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가(박타령)            - 작자 미상 -

  줄거리  

동부동모(同父同母) 소생인 아우 흥보는 마음이 순진하여 어른을 공경하며 동기간에 우애 있고 예의범절이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나, 심술 많은 형 놀보의 질투로 엄동설한에 빈 손으로 쫓겨난다. 품을 팔아도 살 길이 없어, 형님 집을 찾아가나 문전 박대를 받고 돌아와 한탄하는데, 도승이 나타나서 집터를 일러주고 사라진다. 도승이 시키는 대로 그곳에 움막을 짓고 어렵게 살아가던 중, 제비 한 마리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을 보고 상처를 치료해 준다.

이듬해 그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어 심었더니, 덩실하게 열린 세 통의 박 속에서 금은 보화와 비단, 호화 주택이 나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 심술 많은 놀보가 이를 듣고, 억지로 제비 다리를 분질러서 강남으로 보낸다. 제비가 놀보에게도 똑같은 박씨를 물어다 주어 박이 열렸으나, 박 속에서 노인과 상여와 장군이 나와 놀보를 괴롭힌다. 패가망신한 놀보를 흥보가 구해 주고, 이에 감명을 받은 놀보는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

  감상 및 해설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 짐승이 사람에게 은혜와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몽고의 '박 타는 처녀' 이야기, 일본의 '혀를 자른 새' 이야기, 중국의 '은혜를 같은 누런 새' 이야기에서 보듯이,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 때쯤에 가객들이 판소리로 짠 것이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 있고, 또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담도 들어 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과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판소리로 꼽힌다.

교과서에 제시된 부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해학성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흥보가 먹을 양식이 없어 형을 찾아가나 형과 형수에게 매를 무수히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의 묘미는 이러한 상황을 해학적으로 그린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 부분은 이러한 판소리의 특징을 매우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품을 팔지 못하고 돌아오는 첫 대목, 아내를 '참 열녀다 열녀, 백녀다'라고 말하는 대목, 흥보의 외관을 묘사하는 대목, 놀보가 흥보를 매질하는 대목 등이 그러한다.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는 제시된 상황의 본질적인 상황의 본질적인 면모인 비장미를 느끼게 해 줌으로써 그 웃음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 판소리 장단

1) 진양(진양조) : 가장 느린 곡조, 사설의 극적 전개가 느슨하고 서정적인 대목에서 쓰인다.

2) 중모리(중몰이, 중머리) : 중간 빠르기, 사연을 담담히 서술하는 대목이나 서정적 대목에서 쓰인다.

3) 중중모리(중중몰이, 중중머리) : 흥취를 돋우며, 우아한 느낌. 춤추는 대목, 활보하는 대목, 통곡하는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4) 자진모리(잦은모리, 잦은몰이, 자진머리) : 섬세하면서도 명랑하고 차분한 느낌. 어떤 일이 차례로 벌어지거나 여러 사건을 늘어 놓는 대목, 격동하는 대목에서 흔히 쓰인다.

5) 휘모리 : 판소리 장단 중 소리가 가장 빠름. 어떤 일이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대목에서 쓰인다.

6) 엇모리 : 평조음(平調音)으로, 평화스럽고 경쾌하다.

 

◆ '흥보가'의 근원설화

지금까지 '흥보가'의 근원 설화에 대해서는 고유 설화, 고유 설화와 외래 설화와의 혼합, 몽고 설화, 불교 설화의 네 가지 갈래로 추론되었다. 그 중에서도 몽고의 '박 타는 처녀 설화'와 구전되던 '방이 설화'가 '흥보가'와 내용이 비슷하여 가장 가까운 근원설화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흥보가'의 설화적 구조와 유형을 추출하여 악하고 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 형제담, 동물이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 보은담, 박 속에서 한없이 물건이 나오듯 어떤 물건에서 한없는 재물을 쏟아내는 무한재보담의 세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구비 설화를 대비함으로써 '흥보가'의 설화적 원천은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 그 중에서 중심을 이루는 설화는 선악 형제담으로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흉내내다 실패한다는 모방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 영감', '소금 장수', '부자 방망이', '금도끼 은도끼', '단방귀 장수', '말하는 염소' 등의 구전 설화가 동일 유형의 설화에 해당한다.

