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                  - 작자미상 -

◇ 소설읽기   

  줄거리  

평양성 밖 김 진사의 딸 채봉은 꽃구경을 나섰다가 전(前) 선천 부사의 아들 강필성을 만나 서로 호감을 갖는다. 필성은 채봉이 부끄러워 도망치다가 떨어뜨린 손수건에 연정을 담은 시를 써서 시비 추향에게 전하고, 채봉은 회답시를 보낸다. 채봉의 어머니 이 부인이 채봉을 질책하자 채봉이 사실을 고한다. 채봉의 아버지 김 진사는 딸의 혼약처를 구하러 한양에 갔는데 세도가 허 판서의 문객 김양주를 만난다. 그 사이 필성이 어머니를 통하여 채봉의 집에 매파를 보내자 채봉의 어머니는 채봉과 필성의 혼인을 허락한다.

한편, 채봉의 아버지 김 진사는 한양의 허 판서 댁에 갔다가, 허 판서로부터 채봉이를 첩으로 삼고자 하는 뜻을 전달받는다. 허 판서는 채봉이를 자신의 첩으로 주면 김 진사의 앞날을 보장하겠다는 유혹을 하게 되고, 김 진사는 그 말에 솔깃하여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채봉은 강필성에 대한 신의를 말하지만 부모는 무시해 버린다.

채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진사는 가산을 정리하여 상경한다. 김 진사 일행은 도중에 화적을 만나는데, 이때 채봉은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평양으로 되돌아온다. 김 진사는 화적에게 재물을 빼앗기고 허 판서에게 사정을 알리니 허 판서는 대노하여 김 진사를 하옥시킨다. 부인은 할 수 없이 채봉을 찾으러 평양으로 온다. 채봉은 평양에서 시비 추향의 집에 묵고 있었는데, 기생어미가 그녀에게 기생되기를 권하나 거절한다. 채봉의 어머니는 추향의 집에서 딸을 만나 아버지가 하옥되어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상경하자고 조른다.

채봉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기생으로 몸을 팔기로 작정하고 기생어미로부터 돈을 받아 어머니에게 준다. 기명을 송이라고 한 채봉은 강필성에게 화답하여 보낸 한시를 내놓고 그것을 풀이하는 사람에게 몸을 하락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도 풀지를 못한다. 필성은 기생 송이가 제시하였다는 한시를 듣고 하도 신기하여 찾아갔다가 채봉을 만나고 그 뒤 밤마다 찾아가서 사랑을 속삭인다.

한편, 평양감사 이보국이 송이의 서화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와 곁에 두고 서신과 문서를 처리하는 일을 맡긴다. 필성은 채봉을 잃고 상사와 고민으로 지내다가 감영의 이방이 되기를 자원하여 채봉과 만나고자 한다. 채봉은 별당에 거처하면서 필성을 날마다 그리워하고 있다가 어느 달 밝은 밤에 <추풍감별곡>을 지어서 부른다. 이 노래를 들은 감사가 채봉을 불러 천한 이방을 사모한다고 질책한다. 이에 채봉은 현재 이방으로 와 있는 필성과의 관계를 고백한다. 감사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상히 여겨 필성을 불러서 상면하게 하고는 감사 자신이 주혼이 되어 두 사람을 혼인시킨다.

