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  김만중 -

◇ 소설 읽기   

  줄거리   

 명나라 가정 연간 금릉 순천부에 유현이라는 명신이 있었다. 그는 느지막이 아들 연수를 낳았으나 부인 최씨는 연수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유연수는 나이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으나, 나이가 어린 이유로 10년을 더 수학하고 나서 출사하겠다고 천자에 상소하였다. 천자는 특별히 본직을 띠고 6년 간의 여가를 주었다. 그 후 유한림은 덕성과 재학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을 한다. 금슬은 좋았으나 사씨가 9년 동안 출산을 못하자 사씨는 유한림에게 권하여 새로이 여자를 보게 한다. 유한림은 거절했으나 사씨의 간곡한 부탁으로 교씨를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많아,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한다. 그러다가 교씨는 아들을 출산하자 자신이 정실이 되고자 하여 집사 동청과 짜고 유한림에게 사씨를 참소한다. 유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씨가 자기가 낳은 아들을 죽이고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 씌우자, 그때서야 사씨를 폐출시키고 교씨를 정실로 맞아들이게 된다.

교씨는 다시 집사 동청과 간통하면서 유한림의 전재산을 탈취해 도망가서 살기로 약속하고 유한림을 천자에게 참소하여 결국 유배를 시킨다. 동청은 유한림을 고발한 공으로 지방관이 되고 교씨와 함께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그러다가 조정에서는 유한림에 대한 혐의를 풀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을 처형하게 된다. 고향에 돌아온 유한림은 사씨의 행방을 찾아 탐문하고 나선다. 유한림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씨는 지내던 산사에서 내려와 남편을 찾으러 간다. 사씨와 유한림은 도중에 해후를 하며, 유한림은 사씨에게 전죄를 사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씨는 찾아서 죽이고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아들여 잃었던 아들도 다시 찾아서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감상 및 해설  

 이 작품은 <구운몽>과 함께 서포 김만중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가정소설이다. 숙종 15년에서 18년 사이에 쓰여진 국문소설이며,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일부다처주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소설화한 것이다. 권선징악의 교훈적 의미를 강하게 주입한 이 소설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의 이면에 날카로운 저항의식이 내포되어 있는 일종의 목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즉,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정비로 세운 것을 반대하다가 귀양을 간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지은 것으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숙종이 어느 날 궁녀로 하여금 소설을 읽어 달라고 하자, 궁녀가 마침 이 책을 읽어 드렸다고 한다. 숙종이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20년 장희빈을 내쫓고 민비를 복원시키게 된다. 다만 작가 김만중이 이 작품을 지어 놓고 민비의 복원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권선징악의 주제에 가정의 비화(悲話)를 소설화했다는 점에서, 조선조 후기 소설의 한 가닥을 형성시키는 모태가 되었다는 점은 큰 의미로 남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정실 부인 사씨를 고매한 부덕의 소유자로, 첩 교씨를 간교한 여인으로 설정하였는데, 이와 같은 대립적 인물 설정은 여주인공 사씨의 인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인현 왕후를 옹호하다 귀양을 가게 된 김만중이 인현 왕후 폐위의 부당성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씨 부인의 성격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가치관이 봉건적 도덕성을 옹호하고자 했다는 한계성을 보인다.

인물 구성을 보면 사씨와 교씨의 대립적인 성격을 보이는 고대 소설의 전형적인 구성이 보이고, 유한림의 두 숙모는 선악의 판별자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씨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꿈에 의해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크게 현실감이 떨어지며 이 작품의 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요점정리  

◆ 갈래 : 고대소설, 국문소설, 가정소설, 목적소설

◆ 성격 : 풍간적(諷諫的, 넌지시 둘러서 말하여 잘못을 고치도록 깨우침), 가정적

◆ 연대 : 조선 후기(숙종 15 ~ 18)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공간적 - 중국, 금릉 순천부 유씨 집안, 사씨의 남정 행로

* 시간적 - 명나라, 유연수의 출생부터 80세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 사상적 - 유교적 세계관, 권선징악

◆ 주 : 처첩간의 갈등과 사씨의 덕성 및 고행

◆ 구성

* 발단 : 유연수는 15세에 장원 급제하여 한림학사를 제수받는다.

* 전개 : 유한림은 덕성과 재학(才學)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하나, 후사가 없어 교씨를 첩으로 맞는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여 정실이 되기 위해 사씨를 참소한다. 유한림은 결국 사씨를 내쫓고 교씨를 정실로 삼는다.

* 위기 : 교씨와 사통한 문객 동청의 모함으로 유한림은 유배를 가게 된다.

* 절정 : 유한림에 대한 혐의가 풀리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은 처형당한다.

* 결말 : 사씨와 해후한 유한림은 잘못을 뉘우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교씨를 처형하고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는다.

◆ 문학사적 의의

* 일부다처제로 인한 처첩 간의 갈등을 소설화한 최초의 작품

* 가정 문제를 다루는 가정 소설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품

* 조선 시대에 장편 소설이 창작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작품

◆ 인물 : 직접적 성격 제시

⑴ 사씨 부인 → 실질적 주인공으로, 당대의 윤리관에 충실한 부덕의 소유자로 유교적 여성관의  전형적인 인물임.  청렴강직한 선비의 후예로 첩 교씨를 들인 후 갖은 모함을 당해 버림받게 되나 본가에 들어가지 않고 시댁의 신주를 끝까지 지키고 모심으로써 강한 의지형의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간교한 첩 교씨를 대립적 인물로 등장시켜 그녀의 인격과 덕행을 부각시키고 있음.

⑵ 교씨(교채란) → 유한림의 첩으로,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적 인물의 전형임. 유한림의 집에 첩의 위치로 들어온 그녀는 한림의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사씨를 몰아내고 유한림의 부인이 되어 모든 가옥과 재산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한 채 젊은 문객 동청과 사통하여 갖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맛보게 됨.

