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설(鏡說)                               -이규보-

거사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리운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 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 나그네의 질문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아른아른한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기 싫어할 것인즉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깨쳐 버릴 바에야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 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 거사의 답변

# 거사 → 벼슬하지 아니하고 속세를 멀리하며 살아가는 선비

#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거울의 고정적 기능에 대한 관점을 피력한 부분.  거울의 일상적 용도 및 명경지수같은 기품을 즐기는 기능을 말함.

# 얼굴이 잘 생기고 ~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 세상에는 결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으므로 지나친 결벽과 청명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그 결점을 이해해 주려는 유연한 태도를 취해야 함을 말함.

#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 뿐 ~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 거울의 본성은 맑은 것이나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을 말하면서, 인간에 있어서도 본성이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의 자세를 보임.

# 아! 옛날에 ~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 → 인간의 결점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열린 마음을 상징하는 진술임.

 해          설

● 이해 및 감상

이 작품은 고려 무신 정권기의 문인 이규보의 한문 수필이다. 작품의 제목 '경설'이란 '거울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먼지 낀 거울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 거사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처세에 관한 관조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글이다. 맑은 거울보다는 도리어 먼지가 낀 상태로의 흐린 거울을 취하는 거사의 태도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난해한 느낌마저 든다. 거울의 본성은 원래 맑은 것이지만,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을 말하면서 인간에게도 본성이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울'이 주는 교훈은 유연한 처세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요점정리

작자 : 이규보

갈래 : 고전 수필, 한문 수필, 설(說)

성격 : 처세훈적, 풍자적, 교훈적, 관조적, 비유적

표현 : 대화체(문답법), 번역체의 문체, 비유와 우의적 방법의 사용, 간결하고 소박한 표현

주제

* 바람직한 처세훈적(處世訓的) 의식과 현실에 대한 풍자

*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출전 : <동국이상국집>

내용 : 나그네의 질문과 거사의 답변으로 이루어지며, 격이 높고 심오한 철학과 경륜이 담겨 있음.

특징

① 철학적 사색이 담긴 글

② 처세의 방편을 알려주는 글

③ 대화를 통해 주제를 암시

④ 사물(거울)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글

 

● <경설>의 주제의식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처세훈(處世訓)적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나, 이에 부수하여 현실에 대한 풍자적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처세훈적 의미로 파악해 보면 거울의 본성은 깨끗하고 맑은 것이나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거울의 본성이 그러하듯이 인간에 있어서도 본성 자체가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거사가 흐린 거울을 택한다는 의미는 세상에는 오히려 흠과 티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상례인데 지나치게 결벽하고 청명한 태도만으로 일관하기 어려움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박절하지 않은 인간 관계와 허물까지도 수용하는 처세의 필요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또 이규보가 살던 시대가 내우외환으로 어렵던 시대임에 비추어 볼 때, 흠과 티끌을 탓하여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해서는 살아가는 지혜에 이를 수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규보가 자기 자신의 글 쓰는 행위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흐린 세태에 결벽의 정신으로 대결하면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풍자적 시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중요 소재의 상징적 의미

(1) 거울 → 작중화자(거사)가 반려로 삼고자 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작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 또는 작자를 알아 인정해주는 어떤 대상일 수도 있다. 또한 거울에는 너무 맑고 결백해서 상대방의 흠이나 결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 관계에 대한 비판 의식도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체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거울은 인간의 본성과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누구나 사람의 본성은 맑고 깨끗하지만, 세상의 먼지와 티끌이 끼어 그 본성이 흐려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2) 나그네 → 세속적, 인습적 고정관념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

(3) 거사 → 수필적 자아는 수필을 쓴 사람 바로 그 자신이다. 수필의 작자는 그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와 대화하며 자신의 인격, 인생관, 세계관 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작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와 대화하지 않고, '거사'라는 허구적 대리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거사의 말이 작자의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경설>에 드러난 작가의 세계관과 시대적 배경

이 글에 드러난 작가의 처세관은 그가 생존했던 시대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규보는 무신 정변이 터질 무렵에 태어나서 최씨 집권기에 주로 활동한 인물이다. 무신란은 고려의 정치 · 사회적 상황을 크게 바꾸면서 지배 계층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기존 귀족 계층은 몰락하고 신진 사류가 등장하였다. 이규보는 신진 사류에 속하는 인물로 무신란 이후 집권자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임춘과 같은 기존 귀족 출신들은 세상을 버리고 '강좌칠현' 같은 도피자 모임을 결성, 잘못된 세상과 결별하고자 했다. 이런 사람들을 이규보는 맑은 거울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 곧 그릇된 처세관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