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 향 전(春香傳)                    -  미 상 -

◆ 소설 읽기   

  줄거리   

숙종 대왕 초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는 퇴기가 있었다. 그녀는 아기 갖기를 소원하여 성참판과 동거하여 춘향이라는 아리따운 딸을 낳았다. 자색이 천하에 일색인 춘향은 성장하면서 시서에 능하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에 올라 춘흥에 겨워 시를 읊고 있었다. 이때 춘향은 향단이를 데리고 광한루 앞 시냇가 버들숲에서 그네를 뛰며 놀고 있었다.

우연히 춘향을 발견한 이도령은 한눈에 반하여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러오게 한다. 두 사람은 상봉하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헤어지면서 이도령은 밤에 집으로 찾아가겠노라고 언약한다. 글방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춘향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며, 책읽기도 건성이었다. 드디어 밤이 되자 이도령은 방자를 앞세워 춘향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춘향과 백년가약을 맺고자 월매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월매는 난봉꾼의 수작 정도로 여기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두사람의 혼약을 수락한다.

이도령은 밤마다 춘향을 찾아 사랑을 속삭인다. 그런데 이부사가 내직으로 전출하게 되어 이도령은 부득불 상경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이도령은 춘향에게 후일을 약속하고 서울로 떠나며, 춘향은 이도령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이때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 변학도는 호색한답게 정사는 돌보지 않고 기생점고부터 시작한다. 50여명의 기생을 점고한 그는 마지막으로 춘향을 발견하고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거절한다. 변학도는 크게 노하여 태형을 가하지만 춘향은 죽기를 결심하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옥에 갇힌 춘향은 임을 그리워 하다가 잠이 들어 꿈 속에서 이비(二妃)를 만난다. 지나가는 장님에게 물어보니 서방님이 돌아오고 부귀영화를 누릴 꿈이라고 일러준다. 변학도는 자신의 생신연에 마지막으로 춘향의 의중을 들어보기로 하고 만약 그때도 거절하면 처형하겠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간 이도령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춘향과의 재회만을 생각한다.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된 그는 전라도로 내려온다. 하루라도 빨리 춘향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남원으로 향한다. 도중에 농부로부터 춘향이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걸인 복색을 하고 춘향의 집으로 가서 월매를 만난다. 월매는 딸을 구해줄 이어사가 걸인 복색으로 나타나자 실망하여 딸이 죽게 되었다면서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이어사는 옥중으로 춘향을 찾아간다. 춘향은 이어사를 알아보지 못한다.

변학도의 생신연이 벌어지는 날이 되었다. 각읍의 관장들이 모여 들었다. 생신연은 성대했다. 이어사는 연회에 걸인의 행색을 하고 참석하여 차운(次韻)을 제의하여 높을 고(高)에 기름 고(膏) 두 자를 운으로 시를 지어 탐관오리의 학정을 비판한다. 이어서 어사또가 출도하여 탐관오리 변학도를 봉고파직하고 춘향을 구한다. 춘향은 수절로 정렬부인으로 봉해져 삼남이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며, 이어사는 후에 좌우영상까지 지낸다.

  감상 및 해설  

<춘향전>은 <심청전><흥부전> 등과 함께 판소리계 소설이다. 이러한 판소리는 전부가 어떠한 근원설화를 가지고 있다. 그 근원설화를 찾아보면 열녀설화, 암행어사 설화, 신원설화, 염정설화 등이 있다. 춘향전은 그러한 설화를 종합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를 테면, 남원에 춘향이라는 기생이 이도령을 사모하다 죽었다는 신원설화, 박문수 등의 암행어사 설화 등이 종합적으로 구성되었으며, 벽오 이시경의 실제담이라는 설, 남원 사람 육계 노정의 실제담, 또는 전북지방에 떠돌던 이야기라는 등 여러 추측이 많으나 하나도 확실치는 않다.

<춘향전>은 봉건사회의 도덕을 깨뜨리고 자유연애를 주장하였으며, 탐관오리의 가렴주구를 폭로하여 위정자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한편,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표상함으로써 신분 타파를 부르짖었고, 천인(賤人)이 누릴 수 없었던 자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하였다. 또한 유교적인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사상인 정절을 고취하였고, 민중의 반항을 은근히 내포하였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춘향전은 소재의 설화성, 배경의 현실성, 표현의 진취성, 눌림의 저항성, 인내의 광명성, 해학 풍자성으로 보아 우리 고전문학의 금자탑이 아닐 수 없다. 천민 내지 상민의 해원(解怨)이라는 대동적 잔치로서, 춘향전은 고전소설 중 양반과 관료의 대표적 소설인 <구운몽>과 맞서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유교적 색채가 짙은 중국의 <서상기>로부터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 <춘향전>의 표면 주제와 이면 주제