⑶ 유연수(유한림) → 한 집안의 가장이자 절대권자로서 다소 유약하고 수동적인 인물임. 풍채가 뛰어나고 15세에 등과한 재원으로 첩 교씨만을 총애하다가 그녀의 간악한 흉계에 넘어가 귀양까지 가게 된다. 이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씨를 새로 맞아 들이기는 하지만 수동적이고 나약한 면모를 보여줌.

⑷ 두(杜)부인 → 유연수의 고모로 일찍 남편을 여의고 유현(유연수의 아버지)의 집에 아들과 함께 기거하는 인물로, 유순하면서도 덕이 있으며 모든 사리의 판별자로서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의 역할을 하는 인물임. 사씨가 억울한 누명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그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두둔한다.

⑸ 동청 → 간교한 계책을 세우는 명수로서 교씨와 사통할 뿐 아니라 유연수까지 파직하고 귀양을 가게 하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의 전형적 인물임. 유연수를 모함하여 그 대가로 얻은 벼슬로 백성들에게 온갖 수탈을 일삼으며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악한으로, 한 가정의 화(禍)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아가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해롭게 한 악인의 전형임.

⑹ 유희(유 소사) → 유연수의 부친으로 아들을 등장시키기 위한 예비 인물로 당대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자부(며느리)를 선택함에 있어서 여성의 덕스러움을 최우선으로 꼽고 사씨의 덕행에 감복하나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뜬다.

⑺ 냉진 → 한때 동청의 수하에서 동청의 심부름을 하던 옥지환 사건의 장본인으로 사씨를 곤경에 빠뜨린다. 이후 동청이 운이 다하였음을 깨닫고 그를 배반하여 관가에 고하고 교씨와 함께 살다가 도적의 괴수로 잡혀 죽게 된다.

⑻ 이십랑과 납매 → 교씨와 통하면서 교씨의 악행을 조장하고 유인하여 교씨를 더욱 더 악녀의 길로 치닫게 한다. 특히 교씨가 아이를 잉태하여 득남하기를 기원하자,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교씨를 안심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교씨의 아들 장주까지 눌러 죽이고 만다.

⑼ 설매 → 원래 사씨를 섬기는 시비였으나 교씨를 섬기는 그녀의 언니 납매의 꼬임에 빠져 옥지환을 훔쳐 낸 후 계속 범행에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설매는 이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아를 살리며 유연수에게 모든 사실을 알린 후 목을 매 자살한다. 그리고 이때 작품에 나타나는 설매는 선도 악도 아닌 중간형의 인물 설정으로, 선인과 악인의 두 가지 대립적 사고를 고집하는 고대소설레 있어 종래의 공식성을 탈피한 새로운 인물 유형에 해당되는 인물임.

  각해 보기  

◆ '사씨남정기'라는 제목이 가지는 의미

'전(傳)'이란 본래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하는 양식을 말하는 것으로,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과 같이 널리 알려진 고전 소설의 제목에는 일반적으로 '~전'이 붙는다. 그런데 '사씨남정기'의 제목에는 '전'이란 말을 쓰지 않고 '사씨남정기', 혹은 '남정기'라고 쓰고 있다. '남정(南征)'은 '남쪽으로 쫓겨간다.'는 뜻으로, 사씨가 가정에서 쫓겨나고, 남편 유 한림이 조정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특히 이 제목은 사씨가 정실 자리에서 쫓겨난 뒤 남쪽으로 간 사건을 강조하여 지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씨가 간 남쪽은 중국 장사 지역으로, 이곳은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자, 굴운을 비롯한 충신 열사들이 목숨을 바치거나 유배를 당한 곳이다. 이로 보아, 이 작품에서는 당시 조선 사회의 모순과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기 위해 '남정'이란 의미에 무게를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권선징악적 주제 의식 이면에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내포된 일종의 목적 소설이다.

 

◆ 김만중의 문학 사상

김만중의 문학 사상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창작 동기로 알려진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씨남정기'는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썼다고 한다. 숙종이 장희빈 때문에 인현 왕후를 버린 것은 이 소설에서 유한림이 첩 교씨 때문에 처 사씨를 버린 것과 상통하기 때문에 숙종이 소설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운몽'은 어머니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과부로서 김만중 형제를 키우면서 장자 만기를 잃고, 만중조차 유배지로 자주 귀양을 가게 되어 견디기 어려운 시름을 겪었는데, 인생은 결국 허무하다는 '구운몽'의 내용을 통해 어머니의 시름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창작 동기론은 문자 그대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소설이 주는 감동적인 효과를 의식하고 있었던 김만중의 생각에서 유래했으리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소설은 유학자들이 배격했던 것이다. 소설은 정사(正史)를 흐리게 하고, 가치관의 혼동을 초래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만중은 소설의 가치를 옹호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소설을 썼다. 소설을 옹호하는 논리가 소설은 도의를 돌보지 않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도의는 부정할 수 없는 대전제였다. 그러나 김만중은 소설의 도의를 위한 것으로서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듣도록 한다는 주장을 펴지는 않았으며,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발견의 감동을 가지게 하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감동의 결과 어떤 행동을 하게 될 것인가는 소설에 따라 달라진다. '사씨남정기'에서는 선한 사씨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지만, '구운몽'에는 선악의 대결 같은 것이 나타나 있지 않고, 선악 대신에 욕망의 충족과 부정이 문제의 중심으로 부각되어 있다.

 

◆ '가정 소설(가문 소설)'

가정 안에서의 생활을 표현한 작품을 지칭한다. 고전 소설에서는 처첩 간의 비극이나 계모와 전처 소생의 자녀 간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을 주제로 하는데, 대체로 악인(惡人)들의 음해와 악행이 탄로되어 징벌을 받거나 참회하여 선인(善人)이 되도록 하고, 선인은 행복을 다시 찾는다는 결말로 되어 있다. 처첩 간의 갈등을 다룬 것으로는 '옥린몽', '조생원전' 등이 있고, 계모와 전처 소생 간의 갈등을 다룬 것은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정을선전' 등이 있다.

