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궁 가                     - 작자 미상 -

  줄거리  

용왕이 병이 나서 죽게 되자 용궁에서는 어전 회의가 열린다. 토끼의 간이 영약이라는 사실을 안 용왕은 이를 구해 오라고 하나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이 때 자라가 자청하여 육지에 가서 토끼를 잡아오겠다고 나선다. 육지에 간 자라는 어렵게 토끼를 유혹해서 용궁으로 데리고 오나, 토끼가 꾀를 내어 자신의 간을 볕에 말려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토끼는 육지로 돌아가고 낭패를 본 자라가 자살하려 할 때 도인이 나타나 자라에게 선약을 건네 준다.

  감상 및 해설  

'수궁가'는 판소리 여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토별가', '토끼 타령'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구토지설'을 토대로 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할 수 있는 내용을 보태어 만든 판소리이며, 그 과정에서 판소리계 소설로도 만들어졌다. 토끼와 자라를 주인공으로 하여 해학적 언어로 웃음을 유발하면서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언어 표현의 묘미를 드러내고 있다. 소리꾼과 청중이 직접 소통하는 판소리의 공연 방식은 다양한 이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특히 '수궁가'는 토끼를 놓친 후에 자라가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이 달라진다.

이 작품에서 자라의 꾀에 넘어간 토끼가 수궁에 도착하여 용왕 앞에 끌려 온 장면에 나타난 토끼의 대화 부분에서는 부귀공명에 대한 헛된 욕망 때문에 죽을 고비에 처하게 된 토끼의 처지가 드러나 있다. 또한 병든 용왕이 자기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남, 즉 토끼의 생명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권력에 의한 부당한 횡포이다. 이 작품에서는 권력의 힘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권력의 횡포에 대한 경계를 이면적 주제로 삼고 있으며, 당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 구조 속에서 결국은 피지배층, 다시 말해서 서민층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당대 서민들의 현실적 불만과 욕구, 비판을 해학과 풍자의 수법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용왕을 중심으로 하는 수궁 체계는 정치 지배의 관료층을, 토끼를 중심으로 하는 육지 세계는 서민 피지배 계층을 각각 반영한다.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 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사회의 인물들을 투영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시적인 호강의 유혹에 넘어가 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나는 토끼에게서 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용왕을 기만하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작품의 결말은 토끼가 작자층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즉 이 작품은 원래 허욕에 대한 경계를 주로 삼고 있으나 당대 조선 사회에 대한 풍자, 인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 판소리의 공연 방식과 이본의 발생

판소리는 소리꾼에 의해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게 이어져 왔는데, 대표적인 바디(명창이 스승으로부터 전승하여 한 마당 전부를 음악적으로 절묘하게 다듬어 놓은 소리)로는 임방울, 박봉술, 박초월, 김연수의 것이 있다. 판소리는 청자의 호응에 따라 소리꾼이 즉흥적으로 사설을 바꾸기 때문에 각 바디마다 사설의 길이나 내용, 구성이나 표현이 다르다. 다음은 김연수 바디 중 본문과 같은 부분으로 별주부의 모친이 당부하는 말이다.

"여봐라, 주부야! 네가 세상을 간다 하니 노모 마음 한없이 기쁘다마는, 부디 낚시를 조심하여라. 너희 부친도 세상에 가서 낚싯밥을 물었다가 청춘조사(젊은 나이에 일찍 죽음)허였기로, 독수공방 설움 중에 너 하나만 믿는 마음,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애지중지 기를 적에, 일찍 나가 늦게 오면 문에 빗겨 기다리고, 늦게 나가 아니 오면 여(閭, 마을의 문)에 빗겨 바랬더니마는, 네가 이제 등과하여 인군(仁君)을 섬기다가, 인군이 환후 계셔 약 구하러 간다 하니, 군위신충(君爲信忠) 당당한 네 직분이 갸륵하고 장하도다. 아무쪼록 정성대로 수이 구하여 돌아오되, 만일 약을 못 구하면 골폭사장(죽어서 모래밭에 뼈가 드러남)에 거기서 죽지 돌아오지 말지어다."  

-김연수 창(唱)-

  요점정리  

● 성격 : 풍자적, 해학적, 교훈적, 서민적, 우화적

● 갈래 : 판소리 사설

● 문체 : 가사체, 운문체, 만연체

● 구성

* 발단 → 토끼의 간이 용왕의 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이를 구하러 나서지 않음.

* 전개 → 별주부가 자청하여 토끼의 간을 얻기 위해 육지로 나감.

* 위기 → 육지로 나간 별주부가 어렵게 토끼를 유인하여 용궁으로 데려옴.

* 절정 → 토끼가 죽을 위기에서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꾀를 내어 용왕을 속임.

* 결말 → 토끼가 탈출하면서 별주부에게 약을 주고 사라짐.

● 주제

* 자라의 우직한 충성심

* 허욕에 대한 경계 및 위기 극복의 지혜

* 조선후기의 무능한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

● 인물

* 토끼 → 허욕과 공명심에 들떠 있으며 신분 상승에의 욕망을 가진 인물로, 지혜롭고 영악하며 임기응변에 뛰어나다. 같은 처지에 있는 서민을 대변하는 인물로 오랜 생활에서 축적된 슬기와 기지로 지배층의 횡포에 대항하여 결국 승리하고 만다는 민중들의 의식 세계를 보여준다.

