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의 고민                     - 이인로 -   

● 본문

영양 보궐 정지상이 천마산에 있는 중이 거처하는 팔척방(八尺房, 매우 좁은 방)에서 쉬게 되어 밤새도록 시를 지으려고 고민하였으나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떠날 때 천천히 말고삐를 잡고 걸으며 웅얼거리다가 문득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야 연구(聯句, 한 사람이 각각 한 구씩을 지어 이를 합하여 만든 시)가 떠올랐으니,

'바위 위에 있는 늙은 소나무에는 한 조각 달이 걸치었는데, 하늘의 낮은 구름엔 천점(千點)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구나.' / 라고 읊었다.  이 시를 쓸 때 노마(老馬, 느리고 둔한 말)를 몰아 돌아와서 원중(院中)으로 직행하여 급히 붓을 놀려 벽에다 써 놓고 갔다(잊지 않기 위해).

강일용(고려 때의 시인) 선생은 백로(白鷺)에 대한 시를 지어 보려고 비를 무릅쓰고 매일 천수사(天壽寺) 남쪽 개천에 와서 두루 사방을 살펴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푸른 산허리를 끊고 날아갔도다[비할벽산요(飛割碧山腰)]' / 해 놓고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를,

"비로소 오늘 옛 사람이 도달하지 못한 곳(아주 좋은 시구의 창작)에 닿았으니 다음에 기재(奇才, 아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가 나타나서 이 시를 계속할 것이 틀림없소이다." /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시를 전배(前輩, 선배)들보다 탁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고생하여 지었을 뿐으로써 내가 그 시를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교목(喬木) 꼭대기에 앉아 집을 짓고, 푸른 산허리를 끊고 날아갔도다. [점소교목정 비할벽산요 (占巢喬木頂 飛割碧山腰)].'

이와 같이 시 한 구절을 전편 중간에 넣은 이유는 그 다음은 대강 채워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밝혀졌으므로 나머지는 채우기 쉽기 때문에). 이것은 꼭 주초(珠草, 아름다운 풀, 잘 만들어진 시를 뜻함)가 마르지 않고, 옥천(玉川, 맑은 강, 잘 만들어진 시)은 스스로 아름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 감상 및 이해

이 글은 시 창작에 대한 두 가지 일화를 엮은 글로, 첫 번째 일화는 정지상의 시 창작의 고통과 이를 극복한 즐거움을 표현한 글이고, 두 번째 일화는 강일용 선생이 남긴 시에 작자인 이인로가 내용을 보충한 것에 대해 쓴 글이다. 이 글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화(詩話)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시화'는 시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글로, 문학 비평적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 정지상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시를 통해 노래하고자 하였지만, 자연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적절히 전해 줄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어려워하고 있다. 정지상의 고통은 창작의 열매를 맺기 위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리하기

갈래 → 고대 한문 수필, 시화(詩話)

성격 → 비평적, 일화적

구성

1) 일화 ① → 정지상의 시 창작의 고통과 이를 극복한 즐거움

2) 일화 ② → 강일용 선생의 창작의 고통과 시 작법에 대한 나의 보충

주제창작의 고통과 그 극복 과정

출전 → <파한집>

● 참고자료

◆ 정지상의 시(詩)

정지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시단의 부진한 분위기가 일신되고 고려인의 정서를 개성적으로 표현한 작가가 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올 만큼 뛰어났었다. 정지상은 과거에 급제하기 전인 청년기에는 다정다감한 심성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를 지었다. 평이하고 정감적인 시어를 구사하여 이별이라는 인생사의 한 소재를 노래하였는데, 이는 고려 민중의 정감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고, 조정 관료로서 궁정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이전의 우수와 눈물의 시적 세계에서 궁궐 생활의 호사스러움, 현실을 초탈한 경지를 묘사하는 화려한 시적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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