가문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상층 사대부 여성으로 이들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

첫째, 주인공은 문벌을 자랑하는 상층 귀족 출신의 남녀이다.

둘째, 가문 소설의 궁극적 지향점은 가문의 무한한 번영과 가부장적 질서의 회복이다. 따라서 작품은 대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혼인 관계를 통해 가세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 및 가문 내 갈등의 극복을 통해 가문의 질서 확립과 화합의 과정을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다.

셋째, 가문 소설은 그 전개 과정에서 많은 종류의 갈등을 보여 주지만, 보통 두 남녀의 결연을 가로막는 존재와 두 남녀 사이의 갈등,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한 '처-처' 혹은 '처-첩' 간의 갈등, 계모와 전실 소생 자식 간의 갈등 이 세 가지가 핵심적이다.

넷째, 가문 소설에서는 가정과 궁정, 가정사와 국가사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가령 가문내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주인공을 음해하고자 해 황제에게 글을 올려 무고함으로써 그를 벼슬에서 내쫓아 유배를 가게 만들기도 하고 가문 내의 못된 자들이 궁정의 간신과 결탁해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가문 소설의 이러한 몇 가지 특성은 가문 소설이 형성되고 발전된 당시의 사회 ·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측면을 갖고 있다. 즉 가부장제와 일부다처제에 바탕한 상층 사대부 가문의 모순과 이상을 그려 내는 한편, 가문의 결속과 확대를 통해 부귀를 유지하고자 한 당시 상층 사대부 가문의 의식과 동향을 반영하고 있다.

 

◆ 「사씨남정기」의 문제의식과 갈등

모든 소설에는 일정한 문제의식이 있다. 사회 현실에 대해 무엇인가 할 말이 있어서 소설을 쓴다. <사씨남정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식은 등장인물 간의 갈등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 연설문에서는 막 바로 자기 할 말을 나타내지만 소설에서는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등 사건의 전개를 통해서 드러낸다. <사씨남정기>에는 크게 두 가지 갈등이 나온다. 그 갈등을 중심으로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첫 번째 갈등은, 사씨와 교씨 간의 갈등이다. 두 인물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차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씨와 교씨가 화목하게 지낸다.

    ② 교씨가 사씨를 모함하기 시작한다.

    ③ 교씨의 흉계로 사씨가 축출되고, 교씨가 정실이 된다.

    ④ 교씨의 흉계가 드러난다.

    ⑤ 사씨가 다시 정실이 되고, 교씨는 처형당한다.

사씨의 주선으로 유씨 가문에 들어온 교씨는 처음에는 사씨에게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둘 사이에 아무 갈등 없이 화목하게 지낸다. 교씨가 아들 장주를 낳고서도 화평한 관계는 유지되었다. 사씨가 전혀 질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실 사씨가 아들 인아를 낳으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교씨를 첩으로 맞아들인 것은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그랬던 것인데, 정실 사씨가 적통 아들을 임신하면서부터 교씨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사씨가 아들을 낳으면 유 한림 집안에서 자신과 아들 장주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교씨는 사씨를 해치려고 독약 넣은 약을 주지만 사씨가 토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사씨가 아들 인아를 낳은 뒤, 교씨가 한 말에 교씨의 처지와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나나 저 사씨는 용모의 아름다움에는 다를 게 없지. 그러나 처와 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나만 아들을 낳고 저 사씨에게는 아들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장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야. 그런데 이제 저 사씨가 아들을 낳았어. 저 아이가 앞으로 이 집의 주인이 될 것이야. 내 아이는 아무 쓸데가 없게 될 것이 아닌가?  <중략>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한림에게 모함한다면, 한림이 평소 사씨를 믿고 있으니 내 신세를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 같은 미모에 똑같이 아들을 낳고서도 처첩이란 신분 차이 때문에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교씨는 사씨를 제거하고 자신이 정실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동청에게 접근해 한패로 끌어들인 것도 그 일환이다. 심지어 정조까지 허락하면서 사씨 제거를 부탁한다. 저주 사건을 조작해 사씨를 모함했으나 불발로 끝나자, 동청이 교씨의 아들 장주를 죽이는 짓을 저질렀을 때에도 사씨 제거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청을 고발하지 않고 모함 계획을 밀고 나간다. 옥가락지 사건을 조작하는 데 이르러 드디어 유 한림의 마음이 움직여 사씨가 축출당하고 교씨는 정실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신분 상승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획득한 교씨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비참한 파멸에 이르고 만다. 사씨가 남편의 선산이 있는 남쪽 지방(성도)에 내려가 거주하자, 교씨는 사씨를 해치려고 흉계를 낸다. 사씨에게 위기가 닥치지만 사씨의 시부모 혼령이 현몽해 화를 피하도록 일러준다. 이런 식으로 사씨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천상계에서 개입해 사씨를 보호하는 한편, 교씨 측의 흉계는 실패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그 악행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마침내 동청과 함께 교씨도 처형당하는 파국을 맞이한다.

