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                      - 박지원 -

● 본문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족하다.

글을 지으려 붓을 들기만 하면 옛말에 어떤 좋은 말이 있는가를 생각한다든가 억지로 경전의 그럴듯한 말을 뒤지면서 그 뜻을 빌려 와 근엄하게 꾸미고 매 글자마다 엄숙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은, 마치 화공(畵工)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때 용모를 싹 고치고서 화공 앞에 앉아 있는 자와 같다. 눈을 뜨고 있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으며 옷의 주름은 쫙 퍼져 있어 평상시 모습과 너무도 다르니 아무리 뛰어난 화공인들 그 참모습을 그려 낼 수 있겠는가. (억지로 꾸며진 진정한 문장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 글을 써야 함.)

글을 짓는 일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말이란 꼭 거창해야 하는 건 아니다. 도(道)는 아주 미세한 데서 나누어진다. 도에 합당하다면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인들 왜 버리겠는가. 이 때문에 도올(몸은 호랑이 같고 털은 개와 같으며 얼굴은 사람 같은 흉악한 짐승의 이름)이 비록 흉악한 짐승이지만 초나라에서는 그것을 자기 나라 역사책의 이름으로 삼았고(한나라 때의 동방삭이 지었다는 <신이경>의 '서황경'에 따르면, 이 짐승의 몸은 호랑이 같고 털은 개와 같으며 얼굴은 사람 같다고 함. 춘추시대 초나라는 자국의 역사책을 <도올>이라고 했는데, 이는 역사 기록을 통해 악을 정치하려는 의도에서였음), 무덤을 도굴하는 자는 흉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과 반고는 이들을 자신의 역사책에서 언급했던 것이다(사마천의 <사기>는 '화식열전'을 비롯한 여러 글에서 무덤의 도굴을 일삼은 도적들에 대해 서술해 놓고 있음. 반고의 <한서>에도 도둑이나 살인자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임). (주변의 추악하거나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뜻함.)

글은 짓는 건 진실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글을 잘 짓고 못 짓고는 자기한테 달렸고, 글을 칭찬하고 비판하고는 남의 소관이다. 이는 꼭 이명(耳鳴, 귀울림. 몸 밖에 음원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 남은 못 듣지만 자신은 들을 수있음)이나 코골이(자면서 코를 고는 일. 자신은 들을 수 없고 남이 듣는 소리)와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왜앵'하고 귀가 울자(이명) '와!'하고 좋아하면서 가만히 옆의 동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왜앵'하는 소리가 난다.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笙篁, 아악에 쓰는 관악기의 하나)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동글동글한 게 꼭 별 같단다."

그 동무가 자기 귀를 갖다 대 보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답답해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다.(이명에 대한 설명)

언젠가 어떤 시골 사람과 한 방에 잤는데 그는 드르렁드르렁 몹시 코를 골았다. 그 소리는 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 같기도 했으며,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보글보글 솥이 끓는 것 같기도 했으며, 빈 수레가 덜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 같고 숨을 내쉴 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적 없소이다!" (코골이에 대한 설명)

쯧쯧! 제 혼자 아는 게 있을 경우 남이 그걸 모르는 걸 걱정하고(자신의 훌륭한 작품을 남이 몰라줄까봐 걱정함:유추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을 경우 남이 먼저 깨닫는 걸 싫어한다(내 글에 대한 남의 타당한 지적을 싫어함:유추②).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겠는가! 문장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 이명은 병이건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니 병이 아닌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코를 고는 건 병이 아니건만 남이 흔들어 깨우면 골을 내니 병인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그것을 하찮은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처럼 여겨 버리지 않는다면 저 화공의 그림에서 흉악한 도적놈의 험상궂은 모습을 보게 되듯이 진실함을 볼 수 있으리니, 설사 이명은 듣지 못하더라도 나의 코골이를 일깨워준다면 아마도 글쓴이의 뜻일 것이다. (연암은 창작과 수용의 관계를 유추를 통해 드러내고 있음)

● 감상 및 이해

박지원은 실학자답게 글 또한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글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진솔하게 나타내면 되는 것일 뿐 공연히 근거 없는 말로 글을 억지로 꾸며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연암은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 대상의 실체, 즉 거짓되지 않은 참모습을 표현해 내는 데 있음을 말하면서 고문의 어구나 경전의 뜻을 찾아 문장을 그럴듯하게 꾸미게 되면 쓰고자 하는 진실을 정확히 표현해 낼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는 근대의 사실주의 정신과도 그 맥이 통하는 이론이다. 이 글에 나타난 글쓰기에 담긴 생각은 당시 문단의 지배적인 추세이던 중국의 고전을 모델로 하고 그 권위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강력히 거부하고자 한 글쓴이의 의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암은 작가만이 경험할 수 있는 내밀한 지점과 은밀한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창작과 수용이 별개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또 비평의 의의와 존재 이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연암은 자신의 글이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와 같이 하찮은 것이지만 진실을 담고자 하였다는 점을 밝히고, 자기 글의 부족한 부분이나 문제점을 비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정리하기

성격 및 갈래 → 고전수필, 서(序)

구성

1) 기 → 글은 진실하게 표현해야 함.

2) 승 → 주변의 추악하거나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음.

3) 전 → 이명과 코골이에 대한 설명

4) 결 → 이명이나 코골이와 같이 자기 글의 부족한 면이라든가 남이 평가해 주는 문제점을 알 때 진실한 글쓰기가 실현됨.

특성

1) 유추적, 비유적, 논리적

2) 제목→ '공작관'(연암 박지원의 또 다른 호) '문고자서'(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에 쓴 서문)

3) 이명과 코골이를 통해 창작과 비평의 문제를 유추함.

주제글은 자신의 생각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임.

출전 → <공작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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