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축 일 기                              -어느 궁녀-

          

           

       

        

             

 

해          설

● 이해 및 감상

이 일기의 작자는 서궁에서 인목 대비를 모시고 있던 나인(궁녀)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광해군의 폭정(暴政) 속에서 영창 대군(永昌大君)이 죽고, 인목 대비(仁穆大妃)는 폐위되어 서궁(西宮) 곧 덕수궁에 유폐당하는, 궁중 안의 파당과 무고와 살육의 소용돌이를 일기 형식으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가 섬세한 여인이었던 만큼 궁중생활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된, 인정, 풍속, 언어 등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고전 연구에도 가치가 크다 하겠다.

순수 고유어를 구사하여 문학성이 높으며, 전아(典雅)하고 중후(重厚)한 궁중어와 문체를 남기고 있으며, 궁중의 비밀과 음모를 소상하게 서술하고 있어 조선조 궁중생활의 이면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계축일기는 ‘인현왕후전’, ‘한중록’과 함께 궁중 비사(秘史)를 그린 3대 궁중 문학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특별히 문장을 꾸미지 않았지만, 사건에 대한 관찰이 섬세하고 서술의 태도도 신중하여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생동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 작품은 궁중의 비화 뿐만 아니라 당시 조정을 휩쓸고 있던 정치 풍토를 정확히 파헤쳤으며, 비극에서 시작하여 비극 속을 살다 간 한 여인의 심정을 객관적인 필치로 기록한 점에 더욱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인용된 본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어린 영창대군의 마음과 인목대비의 비통이 극에 달하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처절함과 비통함이 실감있게 묘사되어 당시의 처절한 정황을 여실히 반영해 주고 있는 장면이다.

 

● 요점 정리

작자 :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내명부의 궁인 또는 궁녀)이 쓴 것으로 추정

갈래 : 일기체 수필. 궁중 수필

표현 : 전아하고 중후한 궁중어 사용

문체 : 내간체. 산문체

성격 : 기록문학. 궁중 수필. 일기체 수필

별칭 : 서궁록 또는 서궁일기

주제 : 궁정 내의 권력 투쟁의 비극. 파당의 무공에 의한 궁중 애사

비교작품

* 조선조 19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와 관련된 <인현왕후전>(작자미상)

* 조선조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 사조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

의의

①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궁중비사를 그린 3대 궁중문학

② 한문 고사를 떠나 순 우리말로 썼으며, 전아중후한 궁중어가 풍부함.

③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되는 인정, 풍속과 착잡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묘사

 

● 참고

◆ 역사적 기록

선조의 아들 13명은 모두 후궁의 소생이었다. 마지막으로 난 영창대군만이 정궁 소생이었다. 선조는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을 싫어하며 영의정 유영경 이하 몇 신하들과 영창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몰래 의논했는데, 이 눈치를 챈 이이첨, 정인홍 등은 세자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 선조의 비위를 거슬려 무근한 소리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광해군은 당일로 즉위하여 귀양가게 된 둘을 조정으로 불렀다. 광해군은 형 임해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서궁에 잡아 가두고,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을 반역죄로 몰아 서소문 밖에서 사형에 처하는 한편, 영창대군도 같은 죄목으로 庶人으로 만들어 강화에 끌려가서 갇혔다가 14세 어린 나이에 정항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그 후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광해군 15년(1623년) 살제폐모사건을 이유로 서인 이귀 등이 의거하여 인조 반정이 이루어져 능양군이 왕위에 추대되어 인조가 되었고, 인조가 등극했을 때 인목대비도 복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