이것이 사씨와 교씨 사이의 갈등이다. 왜 이 갈등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이 갈등이 마무리되는지를 살펴보면 작자의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평온하던 유씨 집안의 분란은 왜 생긴 것일까? 교씨 때문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 있다. 교씨가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사씨를 모함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첩인 교씨가 분수에 넘치게 감히 정실 자리를 넘보았기 때문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는 게 이 작품에 드러난 작가의식이다. 처첩의 신분 차별을 인정하는 그 당시의 제도를 그래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그런 주장이 강하다 보니, 사씨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기에 시부모 혼령의 현몽이라든가, 각종 신령의 계시와 도움이라는 다분히 초현실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사씨가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작가의 의도나 희망사항과는 다르게 유 한림 가정의 분란이 일어난 근본 원인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삼게 된다. 교씨가 아니라 다른 여인이라 해도 그와 같은 불평등한 상황, 차별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반발의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일정하게 대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교씨의 말대로 용모나 아들 낳기에서도 동일한 자격을 가졌는데, 처와 첩, 정실과 부실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엄청난 차별을 받는 현실 앞에서 인간으로서 당연히 반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조선조를 지배한 축첩제도 혹은 적자만을 중시하는 가부장제도의 모순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자세히 읽다 보면 교씨가 낳은 아들과 사씨가 낳은 아들 앞에서 유 한림은 표나게 차별하는 반응을 보였고, 그 사실을 교씨 아들의 유모가 교씨에게 일러바침으로써 교씨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장면이 있는데, 작품에서 슬쩍 지나가는 대목이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씨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점과, 남성도 당시 제도 자체가 지닌 결함을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갈등은 유연수와 엄숭 사이의 갈등이다. 두 사람의 갈등 양상을 차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① 유희가 엄숭과의 불화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② 유연수가 급제해 한림이 된다.

    ③ 엄숭이 유연수의 중용(重用)을 반대한다.

    ④ 유연수가 엄숭을 간접적으로 탄핵한다.

    ⑤ 엄숭이 유연수를 탄핵하고, 유연수는 행주로 귀양 간다.

    ⑥ 유연수가 세자 책봉 때 특사로 풀려난다.

    ⑦ 엄숭이 삭탈관직 당하고 유연수가 이부시랑에 임용된다.

    ⑧ 유연수가 승상에 오른다.

③에서 왜 엄숭은 유연수가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을 반대하며 방해했는가? ①에서 나타난 것처럼, 유연수가 자신과 불화 관계에 있던 유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②를 보면 급제하자마자 한림이 될 만큼 충분히 능력 있는 유연수지만, 엄숭은 정적의 아들이므로 이를 꺼려 중용을 방해한 것이다. 자신의 세력이 아닌 쪽 사람은 배제하는 관행, 인물의 능력보다는 그 사람의 배경을 더 중시해 관직 임명 여부를 결정하던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두 사람이 직접 대결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좀더 적극적인 대결 양상으로 바뀌는 계기가 주어진다. 서해가 엄숭을 탄핵하면서부터다. 이때 유연수는 서해를 열심히 변호했고 이는 바로 엄숭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때부터 엄숭은 유연수를 제거하려는 생각을 가졌고 기회를 노리게 된다. 황제는 다시는 엄숭의 일을 문제 삼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④에서처럼 유연수는 시를 통해 엄숭의 비행을 탄핵한다. 유연수 집안에서 일하던 동청이 이 사실을 엄숭에게 밀고했고, 이에 따라 유연수는 귀양을 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밀고한 동청은 엄숭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올라 백성의 재물을 착취해 엄숭에게 뇌물로 바치고, 그 보호 아래 계속 비행을 저지른다. 의견이 옳고 그른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자신의 세력이면 비호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 제거해 버리는 현실 정치의 모순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작가 김만중 스스로가 바른말을 하다가 시세에 몰려 수차례 귀양살이를 경험했고, 실제로 유배지 남해에서 이 작품을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 점을 문제 삼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⑥, ⑦, ⑧에서 보는 것처럼 궁극적인 승리는 유연수의 것이 된다. 천자의 마음이 움직여 엄숭 세력을 몰아내고, 동청을 처단하며, 유연수를 다시 불러들여 중용하기에 이른다. 이 대목은 현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강력히 바랐던 작자 김만중의 희망사항이라고 여겨진다. 유배지인 남해에서, 다시 임금이 불러주어 귀양지에서 서울로 올라가 권력 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작품 속에서 이런 형태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갈등과 두 번째 갈등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전체적으로 작자는 이 두 갈등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첫 번째 갈응은 가정 안의 갈등이고, 두 번째 갈등은 조정 안에서의 갈등이다. 이 둘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조정에서 정구너을 다시 획득해야만 몰락한 가문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연수가 정치적 승리를 획득하고 예전처럼 화목한 가정을 회복하도록 작품이 마무리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정치적으로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작자 김만중의 희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사씨남정기」의 전승 양상

<사씨 남정기>는 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진 작품이면서도 작자 친필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이본만 전해진다. 이본들의 차이는 대부분 사소한 것이라 줄거리나 주제의 차이까지 가져오지는 않아 어느 이본을 읽든 무방한 편이다. <사씨남정기>의 이본은 80여 종이 전하는데, 한문본과 국문본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전한다. <구운몽>이 국문본과 한문본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냐, 즉 원작이 한문본이냐 국문본이냐를 두고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데 비해, <사씨남정기>는 국문본이 원작으로 밝혀져 있다. 종손자인 김춘택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본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 것은 두 가지 계열이다.

①김만중의 국문 원작에서 직접 파생한 것으로 보이는 국문 원본 계열, ②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한 이른바 <번언남정기>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이는 계열, 이 두 가지다. 이 둘 외에 계열을 달리하는 것도 있으나, 앞의 두 가지를 근간으로 제3의 인물들이 첨삭하거나 부연해 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국문본이 먼저 나오고 이것을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한문본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김만중 국문 원작 텍스트가 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전하는 국문본 내용이 김만중 원작 그대로라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줄거리  

명나라 가정 연간에 금릉 순천부에 유현이란 명인이 있으니, 현명 정직하고 문장과 풍채가 뛰어난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부시랑 참지정사에 이르러 명망이 조야에 진동했다.

