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花史)                     -임제-

◇ 소설 읽기  

  줄거리  

봄 · 여름 · 가을 등 세 계절에 피는 꽃 중에서 매화 · 모란 · 부용 등 세 꽃을 군왕으로 하고, 철따라 피는 꽃 · 나무 · 풀들의 세계를 나라와 백성과 신하로 삼아서 사건을 진행시킨다. 매화는 도(陶), 모란은 하(夏), 부용(연꽃)은 당(唐)이라는 왕국을 통치한다.

도국은 6년 동안 통치되고 이어서 동도국(東陶國)이 시작된다. 동도국의 왕은 매화의 동생인 악이다. 5년 동안 정사를 보다가 장군 양서(楊絮)가 보낸 석우에게 살해된다. 그리고 석우가 또 양서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요황(모란의 별칭)을 낙양에서 옹립하니 이가 곧 하의 문왕이다.

하국은 6년 동안 통치되었으나 하왕이 후원에서 야록(野鹿)에게 물려 죽자 망하고, 녹림적(綠林賊)이 치성(熾盛, 번성함)하게 되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왕을 선언하였던 계주백(桂州伯)에게 돌아가지 않고 수중군(水中君, 連)에게 귀부하니, 그가 전당(연못)에서 즉위하여 남당명주(南塘明主)가 된다.

남당명주는 이름을 백련(白蓮)이라 하여 5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장생(長生)에 대한 말을 듣고 백로(白露)를 마셔 병을 얻고 말았다. 또한, 좌우에 있는 신하들도 모두 이슬을 마셔 벙어리가 되어 버려 말을 못하게 되니, 왕이 분을 참지 못하고 하하(荷荷)라 말하고 죽어버린다. 이밖에 많은 꽃과 나무들이 나온다.

  감상 및 해설  

조선중기 때의 문인 임제가 쓴 의인체 한문 소설이다. 작가가 남성중, 노긍이라는 설도 있으나 임제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몇 종의 필사본이 전해지며, 식물 세계를 의인화하여 사건을 전개하면서, 역사 서술방식인 본기체(本紀體)에 의하여 편년식으로 서술하였다.

<화사>는 매 · 죽 · 모란 · 연 등의 많은 꽃들을 가지고 영주(英主) · 현신(賢臣) · 우군(愚君) · 간신(奸臣)을 말하였고, 여러 제도 · 지명 · 인명 등을 모두 화훼(花卉)에 관련된 글자들로 모아 중국 역대 역사에 비겨서 서술하고 있다. 특색은 중요한 대목 밑에 사신왈(史臣曰)이라 하여 작자의 사평(史評)을 달아놓고 있는 점이다. 이는 곧 역대 왕정의 잘잘못과 신하들의 충불충 등이 미치는 응보관계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하여, 당대 현실사계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하여, 당대 현실 사회의 부정을 풍자하고 이상사회를 희망하는 작자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연은 불교의 상징과 같으므로 이를 끌어다가 혹세무민하는 사설(邪說)로 논단(論斷)해 놓음으로써 숭유배불정신을 고취하고, 왕도정치의 구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명나라 병중존(甁仲尊)이 지은 동명의 소설 <화사>와 관련이 있다 하였으나 그 체재 · 내용 등이 상이하므로 상호간의 관련성은 희박하다. 또, 설총의 <화왕계>가 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 주제나 상징적 수법에 있어서 직접적인 관련성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은 1958년 중간된 《백호집》, 별책부록《남명소승》에 수록되어 있다.

<화사>에는 작가는 봉건적 이념을 아무런 회의 없이 수용하고 있으며, 작가는 서술자의 논평을 통해 관료 사회에 대한 회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며, 이러한 것은 당시대인의 작가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요점 정리  

● 작자 및 연대 : 임제, 조선 선조 때(16세기)

● 성격 : 고전 소설, 한문 소설, 의인체 소설, 우화 풍자 소설(우의적, 연대기적, 서사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꽃나라 3대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풍자함.

● 특징

* 식물 세계를 의인화하여 인간 세계를 풍자함.

* '화왕계'와 가전체 문학을 계승함.

*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함.

출전 : <백호집>

  생각해 보기  

◆ 임제(1549년(명종 4) ~ 1587년(선조20))

임제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다. 20세가 넘어서야 성운에게 배웠다. 1570년(선조3) 22세가 되던 겨울날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성운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성운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젊어서는 얽매임을 싫어하여 기녀와 술자리를 즐기며 살았다. 1571(선조4)년 23세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때에 잠시 동안 술을 끊고 글공부에 뜻을 두었다. 과거에 몇 번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계속 학업에 정진했으며 <중용>을 800번이나 읽은 일은 유명한 일화이다.