* 별주부 →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의 전형으로 언변이 뛰어나 영리한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오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는 인물이다. 왕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별주부의 모습을 통해 무조건적인 충성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 용왕 →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토끼의 꾀에 속아 육지로 돌려보내는 모습을 통해 어리석고 무능력한 지배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 특징

* 표현상 3 · 4조, 4 · 4조 운문과 산문이 혼합됨.

* 우화적 수법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함.

* 한문학의 영향으로 중국의 고사를 많이 인용함.

* 지배층의 언어와 서민층의 언어가 혼재함.

● 출전 : 『박봉술 창본』

  본문 읽기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수록 부분

이전 줄거리 : 남해의 용왕이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선의 도사는 용왕을 찾아와 토끼의 간이 병에 효험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용왕은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수궁에 대신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거북이부터 도미, 민어, 오징어, 상어, 도루묵, 조개, 방게, 청어, 해구, 홍어, 조기, 낙지, 가오리, 준치, 멸치, 가재, 개구리까지 모두 모였으나,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겠다고 자청하는 이가 없었다. 용왕은 조개, 메기에게 의사를 물어보나,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용왕의 청을 거절한다. 스스로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고 나선 방게는 생긴 모양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용왕에게 쫓겨난다. 이때, 자라가 용왕의 앞에 나선다.

 

[진양조] : 별주부가 상소를 올림.(외모 묘사)

영덕전(남해 용왕인 광리왕이 지었다는 궁전) 뒤로 한 신하 들어온다.

은목단족(隱目短足, 눈이 작고 다리가 짧음)이요 장경오훼(長頸烏喙, 목이 길고 주둥이가 까마귀의 부리와 같음)로다.

호흉배(虎胸背, 호랑이를 수놓은 흉배, 무관임을 나타냄) 등에다 방패를 허고

앙금앙금 기어 들어와 국궁재배(鞠躬再拜, 몸을 굽혀 두 번 절함)허며

상소를 올리거날.

 

[아니리] : 별주부가 토끼의 간을 구해 오겠다고 자청함.

왕이 상소를 받어 보니 별주부 자라라.

"너의 충성은 기특코 고마우나 니가 세상에를 나가면

인간의 진미가 되야 왕배탕(王背湯, 자라탕)으로 죽는다니

그 아니 원통허냐."

별주부 여짜오되,

"소신은 수족이 너이라 강상에 둥실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의 봉패(逢敗, 낭패를 당함)는 없사오나(위험을 잘 피해 다니므로)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 바닷속에서 태어남)으로 퇴끼 얼굴을 모르오니

화상(畵像, 얼굴을 그린 그림)만 하나 그려 주시면

꼭 잡어다 대왕전에 바치겠나이다."

"기특고 고맙다. 글랑은 그리 하여라."

일등 화공을 불러들여

퇴끼 화상을 그리는디,

 

[중중모리] : 화공이 토끼의 화상을 그려 별주부에게 줌.(이 대목에서 발랄한 장단은 토끼를 잡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기에 적절함.)

화사자(畵師者) 불러라.

화공을 불러들여 퇴끼 화상을 그린다.

동정유리 청홍연(洞庭琉璃靑紅硯, 유리같이 맑은 수면을 가진 동정호처럼 청홍생을 띤 벼루)

금수추파(錦繡秋波, 수놓은 고운 비단 같은 가을 물결) 거북 연적(硯滴, 벼룻물을 담는 그릇)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화필(兩頭畵筆, 양쪽에 붓털이 달린 그림 붓)을 덤벅 풀어

단청채색(丹靑彩色, 붉고 푸른 여러 가지 빛깔)을 두루 묻혀서 이리저리 그린다.(화공이 그림을 그리기 전의 준비 상황)

 

천하명산 승지간(天下名山勝地間, 온 세상의 이름난 산과 뛰어난 경치 속)의

경개 보든 그리고

두견 앵무지지 울 제 소리 듣든 그리고

봉래방장(蓬萊方丈, 중국에 신선이 산다고 알려진 봉래산과 방장산) 운무(雲霧, 구름과 안개) 중에 내 잘 맡던 그리고

난초지초 왼갖 행초(향기나는 풀) 꽃 따먹든 그리고

대한(大寒, 24절기 중의 하나) 엄동 설한풍(雪寒風) 어한(禦寒, 추위를 막음)허든 그리고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되어 온갖 사물이 한창 피어남) 화림중(花林中) 펄펄 뛰든 그리고

신농씨(神農氏) 상백초(嘗百草, 중국의 전설 속 임금 신농씨가 온갖 풀을 먹어 보면서 약초를 찾아냈다고 한 고사) 이슬 털든 꼬리

두 귀는 쫑긋 두 눈 도리도리 허리는 늘씬 꽁지는 묫똑

좌편은 청산이요 우편은 녹순디

녹수청산의 애굽은 장송(長松) 휘늘어진 양류(楊柳) 속

들랑날랑 오락가락 앙그주춤 기난 듯이

화중퇴(畵中兎, 그림 속의 토끼) 얼풋 그려

아미산월(峨眉山月)에 반륜퇴(半輪兎, 중국 4대 명산의 하나인 아미산에 뜬 반달 속의 토끼)

이어서 더헐소냐.(이보다 더 그럴 듯하겠느냐. 매우 잘 그렸다는 의미임.)

"아나 엿다 별주부야. 니가 가지고 나가거라."

