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유록(海遊錄)                                  - 신유한 -

● 본문

9월 4일(계유) 맑음

강어귀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도 다 섭진주(일본 혼슈 긴키 지방 오사카 부에 있는 도시) 땅인데 땅이 넓어 시원하며 마을이 매우 번성하다. 앞에 줄룩줄룩한 산줄기들이 물을 휘돌아 섬으로 된 데마다 민가들이 있어서 종옥(鍾屋, )이니 점포니 하는데 동서로 놓여 바둑돌을 벌여 놓은 것 같다. 아름다운 나무와 참대들이 서 있으며 갈꽃과 억새풀이 얼씬거리는 등 가을 풍경이 더욱 기이하다. 갈매기와 학들이 물가에서 놀다 너울거려 날다 하니, 강호의 풍경이 문득 바다 밖 3천 리 파도에 시달려 온 객의 시름을 잊게 하여 누구나 얼굴에 유쾌한 빛을 띠었다.

큰 강이 동쪽으로 내려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 바닷가가 되어 물이 얕으니 우리 배가 더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 배는 강기슭 뒤쪽 끝자락에 돌려 대 두고 일본 다락배에 옮겨 탔다.

이윽고 뭇 왜인들이 배들을 갖추어 가지고 왔는데 화려하게 꾸며 아주 찬란하였다. 배에 이층 다락을 짓고 지붕은 나무를 기와처럼 새겨 파랗게 옻칠을 하였고 지붕 아래는 전체가 검고 다 번들번들 거울같이 빛나며 서까래, 난간, 지붕마루는 황금을 입혔다. 또 창문 중방과 천장까지도 그렇게 하여 사람이 배 안에 앉았거나 누웠을 때 옷이 모두 금빛으로 빛난다.

그리고 자주색 비단으로 휘장을 만들어 사방에 둘러쳤는데 거기에 군데군데 커다란 붉은색 술을 달아 늘인 것이 네다섯 척씩 늘어져 봉황의 꼬리 같았다. 또 난간 위에는 생사(가는 무영 올로 폭이 넓고 설되게 짠 피륙)같이 가늘고 무늬가 알씬거리는 붉은 발을 쳐서 강물에 한 자쯤 못 미치게 늘였다. 배꼬리에는 오색이 아롱아롱한 한 발 남짓한 끈에 황금 방울 둘을 달아 그 소리로 키(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가 노는 완급(느림과 빠름)을 알게 하였다. 또 물에 잠기는 배의 거죽에는 금빛 나는 쇠를 씌워 금빛과 물결이 서로 그림자를 얼씬거리고 있다.

노를 젓는 자가 배마다 스무 명씩인데 빨갛고 노랗고 파란 옷으로 구별되게 입혔다. 또 그 옷에다가 옷 빛깔과는 다른 빛으로 수를 놓아 거북 무늬를 만들었는데 노란 옷에는 검정 무늬, 파란 옷에는 빨간 무늬로 수놓아 색깔을 따라 각 배에 들여 서로 섞갈리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옷의 등허리에는 반드시 검은 전자(篆字, 전서체, 한자 서체의 하나)로 '과(過)' 자가 박혀 있었다. 또 노는 다 진홍빛으로 빛난다.

국서(國書, 국가의 원수가 국가의 이름으로 보내는 외교 문서)를 받들 때는 맨 앞에 있었으며 정사(사신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 부사, 종사관(통신사를 수행하던 임시 벼슬) 이하 당상 역관(통신사 통역을 맡아보는 관리)과 왜의 상급 통역과 군관 등 사신 일행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아홉 척에 타게 하였다. 배가 모두 각각 표식(무엇을 나타내 보이는 일정한 방식)이 있으며 화려하고 사치한 모습은 그리 차이가 없었다.