 

◆ '흥부전'류의 구조와 주제

흥부전의 구조에 대해서는 먼저 선인과 악인이 대립하여 인물의 행위를 모방하고 반복하는 모방담의 구조라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이 모방담의 구조란 선한 인물이 우연한 기회에 선행으로 행운의 결과를 얻고, 악한 인물이 선한 인물의 행위를 흉내내다가 악운의 결과를 얻는다는 민담의 구조이다. 이 모방이 흥부와 놀부에 의해 '흥부전'을 이루어 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흥부전의 구조에서 흥부는 선하고 놀부는 악하며, 흥부는 제비로부터 보은(報恩)박을 받아 부자가 되고 놀부는 보수(報讐)박을 받아 패가망신한다는 내용의 고정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비고정체계는 판소리 공연이 부분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부분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단락들을 가진다. 예컨대 가난하고 무력한 흥부가 권력을 쥔 이속(吏屬)과 대립하거나, 흥부가 항상 선인으로 그려지지 않고 무능력하고 형식주의적이며 무계획적인 인간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집 짓는 장면이나 치장하는 장면, 그리고 가난하면서도 웬 자식은 수십 명이나 낳아 놓았다고 흥부를 비판하는 작가의 세계는 비고정 체계면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이러한 분석 방식을 바탕으로 흥부전은 선량한 자는 복을 받고 비도덕적이고 탐욕에 눈이 어두운 자는 벌을 받는다는 주제가 표면에 드러난다. 그러나 부분의 독자성을 인정하여 숨겨진 주제를 찾아본다면 천부(賤富)로 가난해져 버린 양반과 현실주의적으로 변한 서민이 등장하는 조선 후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주제 의식 뒤에 흥부전은 적층 문학으로 조선 후기 민중들의 근대지향의식과 전근대적 의식이 혼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하영, '흥부전 해제'

  요점정리  

● 성격 : 풍자적, 해학적, 교훈적, 서민적

● 갈래 : 판소리 사설

● 문체 : 가사체, 운문체, 만연체

● 배경 : 시간적 - 조선 후기,   공간적 - 전라도 운봉과 경상도 함양 부근

● 주제

* 표면적 주제 → 권선징악, 인과응보, 개과천선, 형제간의 우애

* 이면적 주제 → 평민의식의 성장과 양반사회의 쇠퇴, 배금주의의 배격과 성실한 인간상 옹호, 빈부간의 갈등

● 인물

* 흥보 → 가난하지만 선량하며 자신을 쫓아낸 형을 원망하지 않는 순박한 성격의 인물로 형이 어려움에 처하자 형을 도와 주는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한 인물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 놀보 → 부자로 지내면서도 재산 욕심이 많아 동생의 유산을 가로채고 쫓아내는 부도덕한 인물로 심술궂고 몰인정하다. 인륜 도덕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 특징

* 표현상 3 · 4조, 4 · 4조 운문과 산문이 혼합됨.

* 일상적 구어와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함.

* 판소리 중 서민적 취향이 가장 강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양반층의 붕괴상을 보여줌.

* '춘향가', '심청가'와 더불어 3대 판소리 중 하나로, 놀보와 흥보의 삶을 해학으로 승화한 평민문학의 백미

● 출전 : 『박녹주 창본』

  본문 읽기 :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수록 부분

<아니리> : 매품도 팔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흥보

흥보가 당도커날,

"여보 영감 어디 좀 봅시다 얼마나 맞았소?"

"날 건드리지 마오. 요망한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 돈 한 푼 못 벌고 매 한 대를 맞았으면 인사불성 쇠아들 놈이세."