 

[아니리] : 별주부가 명을 받들고 집으로 와서 모친에게 세상에 나간다는 말을 함.

별주부 화상 받아 덜미에 집어넣고

사은숙배(謝恩肅拜, 왕의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하게 절함) 하직허고

어주(御酒) 삼배(三盃) 얻어먹고 본댁으로 돌아올 제,

이때에 주부 모친이 있는듸

자라라도 수수천년이 되야 삶아도 먹지 못할(과장된 표현을 통해 별주부 모친을 해학적으로 표현)

암자라 한 마리가 있든가 부드라.

주부 세상 간다는 말을 듣고

울며불며 못 가게 만류를 허는듸

 

[진양조] : 별주부 모친이 가지 말라고 만류함.(모성애)

"여봐라 주부야 여봐라 별주부야.

늬가 세상을 간다허니 무얼 허로 갈랴느냐.

세상이라 허는 데는 한번 가면 못 오느니라.

장탄식(長歎息,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는 탄식) 병이 든들 뉘 알뜰이 구원허며

네 몸이 죽어져서 오연(烏鳶,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뚜다려 주며

후여쳐 날려 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위방불입(危邦不入,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함)이니 가지를 마라."

 

[아니리] : 모친을 설득하고 마누라를 단속한 후에 세상으로 나감.

별주부 여짜오되

"나라에 환후(患候, 웃어른의 병을 높여 이르는 말) 계옵시여

약 구하러 가는 길이오니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별주부 모친이 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래며

"기특다 내 아들아.

충성이 지극허면 죽는 법이 없느니라.

수로육로 이만 리를

부디 무사히 잘 다녀오너라."(당대의 충의사상이 엿보임)

배별(拜別, 절하고 작별하고)하고 침실로 돌아드니

그때에 주부 마누라가 있는데

이놈이 어디로 장가를 들었는고 허니

소상강(瀟湘江, 중국 호남성에 있는 소수와 상강을 아울러 이르는 말)으로 장가를 들었든가 부드라 잉

택호(宅號, 집주인의 벼슬 이름이나 처가나 본인의 고향 이름 따위를 붙여서 그 집을 부르는 말)를 부르며 나오는듸

"아이고 여보 소상강 나리 세상에를 가신다니

당상(堂上, 늙은 부모가 거처하시는 곳)의 백발모친 어찌 잊고 가랴시오."

"오냐 늬가 아이고지고 운다마는

내가 너를 못 잊고 가는 일이 있다."

"무엇을 그다지 못잊소."

"저 우리 집 뒤 진털밭 남생이(담수성 거북이)란 놈이

제조에(제 주제에) 덧붓침 사촌이라고

생김생김이 꼭 나와 방사(倣似, 비슷함)허니 생겨 가지고

나 없는 기색만 보면 볼곰볼곰 자주 다니는 게

암만해도 내 구망(久望, 오랫동안 지켜봄)에 수상허단 말이여

혹시 어두컴컴헐 때 그놈 오드래도 임자는 냄새를 맡아 보소.

그놈 몸에서는 노랑내가 나고

내 몸에서는 꼬순 내가 나거든

글로 징험(徵驗, 조짐을 잘 알아냄)하야 부디 조심 잘 자렸다."(남생이를 희화화함으로써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나는 별주부의 불안한 마음을 해학적으로 표현함)

단단히 단속 후에

수정문 밖 썩 나서서, 세상 경개를 살피고 나오는디,

꼭 이렇게 나오든가 부드라.

<중략>

 

별주부 하직하고 나와 처자를 이별한 후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순식간에 나와 인간지경(人間之境)에 다다라 한편 무사히 왔음을 기뻐하여 해변으로 다니며 깊은 산으로 찾아가는 데 때는 바로 춘삼월 좋은 시절이었다.

별주부 갈 곳을 알지 못하여 좌우 산천을 두루 역력히 살펴보니 산이 높지는 않으나 명기(明氣, 맑고 아름다운 산천의 기운) 수려하며 초목이 무성한 곳에 시내는 잔잔하고 절벽은 의의(毅毅, 굳셈)하며 짐승은 슬피 울고 기화요초(琪花瑤草,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는 활짝 피어 있는 가운데 공작새 봉황새가 넘나들며 꽃향기가 풍겨나고 벌나비가 희롱하며 버들빛이 푸른 가운데 노란 꾀꼬리가 왔다갔다 하니 진실로 인간 세상의 명승지(名勝地)였다.

별주부가 경개(景槪, 경치)를 따라 올라가니, 갑자기 산중에서 한 짐승이 풀을 뜯어 먹으며 꽃을 희롱하며 자신 있고 만족한 듯 내려오고 있었다. 별주부가 몸을 감추고 토끼 화상을 내어 보니 바로 토끼였다. 별주부가 기뻐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토끼를 잡아다가 우리 대왕께 드려 병이 나으시면 내 마땅히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 하고 긴 목을 늘이어 토끼 앞에 나아가 예(禮)하고 말하기를,

"토 선생께 뵈나이다." / 하니 토끼가 자라를 보고 웃으며,

"그대 어찌 내 성명을 부르는가? 남생이의 아들인가 목이 길기도 하다." / 했다. 자라 그 곁에 앉으며 전에 보지 못한 말을 하며 성명을 통한 뒤 토끼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몇 살이나 되었으며 청산 벽계(靑山碧溪, 푸른 산과 맑은 시내)로 다니니 재미가 어떠한가?"