춘향전은 이본 수, 유포의 범위, 인기의 정도 등 어느 측면에서든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사건 설정이 흥미로운 데 있다. 춘향과 이몽룡이 오월 단오날 남원 광한루에서 만나 수작을 건네더니, 바로 그날 밤에 음란한 놀음을 벌였다. 그 이후 행복과 고난의 극적인 교체로 갖가지 긴장을 조성해 독자를 작품에 빠져들어가게 한다. 춘향 어미 월매와 이몽룡을 따라 다니는 방자의 주착스럽고 익살스러운 성격이 또한 커다란 구실을 해서 작품을 더욱 다채롭고 생동하게 한다.

또한 논리로는 풀이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제기하여 긴장감을 더한다. 한편에서는, 이몽룡을 위해서 정절을 지키느라고 변사또의 수청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한 춘향을 열녀라 칭송했으며, 그렇게 하는 데 합당하게 춘향이는 양반의 서녀로 품행과 교양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춘향은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에 맞게, 이몽룡에게 혼례를 하지 않고도 만난 첫날 몸을 허락했다. 변사또와 춘향이 맞설 때도, 춘향은 양가의 부녀를 겁탈한다고 항변했으며, 변사또는 기생이 수절을 하겠다니 가소로운 일이라고 했다. 요컨대 춘향은 기생이면서, 기생이 아니다. 신분에서는 기생이지만 의식에서는 기생이 아니어서, 그 둘 사이의 갈등에서 작품이 전개되고, 신분적 제약을 청산하고 인간적인 해방을 이룩하는 데 이르렀다.

 

  요점정리  

성격 : 고전소설, 판소리계 소설, 염정소설

근원 설화

* 관탈민녀형 열녀설화 → 벼슬아치가 민간의 여인을 탐내어 정조를 유린하려 하지만 여인이 끝까지 정조를 지킨다는 내용의 설화로, '도미설화', '지리산녀 설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암행어사 설화 → 어사 이시발의 실제담. 박문수 설화.

* 신원설화 → 한을 간직한 채 죽은 영혼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는 이야기. 한을 품고 죽은 춘향이라는  추녀를 위로하였다는 남원의 구비 설화로 '아랑의 전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염정(애정)설화 → 양반 자제와 기생의 사랑 이야기, '성세창 설화(동야휘집)'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공간적 → 전라도 남원 고을

* 시간적 → 조선시대

* 사상적 → 유교사상(춘향의 수절, 입신양명, 충효사상 등)

                  실학사상(계층 이동과 신분 상승의 가능)

주제 : 신분(계급)을 초월한 사랑과 부패 관료 고발 및 휴머니티

구성 : 복합구성

→ 춘향과 이도령의 플롯(1), 춘향과 변학도의 플롯(2), 이 두 개의 독립된 플롯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다가, 춘향과 이도령과 변학도의 플롯(3)에 의해 통합되는 구조를 지님.

갈등 구조 : 개인과 환경 간의 갈등

→ 춘향의 신분 상승에 대한 집념과 당대의 사회적 환경 사이의 불일치

등장 인물

성춘향 → 퇴기의 딸로, 이도령과 만나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끝까지 수절을 하는 여인이다. 물론 이러한 삶의 자세는 전통적인 윤리 의식에 충실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다운 삶과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근대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선인군(善人群)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몽룡 → 남원부사 이한림의 아들로, 양반 출신이면서도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는근대적 인물이다. 경판본에서는 전형적인 난봉꾼으로 형상화되기도 하지만, 완판본의 경우에는 의리를 지킬 줄 알고 책임감이 강한 청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선인군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변학도 → 당대의 탐관오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악인군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반상의 제도를 철저히 지키면서 그것을 악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고 상민의 신분 상승 의지를 꺾는 관리의 전형이다.

방자 → 상전의 위세를 믿고 양반 행세를 하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양반에게도 능청스럽게 구는 희극적인 인물이다.

월매 → 퇴기로 성참판과 동거하면서 춘향을 낳고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향단 → 착하고 얌전한 여인으로, 전형적인 종이다.

문학사적 의의

① 고전 소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반봉건적 문학으로서 조선 시대 소설의 최대 걸작임.

② 목판본(경판본, 완판본, 안판본), 활자본, 필사본(만화본 춘향가), 판소리 사설, 극본, 시나리오 대본 등 120여종이 넘는 이본이 존재하며, 여러 이본 중 전주 와서계서포에서 발간한 <열녀춘향수절가>가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인정되고 있다.

