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학 동(靑鶴洞)                               - 이인로 -

지리산은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한다. 『북쪽 백두산으로부터 일어나서 꽃봉오리처럼 그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어져 대방군(帶方郡, 고조선 영토 안에 설치되었다고 전하는 중국 한나라 군현)에 이르러서야 수천 리를 서리고 얽혀서 그 테두리는 무려 십여 고을에 뻗치었기에 달포를 돌아다녀야 대강 살필 수 있다.』(지리산의 웅대한 규모와 수려한 자태) 옛 노인들의 전하는 바로는 "그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狹搾)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 리를 가서야 허광(虛曠, 텅 빈)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엔 모두 양전(良田)으로 옥토(沃土)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으나, 거기엔 청학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들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고 한다.

▶세속과 동떨어져 갈 수 없는 청학동(이상적인 낙원)에 관한 전설

연전에(몇 해 전에) 나는 당형(堂兄, 종형제지간) 최상국과 같이 옷깃을 떨치고 이 속된 세상과는 등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청학동을 찾은 이유) 우리는 서로 이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고리짝에 소지품을 넣어 소 두서너 마리에다 싣고 들어가 이 세속과는 담을 쌓기로 했다. '드디어 화엄사로부터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 투숙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가 선경이었다.

▶ 청학동에 직접 찾아감.

천암(千巖, 수많은 봉우리)은 경수(競秀, 빼어남을 다툼)하고 만학(萬壑)이 쟁류(爭流, 골짜기의 물이 다투어 흘러)하며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니 거의 인간 세상이 아닌 듯하나 찾고자 하는 청학동은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만 바윗돌에 남기고 돌아왔다.

    두류산은 드높이 구름 위에 솟고

    만학천암(萬壑千巖) 둘러보니 회계(會稽, 중국에 있는 산)와 방불하네

    지팡이에 의지하여 청학동 찾으려 했으나

    속절없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숲 속에서 들리네.(산이 매우 깊다는 뜻의 관용적 표현)

    누대(樓臺)는 표묘한데 삼산(三山)은 안 보이고(인적은 보이나 신선의 지경은 보이지 않고)

    써 있는 넉 자가 이끼 끼어 희미하네.

    묻노니 선원(仙源, 신선 세계, 곧 청학동)은 어데인가

    낙화유수(落花流水, 아름다운 자연 경치)만이 가물가물

▶ 청학동은 찾지 못하고 시(선경에 대한 감상)만 남기고 돌아옴.

어제 서루(書樓, 독서당)에서 우연히 <오류선생집(五柳先生集), 도연명의 문집>을 훑어보다가 '도원기(桃源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가 있기에 이것을 거듭 읽어 보았다. 『대개 진(秦)나라 때 어떤 이가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그윽하고 깊어 궁벽진 곳을 찾아 산이 둘렸고 시내가 거듭 흘러 초동(樵童)도 갈 수 없는 험한 이 곳에 살았는데, 진(晉)의 태원(太元) 연간에 어떤 어부가 다행히 한 번 그 곳을 찾았으나 그 다음엔 길을 잃어 그 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무릉도원의 고사)

후세에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와 시로 전하여 도원(桃源)으로써 선계(仙界)라고 하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였으나 아마도 그 기록을 잘못 읽었기 때문일 것이니 사실은 저 청학동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유자기(劉子驥, 속세를 떠난 고상한 선비로, 무릉도원을 다시 찾아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 죽음.)와 같은 고상한 선비를 만나서 나도 그 곳을 한 번 찾아가 볼 것인가.(이상향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는 구절)

▶ 이상향의 전설과 지향성

해         설

● 이해 및 감상

이 작품은 지리산의 청학동을 찾아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 기행 수필이다. 복잡한 속세를 벗어나서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소망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풍경을 묘사하고 한시를 삽입하여 이러한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상향을 찾을 수도 갈 수도 없는 곳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삶에 지칠 때마다 더욱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청학동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도연명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이상향을 소망해 보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인 '청학동'은 작가가 제시하는 이상향의 실체를 말하며, 이 글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서양인들의 유토피아, 동양인들의 무릉도원에 해당하는 우리의 이상향으로 제시한 것이 '청학동'이다. 청학동은 '푸른 학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고고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신비롭고 비세속적인 초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이상향을 찾고자 하나, '청학동을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상향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선인들에게 이상향은 대체로 속세를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고통 없이 사는 세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같은 이상향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즉, 선인들은 이상 세계가 현실에 존재할 때 그것은 이미 이상 세계가 아니며, 이상 세계로서의 청학동은 그대로 남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선인들의 삶의 태도는 오늘날 이상 세계를 동경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와는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은 이상향을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려고 한다. 그리고 이상 세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 요점 정리

 ■ 갈래 → 고전 수필, 기행 수필

 ■ 성격 → 체험적, 예시적, 서정적

 ■ 주제 → 이상향에 대한 동경

 ■ 특성

*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간 체험과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 교차되고 있다.

*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관조적으로 서술함.

* 독서 체험을 반영하고, 한시를 삽입하였다.

 ■ 이인로의 탈속 의지 → 이인로는 '정중부의 난' 때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난을 피한 후 다시 환속한 전력이 있다. 이로 보아 그는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이상향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 인간들의 낙원의식

인간은 모순에 찬 현실 세계를 살기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를 열망하게 된다. 성서에 묘사된 '에덴 동산'이나 서구 신화의 '아르카디아(Arcadia)', 동양의 고전에 묘사된 '요순 시대'의 공간은 모두 이러한 유토피아를 향한 동경의 표현이다. 이것은 문학 작품으로도 나타나는데, 중국의 도연명은 '도화원기'를 통해 세상과 단절되어 평화롭게 사는 마을 도화원을 그려 냈고, 승려 참굉은 '청학동가'를 통해 지리산의 청학동을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했다. 서양에서는 토머스 모어가 이상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 '유토피아'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