  감상 및 해설  

작자, 창작 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로, '추풍감별곡'이라는 표제도 있는데, 이는 작품 안에 삽입된 가사체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 가사를 소설 속에 삽입하는 경향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남녀 주인공이 기구하게 헤어지고 만나는 광경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장필성과 약혼한 채봉이 아버지 김 진사의 욕심으로 인해 허 판서의 첩이 될 위기를 맞지만, 도망하여 기생이 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남녀 주인공이 부패한 권력과 허욕에 찬 인간 군상들에 맞서다가 끝내 진실한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 등의 통속적 요소들이 짜임새 있게 결합되어 대중의 흥미를 끈다. 한편, 신분 변화의 위기를 감수하며 애정을 성취해 나가는 여성의 주체성, 남용되는 가부장적 권위(봉건적 세계관)에 대한 도전, 부패한 관료들에 대한 비판과 민중의 저항 의식 등 당대(근대전환기)의 시대 정신이 잘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중국 소설집 <금고기관(今古奇觀)> 중의 '왕교란백년장한'과 유사한 점이 있어 번안이라는 논란이 있다. 서두의 남녀 상봉 과정과 화답한 시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영향을 받은 듯하나, 줄거리와 짜임새는 서로 달라 창작 소설로 판명된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조선 말기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며, 딸을 팔아서까지 벼슬하려고 하는 김 진사, 부모의 명을 거역하고 도망하였다가 기생이 되는 채봉, 애인을 만나기 위하여 천한 이방이 되는 필성 등은 기존 질서에 크게 파격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신분 질서의 와해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탐욕과 출세욕이 나타나는 특징은 개화기의 고전 소설과도 상통하는 점이다. 현실적, 합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개와 사실에 가까운 표현법 등은 이 작품이 근대 소설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말기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애정소설이다. 소재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매관매직이 공공연하게 횡행하던 조선 말엽 시대상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애정소설의 여주인공이 대부분 기생 출신이었던 것에 비해 양가의 규수를 택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애정소설의 대부분이 일부다처를 당연시하던 것에 비해 진실한 애정으로 결합하는 일부일처주의를 표현하고 있다. 현실적인 사건 묘사에 있어서는 <춘향전>을 넘어서는 수작이다.

  요점 정리  

● 갈래 : 고전소설, 장편소설, 애정소설, 세태소설

● 성격 : 비판적, 염정적, 사실적, 진취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성

* 채봉과 같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근대적인 여인상을 창조함.

* 고전소설의 우연성과 비현실성을 탈피하고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사건을 전개함.

* 가사(歌辭) '추풍감별곡'을 삽입함. → 이 글의 또 다른 제목이자 채봉이 지어 부르는 '추풍감별곡'은 동명의 서도창이 따로 존재하는 가사체의 작품이다. <채봉감별곡>에는 이처럼 가사 작품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 가사를 소설 속에 삽입하는 경향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음.

* 매관매직과 인권 유린을 일삼는 허 판서, 자식을 팔아서까지 벼슬을 구하는 김 진사 등 당대의 타락상을 제시함.

* 서사 구조적 측면에서 근대 전환기 자본주의적 시대상을 드러냄.(유형적 인물 간의 대립 약화, 인물과 환경의 대립 및 분열 관계가 두드러짐, 미래지향적 전망에 따라 현실적 환경과 맞서서 모순을 해결하려는 역동적인 플롯을 취함.)

* 언어 형식면에서도 미적 근대성을 확인함.(서술자가 일부 이야기를 현재화해 서술하여 이야기 사건을 역전시킴. 서술 시간의 완급을 자유로이 조절함. 장면 확대 및 서술 대상의 시각화를 종종 시도함. 독백이나 시가의 삽입으로 인물의 내면에 접근함.)

● 인물

* 김채봉 → 김 진사의 외딸. 사리가 분명하고 주체적인 여인. 온갖 고난을 이기고 강필성과 맺어짐.

* 강필성 → 전 선천 부사의 자제로, 재주가 뛰어나고 순정적임. 기생이 된 채봉과 만난 뒤에도 정분을 잊지 않음.

* 김 진사 → 채봉의 아버지. 부귀를 탐해 외딸 채봉을 허 판서의 소실로 보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갖가지 고초를 겪는다.

* 이씨 부인 → 채봉의 어머니. 단순하고 생각이 좁으며 변덕스럽다.

* 허 판서 → 장안 제일의 세도가. 탐욕스러운 인물로 김 진사의 돈을 받고 벼슬을 약속한 뒤 채봉까지 소실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 구성

* 발단 → 채봉과 필성이 만나 가약을 맺음.

* 전개 → 김 진사가 채봉을 허 판서의 첩으로 보내는 대가로 벼슬을 할 생각을 함.

* 위기 → 상경하는 도중에 채봉은 도망하고 김 진사는 하옥됨.

