무를 잘 북돋아 가꾸는 일이 있었는데, 하물며 아버지가 일찍이 보유하고 계시다가 자식에게 물려주신 이것이야 그 공경하는 마음이 어찌 꺾지 않고 북돋아 심은 그 정도일 뿐이랴? 그 열매도 또한 꿇어 앉아서 먹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생각하건대, 선군께서 이것을 나에게 물려주신 까닭은, 나로 하여금 개과천선을 마땅히 이 나무처럼 하도록 하신 것이리라.(이 글을 지은 이유) 이에 기록하여 경계하는 바이다.

 

* 소백과 한선자의 일 → 주나라 때 소백이 남국에 가서 문왕의 정사를 펼 적에 간혹 팥배나무 아래에서 쉰 일이 있었는데, 뒤에 그 지방 사람이 소백의 덕을 사모하여 그 나무를 아꼈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한선자가 노나라에 사신 가서 "주나라의 예법이 모두 노나라에 남아 있구려."하고 노나라를 높이 찬양하니, 계무자가 자기 집으로 한선자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한선자가 이때 계무자 집의 나무를 칭찬하자, 계무자는 "내가 이 나무를 잘 가꾸어서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 하였다는 고사를 말함.

● 감상 및 이해

이규보는 나쁜 품종에 좋은 품종을 접붙여 잎과 과일이 무성하게 자라는 배나무를 보고, 선군이 그 배나무를 물려주신 까닭은 자신의 결점이나 부족함을 알고서 항상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라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배나무를 통해 선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난 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배나무를 접붙이는 일과 관련된 글쓴이의 체험을 바탕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記)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에게 배나무를 물려주신 뜻은 나쁜 배나무가 좋은 배나무로 변한 것과 같이 잘못된 것, 나쁜 행위나 태도, 생각을 고치고 개선하여 올바른 길로 나아가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임을 글쓴이는 '개과천선'이란 말로 드러내고 있다. 작자는 배나무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참뜻뿐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 정리하기

갈래 → 고대 한문 수필, 기(記)

성격 → 우의적, 교훈적, 사실적

구성

1) 사실 → 선군이 과수의 접목을 잘 하는 키다리 전씨에게 배나무 접붙이기를 시킴.

2) 깨달음 → 키다리 전씨가 나쁜 품종 배나무에 유명한 배나무를 접붙여 성공한 모습을 보고 망탄 · 환괴한 마음이 사라짐.

3) 사실 → 그 열매를 먹으며 선군을 생각함.

4) 깨달음 → 선군께서 배나무를 물려주신 까닭은 이 나무처럼 개과천선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함.

특성

1) '사실-깨달음'의 구성 방식

2) 기(記) : 사물에 관한 기술과 더불어 자기의 감정이나 주제와 관계 있는 글을 기록한 산문

주제개과천선에 대한 가르침

출전 → <동국이상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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