정사 공이 대마도주에게 말을 전하기를,

"누선이 이렇듯 사치한 것으로 보아 관백(일본 역사에서 성인이 된 왕의 최고 보좌관 또는 섭정)이 타는 배로 생각되니 우리가 타는 것은 예가 아닌가 합니다." / 하였다. 대마도주는 놀라 사례(상대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냄)하였다.

"이는 사신을 위하여 새로 지은 배입니다. 관백의 배가 아니오니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나중에 다른 왜인한테 물어보니 국서를 받든 배 말고 사신 이하가 탄 모든 배들은 다 각 주의 태수들의 배와 같았다.

밥 먹고 곧 떠나게 되었을 때 왜관이 전례(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일 처리의 관습)라 하여 나에게 국서를 받는 배로 먼저 가게 하였고 세 사신은 그 뒤를 따라 떠났다. 사신의 깃발과 군악을 실은 작은 배가 대열을 이루고, 군관과 역관은 또 그 다음으로 떠났으며 중하급 관리와 행장 등 온갖 물건을 실은 수십 척의 정묘한 채색 배가 또 각각 배속되었다. 나와 같이 배에 탄 자는 강진 현감 최필번과 사자관(문서를 정서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두 사람, 내가 데리고 간 동자 김세만, 악공 일여덟 명, 왜 금도(禁徒, 통신사를 호위하는 무리) 두 명, 통역 한 명이다. 배 안에는 차 끓이는 노구솥, 술병, 베개, 요들이 다 있고 앉는 자리는 다 두툼한 금빛 돗자리에 그림으로 선을 둘렀다.

국서를 넣은 용정(龍亭, 나라의 옥책이나 금은보배, 국서 등 귀중한 물건을 운반할 때 사용한 가마와 수레)을 받들어 뱃간의 중앙에 있는 방에 안전하게 잘 둔 뒤 악공에게 명하여 거문고, 저, 비파, 북, 장구, 피리를 갖추어 아악의 느린 곡을 연주하도록 하였다. 노 젓는 왜인이 또 뱃노래를 하여 그 목청이 높고도 맑게 잘 넘어가 마치 우리나라 절에서 큰 재를 올릴 적에 중이 목청을 높여 축원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으니 이 또한 매우 유쾌하였다.

강어귀에서 대판(大阪, 오사카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까지 30리 사이 강물이 넓었다 좁았다 하며 수심이 한두 길밖에 안 되는데 배가 크고 가벼워서 거침없이 가운데로 떠서 천천히 가고 있었다. 두 언덕은 다 돌을 쌓아 둑을 만들었는데 돌을 깎은 것 같았다. 물이 동서에서 흘러들어 못도 되고 소용돌이도 된 것이 많다. 지류 가운데 큰 것은 따로 잔잔한 호수가 되어 비단 띠처럼 마을을 싸고 돌아 흐르니 이렇게 된 데마다 무지개 같은 다리를 놓고 그림 같은 난간을 붙였다. 다리 기둥이 수십 척이나 되는 것도 있는데, 다리 아래로 배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 다리의 높이가 이러하니 그 길이도 짐작할 수 있다.

언덕 위 산기슭은 굽틀굽틀 뻗어나가 높았다 낮았다 하는데 층집과 날개를 편 듯한 누대가 구름 속에 빛나며 수많은 인가의 담장과 벽들도 다 깨끗하다. 작은 땅이라도 그저 내 버려 둔 데가 없다. 낮고 습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데면 푸른 잔디 언덕을 만들어 깨끗하게 해 놓아 어지러운 데라고는 없다. 그 중에서도 돌을 다듬고 쌓고 터를 닦아 집을 날아갈 듯이 지어 아득하게 강물을 굽어보게 하였고, 뜰과 우물가에는 노송과 가을 해당(해당화)을 심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화초들을 심어 깃발처럼, 양산처럼 별의별 형태를 만들었다. 비단 휘장을 치고 오색등을 달아 놓은 것들은 다 각 주 태수들의 별장이다. 그 아래 강기슭 수문에는 나무 울짱을 세우고 황금으로 장식한 배를 매어 두었는데 거기에는 사신이 탄 배 같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는 부호와 귀족들이 노는 곳이다. 또 강을 끼고 떠 있는 어선들과 상선(삯을 받고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데에 쓰는 배)들이 꼬리를 물고 잇달아 있다.