③ 사실적 소재와 배경 설정으로 리얼리티를 획득함.

④ 당대의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함. → 서민의 저항 정신 및 민중의 승리

 

  생각해 보기  

1. 춘향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 첫째, 춘향은 표정이 풍부한, 솔직하고 명백한 인물이다. 둘째, 춘향은 이지적이고 명쾌한, 단정적인 인물이다. 셋째, 춘향은 자기 단정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신분적 열등 의식에 충격을 받으면 저돌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넷째, 춘향은 논리적이고, 냉정하고, 초연한 심성의 소유자로 사회적인 규범이나 관습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들일 줄도 아는 인물이다.

 

2. 춘향이라는 인물은 근대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춘향을 근대인으로 파악할 수 있는 요소에 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 보자.

⇒ 춘향에 의해서 구현된 사회사적 의의는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 첫째, 춘향은 당시 사회의 계급 구조의 가변성을 시현하였고, 나아가서는 가변성 뿐만 아니라 실제로 계급 구조가 변질하고 있었다는 하나의 현상을 반영했다. 둘째 춘향은 자신의 선택 의식에 따라 행동 체계를 전개하는 이른바 게젤샤프트(이익사회)적 인간의 한 패턴이었다는 점에 또 하나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3. 춘향이 신분 상승의 성취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보자.

⇒ <춘향전>의 궁극적 갈등은 춘향의 신분 갈등이며 춘향의 열녀 의식은 신분 상승 동기를 성취하기 위해서 제시한 방어 기제와 관계가 있고, 작품 내에서 그것은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적 가치이기도 한 것이다. 또 춘향은 자기가 추구하는 신분 상승 동기를 성취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장애 세력과 대결하였다는 점으로 볼 때 매우 강렬한 개인주의 의식의 소유자였으며, 따라서 근대 지향적, 이익 사회적 인간형이다.

 

4. 춘향이 사또의 수청 강요에 항변하다가 곤장을 맞게 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는대목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작중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는 판소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 판소리의 웃음은 대다수 청중들의 요구와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은 여전히 신분제의 질곡과 경제적 궁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삶의 고뇌와 비애로 인한 긴장을 웃음으로 해소하고, 지배층의 무능력과 허위를 웃음을 통해 통렬하게 공격함으로써 삶의 건강성을 회복하려 하였다. 이러한 청중의 요구는 판소리에 반영되어 판소리는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음을 지향하는 속성을 갖게 되었다.

 

5. <춘향전>의 근원 설화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춘향전의 근원 설화로 추정되는 것으로는, '열녀 설화', '추녀 신원 설화, '염정 설화', '암행어사 설화' 등이 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조 순조 때의 조재삼의 저서 「송남잡식(松南雜識)」에는 '춘양'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원지방 전설에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이 어린 기생 춘양과 친근하게 지내던 중 이도령이 떠난 뒤 춘양이 수절을 하고 있었는데 새로 부임해 온 부사 탁종립이 춘양을 죽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애석하게 여겨 타령을 지어 춘양의 원혼을 위로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철종 때의 이삼현의 저서 「이관잡지(二官雜誌)」에는 벽오 이시발이 선조 때 춘향전의 내용과 비슷한 일을 겪어다고 하는데, 시발의 자손인 판서 이규방의 말에  자기 집 가승(家乘) 가운데에도 그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조 때의 이희준의 저서 「계서잡록(溪西雜錄)」에는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어려서 외숙부를 따라 진주에 갔는데 거기서 한 기생과 친밀히 지내다가 돌아왔다. 10년의 세월이 지나 그가 암행어사가 되어 진주로 가서 걸인 복장으로 그 기생을 찾으니 박문수를 푸대접하였다. 그래서 박문수는 전에 알고 지내던 여종을 찾아갔다. 여종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여 잘 대접해 주었다. 다음날 그곳 부사의 노여움을 사 박문수느 꽃겨났다는 것이다. 뒤에 박문수는 어사출두하여 그 기생에게 형벌을 내리고 여종을 기생의 우두머리로 올렸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숙종 때의 김우항이 48세가 될 때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해서 큰딸의 약혼을 해 놓고 결혼비용이 없어 단천부사로 가 있는 이종을 찾아갔으나 푸대접만 받고 나왔다. 그때 단천 부내에 속해 있던 기생이 그를 찾아와 자기 집으로 안내하여 후하게 대접을 해 주고 그의 딸 결혼 비용까지 마련해 주어 집으로 돌아와 딸을 출가시켰다. 그는 그 해에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는 걸인의 행세를 하면서 단천으로 가 그 기생을 찾으니 역시 반가히 맞이해주고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다음날 부중에 들어가 어사출두하여 부사의 죄를 다스려 파직시키고 돌아와 임금에게 그 기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임금이 그를 칭찬하시고 그 기생과 같이 살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6. '설화 → 판소리 → 소설'로 변모해 가는 과정이 다른 판소리계 소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지 조사해 보자.(판소리계 소설의 형성과정)