토끼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삼백 년을 세세(世世)로 두루 돌아다니며 만첩산중(萬疊山中)에 백화만발하고 서운(瑞雲, 상서로운 구름)은 은은하여 푸른 솔은 축축 늘어져 있고 푸른 물은 잔잔한데 향기 무성한 곳으로 시름없이 다니면서 백초(百草, 온갖 풀)의 이슬을 싫도록 받아먹고 산림화초 간(山林花草間)의 향기를 마음대로 내 몸에 쏘이며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시비(是非)가 없이 왕래하여 산과(山果)를 마음대로 먹으며 분별 없이 천봉만학(千峰萬壑)에 때때로 기어올라 온 세상을 굽어보면 가슴 속이 시원하니 그 재미는 입으로 말하기 어렵다네. 자네도 세상 흥미를 취하겠거든 나를 따라 노는 것이 어떻겠나?"   

<중략>

"수궁이란 곳은 집을 짓되 호박(琥珀) 주춧돌에 산호(珊瑚) 기둥이며 밀화(蜜花, 호박의 한 종류) 들보에 청강석(靑剛石, 단단하고 빛깔이 푸른 옥돌) 기와를 이었으며, 수정(水晶) 발을 드리우고 백옥 난간을 순금으로 꾸몄으며, 오색 구름으로 산도 만들며 물색(物色, 자연의 경치)을 희롱하고 각색 풍류로 밤낮으로 연이어 즐기고, 칠보단장(여러 가지 패물로 몸을 꾸민)한 시녀들이 유리 잔에 호박대를 받쳐 천일주(天日酒, 빚어 담근 지 천 일 만에 마시는 술)를 권할 적에 그 흥이 어떠하며, 아침에는 안개를 타고 저녁에는 구름을 잡아타고 온 세상을 잠깐 사이에 왕래하며 옥저(玉箸, 옥으로 만든 청아한 소리를 가진 관악기)를 빗겨 불어 공중으로 마음대로 다니니 한 몸의 맑은 흥취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선생이 요란한 세상의 녹록한(좀 무르며 보드라운) 풍경을 자랑하니 그 생각이 작네그려. 만일 풍운이 사면을 두르고 급한 소나기가 함지박으로 담아 붓듯이 오며 천둥 번개 진동할 때 그대 몸을 피하며 바위 틈에 의지하였다가 그 산이 무너지면 그대의 작은 몸이 가루가 될 것이네." / 하니 토끼가 그 말을 듣고 놀라 말하기를,

"그런 요사한 말 두 번 마시오."

한다. 자라 또 말하기를,

"삼동(三冬) 극한(極寒)에 백설이 건곤(乾坤)에 가득하여 두렁도 없을 때 그대 바위 틈에 겨우 의지하여 처자(妻子)를 어찌 구하며, 그댄들 기갈(飢渴, 배고픔과 목마름)을 어찌 면하겠는가? 동삼삭(冬三朔, 겨울의 석 달)이 지난 후 음곡(陰谷, 그늘진 골짜기)에 봄기운이 발양(發揚, 떨쳐 일으킬)할 때 돌구멍 찬 자리에 일어나서 시원한 데를 보려고 산 위로 바삐 갈 때 사냥 포수의 총이 머리 위로 넘어갈 때 일신 간장이 어떠하며, 매 받은 사람은 사냥개를 몰아 사면으로 다닐 적에 그대 마음 어떠하며, 평지로 내려가니 목동들은 새 낫을 어깨 위에 둘러메고 아우성 소리 지르며 에워싸고 들어올 때 그대 없는 꼬리 샅에 끼고 작은 눈을 부릅뜨고 짧은 발을 자주 노려 천방지방(天方地方,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 자빠지며 엎어지며 달아날 때 가슴에 불이 나고 정신이 아득할 적에 어느 겨를에 화초를 구경하며 어느 코로 향기를 맡겠는가? 그대는 생각하여 나를 따라 용궁에 들어가면 선경(仙境)도 구경하고 천도(天桃, 하늘 나라에서 난다고 하는 복숭아)라도 얻어먹고 천일주를 장취(長醉, 늘 술에 취함)하며 미인을 희롱하여 평생을 환락할 것이오, 또한 부귀를 모두 갖출 것이니 재삼 생각하게나."

<중략>

[아니리]

이렇듯 말을 하고 앙금앙금 내려가니, 토끼 따라가며,

"여보, 별주부. 그러면 내 우리 산중 친구들한테 인사나 하고 오리다."

별주부 듣고 하는 말이,

"큰일을 여기저기 묻는 법이 아니오. 각각 생각이 달라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이도 있을 테요, 그 일 정말 좋다 하고 가라는 이도 있을 테니, 길가에 집 짓기는 삼 년이 걸려도 못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 우리 아내에게나 말하고 오리다."

"허허이! 큰일을 아내와 괴하다가는 망하는 법이거늘, 아, 용궁 가서 귀히 된 후 가마 보내 모셔 가면 그 얼마나 좋을 일이오?"

"그러면 그냥 갑세."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갈 때,

 

[중모리]

자라는 앞에서 앙금앙금, 토끼는 뒤에서 깡짱깡짱 용궁을 내려갈 때, 건넌산 바위틈에 여우란 놈이 나앉으며,

"여봐라, 토끼야!"

"왜야!"

"너 어디 가느냐?"

"나 용궁 간다."