* 절정 → 하옥된 김 진사를 구하기 위해 채봉은 기생이 되고 필성과 화답했던 한시를 통해 채봉과 필성이 재회함.

* 결말 → 평양 감사 이보국의 도움으로 채봉과 필성이 결혼함.

● 주제 :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순결하고 진실한 사랑의 성취

● 의의 : 고전 소설의 특징인 우연성과 전기성이 거의 사라진 형태의 독창적인 작품임.

  생각해 보기  

◆ <채봉감별곡>의 소설사적 의의

<채봉감별곡>은 여성 인물의 주체성 발현을 통해 애정의 장애(문제)를 해결해 가는 우리 애정소설의 오랜 전통을 잘 잇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시대와 변화된 세계관이 투영되어 당대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전환기 문학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서사 작품이다.  우리나라 애정소설의 저변에는 변치 않고 동일하게 흐르는 서사적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 인물의 '주체성 발현의 전통'이다. 우리 애정소설에서는 애정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주체로서 몸부림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오랫동안 형상화되어 왔다. <채봉감별곡>은 그런 애정소설의 전통을 이어 발전시킨 작품이다. 특히, 환경과 대면해 주체성을 발현하는 현실적 인물을 이전의 어느 소설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냄으로써 애정소설의 서사적 발전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사실 우리 고소설사에서 애정소설이 차지하는 위치는 양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을 읽고, 그들이 즐기며 꿈꾼 것들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역할을 담당해 온 장르가 바로 애정소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애정소설로서의 <채봉감별곡>은, 부정적 현실과 대면하며 적극적으로 주체성을 발현하는 여성 인물을 역동적으로 그림으로써, 우리 애정소설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곧 이 작품은 전대의 서사적 전통을 이으면서도 문학적 근대성을 획득한 점에서 소설사적 의의가 크다. 한편, 이 작품은 가사가 삽입된 동시대 애정류 고소설이라 할 수 있는 <청년회심곡>, <부용상사곡> 등과 비교해 볼 때, 내용의 근대성 측면에서 앞서 있다. 주체적 인물 형상이라든가 사실적 환경 설정 등을 통해 근대적 애정관 및 현실 인식 등이 더 잘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사적 기원을 달리하지만 조선조 애정소설의 전통을 이은 몇몇 신소설과,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일컫는 <무정> 등과 비교해도 그에 필적할 만한 미적 근대성을 확보했다. 특히 이것이 전적으로 우리의 자생적이고 현실적인 토대에서 발아된 점은 중요한 의의이다. 고소설 <채봉감별곡>은 동시대의 신소설 및 근대소설 등과 공존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그 나름의 근대성을 지향함으로써 당대 전통문학의 주체적인 자기 갱신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우리 소설 양식의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이끌며 근대소설이 발아할 통로를 여는 데 일조한, 고소설에서 근대소설로 이행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요컨대, <채봉감별곡>은 종전 애정소설의 전통을 수용하고, 새로운 시대상과 변화된 세계관을 반영하는 서사 구조 및 언어 형식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의 변화상과 흐름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외세의 압제를 견디며 근대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만 했던 아픔과 전환의 시대상황에서 우리 나름의 알찬 문학적 성과를 낸 작품이다. 앞으로 <채봉감별곡>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인격적 주체로서 사랑과 신의를 끝내 지켜낸 인물상만이 아니라, 대중성과 미적 근대성을 확대하며 자기 갱신을 시도했던 우리 소설의 발전상을 찾을 수 있어 그렇다. 이 작품이 소중한 민족 문학 유산으로서 더 많이 수용되고 인식되길 소망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전체 줄거리)

모란봉 추운 바람이 단풍과 낙엽을 흩날려서 평양 성중으로 불어 떨어뜨린다. 사정없이 넘어가는 저녁 빛에 홀로 서쪽 창을 의지하여 떨어지는 낙엽을 맥없이 보며 앉아 있는 여인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 진사 집 처녀 채봉이었다. 김 진사는 평양에서도 점잖기로 소문난 양반이었다. 문벌과 재산이 남부럽지 않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항상 한탄하더니, 만년에 딸 하나를 낳아 이름을 채봉이라 하여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 채봉은 재주가 뛰어나고 아름다워 김 진사 내외가 몹시 사랑하여 그에 어울리는 짝을 찾아주려고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나 평양 같은 시골에서는 훌륭한 신랑을 얻지 못할 것 같아 김 진사는 사윗감을 구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별당에서 아버지가 신랑감 구해오기만을 기다리는 채봉의 나이는 어느새 이팔이 되어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감을 한탄하는데, 하루는 단풍 구경을 하러 후원으로 나갔다.

