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일기(東溟日記)                       - 의유당 -

<해맞이 장면만 수록>

Ⅰ.

행여 일출을 못 볼까 노심초사(근심하면서 속을 태우는 것)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의유당의 시중을 드는 사람)를 불러 사공(沙工)다려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

하되, 마음에 미쁘지(믿기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먼 데 닭이 울며 연(連)하여 자초니(잦아지니, 날 새기를 재촉하니), 기생과 비복(婢僕)을 혼동하여 어서 일어나라 하니,밖에 급창(及唱)이 와,

"관청 감관(官廳監官)이 다 아직 너모 일찍 하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

하되 곧이 아니 듣고, 발발이(다급하게)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으되 아니 먹고, 바삐 귀경대(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대의 이름)에 오르니,

Ⅱ.

달빛이 사면에 조요(照耀, 환하게 비치어 빛나니)하니, 바다이 어제 밤도곤 희기 더하고, 광풍(狂風)이 대작(大作)하여 사람의 뼈를 사못고(사무치고), 물결치는 소래 산악이 움직이며, 별빛이 말곳말곳(말똥말똥)하여 동편에 차례로 있어 새기는 멀었고, 자는 아해를 급히 깨와 왔기 치워 날치며(추워 날뛰며), 기생과 비복이 다 이를 두드려 떠니, 사군(使君, 나랏일로 외방에 있거나 나라의 사명을 받들고 온 사람)이 소래하여 혼동 왈,

"상(常) 없이(분별없이) 일찍이 와 아해와 실내(室內, 남의 아내를 일컫는 말, 여기서는 자기의 아내를 말함) 다 큰 병이 나게 하였다."

하고 소래하여 걱정하니, 내 마음이 불안하여 한 소래를 못 하고, 감히 치워하는 눈치를 못 하고 죽은 듯이 앉았으되,

날이 샐 가망이 없으니 연하여 영재를 불러,

"동이 트느냐?"

물으니, 아직 멀기로 연하여 대답하고(아직 멀었다는 말만 계속해서 대답하고), 물치는 소래 천지 진동하여 한풍(寒風) 끼치기(밀려들기) 더욱 심하고, 좌우시인(左右侍人, 주위에서 시중드는 사람)이 고개를 기울여 입을 가슴에 박고 치워하더니,

Ⅲ.

마이(매우) 이윽한 후,

동편의 성쉬(星宿ㅣ, 별이) 드물며, 월색(月色)이 차차 열워지며(엷어지며), 홍색이 분명하니, 소래하여 시원함을 부르고 가마 밖에 나서니, 좌우 비복과 기생들이 옹위하여(부축하여 호위하여) 보기를 죄더니(마음 졸이더니),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홍 대단(眞紅大緞, 진홍색의 비단) 여러 필(疋)을 물 우희 펼친 듯, 만경창패(萬頃蒼波ㅣ, 끝없이 넓은 바다)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옥하고, 노하는 물결 소래 더욱 장(壯)하며, 홍전(紅氈, 붉은 색깔의 모직물) 같은 물빛이 황홀하여 수색(水色)이 조요하니, 차마 끔찍하더라(놀랍고 대단하더라).

붉은 빛이 더욱 붉으니, 마조 선 사람의 낯과 옷이 다 붉더라(시각적 이미지가 생생히 표현됨). 물이 굽이져 치치니, 밤에 물 치는 굽이는 옥같이 희더니, 즉금(卽今, 지금) 물굽이는 붉기 홍옥(紅玉) 같하야 하늘에 닿았으니, 장관을 이를 것이 없더라. → 직유와 대조를 통해 동트기 전의 경치를 생생하게 표현함.

Ⅳ.

붉은 기운이 퍼져 하늘과 물이 다 조요하되 해 아니 나니, 기생들이 손을 두드려 소래하여 애달와 가로되,

"이제는 해 다 돋아 저 속에 들었으니, 저 붉은 기운이 다 푸르러 구름이 되리라."

혼공하니, 낙막(落寞, 마음이 쓸쓸함)하여 그저 돌아 가려하니, 사군과 숙씨(叔氏, 시아주버니, 남편의 형제)셔,

"그렇지 아냐, 이제 보리라."

하시되, 이랑이, 차섬이 냉소(冷笑, 쌀쌀한 태도로 비웃으며)하여 이르되,

"소인 등이 이번뿐 아냐, 자로 보았사오니 어찌 모르리이까. 마누하님, 큰 병환 나실 것이니 어서 가압사이다."

하거늘, 가마 속에 들어앉으니, 봉의 어미 악써 가로되,

"하인들이 다 하되, 이제 해 일으려 하는데 어찌 가시리요. 기생 아해들은 철 모르고 즈레(지레, 지레짐작으로) 이렁(이렇게) 구는다."

이랑이 박장(拍掌) 왈,

"그것들은 바히(전혀) 모르고 한 말이니 곧이 듣지 말라."

하거늘, 돌아 사공다려 물으라 하니,

"사공셔 오늘 일출이 유명하리란다."

하거늘, 내 도로 나서니, 차섬이, 보배는 내 가마에 드는 상(모양) 보고 몬저(먼저) 가고, 계집 종 셋이 몬저 갔더라.

Ⅴ.

홍색(紅色)이 거록하여(매우 아름다워)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노더니, 이랑이 소래를 높이 하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

웨거늘(외치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앗고(헤치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 같은 것이 차차 나 손 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적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 호박(瑚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 투명)하기는 호박도곤 더 곱더라.