"용궁은 무엇하러 가느냐?"

"나 용궁에 벼슬하러 간다!"

"허허, 자식 실없는 놈. 불쌍하다, 저 토끼야. 천박한 네놈 마음 돌려 무엇하랴마는, 옛 성인 이르기를 여우가 토끼 돌봐주니, 너와 나와 이 산중의 굴속에 길들었고, 산속에서 같이 늙어, 비 오고 안개 낀 날 발자취 서로 찾아 이별하지 말쟀더니, 저 지경이 웬일이냐? 옛일을 모르느냐? 옛부터 타국에 벼슬갔다, 못 되면 굶어 죽고, 잘 되면 객사하느니라.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용궁이라고 하는 데가 한번 가면 못 오느니라. 위험한 곳에는 얼씬도 마라, 용궁 길을 가지 마라."

 

[아니리]

토끼 듣더니 뒤로 발딱 나자빠지는데,

"여보, 별주부. 잘 가시오. 벼슬하면 죽는다니, 객사하러 갈 수야 있소? 내 저 여우 사촌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보았소."

별주부 기가 막혀,

"예, 퇴공. 가려면 잘 가시오. 좋은 친구 두었으니, 둘이 가서 잘 지내시오."

썩 돌아가서 남의 오장 쑤시는 웃음을 한번 턱 웃고 혼잣말로,

"허허허. 제 복이 아닌 것을 권한다고 될 일인가?"

앙금앙금 내려가니, 토끼 따라가며,

"여보, 별주부. 내 복이 아니라니, 그 어떻게 하는 말이오?"

별주부 슬며시 돌아보며,

"남의 친구 좋은 인정 나쁜 말이 부당하나, 당신이 물으니 내 말이나 하리다. 사실은 내가 육지에 온 지가 여러 날이오. 처음에 여우 저놈을 만나 가지고 저를 데려가 달라 하나, 간교한 저놈 심술 가까이 안 하려고 못 하겠다 했더니만, 이 속을 어찌 알고 토 선생을 떼어 버리고 제가 따라가 보려고 하는 짓이오."

토끼 듣더니,

"여보, 별주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저놈 심술이 영락없이 그렇소. 내 열 놈이 백 말을 해도 따라가겠소."

한참을 따라가더니,

"그러나저러나 여, 너무 멀어서 다리 아프면은 어디 가겠소?"

"허허, 또 저런 소리를 하네그려."

 

[중모리]

"수궁 천 리 멀다 마소. 맹자도 불원천리 양혜왕을 가 보았고, 위수 어부 강태공도 문왕 따라 주에 가고, 수렁 많은 촉나라 길을, 얼굴 누런 한신이도, 소하 따라 한에 가서 장군단에 올랐으니, 토 선생도 나를 따라 우리 용궁 들어가면, 소년대장을 할 것이니, 염려 말고 따라갑세."

"그러면 갑세."

강물을 바라보니, 넘실넘실 떴는 배는 한가한 강에 어부 시인 싣고 가는 밴가. 양자강 푸른 물결에 왕래하던 거룻밴가. 강 건너 술집으로 술 사 싣고 가는 밴가. 푸른 물결 노니면서 쌍쌍 갈매기 떠다니네.

"쓸쓸한 가을바람에 슬피 우는 저 기럭아. 가지 말고 게 잠깐 머물러 나의 한 말을 들어 봐라. 구름 속에 놀던 토끼가 바다 용궁에 벼슬하러 가더라고, 우리 벗님 앵무새에 섭섭타 안부를 전하여라. 용궁 가서 높이 되면 첫째로 마누라와 친구도 데려가지."

잔소리하고 내려갈 때, 하필 그날에 바람이 불어, 물결이 '워르르르르르르르 출렁 쇄' 뒤틀려서 흘러간다.

 

[아니리]

토끼 깜짝 놀라,

"아이고, 저 물 봐라. 저 물속에 들어가서 훈련대장은 말고, 나더러 용왕 노릇 하래도 내 저 물 무서워 못 가겠소. 저 물이 짜기까지도 하다는데, 두어 모금만 먹으면은 창자가 녹을 테라. 아이고."
하더니, 따뜻한 양지 끝으로 가서, 그 잘생긴 낯짝을 요리 뒤적 저리 뒤적 하고 앉았것다. 별주부 기가 막혀,

"예레이, 순 잡놈의 자식! 벼슬하러 가자니깐 용깃발 뒷줄 당기듯 너무 내뺀다. 오려면 오고, 가려면 썩 가거라, 이놈."

 

[자진모리]

"어따 이놈아. 썩 가거라! 벼슬하러 간단 놈이 다리 아프다, 물켜겠다 갖은 핑계를 한단 말이냐? 장부 의심이 많다 보면 세상 큰일 못 하느니라. 너 생긴 모양새가 무슨 복이 들었으랴. 인중 밑 짧은 것은 단명함이 분명하고, 눈에는 독기운이라. 내일 날 저물 때 김 포수 날랜 총 네놈의 정수리 들이대고, 우루루루루 쾅!"

 

[아니리]

토끼 깜짝 놀라,

"아이그, 여보시오. 그 쾅 소리 좀 빼고 말 좀 하시오. 그런데 용궁에는 총 없소?"

"여보시오. 아, 총이라 하는 것이 불이 일어나야 나가는 것인데, 물속에서 총이 있은들 어떻게 쏠 것이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내가 버드나뭇가지 하나를 딱 잡고 몸을 물에다 담가 보아 물이 목까지 차면 가려니와, 더 깊으면 갈 수 없소."