일찍이 시랑 최모의 딸을 아내로 삼으매 최씨 부덕이 있어 금슬은 좋으나 슬하에 자녀 없음을 근심하더니, 늦게야 한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지 않아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공은 원래 공명에 뜻이 없는데다 소인배들이 조정에서 힘을 쓰므로 병을 핑계하고 벼슬을 사양하고 집에 돌아와 세월을 보낼 새, 성품이 유순하고 얌전한 누이가 하나 있으나 일찍이 선비 두강의 아내 되었다가 과부가 되어, 공이 한 집에 있게 하고 우애 극진히 대했다.

유 공자의 이름은 연수였다. 차차 자라매 얼굴이 관옥 같고 재기 또한 숙성하여 문장재화를 십여 세에 다 이루니, 공이 기특히 여겨 사랑하되 다만 부인에게 보이지 못함을 한탄했다. 연수 14세에 초시에 장원으로 뽑혔다가 15세에 급제하니 천자께서 그 문장과 위인을 보시고 한림학사를 제수하시매 한림이 연소하므로 십 년을 더 학문에 힘쓰다가 다시 출사하기를 청하니, 천자 그 뜻을 아름다이 여기사 특별히 본직을 두 개로 지니도록 하면서 5년 말미를 주시더라.

한림이 급제한 후 구혼하는 이가 많으매 주파라 하는 매파가 고하여 가로되, "모든 소문과 말이 공번되지 아니하니 진실로 바른 대로 고하오면, 노옹께서 만일 부귀를 탐하시면 엄 승상의 손녀만한 이가 없고, 반드시 요조한 숙녀를 구하시려면 신성현의 사 급사(謝給事) 댁 소저 외에 또다시 없사오니, 청컨대 이 두 곳 중에서 하나를 가리옵소서."

이에 공이 물어 가로되, "부귀는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어진 이를 택하려 하오. 사 급사는 본대 대간 벼슬을 하다가 적소에서 죽은 진실로 강직한 선비나 그 댁의 소저는 어떠하뇨."

주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저의 용모와 덕행이 일세에 희한하오니 어찌 다 형언하오리까. 소인이 매파로 나선 지 삼십 여년에 왕공, 재상의 모든 댁을 다니며 많은 신부를 보았으되, 이같이 요조현철한 소저는 처음이오니 두 번 묻지 마옵소서."

이에 매파가 돌아간 후 공이 매파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어 사씨의 덕행을 알아보고자 두 부인과 상의하여 물어본즉, 두 분인의 말이 "남녀의 덕행은 필법에 나타나는 것이라 묘책을 내어 집에 간수해오고 있는 남해관음화상을 우화암에 시주코자 하였던 바, 이제 우화암 여승 묘혜를 사씩 댁에 보내 화상에 처자의 친필로 관음찬을 받아오도록 하면 그 재덕을 알 것이며, 묘혜 또한 그 얼굴을 보고 올 것입니다. 묘혜는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말하니 공이 옳게 여겨 묘혜를 불러 사씨 댁에 가서 관음찬을 받아오기를 청하니, 묘혜가 급사 댁에 가서 불사에 쓰고자 관음화상에 찬을 써주기를 부탁하니 사씨 부인이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비록 고금 시문에 능통하다 하나 이만한 글을 지을 수 있을는지 그저 시험이나 해 보리라."

하고 시녀로 하여금 소저를 부르니, 소저 나와 모친께 뵈오니 용모 빼어남이 짐짓 관음보살님이 강림하신 듯한지라. 묘혜, 심중에 놀라 헤아려 보되, '진세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으리오.' 하고 있을 때 부인이 소저에게 능히 관음찬을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소저가 처음에는 노둔한 재주를 들어 거절하는지라, 부인이 웃으며 다시 지어보라 하니 소저 한동안 주저하며 망설이다 손을 씻고 족자를 받아 걸고 분향 배례한 후 공경 앞에 나아가 관음한 수백서를 가늘게 족자 위에 쓰고 '모년 월 일에 사씨 정옥이 재배서'라 하였더라. 묘혜 족자를 다시 받아가지고 돌아와 공에게 드리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사소저의 용모와 재주가 어떠한가" 물으니 묘혜 답하되 "족자 가운데 사람과 같더이다." 하니 공이 크게 기뻐하여 족자를 걸고 보니 필법이 정묘하여 한 곳도 구차함이 없고 온화유순한 덕행이 글씨에 나타나서 즉시 매파를 불러 사가에 청혼했다.

원래 사소저는 사후영의 딸이라, 후영 청렴강직하여 조정의 간신들이 작란함을 분히 여겨 상소하다 도리어 간신의 모해를 입어 소주 땅에 귀양갔다가 적소에서 죽으니, 부인이 천만 가지 설움을 참고 소저를 데리고 고향 본댁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소저를 데리고 고향 본댁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소저가 모친을 지성으로 봉양하나 출가할 연기를 당하였으되 주혼함이 없고 근심하더니, 매파가 들어와 소년 등과한 유 한림에게서 청혼이 온 것을 알리니 부인이 유 한림의 출중함을 익히 아는 바라 허혼을 하니, 유공이 크게 기뻐하여 택일하니, 유공은 최 부인이 보지 못함을 못내 슬퍼했다.

사씨 이로부터 효도를 다하여 존구를 받들고 공손함으로써 군자를 섬기고, 정성으로써 제사를 받들고 은혜로써 비복을 부리니, 규문이 화락하고 화기가 애애했다. 하루는 유공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날마다 짙어가니, 한림 부부 밤낮으로 시탕하되 백약이 무효한지라, 공이 일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별세하니, 한림 부부 호천애통함이 비할 데 없고 두(杜) 부인도 못내 애통했다.

세월이 흘러 삼상을 마치고, 군명을 받자와 조정에 나아가 소인을 배척하고 몸가짐을 강직케 하니, 천자께서 사랑하사 벼슬을 돋우고자 하시나 승상 엄승이 꺼리어 저어하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직품이 오르지 못했다.