그 붉은 우흐로 흘흘 움직여 도는데, 처음 났던 붉은 기운이 백지 반 장 넓이만치 반듯이 비치며, 밤 같던 기운이 해 되어 차차 커 가며, 큰 쟁반만 하여 울긋불긋 번듯번듯 뛰놀며, 적색(赤色)이 온 바다에 끼치며,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흔적이 없어지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자주) 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 뛰놀며, 황홀히 번득여 양목(兩目)이 어즐하며, 붉은 기운이 명랑(明朗, 밝고 환함)하여 첫 홍색을 헤앗고, 천중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 같하야 물 속으로 치밀어 받치듯이 올라 붙으며, 항, 독 같은 기운이 스러지고,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혀처럼 드리워 물속에 풍덩 빠지는 듯 싶으더라.

일색(日色)이 조요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 맑고 화창함)하니, 만고천하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 맞대어 견줌)할 데 없을 듯하더라.

Ⅵ.

짐작에 처음 백지 반 장만치 붉은 기운은 그 속에서 해 장차 나려고 우리어(내비치어) 그리 붉고, 그 회오리밤 같은 것은 진짓(진짜의) 일색을 빠혀(빼어, 뽑아) 내니 우리온 기운이 차차 가새며, 독 같고 항 같은 것(해 주변을 감싼 붉은 기운)은 일색이 모딜이(몹시) 고온 고로, 보는 사람의 안력(眼力)이 황홀하여 도모지 헛기운인 듯 싶은지라.

해        설

● 이해 및 감상

이 글은 순조 32년에 발표한 내간체 기행수필로서, 필자의 문집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에 전하는 것이다. 작자는 기축년(1829) 8월에 남편에게 여러 차례 부탁하였다가 겨우 신묘년(1831)에야 허락을 받아 해돋이 구경을 갔으나, 구름이 끼어 구경을 못 하고 돌아오면서, 악사들의 풍류와 기생들의 춤을 즐기다 돌아왔었다. 그러나 동행의 일출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워 다시 남편을 졸라 이듬해에 날을 받아 함흥 판관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가 귀경대에 올라 일출의 장관을 구경하고, 조선 태조의 고적지도 샅샅이 구경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 때의 일출 감회를 기록한 글이 '동명일기'이다. "9월 17일에 가서 18일에 돌아와 22일에 기록하노라."하고 이 글을 맺었는데, 이렇게 말미에 정확하게 일시를 기록한 것은 기행문의 격식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동명일기'는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어떤 격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 경치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해돋이를 보려는 지은이의 집념과 가치섬 일대에서의 뱃놀이 풍류, 귀경대에서 본 월출과 일출 광경, 이성계의 본궁 관람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동명일기' 중 수록된 이 부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일출의 장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일출을 기다리는 과정이, 후반부에서는 해돋이 광경을 여성 특유의 세심한 관찰과 사실적으로 표현한 치밀한 필치가 드러나 있다. 이렇듯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동명일기'는 기록문학이 어떻게 문학성을 띠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국어 구사력의 뛰어남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말의 멋스러운 사용으로 표현의 운치를 드높인 것이나, 일출 광경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과 색채가 매 순간마다 치밀하고 예리한 관찰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은 여류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 할 만하다.

 

● 요점 정리

■ 갈래 : 고대 기행 수필

■ 성격 : 묘사적, 사실적, 주관적

■ 구성

Ⅰ. 귀경대에 오르기 전의 초조감

Ⅱ. 귀경대에 오른 직후의 정경 - 귀경대의 새벽 정경 묘사

Ⅲ. 동틀 무렵의 바다의 장관

Ⅳ. 일출 여부에 대한 논란

Ⅴ. 해돋이의 장관

Ⅵ. 해돋이를 본 뒤의 감회

■ 주제 : 귀경대에서 바라본 일출의 장관

■ 의의 : 세밀한 관찰과 사실적 묘사가 뛰어난 여류 수필 문학의 백미

■ 표현

* 묘사, 서사, 대화를 이용한 구체적이고 사실적 문체

* 여성적인 섬세한 필치와 양반 부인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문체

* 사실적 묘사에 적절한 비유(직유)를 사용하여 한글 산문 문학의 모범이 됨.

* 순수한 우리말을 적절히 구사하여 대상에 치밀한 묘사를 가능케 함.

* 시간의 순서에 따라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묘사함.(추보식 구성)

■ 출전 :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

이 문집은 기행문, 전기문, 번역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낙민루', '북산루', '동명일기', '춘일소흥', 영명사 득월루 상량문' 등 순한글로 집필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동명일기'가 국문학사상 가장 중요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 작가 : 의유당 (1727-1823)

영조~순조 때의 여류문인으로 '의유당'은 그의 당호. 종래에는 의유당의 정체를 이희찬의 부인 연안 김씨로 추정하였으나, 근래에는 신대손의 부인 의령 남씨로 고증되었다. 한문과 국문에 모두 능하여 <의유당 유고>라는 문집을 남겼다. 특히 그의 한글 문집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는 우리 수필 문학사에서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탁월한 작품이다.

 

● 참고

◈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지은이의 성격을 살펴보자.

⇒ 수필은 가장 개성이 강한 문학이지만, 특히 이 작품에는 의유당의 성격이 아주 잘 형상화되어 있다. 예컨대 '동명일기'에는 동명의 해돋이를 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남편을 졸라 마침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는 바, 이는 집념이 강하고 집요한 성격임을 짐작케 하는 부분인 것이다. 또 당대 사대부 여인들로서는 생각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밤늦게까지 풍악을 즐기며 놀았다는 '북산루'의 기록에서 의유당의 낭만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사물과 풍경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 수법은 지은이가 여유롭고 관조적이며, 사물에 대한 격조 높은 안목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과 안목은 그대로 작품의 개성미와 탁월한 표현력 등 문학적 역량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