"아, 그는 마음대로 하시오."

토끼가 버드나뭇가지 하나를 딱 잡더니,

"자, 내려가오. 어디만큼 닿는가 보시오. 자!"

자라라 하는 건 물에서는 나는 짐승이라, 작은 살같이 쑤루루루루루 들어가서, 토끼 뒷다리를 꽉 물고 물속으로 울룩울룩 울룩울룩 울룩울룩 들어가니, 토끼 한 편 물을 켜면서,

"아푸! 아푸! 아이고, 이놈 나 죽겠다. 좀 놓아라!"

"네 이놈, 잔소리 마라."

"아이고, 똥 싸겠다!"

"똥 싸라."

"닦는 건 뭘로 하고야?"

"너른 물에 훌렁훌렁하면 목욕 삼아 좋으니라. 아가리 벌리지 마라. 짠물 들어가면 벙어리 될 것이다, 이놈. 내 등에 가만히 엎져 세상 구경이나 하소."

 

<중략>

 

용왕이 토끼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뱃속에 깊은 병이 들어 백약이 효과가 없었는데 뜻밖에 도사의 말을 들으니 너의 간을 먹으면 효험을 보리라 하여 너를 잡아왔으니, 너는 조그만 짐승이요 나는 수궁 대왕이라. 너의 뱃속에 든 간을 내어 나의 골수(骨髓)에 든 병을 낫게 함이 어떻겠는가?" / 하고 토끼를 동여매라 명령한다.

이에 좌우 나졸들이 달려들어 결박하니 토끼가 몹시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가만히 생각하기를, '내 별주부에 속아 사지(死地)에 들어올 줄 어찌 알았는가?" 하고 애통하여,

'이런 일을 당할 줄 알았으면 아무리 용궁이 좋다 한들 어찌 들어왔으며, 내 몸이 편하고 인삼 두루마기에 천도 감투와 수정 지팡이를 준들 용궁을 엿볼 개아들놈이 있겠는가? 고향을 이별하고 수로(水路) 천만 리를 들어와 죽을 몸이 되었으니 애닯고 통분하다. 내 집에서는 이런 줄을 전혀 모르고 있겠지.' / 하고, 한참 앉아 있다가 문득 한 꾀(임기응변의 지략)를 생각하고 앙천대소(仰天大笑,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거나 어이가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음)하니 용왕이 묻기를,

"네 무슨 경황에 웃느냐?"

토끼 얼굴 빛을 고치지 않은 채 여쭙기를,

"소생(小生)이 웃음은 다름이 아니라 다만 별주부가 한 일에 대하여 웃습니다."

용왕이 말하기를,

"무슨 일인가?"

토끼 또 웃고 말하기를,

"별주부가 국록(國祿,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먹고 임금을 섬긴다면 마땅히 온 힘을 다해 충성해야 할 것을 벽계수(碧溪水) 가에서 소생을 만났을 때 왕의 병환 말씀을 하였으면 조그만 간을 아끼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 말을 조금도 하지 않고 오직 용궁 자랑만 하기에 소생이 생전에 용궁 구경할 뜻이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세상 인심이 극악(極惡, 마음씨나 행동이 더할 나위 없이 악함)하기에 이를 피하고자 들어왔더니 일이 이렇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 일은 비유컨대 급한 곽난에 청심환 사러 보냄(음식에 체하여 토하고 설사를 하는 급성 위장병에 걸렸는데 다른 데 쓰이는 약을 사러 보냄)과 같습니다."

용왕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너의 말이 극히 간사하구나. 지금 간을 내라 하는데 무슨 딴 말을 하는가?" / 하고 호령이 추상(秋霜, 가을의 찬 서리) 같으니, 토끼 망극하여 방귀를 잘잘 뀌며 반쯤 웃으며 아뢰기를(해학성이 돋보이는 구절. 용왕의 호령에 방귀로 대응하며 웃음을 유발함),

"세상 사람이 소생을 만나면 약에 쓰려고 간을 달라 하기에 소생이 이루 입막음을 할 길이 없어 간을 내어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고 다녔던 바 마침 별주부를 만나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저 들어왔습니다."(토끼가 꾀를 내어 거짓말을 함.) / 하고 별주부를 돌아보며 꾸짖기를,

"이 미련한 것 아. 이제 용왕의 기색을 보건대 병세가 매우 위중하거늘 어찌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 하니 용왕 더욱 노하여 말하기를,

"간이라 하는 것이 오장(五臟,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의 다섯 가지 내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달려 있거늘 어찌 임의로 넣었다 꺼냈다 하겠는가? 끝내 나를 업신여기려 하는구나." / 하고 좌우에 명하여,

"저 놈을 바삐 배를 따고 간을 꺼내라." / 하니, 토끼 망극하여 아뢰기를,

"지금 배를 가르고 보아 만일 간이 없으면 누구더러 달라 하며 죽은 자는 다시 살 수 없어 후회막급이니 소생의 명을 살려주시면 간을 갖다가 바치겠습니다."

왕이 더욱 분노하여 좌우를 재촉하자 무사가 칼을 들고 달려들어 배를 가르려 하니, 토끼가 얼굴을 끝내 변하지 않고 급하게 아뢰되(토끼가 대담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음),

"소생이 간을 내어 두고 다니는 표적(겉으로 드러난 자취)이 분명하오니 감하여 보십시오." / 하니 용왕이 말하기를,

"무슨 표적이 있느냐?"

