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생 전(周生傳)                     -  권 필 -

◆ 소설읽기      

  줄거리   

중국 명나라 때에 주회라는 청년이 전당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 촉주로 가서 태학에 다니면서 수차 과거를 보았으나 계속 실패하였다. 과거를 포기하고 장사차 길을 떠나 강호를 유랑하였다. 우연히 고향 전당에 이르러 어릴 때의 벗이었던, 지금은 기생이 된 처녀 비도(緋桃)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비도가 노승상 부인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 드나드는 것을 엿본 주생은 몰래 비도를 따라갔다가 승상의 딸 선화의 미모에 혹하여 연정을 품게 되었다. 승상 부인은 비도로부터 주생의 탁월한 학식을 듣고 주생을 아들 국영의 스승으로 청하였다. 주생은 비도의 집에서 국영을 가르쳤다.

그러나 선화에 대한 연정을 참지 못하여 왕래의 불편을 핑계로 승상댁에 들어가 국영을 가르치면서 선화와의 밀연에 빠졌다. 이를 알아차린 비도가 원망하자 주생은 비도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비도에 대한 사랑은 이미 식어 있었다.

비도는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다가 죽었다. 국영도 우연히 병사하자 주생은 의지할 곳이 없어 전당을 떠났다. 수천 리 밖에서 선화를 그리워하던 중에 이웃 노인의 중매로 선화와 혼인이 성립되어 9월에 혼례를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주생은 종군서기로 징발되어 선화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로 송도까지 와서는 그리움으로 병이 나서 머물러 있던 중에 서술자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이에 서술자는 이 이야기를 기록했다.

  감상 및 해설  

<주생전>은 한 젊은 선비와 두 여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비극적인 사랑을 전기 형식을 빌어 그려낸 작품이다. 고전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비현실적 요소는 없다. 배경, 사건, 인물 등이 모두 현실감을 지니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비극적으로 좌절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서정시가 수많이 삽입되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가 우수로 차 있다.

과감하게 과거 시험을 청산하고 천한 직업으로 매도되던 장사꾼으로 돌아서는 데서 17세기에 시작된 조선후기적 특징을 찾아 볼 수 있고, 몰락한 양반층으로서 현실 세계의 모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을 박차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볼 수 있다. 비도는 주생과의 사랑이 자신의 신분 상승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선화는 적극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내적 욕구 실현을 위해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인 점에서는 <이생규장전>의 최랑과 같은 인물이다.

우리 고소설에 흔히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 이 작품은, 삼각 연애를 중심으로 남성의 탐욕과 이기적인 사유, 여성의 선천적인 애욕과 질투심을 그린 것이라 평가되는데, 작자인 권필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불우하게 살다간 자신의 운명을 주인공의 낭만적인 생애로 재생시킨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모든 인물들이 불우한 상태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대한 자연과 운명 앞에 인간이 그 왜소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슬픔을 서정시로 표현, 작품 전체를 우수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서술자는 남성 중심의 서술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서술자는 비도의 비극적 삶보다는 선화와 혼사를 이루지 못한 주생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후대의 춘향전 같은 소설이 여주인공의 삶과 의지에 초점을 맞추어 민중적 서술 시점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요점정리  

갈래 : 한문소설, 애정소설, 액자소설

성격 : 비극적, 사실적

배경 : 중국 명나라, 16세기 임진왜란

연대 : 선조 때(16세기 말)

시점

* 액자 속 - 전지적 작가 시점

* 액자 밖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 

* 과감하고 대범하게 표현된 비극적 애정소설

* 실사구시적 내용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이 많음.

구조상 특징

* 액자소설의 구조 : 비극성과 낭만성을 고도로 승화시키기 위한 수법으로 액자 소설의 구조를 취함.

* 입체적 인물 등장 : 시장 경제 형성의 초기 단계였던 당대 사회의 변화 양상을 반영하여 인물의 성격이나 사고가 입체적임.

* 남녀의 이산과 전쟁은 극적 긴장도를 높여 나가기 위한 문학적 장치임.

* 미완성의 종결 수법 : 비극성과 낭만성의 극대화 도모.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함을 보여 줌.

주제 : 운명에 대한 인간의 나약성과  비극적인 사랑

의의 : 초기 소설과 후대 소설의 교량적 성격을 지님.

◈ 출전 : <화몽집>

구성

* 발단 : 주생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과거에 실패하고 장삿길로 나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 전개 : 그는 우연히 어렸을 때 친구로, 지금은 기생이 된 비도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노승상 댁의 딸 선화를 본 뒤부터 주생의 마음은 선화에게 옮겨 간다. 주생은 승상 댁 아들 국영에게 글을 가르치게 되면서부터 그리던 선화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안 비도는 주생의 배신에 괴로워하다 병들어 눕게 된다.

* 위기 : 국영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주생과 선화는 만날 길이 없어져 서로 상사병에 시달린다. 비도는 비극적 사랑의 슬픔을 간직한 채 죽는다.

* 절정 : 사랑을 모두 잃은 주생은 외가의 장씨를 찾아간다. 그간의 사연을 안 장씨가 노승상 댁에 사람을 보내, 주생과 선화의 혼인을 주선한다.

