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계 전(友鷄傳)                        -이 익-

내가 암탉 한 마리를 길렀는데, 성품이 매우 자애로워 병아리 한 배를 길러놓고 두 번째 병아리를 기르면서 첫 번째 배의 병아리도 함께 먹이고 있었다. 앞 배의 것은 겨우 깃이 생기고 뒤의 것은 아직 솜털뿐인데, 하룻밤에 어미 닭이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았고 병아리도 큰 것은 역시 잡혀갔다. 암컷 한 마리가 요행히 도망쳤으나 역시 대강이와 죽지에 털이 빠지고 전신에 상처를 입어 모이도 제대로 못 쪼았다.

병아리 떼는 삐약거리며 몹시 애닯게 어미를 찾고 있었는데 상처 입은 암컷이 상처가 조금 나아지자 즉시 병아리 떼를 불러서 품어 주는 것이었다(우애를 실천하는 암탉의 행위)  집안 사람들이 처음엔 우연이려니 하였으나 이윽고 먹이를 보면 반드시 부르고, 다닐 때는 꼬꼬꼬 하는 어미닭 소리를 내며 뜰 앞을 떠나지 않고 혹 깃을 벌려 환란을 막기도 하였다. 또 어쩌다 서로 엇갈리면 두리번대며 미친 듯이 날고 뛰면서 찾아다니니,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자애하고 따름이 흡사 그 어미와 그 새끼 같았다. 또한 짐승의 해를 피하여 사람을 가까이하고 처마 끝 돌출된 곳에서 자곤 하였는데, 때마침 큰 장마가 두어 달 계속되니 그 두 깃으로 병아리를 덮어 비에 젖는 것을 모면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몸이 작고 다리가 짧아서 굽힐 수가 없으니 밤새도록 꼿꼿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기를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결같이 하니, 보는 이마다 감탄하였다(인간을 감동시킨 암탉의 행위).  이에 이름을 '우계(友鷄)'라고 명명하고, 사람들이 불선(不善)한 행동을 하면 서로 주의를 주기를 "우계를 보아라, 우계를."라고 하면 부끄러워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인간에 대한 경책의 수단으로 삼음). 그러므로 볏가리의 곡식을 쪼아도 차마 몰아내지 못하였으니 사람에게 신임받기를 이처럼 하였다.

마침내 병아리는 자라서 주먹만큼씩이나 한데, 우계는 여전히 어리고 약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변함없이 먹이고 덮어 주고 하느라 자신은 병이 드니, 이것은 밤에 이슬을 맞아가며 병아리 기르기에 애쓴 노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더욱더 측은하게 여겼다.

그런데 들짐승이 몰래 엿보고 있을 줄이야. 마침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잃어 버렸는데 집안사람들이 쫓아갔으나 놓치지 말았고, 고작 산길에 흩어져 있는 부러진 깃만 찾아내었을 뿐이었다. 내가 마침 외출해서 돌아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다. 혹 잔해(殘骸)라도 남은 것이 없나 하고 두루 찾아보았지만 없었고, 산길에 떨어진 것을 주워 모아 상자에 넣어 산에 묻고 '우계총(友鷄塚)'이라고 명명하였다.

아, 고금(古今)의 말이 만물도 한 가닥의 트인 것이 있다고 하는데, 까마귀의 자식 노릇과 벌의 신하 노릇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그러나 벌은 분봉(分蜂)이 있어 떼갈림이 있고 이익과 해독을 함께할 수 없으며, 까마귀도 젖 먹은 은혜를 보답할 뿐이고 우애의 도리에 있어서도 천고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애란 부모의 심정을 미루어 형제에 미치는 것으로 사람도 쉽지 않은 것인데, 더구나 동물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무릇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혹은 선배가 이끌어 주기도 하고 혹은 풍속의 본을 받기도 하며 또는 명성을 위하여 가식을 좋아하기도 하는 이가 있으니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지금이 동물은 누가 가르치고 누구에게 배웠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가식을 하였겠느냐(우계는 배우지 않고도 가식 없이 본성을 실천함).

인간의 행실은 본래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있다. 그러므로 해박(該博)한 상식과 돈독(敦篤)한 행실은 어린아이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인데, 지금 이 동물은 병아리를 채 못 벗어났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동물은 성인이었을까. 형태의 본성을 실천하는 것이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우계는 한낱 날짐승으로서 인간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공적(功積)을 이루고 자신은 죽어 보답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이치는 통달함을 부여받았으나 운수를 각박하게 만난 것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남들은 예사롭게 여기지마는 만물이 서로 엇비슷함이 있으니(인간만이 본성을 실천할 수 있다는 주장과 대비→ 인간 중심주의적 편견에 대한 반론적 인식(일반적 인식과 다른 독창적인 관점))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오가는 이가 보게 하노라.

해           설

● 이해 및 감상

이 글은 글쓴이가 암탉의 우애를 지켜본 경험을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인간들의 가식적인 인간관계를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고전 수필이다. 일상생활에서 직접 경험한 구체적 사실로부터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유추해 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글에서 글쓴이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곧 진정한 본성의 실천에 관한 것으로, '닭'이라는 동물이 우애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형태와 모습에 관계없이 본성을 실천할 수 있음을 말하면서,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인간만이 본성을 실천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는 편견임을 경계하고 있다.

 

● 요점 정리

◆ 갈래 : 고전 한문 수필

◆ 성격 : 우의적, 교훈적, 비판적

◆ 주제 : 우애의 실천 및 인간 중심의 편견에 대한 경계

◆ 특성

* 대상을 세심한 눈으로 관찰함.

* 구체적인 경험에서 바람직한 삶을 위한 의미를 유추함.

* 인간과 우계를 대비하여 가식적인 인간관계를 비판하고 인간 중심의 편견을 경계함.

인 간

 ↔

우 계

  • 배움을 통해 본성을 실천함.
  • 가식으로 본성을 실천함.
  • 시종여일한 본성 실천이 어려움.
  • 배우지 않고 본성을 실천함.
  • 가식 없이 본성을 실천함.
  • 시종여일하게 본성을 실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