남녀 구경꾼들이 양쪽 언덕 위에 담을 이루고 서 있는데 다 비단과 무늬 놓은 화려한 옷을 입었다. 여자는 새까만 머리에 기름을 발라 윤기가 흐르는데 꽃 비녀와 대모(玳瑁, 바다 거북의 하나. 등껍질은 공예품과 장식품에 쓰임) 빗을 꽂았으며 얼굴에는 분을 발랐다. 그리고 빨갛고 파란 그림을 그린 장삼을 입은 데다가 화려한 띠로 허리를 동여 허리가 가느다랗고 기름하게 차렸으니 마치 절간에서 볼 수 있는 불화(불교의 내용을 그린 종교 그림)를 보는 듯하였다. 사내아이들 가운데 고운 아이는 복색과 차림이 여자보다도 더 아름답고 여덟 살 넘으면 왼쪽 옷자락에 진기한 칼을 꽂지 않은 아이가 없으며 강보에 싸여 있는 어린것까지도 알쏭달쏭 아기자기하게 차려 무릎 위에 앉히기도 하고 등에 업기도 하였으니 그 번화한 광경이 오색이 무르녹은 꽃동산을 이루었다.

앉을 수 있는 데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차지하였으니 강 좌우에 배를 대어 놓고 어깨를 비비면서 들어앉았으며 언덕에는 빈틈이 없어 멀리 담장이나 다리 난간을 의지하여 앉았다. 더러는 자리를 펴고 더러는 풀을 깔고 앉았고, 평상을 놓고는 비단 장막을 치고 술과 차도 갖추어 놓고 이것저것 먹고 마시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장소마다 자리를 만들어 놓은 임자가 있어서 음식을 준비해 놓고 팔기도 하며 자릿세로 한 사람 앞에 2전씩 받는데, 거리가 멀고 가까움과 자리가 좋고 나쁜 데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때때로 어린애가 우는 소리, 여자들의 웃음소리도 들리는데, 여자가 웃을 적에는 반드시 그림 무늬를 놓은 수건을 가지고 있다가 입을 가리곤 하며 맑고 간드러지게 웃을 때에는 새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사람도 길로 내닫거나 떠드는 자가 없었다. 가을볕이 내려쬐기 때문에 채색 수건으로 머리를 덮었거나 흰색 둥근 삿갓을 썼으며 모두 단정히 앉아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지형을 따라 구경꾼들의 대열도 높낮이와 폭의 변화가 있었다. 이렇게 20리 사이를 갈수록 더욱 번화하니 이를 보내고 맞는 우리의 눈동자 또한 분주하였다.

산천과 누대와 사람들의 차림만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참대숲과 꽃떨기가 또한 제각기 내로라고 나서며 샘을 내는 듯 다투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왼쪽만 바라보다가는 바른쪽 풍경을 잃을까 싶어서 바른쪽에 눈을 팔 때에는 왼쪽이 문득 더 기이해지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배가 한나절을 가는 동안 두 눈시울이 다 붉어지도록 눈을 팔았으니 마치 츱츱스러운(보기에 너절하고 염치 없는 데가 있는) 사람이 진기한 음식을 보고 자꾸 먹어서 배가 부른데도 입에서는 싫지 않음과 같았다.

대마도주는 강어귀에서 먼저 대판으로 들어가더니 해가 질 무렵에 다시 금빛이 찬란한 배를 타고 나와 맞았다. 멀리 바라보니 술을 늘인 휘장 속에 아렴풋이 보이는 민대머리 녀석이 우뚝이 앉았고 그 옆의 기물들은 다 금으로 장식하였으니, 아까울손 번화와 부귀가 허수아비에게 태어났구나!  내 배에 있던 금도와 통역은 이를 바라보자 곧 꿇어 엎드려 감히 일어나지 못한다.