유 한림이 부부 성친한 지 벌써 십 년이 넘고 연기가 삼십에 가까웠으나 한낱 자녀가 없으니 부인이 깊이 근심하여 한림을 대하여 어진 여자를 택하여 아들 얻기를 누차 간청하니 유 한림이 매번 뿌리치다 마지못해 허락하니 매파를 통해 널리 첩을 구해 본래 벼슬하던 집 딸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교채라는 여자를 첩으로 들여오니 나이 16세였다.

세월이 흘러 삼삭이 차매 교씨 과연 순산하여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장주라 하니, 한림과 사씨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비복들까지도 서로 치하했다. 교씨 아들을 낳으매 한림의 대접이 더욱 두터워져 사랑이 비할 데 없는데다 노래와 탄금에 능해 한림은 교씨가 거첳는 백자당을 떠날 날이 없고 사씨 부인의 침소는 날로 멀어지더라.

이때 사부인 성친한 후 십 년 지나 태기가 있으니, 온 집안이 모두 기뻐하되 교씨 홀로 시기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앙앙불락하며 남매와 짜고 낙태할 약을 여러 번 사부인 먹는 약에 타서 드렸으나 어쩐 일인지 부인이 그 약만 마시면 구역이 나서 토해 버리니, 이는 천지신명의 도우심이라. 간악한 수단을 쓸 도리가 없더라. 부인이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으니 골격이 비범하고 신체가 준일한지라. 한림이 크게 기꺼하야 이름을 인아라 지어주니라. 인아 차차 자라나 장주와 같이 한 곳에서 놀되, 비록 어리나 씩씩한 기상이 장주의 잔약함과는 현저히 다른지라, 교씨 내심 애를 태워 생각하되, "내 용모와 자질이 모두 사씨에게 미치지 못하고, 나는 아들이 있고 저는 아들이 없어 내가 상공의 은총을 받았으나 이제 저도 아들을 낳았으니 내 아들은 쓸데없는 군것에 불과한지라. 부인이 좋은 낯으로 나를 대하나 속은 알 수 없으니 상공의 마음이 변하면 나는 어찌될지 알 수 없다." 하고 십랑과 의논하니 십랑은 교씨로부터 금은주옥을 많이 받은 터라 심복이 되어 교씨의 못된 꾀를 내었다.

이때 급사 댁에서 급사 부인의 환후 위중하다는 편지 왔거늘, 사부인이 크게 놀라 한림께 고하여 가로되, "모친의 병환이 위중하시다니 지금 뵈옵지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될지라, 상공의 허하심을 바라나이다." 하니 한림이 가로되, "장모님의 환후가 위중하시면 일찍 가서 뵈오심이 옳거늘 어찌 만류하리오. 나도 틈을 타서 한번 문안하리이다."

부인은 교씨를 불러 가사를 부탁하고 인아를 데리고 신성현 친정에 갔다. 부인이 모친의 환후가 위중하심을 보고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수개월이 지났다. 이때 흉년이 들어 백성의 질고를 살피라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한림이 산동 지방으로 갈 때 미처 부인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한림이 집을 떠나자 교씨는 집에 서사로 있던 동청과 눈이 맞아 사통하면서 사부인을 없앨 계교를 의논했다. 사씨의 시비 설매는 납매의 동생이라 그년을 달래어 사씨가 아끼는 보물을 얻으면 일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하고 계획대로 진행하니, 설매 납매의 설득에 넘어가 열쇠로 상자에서 옥지환을 도적하여 교씨에게 드려 가로되, "이 물건은 유씨 댁의 세전지물로 가장 중히 여기더이다." 하니 교씨 크게 기뻐하여 설매에게 큰 상을 주고 동청과 함께 꾀를 행했다.

이때 한림이 산동지방에 이르러 냉진이라는 풍채가 훌륭한 청년을 주점에서 만나 동행하게 되었는데 한림이 보니 냉진의 속옷 고름에 옥지환이 매였거늘 한림이 이상히 여겨 그것을 자세히 보기를 청하니 그 청년이 끌러주거늘, 받아보니 완연히 사씨의 옥지환과 같은지라, 한림이 냉진에게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든 사람의 정표로만 알고 비웃지 말아주게. 이것이 사랑하던 소저와의 정사이매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거늘, 한림이 옥지환을 한 번 보고 천사만념으로 심사가 늘 수란하더니 반 년만에 서울로 돌아와 홀연 냉진의 옥지환을 생각하고 사씨더러 물어 가로되, "부인은 전일 선인이 주신 옥지환을 어디 두었느뇨." 하고 물으니 사씨 부인 대답했다.

"저 상자 속에 있거니와 어이 물으시느뇨."

부인이 괴이하여 상자를 가져와 열어보니 다른 것은 다 그대로 있으되 옥지환만 없는지라, 사씨 크게 놀라, "분명히 여기 두었더니 어이 없는고." 사씨 가로되, "옥지환 간 곳을 상공이 아시나이까?"

한림이 화를 내며 가로되, "그대가 남을 주고 날더러 물음은 어쩐 일이뇨?" 사씨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분하여 말문이 막히는데 홀연 시비 고하되, 두 부인이 오심을 아뢰니 한림이 옥지환 없어진 자초지종을 말하니 두 부인이 듣기를 다하매 크게 성을 내어 말했다.

"선형이 본대 지감이 있고 천하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지내었으나 매양 사씨를 칭찬하되 그의 선행숙덕을 아심이라. 하물며 선형의 지감과 사씨의 절행으로 이같이 누명을 입게 하여 옥 같은 아내를 의심하나뇨. 이는 반드시 집안에 악인이 있어 도적함이니 어찌 엄중히 조사하지 아니하고 이같이 말을 하느뇨." 하니 한림이, "고모의 말씀이 지당하여이다." 했다.