토끼 말하기를,

"소생의 다리 사이에 구멍이 셋이 있어 한 구멍으로는 대변을 보고 한 구멍으로는 소변을 통하고 한 구멍으로는 간을 출입하오니 살펴보십시오."

<중략>

토끼 종일 대취(大醉)하여 즐기며 말하기를,

"대왕의 병세를 볼진대 염라대왕의 삼촌(죽기 직전이라는 뜻)이요, 불로초로 두루마기를 하고 우황(牛黃, 열을 없애고 독을 푸는 작용을 하는 약) 감투를 하였어도 황당하오니, 바삐 나가 간을 가져오겠나이다." / 하니, 왕이 별주부를 불러 교유(敎諭, 가르치고 타이름)하여,

"토끼 말이 근리(近理, 이치에 가까움)하니 공연히 죽여 쓸 데 없고, 함께 가서 간을 가져오는 것만 같지 못하니 네 나가 속히 간을 가져오라." / 하고, 각처에 공문을 보내었다.

<중략>

토끼 그제야 살아난 듯 엎어지고 자빠지며 제 굴을 향하다가(경거망동. 경솔하여 생각 없이 망령되게 행동함) 잘못 그물에 걸려 살 겨를이 없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쉬파리가 눈가에 앉았다. 토끼 생각하기를,

'쉬파리로 하여금 나에게 쉬를 많이 슬라 하면(쉬파리 알을 많이 낳으라 하면) 그물 친 사람이 반드시 썩었다고 던져 버리면 살아날 수 있으리라.'(토끼가 또 한 번의 위험에서 기지를 발휘함) / 하고 파리를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소인이라 씨를 없애겠다." / 하니, 토끼가 파리의 씨를 없앤다는 말에 저의 무리들이 말하기를,

"토끼 그물에 걸려 장차 죽을 것이 오히려 나를 위협하여 욕을 보이니 이런 놈은 편히 죽지 못하도록 모두 가서 저를 빨아먹으며 털 끝마다 쉬를 슬리라." / 하고, 일시에 모여 빨아먹으며 쉬를 스니 토끼 괴롭지만 오직 쉬를 덜 슬까 하여 몸을 굴리면서 꾸짖기를 마지 아니하니, 파리가 분하여 토끼가 말하는 대로 빈틈 없이 쉬를 슬었다. 마침 그물 친 사람이 왔다. 토끼가 거짓 죽은 체하고 있으려니(토끼의 임기응변) 그 사람이 쉬 슨 것을 보고 썩었다 하여 던져 버렸다. 토끼가 제 집에 가서 암토끼를 만나니 암토끼가 몸의 쉬를 보고 놀라 말하기를,

"어찌 이 지경을 당하여 살아올 줄을 생각하였으리오." / 하니, 숫토끼가 전후의 사연을 다 말하니, 암토끼 이 말을 듣고 자라 있는 곳에 가서 자라를 꾸짖어,

"이 끔찍하고 무서운 놈아. 전생의 무슨 원수로 남의 백년해로할 남편을 유인하여 간을 내려 하엿으니, 우리 남편이 꾀가 없었더라면 죽을 뻔하였다. 네 심술이 그러하니 가다가 긴 목이나 뚝 부러져 죽거나 대가리나 터져 죽을 놈아. 간 먹고 살기는커녕 새로 병이 심해져 곱게 죽지 못하리라." / 하니, 자라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중략>

"너희들이 우리 용궁을 욕만 하고 간도 안 주고 빈 손으로 들어가라 하는가?"

토끼 앙천대소(仰天大笑)하여,

"아무리 미련한 것인들 내 간을 못 얻어 저토록 애를 쓰는가? 만일 우리 친척과 친구들이 알면 틀림없이 네 잔등이를 분질러 두 동강이를 낼 것이니 바삐 들어가라." / 하며, 암토끼와 둘이 토녀(兎女)를 업고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주부 하릴없이 탄식하며,

"간특한 토끼에게 속고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왕을 보겠는가? 차라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용왕에 대한 우직한 충성심을 가졌으나 명분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별주부) / 하고, 글을 지어 바위 위에 붙이고 머리를 바위에 땅땅 부딪히어 죽었다.

이 때 용왕은 자라를 보낸 후 소식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거북을 보내어 그 자세한 사정을 알아오라 했다. 거북이 즉시 물가에 이르러 살펴보니, 바위 위에 글을 지어 붙이고 그 곁에 자라의 시체가 있었다. 거북히 불쌍히 여겨 통곡하고 그 글을 거두어 돌아와 왕에게 사실을 아뢰니, 왕이 불쌍히 여겨 비단을 내려 안장(安葬)하였다.

이 때 약방 제조(임금에게 올리는 약을 감독하던 벼슬아치) 문어와 대사간(大司諫) 자가사리, 외시평 붕어, 외상 홍어, 승지 전복과 옥당 은어 등이 반열(班列, 품계나 신분, 등급의 차례)에서 나와,

"산중의 조그만 토끼가 우리 군신을 죽일 뿐더러, 또 욕을 줌이 많사오니 산신(山神)에게 청하여 토끼를 급히 잡아 보내게 하여 엄한 형벌로 박살을 내도록 합시다." / 하거늘, 영의정 고래, 좌의정 숭어, 우의정 민어 등이 아뢰되,

"산신으로는 토끼를 잡지 못할 듯하오니 수궁정병(물 속의 우수하고 강한 군사)을 내어 토끼 있는 산을 둘러싸고 잡거나, 큰 비를 내리게 하여 토끼 있는 산을 함몰(陷沒)시켜 족속을 씨가 없도록 함이 마땅할까 합니다."