 

<중중모리> : 매를 맞지 않고 돌아온 흥보를 반갑게 맞이하는 흥보마누라

흥보 마누라 좋아라고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영감이 엊그저께 병영길을 떠날 적으,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 전에 빌었더니, 매 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씨구나 절씨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허허, 어얼씨구 얼씨구 얼씨구 절씨구.

 

<아니리> : 형님댁에 가서 사정을 해 보라고 하는 흥보 마누라

흥보도 좋아라고 절굿대 춤을 추면서,

"참 열녀(烈女)다 열녀, 백녀다.(열녀의 '열'이 숫자 '열(十)'과 발음이 유사한 것을 이용하여 열녀, 백녀로 표현한, 일종의 언어유희)"

"여보 영감 죽으나 사나 그래도 형제간밖에 없으니 건너 마을 시숙 댁에 건너 가서 죽게 된 사정을 여쭈오면 다소 전곡간(錢穀間, 돈이든 곡식이든 간에)에 줄 테니 건너가 보시오."

"이 사람아 건너 갔다가 만일 보리를 주면 어쩌나?"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

"이 사람아 먹는 보리가 아니고 몽둥이 보리 말일세."

"형제간에 윤기(倫紀, 윤리와 기강을 아울러 이르는 말)가 있으매 그럴 리가 없으니 건너가 보시오."

흥보가 할 일 없이 치장을 차리고 형님 댁을 건너가는디,

 

<자진모리> : 놀보의 집에 식량을 얻으러 가는 흥보(흥보의 외양에서 해학성이 나타나며, 빈한한 처지이면서도 양반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의관을 갖추고 명분과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흥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음.)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 치레(잘 손질하여 모양을 냄)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찢어진 헌 갓) 버릿줄 총총 매여 조새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에 둘는 그물 모양의 물건) 밥풀 관자(망건에 달아, 망건 당줄에 꿰는 고리) 종이 당줄(망건에 달아 상투에 동여매는 줄) 두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지방과 같은 광택과 양초와 같은 매끈매끈한 감촉이 있는 광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조대(대나 진흙 따위로 담배통을 만든 담뱃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서리 아침 찬 바람에 옆 걸음 쳐 손을 불며 가만가만 건너간다.

 

<아니리> : 자신을 찾아온 흥보를 외면하는 놀보

건너가다 놀보 하인 마당쇠를 만났것다.

"아이구 서방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냐 잘 있었으며 큰서방님도 평안하시냐?"

"말씀 마십시오. 작은 서방님이 계실 적에는 제사를 모셔도 음식을 많이 장만하시더니 서방님이 떠나신 후로는 약음()이 바싹 생겨 대전(종이로 만든 돈)으로 바칩니다. 접시에다 제육(돼지고기, 본말은 저육)이라, 피륙이라고 패지(조선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이 비천한 사람에게 정식으로 보내던 글발)를 써 붙이니 이 통에 들어가셨다가는 몽둥이 뜸질만 할 것이니(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한 암시와 복선) 도로 건너가십시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왔다 형님을 안 뵙고 간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인사나 드리고 갈란다."

흥보가 성큼성큼 사랑 앞을 들어서니, 어찌 겁이 났던지,

"아이고 형님 소인 문안이오."

"예, 성씨가 뉘댁이시오."

"아이구 형님 흥보 동생을 모르시오."

"아니 여보 나는 오대 독자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오."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진양> : 도움을 간청하는 흥보

두 손 합장 무릎을 꿇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 전에 비나이다. 살려 주오, 살려 주오, 불쌍한 동생을 살려 주오. 그저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저물도록) 그저 있고, 어젂게 하루를 문드러미(멀쩡하게 말끔히)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이 재천이라 설마헌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끼니를 굶사오면 할 일 없이 죽게 되니 형님 덕택에 살거지이다. 벼가 되거던 한 서만 주시고, 돈일 되거던 닷 냥만 주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거던 니명기나 싸래기나 양단간에 주옵시면, 죽게 된 자식을 살리겠소. 과연 내가 원통하오. 분하여서 못살겠소. 천석꾼(1천 석이나 추수를 할 만큼 땅이 많은 부자) 형님을 두고서 굶어 죽기가 원통합니다.