1576(선조9)년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과 진사시에 합격했다. 이듬해에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 현감, 서도병마사, 북도병마사,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지제교를 지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차차 없어졌으며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관직에 뜻을 잃은 이후에 이리저리 유람하다 고향인 회진리에서 1587(선조4)년 39세로 죽었다. 죽기 전 여러 아들에게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오직 우리나라만은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느냐!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고 한 뒤에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검(劍)과 피리를 좋아했고 술 마시고 방랑하며 여인과 친구를 사귄 짧은 삶이었다.

 

◆ <화왕계>, <화사>, <화왕전>의 비교

이 세 작품은 꽃을 의인화하여 임금에게 깨우침을 줄 목적으로 창작되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나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화왕계>는 신라 때 설총이 지은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이자 의인 설화로, 화왕(모란)이 아첨하는 미인(장미)과 충간(忠諫)하기 위하여 베옷에 가죽띠를 두른 차림으로 찾아온 백두옹(할미꽃) 두 사람을 두고 누구를 택할까 망설이는 것을 보고 백두옹이 화왕에게 간언(諫言)하였다는 내용을 지닌다. 이 작품은 어진 임금 밑에는 어진 신하가 모이고 폭군 밑에는 간신들이 모인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의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고려조에 성행한 가전체 문학에 영향을 미쳤다. <화왕전>은 조선 정조 때 이이첨이 지은 한문 소설로 <화왕계>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화사>에 비해 직 · 간접 표현 방법과 성격 묘사, 칼등과 대립으로 인한 흥미 유발 등의 면에서 소설로서 한층 더 발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제왕이 호사 호색에 빠져 충간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교훈으로 군주의 치국(治國) 사상에 경계가 되는 작품이다.

 

◆ 세 나라의 상황

(1) 도나라 : 도나라의 열왕은 성이 매(梅)요 이름이 화(華)며 자는 선춘(先春)이다. 그의 아버지는 도씨(桃氏-복숭아나무)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들 셋을 낳았는데 왕은 그 중 큰아들이었다. 그가 성장하자 등륙(눈=雪)이 만물을 학살하니 천하가 다 원망하였다. 이에 고죽군(孤竹君)인 오균(烏筠-검은 대나무)과 대부 진봉(秦封-소나무) 등이 그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우고 합려성(합려는 중국 오나라 왕의 이름)을 도읍으로 삼았다. / 왕은 계씨(桂氏-계수나무)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왕비는 정숙하며 요조한 덕이 있고 근면하여 왕의 덕화(德化)를 도왔기에 사람들은 그를 주나라의 태사에 비유하며 집과 나라의 흥망은 부부간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했다. 왕은 오균을 재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곧은 절개를 지녔으며 호는 원통처사(圓通處士-둥글둥글하고 속이 빈 모양을 의미하니 대나무 형태를 묘사한 것임.)다. 또한 진봉, 백직(柏直-측백나무) 등을 대장군으로 삼아 등륙을 대파하여 멸망시켰다. / 진봉의 자는 무지(茂之-'如松柏之茂'라는 구절에서 따옴. 이 춘하추동 사계절 항상 무성하고 푸르러서 쇠락함이 없다는 뜻임.)로 큰 키에 푸른 수염은 창과 같이 뾰족하여 날카롭고 성품이 곧아 중심을 잃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충정의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위풍당당했다. 백직은 자가 열지(悅之-'松茂柏悅'이란 말이 있는데 은 동류의 나무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측백나무가 기뻐하며 서로 잘됨을 바란다는 뜻임)로 성질이 곧고 견실하며 매양 싸움에 이기고도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무지에게 돌리는 덕이 있었다.