* 결말 : 혼사를 몇 달 앞둔 어느 날, 왜적이 조선에 쳐들어 와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한다. 이때 주생도 명나라 군사로 조선에 오게 된 뒤, 선화와 영영 소식이 끊기고 만다.

  생각해 보기

1. 신분 상승적 성격과 민중적 소망

⇒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다른 점이 선비의 신분을 떨치고 장사꾼으로 나서는 주생에게서 새로운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배도라는 기생은 애정을 통해서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민중들의 소박한 삶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전 소설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상당한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대 소설의 배경 설정에 리얼리티를 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 권 필(선조2~광해군4)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 호는 석주. 정철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술로 낙을 삼아, 부인이 금주를 권하니 시 <관금독작>을 지었다. 젊었을 때에 강계에서 귀양살이하던 정철을 이안눌과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동료 문인들의 추천으로 제술관이 되고, 또 동몽교관에 임명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강화에서 많은 유생을 가르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구용과 함께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다. 광해군 초에 권신 이이첨이 교제를 청했으나 거절했다. 유희분 등의 방종을 임숙영이 <책문>에서 공격하다가 광해군의 뜻에 거슬려 삭과된 사실을 듣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궁류시>를 지어서 풍자 비방하였다.

이에 광해군이 대노하여 시의 출처를 찾던 중, 1612년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된 조수륜의 집을 수색하다가 연좌되어 해남으로 귀양가다가 동대문 밖에서 행인들이 동정으로 주는 술을 폭음하고는 이튿날 44세로 죽었다.

시재가 뛰어나 자기성찰을 통한 울분과 갈등을 토로하고,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 풍자하는 데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인조반정 이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광주 운암사에 배향되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위양리에 있고, 묘갈은 송시열이 찬하였다.

 

3. <주생전>에서의 에로스적 사랑

<주생전>에서의 주인공 주생의 사랑은 에로스적 사랑과 낭만이라는 도식의 전통적 연애소설이다. 주생의 첫 연인이자 고향 친구인 배도와의 만남은, 특히 연애소설의 상투적 수법인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된다.  조선시대의 다른 많은 소설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는 이러한 '낭만'은 주종관계로 얽혀 있는 신분의 부자유라는 한계성을 감성의 자유로서 그 자리매김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실 현대의 자유로운 인간은 그 자유로 인하여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며, 홀로 선 '나'로서 감수해야 하는 자유의 고독에 철저히 갇혀 이 자유로운 인간의 자유가 문제시되는 현대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과거를 포기하고 잡화상을 하며 떠돌아다니던 주생은, 어느 날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나생이라는 친구를 만나 대취하도록 술을 마신 후, 배에 올라 돛대에 기댄 채 곤하게 잠이 들었는데, 배가 맞바람을 받아 쏜살같이 흘러가 전당에 도달하여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기생 배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둘은 서로 화답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낭만적 사랑의 특징이 처음 상대를 보자마자 강한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열정이 솟아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순간적인 열정만을 두고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랑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기보다는 욕망 그 자체일 뿐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주생은 승상댁에 가서 늦게 귀가하는 기생 배도의 뒤를 쫓다가 그곳에서 선화를 보게 되며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후 주생은 기생 배도와의 사랑의 맹세를 저버리고 선화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기생 배도와의 사랑이 신분상의 한계 즉, 외부요인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일시적 충동에 그치고 마는 것은, 현대의 시각에선 절대 부당한 신분제도라는 인간을 옭아맨 쇠사슬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 이 작품에선 그 한계를 초월해 보려는 의지조차 내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에 더해, 주생전이 조선 초기 작품들에서 보이는 사랑의 완성을 위한 '초월적 힘에의 의존'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구성을 꾀하였고,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황이 자본경제가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한 격변의 시대였음을 고려할 때, 오히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그 한계를 넘어서 사랑에의 완성을 꾀한다는 것이 사실적이지 못하였을 것이다.

선화는 승상의 딸이라는 신분과 아름다움, 착한 마음씨를 고루 갖춘, 가히 낭만과 열정적 사랑의 대명사라 할 수 있겠다. 기생 배도와의 죽음으로 장애요인은 사라지고 선화와의 혼인으로 사랑은 그 완성을 이루려는 듯하지만, 조선의 왜란이라는 또 다른 장애요인 '전쟁'으로 선화와 주생은 다시 헤어지게 된다. 전쟁에 출병한 주생은 선화에 대한 그리움으로 상사병에 걸려 송경(송도)에 머물다가 '나'를 만나 그의 사랑 얘기를 전하게 되며 '나'는 그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으로서 주생전은 끝을 맺는다. <주생전>은 사랑의 성취를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성취를 향한 과정을 통해 겪게 되는 주인공의 심적 변화와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주생과 기생 배도, 그리고 선화라는 삼각 로맨스 패턴과 배도를 배신하고 선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갈등 등이다. 결국 사랑의 완성을 보여주지 못한 <주생전>에서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정열적이나 순간적이고 성숙되지 못한 쾌락에 더 가깝다.

 blue56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