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전(安龍福傳)                 - 원중거 -

◇ 소설 읽기   

  줄거리  

고기잡이를 하다가 울릉도에 표류한 안용복은 왜인들에게 잡히어 대마도로 끌려갔으나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주장한다. 안용복은 백기주, 비전주로 옮겨졌다가 다시 대마도에 구금되어 고초를 겪다가 간신히 풀려난다. 안용복은 동래 부사나 접위관에게 일본이 울릉도를 침범하는 사실을 알리며 조치를 취할 것을 호소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접 울릉도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안용복은 울산으로 가서 뇌헌 등을 속이고 협박하여 그들과 함께 울릉도로 가서 왜인들을 쫓아내고 그들을 추격하여 일본 백기주에 도달한다. 안용복은 스스로 울릉도를 감독하는 관리라 밝히고 백기주 태수에게 항의하여 울릉도의 영유권을 인정받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 조정은 안용복이 함부로 외교 문제를 다룬 것을 이유로 그를 죽이려 하나, 윤지완, 남구만 등이 변호하여 목숨을 건지고 귀양을 가게 된다. 그리고 안용복은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감상 및 해설  

이 작품은 일본의 울릉도 침입에 맞서서 영토 수호에 큰 공을 세웠지만 평민이 함부로 국가의 외교 문제에 나섰다는 이유로 벌을 받은 안용복의 삶을 재조명한 것이다. 일본 통신사의 서기로 직접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문물과 제도를 체험했던 작가는 안용복의 역사적 행적을 바탕으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국토 수호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안용복의 개성과 주체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안용복의 말 "우리나라가 울릉도를 소유한 것은 지도에 명백하게 나와 있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울릉도까지는 하루만에 도착하지만, 일본에서 울릉도까지는 닷새나 걸려야 도착하오. 그러니 옛 문헌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거리로 따져보면 비록 어린아이라도 말 한 마디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이오."

조선조 후기 안용복이 에도 막부와의 울릉도 쟁계(爭界) 사건을 해결한 것을 기록한 문헌은 적지 않다. 성호 이익을 비롯하여 원중거와 근대 계몽기의 기록 등 다양하다. 이들 기록은 모두 안용복의 애국적 행위를 주목하고 사실 기록으로 혹은 그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안용복은 근대 계몽기에도 재인식되어 '민족'의 이미지로 기억되었다. 이들 작품 중에서 무엇보다 안용복의 삶과 행적을 감동적으로 그린 것은 원중거의 <안용복전>이다.

원중거는 <안용복전>에서 무엇보다 안용복이 죽음을 무릅쓰고 대마도와 에도로 건너가, 대마도주와 에도막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강점하려는 야욕을 사전에 간파한 안목, 이를 막아낸 안용복의 영웅적 모습, 그리고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도 애국 인물로 대접받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사실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사로 포착하여 입전(立傳)함으로써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특히 원중거는 낙관적인 시선으로 대마도주의 야욕을 간파하고 에도막부와의 교섭에서 외교적 승리를 이끈 안용복의 삶을 긍정적으로 포착하였다. 그리하여 원중거는 무엇보다 무명소졸(無名小卒)이면서도 뛰어난 예지와 애국 행위, 그리고 안용복의 탁월한 외교적 능력을 특기(特記)하여 서사를 이끌어 생동감을 전하였다. 하지만 안용복에 대한 기록과 방향은 매 시기별로 다르게 기억되었다. 전근대 시기에는 강역 의식의 일환으로, 근대 전환기에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해방 운동의 차원에서 기억되고 회상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기도 하였다.

  요점 정리  

● 갈래 : 고전소설, 역사소설

● 출전 : 원중거의 『화국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시간적 → 17세기 말

* 공간적 → 울릉도, 대마도 등지

● 주제 울릉도를 지키기 위한 안용복의 활약상

  생각해 보기  

◆ 원중거(1719~1790) : 본관은 현천, 호는 현천으로 중인 신분으로, 1763년 계미통신사에 참여했고, 귀국 후에 <화국지>, <승사록> 등을 저술하여 식자층에게 일본 문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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