"아이고 벌써 나뭇잎이 빨갛게 되었네. 아, 세월도 빠르구나. 봄인가 했더니 어느덧 가을이구나. 인생도 또한 흘러가는구나."

채봉이 이와 같이 한탄하며 나뭇잎을 뺨에 대고 비비는데, 갑자기 한쪽 편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한 소년이 나타났다. 나이는 18, 9세 가량으로 의복이 단정하고 얼굴은 관옥 같고 풍채가 수려하였다. 채봉이 첫눈에 그 소년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내색을 하지 못하고 시비인 취향이와 함께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소년 역시 채봉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여보니 손수건 한 장이 떨어져 있는데, 채봉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소년이 반가운 마음에 대단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기뻐하는데, 취향이 나오더니 그 손수건을 찾는 것이었다.

"아이, 이상도 하다. 그것이 어디 갔을까?"

이때 소년이 얼른 나서며,

"이 손수건의 주인 이름을 알려주면 손수건을 돌려주겠다."
라고 하였다. 역시나 그 이름이 채봉이인 것을 알고 소년은 손수건에 편지를 급히 써주었다.

"나는 대동문 밖에 사는 장필성으로 선친께서는 선천 부사로 계시다가 돌아가시고 편모 슬하에서 아직 장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 손수건을 보시고 답장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채봉은 취향이 가져온 손수건을 보고 답장을 써주면서 김 첨사 댁에 머물고 있다는 장필성이 그 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시켰다. 취향이 알아본즉 김 첨사는 장필성의 외가 쪽이었고, 필성의 사람됨과 인물이 가히 채봉 소저에게 비길 만하였다. 필성이 채봉을 한번 만나도록 해 달라고 청하자 취향은 그의 사람됨을 보고자 채봉을 만나게 해주마고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달빛이 아름다운 저녁, 취향은 채봉에게 달빛을 즐기자며 후원으로 이끌었다. 채봉이 한참 달빛에 취해 있는데 필성이 돌연 나타나 채봉 앞에 섰다.

"소저는 놀라지 마옵소서. 저는 일전에 글로 인사했던 장필성이옵니다. 소인이 생각하기로 소저와 저는 인연이 깊은 듯하니 백년해로함이 어떠하리이까?"

필성의 느닷없는 질문에 놀란 채봉이지만 내심 필성을 가슴에 두고 있었으므로 크게 불쾌해 하지 않았다. 필성은 이에 만족하고 훗날 매파를 보내기로 하고 돌아갔다. 한편 딸을 보러 별당으로 나왔던 채봉의 어머니는 후원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를 듣고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취향과 채봉을 다그쳤다. 채봉은 처음에 그저 달구경을 했었노라고 아뢰었다가 어차피 사실을 알게 되리라 생각하고 필성에 대해서 자세히 고하였다. 취향이 나서서 필성의 인물과 사람됨을 칭찬하니 채봉의 어머니는 필성의 글을 보자고 하였다.

"아가, 이 글을 보니 청년의 인물됨을 알겠구나. 너의 마음을 알았으니 더 생각할 것도 없으나 혹시라도 한양에 가신 너희 아버님께서 혼처 자리를 구하셨으면 어찌하나, 허나 그런 일이 있더라도 파의를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이윽고 필성은 돌아가 매파를 채봉의 집으로 보냈고, 이미 마음을 굳힌 채봉의 어머니는 필성을 만나 채봉의 아버지가 내려오는 대로 성혼할 것과 그동안 학업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였다.