즉시 형장 기구를 갖추고 시비 등을 문초하니 애매한 시비는 죽어도 모르노라 하고 설매는 바로 고하면 죽을까 겁내어 한결같이 항복하지 아니하니, 마침내 종적을 알지 못했다. 이때 교씨 두 번째 아이를 낳으니 한림이 기뻐하여 이름을 봉추라 하고 두 아이를 사랑함이 장중보옥 같았다.

이때 두 부인이 옥가락지의 출처를 캐고자 하나 찾지 못하고, 심중에 교씨의 간계인 듯하나 잡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히 지내더니, 아들 두억이 장사부 총관을 하매 두 부인이 아들 따라 장사로 가게 되었는지라. 교녀 심중에 기뻐하여 동청을 청하여 사씨 없앨 꾀를 다시 의논하니 동청이 가로되, 당나라 『사기』를 일러 측천무후를 얘기하며 장주 죽임을 꾀했다. 교녀 사씨의 시비 춘방을 시켜 약을 달이게 한 후 몰래 독약을 썼었다. 아들 장주는 약을 먹고 즉사하니 교녀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니 한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여 사유를 물으니 납매가 가로되,

"소비가 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바라본즉 춘방과 설매가 손짓을 하더니만 돌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 둘을 불러 물으면 짐작하실 듯 하여이다."

한림이 두 사람을 잡아들여 설매를 문초하매, 매질하기 십여 차에 설매 고함질러 가로되,

"소비 죽으리로소이다. 죽을 바에야 무슨 말을 못하오리까. 부인이 소비에게 이르시기를, 인아와 장주 둘이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누구든지 장주를 해하는 자가 있으면 큰 상을 주리라 하시옵기로 소비 등이 여러 날을 틈타던 차 마침 공이 마루에서 혼자 자고 있기에 소비는 간이 서늘하고 손이 떨려 앞장서지 못하고 실상 공자를 눌러죽이기는 춘방이로소이다."

한림이 크게 노하여 춘방을 국문하매 춘방이 설매를 꾸짖으며 매를 이기지 못하고 종시 무함한 말은 하지 않고 죽으니라. 이튿날 한림이 일가 친척을 청해 놓고 사씨의 전후 죄상을 이르고 쫓아내니 사씨 영위에 나아가 사배 하직할 새, 눈물이 비 오듯 하니 일가들이 문 밖에서 절하고 이별하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

쫓겨난 사씨 시부모 묘전 수간초옥을 지어놓고 살 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잠깐 졸더니 문득 한 사람이 이르되, 사씨 눈을 들어보니 생시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없는 시부모님이라. 이르시되, "부는 칠년 재액이니 남방으로 빨리 떠나라. 다만 육 년 후의 사월 십오일 배를 백빈주에 매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하라. 이것은 명심불망할지어다." 하시니 사씨 생각하기를 이는 반드시 두 부인을 찾아가 의탁하라 하심이라 하고,  존묘에 나아가 재배 하직하고 유모와 차환(계집종), 늙은 창두(사내종) 한 사람을 데리고 남방으로 향하니라. 수로 5천 리 길이 하도 험하여 모두 죽기를 소원하나 참고 길을 가다 홀연 보니, 숲속에 한 사당이 있어 보니 '황릉묘'라 하였으니 이는 곧 두 왕비(아황과 여영)의 사당이라. 사씨 절하고 축원하고 나오니 달빛은 몽롱한데 의지할 바가 없게 되니 죽는 것이 상책이라. 이때 뜻밖에 사당문 앞으로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놀라 눈을 들어보니 하나가 늙은 여승이요, 하나는 여동이라. 여승이 황망히 예하고 말했다.

"소승은 동정 군산사에 있더니, 아까 비몽사몽간에 관음 현몽하사 어진 여인이 환난을 만나 갈 바를 모르고 물에 빠지려 하니 빨리 황릉묘로 가서 구하라 하시매 급히 배를 저어왔더니, 과연 부인을 만나매 부처님 영험하심이 신기하도소이다."

"우리는 죽게 된 사람이러니, 존자의 구원을 만나매 실로 감격하나 존자의 암자 멀고 또 귀 암자에 폐가 될까 하나이다."

"부처님의 지시로 뫼시러 왔는데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세 사람은 여승을 따라 배를 타고 동정호 가운데 있는 군산사 암자 수월암에 이르니, 종일 고통스러웠던지라 깊은 잠에 빠져 날이 밝아옴을 몰랐더니 여승이 불당을 소쇄하고 향을 피워놓고 예불하라 하거늘, 법당에 올라 분향 배례할 새, 눈을 들어 부처를 보니 십육 년 전 자기가 찬을 지어 썼던 백의 관음화상이라. 놀라 슬픈 회포를 금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여승이 괴이히 여겨 물은즉, "화상 위에 쓴 것이 내 아이 때 지은 찬이니 여기 와 보매 자연 비희를 금치 못하겠노라" 하니 여승이 크게 놀라며 "그러실진대 분명히 신성현 땅의 사 급사 댁 소저가 아니십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께서 어찌 내 신분을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여승이 대답했다.

"소승은 저 관음화상의 찬을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입니다. 한데 부인은 어찌 이러한 고생을 하십니까."

 

사씨 유씨 댁의 부인이 된 이후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더라. 이에 묘혜는 당부하기를 유 소사는 본대 공명정대하신 어른이니 그때를 기다려 어기지 말고 구하라고 말했다.

이때 교녀 정당을 차지하여 가사를 총찰하매 악독함이 날마다 더하여 비복들이 그녀의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사씨를 생각했다. 교녀 이에 동청과 더불어 한림을 해할 궁리를 하다가 동청이 우연히 한림의 책상 위에서 한 글을 얻어내니 두어 번 읽어보고 문득 기뻐 날뛰며 교녀에게 말했다.