사신(史臣)인 나는 말한다. 이렇듯 왕은 어진 신하를 얻어 천하를 바로잡고 어진 장수로 변방을 다스리게 하였으니 세상이 평화로웠다. 그러나 왕이 나라를 세우자마자 죽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2) 동도(東陶)나라 → 영왕(英王)의 이름은 악(꽃받침)으로 열왕의 동생이다. 열왕이 기름진 땅을 골라 두 아우를 봉했는데 그 중 영왕이 더 총애를 받았다. 영왕이 입궐할 때면 열왕은 매양 손을 잡고 화악루에 올라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 이름의 연유는 열왕의 이름이 화(華-)이고 영왕의 이름이 악(꽃받침)이었던 까닭이다. 열왕은 아우와 헤어지며 시로써 작별을 했는데 '우리들 꽃 시절이라 되어 오면 너 나 한가지로 즐기건만, 때 가서 꽃 지고 시들면 그대와 헤어져 이별을 하니한 많은 그 시름 어디에다 풀 것인가'하고 노래를 지었다. / 영왕은 이옥형(李花-자두나무 꽃)을 승상으로 삼았는데 이옥형은 조정의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충신 오균을 모함했다. 옥형의 자는 성경(星卿-북두칠성 제5성의 다른 이름)이라 하는데 당나라 승상 임보의 후손으로 타인을 시기하고 남을 모함함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옥형에게 조상의 기질이 있다고 비난했다. 영왕은 옥형의 누이 이씨 부인을 후궁으로 얻었다. 애당초 왕은 매씨(梅氏)를 왕비로 삼았으며 충신 오균이 동성끼리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충간했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왕비는 어진 덕이 있었으나 왕이 양귀인(楊貴人-버드나무)를 총애하게 되니 쓸쓸하게 죽어갔다. / 왕의 성품이 검소하여 처음에는 나라를 다스림에 밝더니 옥형을 승상으로 삼고 오로지 양비를 사랑하게 된 뒤로는 태만하여 토목 공사를 일으켜 장성(長城)을 쌓고 궁원(宮園)을 사치스럽게 꾸미니 나라의 습속이 어지러워졌다. 더구나 왕의 옆엔 춤추고 노래부르는 자들이 항시 떠나지 않았으며 마침내 반란이 일어나 왕은 죽임을 당했다. 영왕의 세대는 마치 당 현종 때와 같았다. / 사신인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치스러운 마음이 생동하면 소인이 진출하고 충언을 거역하면 어진 사람이 물러가고야 마는 것이니 어찌 임금이 이를 경계하지 않을 것인가. 어진 사람의 하는 바는 보통 사람의 소견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3) 하나라 → 하나라 문왕(文王)의 성은 요(姚)이고 이름이 황(黃), 자는 단(丹-목단, 모란을 뜻함.)이다. 왕은 어려서부터 기특한 기질이 있었고 얼굴이 악단(渥丹-붉은 모란)과 같아 풍채가 수려하였다. 도나라가 망하자 왕이 됐으며 위자(魏紫-목단 이름)를 왕후로 책립하고 김대위를 승상으로 삼았다. 김대위의 자는 미춘(尾春-작약으로 끝봄에 피기 때문에 미춘이라고 함.)으로 왕과는 본관이 같았다. / 백부(柏府-어사대의 별칭), 괴부(槐府-중국 학사원 제3청의 별명), 자미원(紫薇院-자미성), 한림원(翰林院) 등을 설치해 글을 잘 아는 방정한 인사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은거처사 의란(난초)과 주지(朱芝-영지버섯)를 불렀으나 이들은 응하지 않고 대신 문하생 굴질, 연년, 감초, 석죽 등을 내보내 관직에 오르게 했다. 그러나 당은 분당돼 어지러웠으며 왕은 궁녀들과 사치한 생활을 즐겨하며 괴한 돌을 구해 산을 만들고 연회를 즐겼다. 왕은 이러한 생활을 즐기다 후원에서 야생 사슴에 물리자 궁녀가 독약을 올려 그것을 마시고 죽어갔다. 김대위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풍백에게 패하고 수중군(水中君-연꽃)이 왕에 올랐으니 이가 곧 남당(南唐)의 명왕(明王)이다. / 사신인 나는 말한다. 미인이 사람을 해치니 몸을 망치고 집안이 패가하고 나라가 멸망하게 되는구나. 아첨을 좋아하고 직언을 미워하는 마음이 커져 재물만 탐하고 인민을 학대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구나.

(4) 당나라  →  당나라 명왕의 성은 백(白)이고 이름은 연(蓮)이었으며 자는 부용(芙蓉-연꽃의 별명)이다. 하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자 두약과 백지 등이 수덕(水德)이 있는 그를 추대해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러나 풍백이 임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금(金)이라 했다. 그리고 아첨하는 자들에게 둘러 쌓인 채 직간하는 자들은 다 귀양보냈다. 결국 당나라는 5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 백호 선생은 소설의 말미에 결론 내리기를 '천지에 인간은 다만 한 가지 뿐이로되 꽃은 천백종이다. 하늘은 꽃으로 춘하추동 사계절을 행하게 하나 사람은 꽃을 가지고 사계절을 분간할 따름이니 인간이 어찌 꽃의 신용을 지킴과 같을까. 꽃은 끊임없이 봄바람에 피고, 가을되면 떨어져도 원망하지 않으니 인간이 어찌 그 천성을 따를 것인가. 인간이 한 가지 기능과 조금의 재주만 있어도 반드시 일세(一世)에 자랑하고 백대의 후세에 전하고자 서로 공명을 다투어 역사에 기록되고자 한다. 그러나 꽃은 그러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천성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군자와 같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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