한양으로 올라간 김 진사는 벼슬자리를 하나 얻으려고 당시의 세도가 허씨와 친분이 있다는 김 양주라는 사람에게 줄을 대었다. 그런데 이 김 양주가 매관매직에 일등 거간꾼으로 김 진사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김 양주에게 속아 그에게 공을 들인 지 며칠 뒤에 김 진사는 김 양주로부터 칙지를 받았다. 김 양주는 관복까지 입혀주고는,

"허허, 참 훌륭한 참봉 나리로구나."
라며 생색을 내었다. 이에 순진한 김 진사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김 양주에게 기생집이라도 한번 가자고 졸랐다. 김 양주는 못 이기는 척 김 진사를 데리고 남문동 산홍이네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술과 노래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두 사람은 허 판서를 찾았다.

"허허, 매우 단아한 선비로군. 그대가 수령 한 자리 하는 것이 원이라지? 우선 시험조로 조그마한 과천 현감을 하여 볼까?"

허 판서의 말에 김 진사는 순진하게도 오천 냥은 현찰로, 또 오천 냥은 어음으로 바칠 것을 약조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 마침 연적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온 동자를 보고 김 진사는 채봉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동자의 미색이 과연 채봉과 어울릴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김 진사의 속마음을 알게 된 허 판서가 뻔뻔스럽게도 자신을 사위로 삼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김 진사는 처음에는 다소 놀랐지만 그 당시에는 평안도 사람으로서 벼슬자리 하나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고, 게다가 당시의 권세가인 허 판서의 힘이라면 채봉이도 호강하고 자신도 부원군 부럽지 않게 벼슬살이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이 부인은 채봉의 혼사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며 남편을 기다리는데, 한양 갔다 온 남편이 느닷없이 허 판서의 첩으로 채봉을 주자는 말을 하자 기겁을 한다. 이 부인은 남편에게 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장 선천 부사 집이라면 거지가 다 된 집안인데 그럴 수는 없소. 이제 헌 판서의 힘만 있으면 내가 판서는 못 될까. 그러면 부인은 정경 부인이 될 터이니 어서 채봉을 데리고 올라갑시다."

정경 부인이라는 말에 혹해 이 부인마저 마음을 돌렸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채봉은

"닭의 입이 될지언정 돼지의 뒤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라며 저항했다. 그러나 김 진사 내외는 막무가내였다. 그럴수록 장씨를 향한 채봉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기만 했다. 고민하던 채봉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내었다. 한양으로 가다가 중간에 도망쳐 취향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날 오시가 되어 김 진사와 이 부인, 그리고 채봉은 급하게 길을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주막에서 머무는데, 갑자기 천지가 요란해지더니 화적떼들이 밀려들어왔다. 김 진사는 김 진사대로 부인과 채봉을 부르며 피난하고, 또 부인은 김 진사와 채봉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김 진사와 부인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채봉은 다시 평양으로 향한 지 오래되었는지라 만나지 못하니, 두 내외는 채봉이 죽은 줄로만 알았다. 김 진사 내외는 망연자실하여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이미 한양에서는 자신이 과천 현감이 되어 있을 터이니, 그 힘으로 딸도 찾고 재물도 다시 모으리라는 생각에 바삐 서울로 올라갔다.

김 진사를 반갑게 맞이한 허 판서는 과천 현감 칙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나자 사람이 돌변해서는,

"이놈, 딸을 데려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돈 오천 냥을 마저 바치든지 해야 무사하리라. 내려갈 때는 허락을 하고 지금은 딴소리를 해?"
라고 호통치며 김 진사를 가두어 버렸다. 한편 이제나 저제나 김 진사를 기다리던 이 부인은 남편이 갇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신세를 한탄하였다. 그리고 곧 한양에 있어봐야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는 하나밖에 안 남은 금붙이인 비녀를 팔아 노자를 삼아 평양으로 내려갔다.

채봉은 약속한 대로 취향과 만나 취향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었는데, 평양으로 다시 내려온 이 부인도 갈 데라고는 취향의 집밖에 없는지라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딸을 상봉하게 되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네가 가든지 아니면 돈을 바치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 아버지는 죽게 되었구나."