"저 적에 천자 조서를 내리사 '나의 기도하는 것을 간하는 신하는 죽이리라' 하셨는데, 지금 이 글을 보매 시적 두고 기롱하여 엄 승상을 간악한 소인에 비하였으니, 이 글을 엄 승상께 뵈면 엄 승상이 천자께 아뢰어 법으로 다스리리니, 우리 두 사람이 어찌 백년해로를 못하리오."

동청이 유 한림의 글을 엄 승상에게 전하니 엄 승상은 황제께 보이니 황제 대로하여 극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태우서세가 상소하여 귀양을 가게 되니, 교녀 비복을 거느려 상 밖에 나아가 짐짓 슬피 통곡하는 체 이별하였다.

"첩이 어찌 혼자 있으리요. 상공을 쫓아 생사를 한 가지로 하려 하나이다."
하니 한림이 가로되, "그대는 집을 잘 지키고 제사를 받들고 아이들을 잘 길러주시오. 인아, 비록 사나운 어미의 소생이나 골격이 비범하니 거두어 잘 기르면 내 죽어도 눈을 감으리로다."  교녀 가로되, "상공의 자식이 곧 첩의 자식이라, 어찌 봉추와 달리하여 박대하오리까." 한림이 재삼 부탁하고 떠났다.

그 후 동청은 엄 승상의 세력으로 진유현 현령으로 출세하여 부임하게 되니 교녀 매우 기뻐하며, 사촌 형이 죽어 시골 간다 하고 봉추와 인아와 심복 시비만 데리고 길을 떠나니, 교녀 인아 원수의 자식이거늘 죽여 마땅하다 하고 설매를 시켜 물 속에 넣어 죽이도록 하였다. 설매는 차마 죽일 수 없어 강가 수풀 속에 고이 누이고 교녀에게 거짓 고하여, "아이를 물 속에 넣으니 물결 속에 들락날락하더니 필경 보이지 않더이다."

이때에 천자께서 태자를 책봉하시고 온 천하의 모든 죄인을 모두 놓아 유 한림이 은혜를 얻었으니 친척이 있는 무창으로 갈새, 한 관원이 금안백마 위에 앉아 거룩하게 지나거늘 보니 동청이라. <후략>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이 소설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드러나는 구절을 찾아 인물의 성격을 파악해 보자.

 

구절

성격

사씨

경계한 말씀은 ~ 없었던 것이다.

유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인물로, 타인을 신뢰하며, 마음씨가 착함.

교씨

교씨는 얼굴이 유순하고 ~ 재앙의 뿌리를 양성하였다.

겉모습과 달리 교활하고, 거짓말을 잘 함.

유 한림

한림은 교씨의 간계를 깨닫지 못했다.

마음이 유하고, 태도가 우유부단함.

 

(2) 유 한림이 교씨를 첩으로 들인 이유를 말해 보자.

  →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3) 교씨가 사씨를 모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첩이라는 자신의 신분에 불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2. 이 소설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적 관습을 찾아보고, 오늘날의 사회적 관습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적 관습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 오늘날에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도 많이 약화되었다.

 

3. 다음 자료를 참고하여, 이 소설이 당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한다면 왜 그랬을지 그 이유를 추측해 보자.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인현 왕후를 폐위하고 장 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것을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게 된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지은 것으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숙종이 궁녀에게 소설을 잃어 달라고 하자, 궁녀가 '사씨남정기'를 읽어 드렸다고 한다. 숙종이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20년에 장 희빈을 내쫓고 민씨를 중전으로 복위시킨다.

 

* 소설의 내용이 당시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인현 왕후에 대한 동정적 여론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 현실과 닮아 있는 이야기 구조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졌을 것이다.

 

4. 다음은 조선 후기 '창선감의록'의 줄거리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사씨남정기'를 수용해 보자.

병부상서 화욱(花郁)은 세 부인이 있었으나, 딸 태강(太姜)을 낳은 요 부인과 아들 진(珍)을 낳은 정 부인은 모두 일찍 죽는다. 심 부인에게는 장남인 춘(瑃)이 있었으나, 그 사람됨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여 화욱은 춘보다 둘째 아들인 진을 더 아꼈다. 간신 엄숭이 득세하자 화욱은 사직하고 낙향하여 곧 병을 얻어 죽는다. 춘은 부덕을 갖춘 임 소저와 혼인하였으나, 그는 임 소저를 멀리하고 조씨를 첩으로 맞이한다. 조씨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 소저를 음해하여 결국 집에서 내쫓는다. 또한 심 부인과 춘은 동생 진과 그의 부인을 미워하여 갖은 방법으로 이들을 학대한다. 심 부인은 조씨와 결탁하여 진의 부인을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한편 진은 과거에 장원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으나, 동생의 출세를 시기한 춘의 참소로 투옥된다. 하지만 진은 결국 누명을 벗고 다시 벼슬에 나아가고, 집에서 내쫓겼던 진의 부인도 돌아와 진과 화목하게 산다.

 

(1) '사씨남정기'와 '창선감의록'의 내용상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자.

공통점

가정 내 갈등을 다루고 있다. 처첩 갈등은 아니지만, 본처의 자식과 후처 간의 갈등이 나타난다. 악한 인물이 선한 인물을 모함하는 것, 선과 악의 대립이 나타나는 것 등도 비슷하다.

차이점

'창선감의록'에서는 본 부인들이 일찍 죽어 처첩 간의 갈등이 초점이 되지는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악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다는 점 역시 다르다.

 

(2) '창선감의록'은 '사씨남정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창선감의록'을 감상할 때, '사씨남정기'가 어떤 도움이 될지 말해 보자.

→ 인물의 행동 방식이 유사한 경우 미리 예측이 가능하며, 인물들의 갈등 전개 양상도 미리 추측해 볼 수 있다.

 

5. 최근 방영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씨남정기'와 같이 여성 간의 갈등이 두드러진 작품을 찾아보고, '사씨남정기'와 갈등 유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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