긴 다리 일곱을 지나서야 비로소 대판에 도착하였다. 배를 언덕에 대니 연안에다 판자를 깔아 부교(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만든 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높이가 뱃전과 가지런하고 좌우에는 참대 난간이 있어 그 아담하고 빈틈없음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그 위에 뭇 왜인들이 가마와 말을 갖추어 가지고 둘러서서 바른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드디어 부교에 내렸다. 사신은 큰 가마를 타고 나와 당상 역관은 현교(가마의 하나. 긴 나무 하나를 위에 가로지르고, 두 명 또는 네 명이서 어깨로 멤)를 탔으며 나머지는 말을 탔는데, 말이 모두 준마로 늠름하며 금으로 장식한 안장에, 비단 다래에, 은 등자에 또 자주색 실과 녹색 실로 노끈을 꼬아 그물처럼 만들어 안장 뒤에서 말 궁둥이까지 덮어 오물을 막도록 늘어뜨렸으니 오색이 찬란하였다. 마부와 가마꾼, 그 밖에 딸린 사람들의 수가 우리 사신 일행의 관직 위계를 따라 각각 다른데 적어도 대여섯 명씩은 되었다.

국서를 받들고 군악을 연주하면서 6~7리쯤 가서 숙소에 이르렀다. 그 사이 한길 좌우에 서 있는 긴 행랑은 다 층집으로 일용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길 양쪽을 메웠는데 화려하고 사치함에 어지럼증이 날 지경이었다. 부두에서 사관까지 거리를 몇몇이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길이 내내 평탄하고 곧으며 티끌이 없었다. 양쪽에 주렴과 그림 휘장을 쳐 치장한 층집에는 위층 아래층 할 것 없이 푸른빛, 붉은빛, 보랏빛, 자줏빛, 초록빛, 누런빛 등으로 무늬 놓은 옷을 입은 남녀노소들이 가득 차 있었다.

● 감상 및 이해

조선 숙종 때 제술관 신유한이 조선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글이다. 사대주의가 팽배했던 조선 시대에는 '일본은 우리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유한은 직접 그들의 나라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발전된 문화와 풍속, 제도를 보며 놀라워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면서 글로 기록했다.

제술관은 주로 사신 행차의 글에 관한 직무를 담당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 사신들을 학사대인(學士大人)이라 부르면서 시문과 학문토론을 청하였으므로, 그런 일본인들을 맞이하는 것 또한 제술관의 중요한 임무였다. <해유록>은 1719년(숙종45)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10개월간의 일기가 3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끝에 <문견잡록(聞見雜錄)>이 수록되어 있다. 상권은 사명을 받은 날로부터 일본 우시마도에 이르기까지의 6개월 간으로, 그 내용은 의식적 행사와 영물(詠物)에 관한 시문으로 되어 있다. 지리 · 인습 · 풍속 · 제도뿐 아니라 초목에 관하여도 기술되어 있다. 중권은 일본에 체류 중인 주로 승려들과 필담한 내용과 문집에 서문을 써 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담의 내용은 조선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에 화답한 것으로, 이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권은 귀국하여 복명할 때까지의 기록이며, <문견잡록>은 일본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 풍속에 관한 것이 많고 몇 사람의 인물평과 일본의 주자학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기행문, 록(錄)

구성 → 여정에 따른 추보식 구성

1) 강어귀

2) 다락배

3) 대판

4) 숙소까지 가는 여정

특성

1) 묘사적, 사실적, 비유적, 주관적 성격

2) 제목 → '바다를 여행한(일본을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임.

3) 여행하면서 본 마을 묘사, 사람들의 복장 및 자연경관 묘사, 타고 간 배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구성

주제일본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

출전 → <해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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