왕이 말하되,

"경(卿) 등의 말이 불가(不可)하다. 한고조는 인간의 임금이로되 병이 들자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과인은 신명(神明, 천지의 신령)이라 일컬으며 망녕되이 도사의 말을 듣고 저렇듯 하였다가 토끼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또 조그만 분(忿)을 참지 못하여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면 이는 한번 잘못을 더함이라, 과인이 하늘 뜻을 모르고 조그만 토끼를 원함이 어찌 어리석음이 아니리오. 그대들은 다시 말을 말라."

말을 마치고 일성장탄(一聲長歎, 큰 소리로 길게 탄식함)하더니, 태자와 좌우 정승을 불러 안에 들어와 유지(遺志, 죽은 이가 생전에 이루지 못하고 남긴 뜻)를 받게 하고 즉시 죽으니, 이 때 나이 일천팔백 년이요, 재위는 일천이백 년이었다.

  교과서 학습활동 풀이 

1. 이 작품에 드러난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내용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

<궁궐 안>

"제가 ( 토끼의 간 )을 구해 오겠습니다." [ ( 별주부 )가 자원함. ]

"고맙지만 괜찮겠느냐?" [ 용왕이 염려함. ]

( 토끼 )의 화상을 그림. [ 화공 = 화사자 ]

<별주부의 집>

"세상은 ( 위험한 ) 곳이다." [ 별주부 모친이 만류함. ]

"( 충성이 ) 지극하면 못할 일 없지." [ 별주부 모친이 격려함. ]

"뒷집 ( 남생이 )를 조심해." [ 별주부, 아내에게 당부함. ]

 

2. ㉮, ㉯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 표현의 묘미를 찾아보고, 이것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을지 말해 보자.

㉮ 이때에 주부 모친이 있는듸 / 자라라도 수수천년이 되야 삶아도 먹지 못할 / 암자라 한 마리가 있든가 부드라.

㉯ 남생이란 놈이 / 제조에 덧붓침 사촌이라고 / 생김생김이 꼭 나와 방사허니 생겨 가지고 / 나 없는 기색만 보면 볼곰볼곰 자주 다니는 게 / 암만해도 내 구망에 수상허단 말이여 / 혹시 어두컴컴헐 때 그놈 오드래도 임자는 냄새를 맡아 보소. / 그놈 몸에서는 노랑 내가 나고 / 내 몸에서는 꼬순 내가 나거든.

* 표현의 묘미 → 해학(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드러냄에 있어 웃음을 자아내는 표현, 극적 환상이나 과도한 몰입과 긴장을 제한하는 정서적 안정 장치)

* 당대인들에게 주는 효과 → 공연장의 분위기를 흥미롭게 고조시킴, 비극적인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당대 민중들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임.

 

3. 다음을 참고하여 작가가 각 장면에서 전달하려는 바를 파악해 보자.

우화(寓話)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판이 곤란한 경우에 종종 활용된다. 또 쉽고 흥미로운 내용을 통해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대중들을 계몽하기도 했다.

♠ 병든 용왕이 자기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토끼를 잡아 오라고 명령하는 장면

→ 권력의 힘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지배 권력의 횡포(포악함)에 대한 비판

♠ 별주부의 어머니가 '충성이 지극하면 죽는 법이 없다.'라며 별주부를 격려하는 장면

→ 당대의 지배적인 가치 즉, '충성'의 유교적 이념을 숭고한 가치로 강조하고자 함. (당대 서민들은 지배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팽배해 있으면서도 충성, 또는 입신양명을 높은 가치로 가지고 있음.)

 

4. 다음을 참고하여 판소리의 이본이 생기는 이유를 문학적 소통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가 공연하는 판소리는 특별히 정해진 공연 장소나 무대가 없다. 북으로 박자를 맞추는 고수의 장단에 따라 소리꾼은 노래 또는 말로 이야기를 전달하며, 청자는 그들과 가까이 앉아 판소리를 감상하면서 추임새로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이러한 공연 방식은 즉흥적이어서 소리꾼의 능력이나 청자가 작품을 즐기는 분위기에 따라 내용이 늘거나 줄기도 한다.

판소리는 정해진 대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 창자는 판소리를 익히는 과정에서 대본을 암기하기는 하나 창을 하는 경륜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대목을 골라 그 부분을 변형할 수 있고, 판소리를 하는 상황이나 장(場)에 따라 즉석에서 내용을 달리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서 새로운 이본이 탄생한다. 또한 판소리 향유 계층 중에는 직접 판소리 창본을 기록하여 보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신재효'이다. 이러한 청중들에 의해 새로운 이본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5. 이 작품의 한 대목을 선택하여 자신의 말투로 바꾸어 표현해 보자.

* 판소리의 표현상 특징

① 비장과 골계의 대조

② 부분의 독자성

③ 한문투의 유식한 문자가 사용되지만, 그것을 상스럽게 희롱해서 뒤집어 엎는 수법 사용

 blue56_up.gif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