⇒ 판소리는 17세기 말에서부터 형성되어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연행되었다. 판소리는 하나의 이야기 문학으로서, 그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던 사건들을 선행하던 설화문학에서 차용해 왔다. 이처럼 구비문학은 개인의 독창성보다는 한 언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합의로 만들어지고 전승 · 발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심청전>의 근원설화에는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위해 종으로 몸을 팔았다는 효녀지은 설화, 바다에 희생 제물로 던져졌다가 용왕의 딸과 결혼하여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거타지 설화와 함께, 인신공희 설화, 맹인 개안 설화 등이 있다. 이들 설화들은 삼국 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던 설화로서, 조선 후기에 들어 판소리 심청가에 수용되었다.

<흥부전>은 혹부리 영감이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와 같은 모방담의 형식을 가진 일련의 설화와 신라 때의 방이 설화, 그리고 선악 형제담, 동물 보은담, 무한 재보담 등을 수용하고 있다.

<토끼전>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구토지설'을 근간으로 하여 용궁 설화, 쟁장(爭長) 설화 등을 수용하여 형성되었다.

이들 세 작품은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판소리로 연행되다가 후에 다양한 이본으로 파생되면서 판소리계 소설로도 전환되어 간다.

한편 판소리 <적벽가>는 중국의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모본으로 삼고 있기에 여타의 판소리 바탕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당대에  '삼국지연의'가 상당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판소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을 그대로 판소리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이미  '적벽대전'처럼 설화화되어서 유통되던 각편에 근거하여 판소리로 정착되어다고 보는 것이 옳다. 18세기에는 '화용도'를 비롯한 소설본과 판소리가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7. 판소리는 양반과 평민 모두에게서 사랑받은 예술이므로 판소리에는 평민적 세계관과 양반적 세계관이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 혼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이러한 양면성을 설명해 보자.

⇒ 이 작품에서 춘향은 양반적 섹계관에 합당한  '열(烈)'을 지키는 여성의 모습을 보이며, 이면적으로는 신분 해방을 추구하는 서민의 모습을 동시에 갖는다. 이 같은 인물의 양면성은 주제로도 이어져 이 작품은 '신분 해방'이라는 새로운 근대적 가치와  '열(烈)'이라는 중세적 가치가 혼재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양반과 서민이 각자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주제를 찾을 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8. 춘향이 매 맞는 부분은 판본에 따라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기도 한다. 본문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이처럼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는 이유를 판소리의 전승 과정에 비추어 설명해 보자.

일체 낱 딱 붙이니, "일정지심(一貞之心) 있사오니, 이러하면 변하리요." "매우 쳐라." 딱. "이부(二夫) 아니 섬긴다고, 이 거조(擧措)는 당치 않소." 셋째 낱 딱 붙이니, "삼강(三綱)이 중하기로, 삼가 본받았소." 넷째 낱 딱 붙이니, "사지를 찢더라도, 사또의 처분이오." 다섯째 낱 딱 붙이니, "오자을 갈라 주면, 오죽이 좋으리까." 여섯째 낱 딱 붙이니, "육방(六房) 하인 물어 보오, 육시하면 될 터인가." 일곱째 낱 딱 붙이니, "칠사중(七事中)에 없는 공사, 칠 대로만 쳐 보시오." 여덟째 낱 딱 붙이니, "팔면(八面) 부당 못 될 일을, 팔짝팔짝 뛰어 보오." ……

⇒ 본문의 <춘향전>에서는 곤장을 한 대 한 대 맞으면서 춘향이는 변 사또에게 숫자를 이용하여 말놀이 하듯 발언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의  <춘향전>은 '보기'의  <춘향전>에서보다 말을 길게 하며, 그 내용이 희화화되어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장면의 변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이 작자가 없는 적층 문학이라는 데에 있다. 판소리 청자나 사설의 기록자는 자신이 구상한 장면을 덧붙이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삭제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판본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한 판소리 광대의 연행일지라도 청중과 연행 상황에 따라 변개해 가면서 판소리를 연행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표현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blue56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