이 부인은 채봉에게 애원을 했다. 장씨를 외면하자니 마음이 괴롭고, 죽어도 첩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채봉은 눈물로 슬퍼하는데, 이윽고 결심이 선 듯 어머니께 돈을 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부인이 채봉에게 무슨 돈이 있어 저런 말을 하나 하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채봉은 기생이 될 결심을 한 것이었다. 마침내 채봉은 봉선 어미네 집으로 기생살이를 들어가면서 육천 냥을 받아 오천오백 냥을 어머니께 주며 아버지를 구해 내려오라 당부했다.

채봉은 봉선 어미네 들어가 이름을 송이라고 고치고 기생살이를 시작했다. 새로 온 기생이 서화에 뛰어나고 인물 또한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져 평양의 모든 남정네들이 한번 보기를 원했지만 송이는 이상한 문제를 내놓고 있었다. '권군막상양대몽 노력고서입한림' 이라는 글귀를 걸어 놓고 이 글귀가 어떤 시에 대한 답가인가를 알아내는 사람에게만 몸을 허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글귀는 전날 채봉이 장씨의 시에 답한 것으로 단 두 사람만이 아는 한편, 혼인날만을 기다리던 장씨는 갑자기 김 진사댁이 한양으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로부터 송이라는 기생과 그 문제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괴이하게 여긴 장씨는 까닭을 알아보고자 송이를 찾게 되고, 드디어 두 남녀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방님은 옛일을 잊지 않으셨나이까. 첩이 지금 기생이 되었으나 조금도 정조를 잃지 않았으니, 오늘 가약을 이루고자 합니다. 첩이 이같이 된 이유는 밤이 늦은 후에 말씀드리오리다."

"여보게, 자네 몸이 오늘은 기생이 되었으나, 내가 옛날 후원에서 맹세한 마음은 조금도 변치 않았네. 안심하고 무슨 일로 이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게."

채봉이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이야기를 다하니 필성 또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드니 그 정이 새로웠다. 다음날 채봉은 백 냥을 기생어미에게 주라 시켰고,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채봉이 가진 돈으로 화대를 내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점점 없어지자 두 사람은 앞날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평양 감사로 내려온 양반이 이보국이라는 사람으로 향년 80세에 이르러 평양에 내려오게 되니 이름난 기생인 송이를 보고자 했다. 채봉은 이번이 살아나갈 기회라 여기고 자신의 재주와 그간의 사정을 감사께 아뢰었다. 그러자 이 감사는 총명하고 재주 많은 채봉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 재주가 필요하기도 해서 채봉을 옆에 두고자 빚을 갚아주고 별채로 데려와 여러 가지 잡무를 맡겼다. 그 소식을 들은 필성도 채봉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새로이 줄을 얻어 이방이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쉽게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기를 이미 반년이라. 두 사람은 상사병이 날 지경이었다.

하루는 달빛이 완연한 가을밤이었다. 채봉은 필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일필휘지로 시를 써 내려갔다. 그러다가 슬픔에 겨워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필성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겉으로 흐느껴 울게 되었는데, 이 감사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채봉의 방으로 와 채봉의 시와 울고 있는 채봉을 본 이 감사는 채봉을 깨워 그 연유를 물었다. 채봉이 눈물로써 장필성과의 인연에 대해 아뢰니, 이 감사는 다음날 당장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양으로 장궤를 보내 김 진사 내외를 구하기 위해 힘을 썼다. 한편, 허 판서는 이 부인으로부터 돈을 받고도 김 진사를 풀어주지 않고 오히려 채봉을 다시 데려오라 재촉하거늘, 이 감사의 장궤 덕분에 무죄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취향을 만나 그간의 일을 들은 김 진사 내외는 이 감사를 만나 뵙고 그 은혜에 감사드렸다.

"헛된 영광을 바라면 패가망신하기 쉬운 법이니, 그대는 복이 많아 귀한 딸과 사위를 두게 되었으니, 어서 두 사람을 혼인시키라."

이 감사는 이같이 타이르고 집과 가산을 내리고 두 사람을 혼인시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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