 

<아니리> : 흥보를 때리려고 하는 놀보

과거를 딱딱 대놓고 뗄 수가 없거든,

"오오. 이제 보니 네가 바로 그 흥보냐. 네 이놈 심심하던 차에 잘 왔다. 얘 마당쇠야. 대문 걸고 아래 행랑 처마 끝에 지리산에서 검목쳐 내온 박달 홍두깨(옷감을 감아 다듬이질을 하는 굵고 둥근 몽둥이) 있느니라. 이리 가져오너라. 이런 놈은 복날 개 잡듯 해야 하느니라."

 

<자진모리> : 흥보를 마구 때리는 놀보

놀보놈의 거동 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 위에 번듯(번쩍) 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 살기 내 복이요 못 살기도 니 팔자. 굶고 먹고 내 모른다. 볏섬 주자헌들 마당에 뒤주 안에 다물다물(물건이 무더기무더기 쌓인 모양) 들었으니 너 주자고 뒤주 헐며, 전곡(錢穀)간 주자헌들 천록방(天祿房, 하늘이 내린 복록이 들어찬 방이란 뜻으로, 곳간에 붙인 이름) 금궤 안에 가득가득 환(동그라미)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깅이(술을 떠내고 남은 찌끼인 재강) 주자헌들 구진방(舊陳房) 우리 안에 떼 돼야지가 들었으니 너 주자고 돝 굶기며, 싸래기 주자헌들 황계(黃鷄) 백계(白鷄) 수백 마리가 턱턱 하고 꼭꾜 우니 너 주자고 닭 굶기랴. 몽둥이를 들어메고 네 이놈 강도놈. 좁은 골 벼락치듯 강짜 싸움에 기집 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 치듯 후닥닥 철퍽. 아이구 박(머리) 터졌소. 이놈. 후닥닥. 아이구 다리 부러졌소, 형님.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느라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대문을 걸어 놓니 날도 뛰도 못하고 그저 퍽퍽 맞는데,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구 형수씨 날 좀 살려 주오. 아이구 형수씨 사람 좀 살려 주오.

 

<아니리> : 놀보 마누라에게도 맞는 흥보

이러고 들어가거든 놀보 기집이라도 후해서 전곡간에 주었으면 좋으련마는, 놀보 기집은 놀보보다 심술보 하나가 더 있것다. 밥 푸던 주걱 자루를 들고 중문(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문)에 딱 붙어 섰다가,

"여보, 아주벰이고 도마뱀이고 세상이 다 귀찮허요(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 언제 전곡을 갖다 맽겼던가. 아나 밥, 아나 돈, 아나 쌀."

하고 뺨을 때려 놓니 형님한테 맞던 것은 여반장(如反掌, 아주 쉬운 일이오), 형수한테 뺨을 맞아 놓니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진양> : 형수를 원망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흥보

여보 형수씨! 여보, 여보, 아주머니. 형수가 시아재 뺨치는 법은 고금천지 어디 가 보았소. 나를 이리 치지 말고 살지(殺之) 중치(重治) 능지(陵遲) 하여(죽을 만큼 엄하고 무거운 벌로 다스려서) 아죽 박살(撲殺) 죽여 주오. 아이구 하느님, 박흥보를 벼락을 때려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 날은 세세원정(細細原情, 하소연하고 싶은 원통하고 억울한 갖가지 사정)을 아뢰련마는 어이허여 못 죽는거나. 매운 것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아니리> : 매맞은 사실을 숨기고 변명을 늘어놓는 흥보

흥보 마누라가 막내둥이를 받어 안고 흥보 오는 곳을 바라보니 건너산 비탈길에서 작지(작대기)를 짚고 절뚝절뚝 하고 오는 모양이 돈과 쌀을 많이 가지고 오는 듯하거늘 흥보가 당도하니,

"여보 영감 얼마나 가져왔소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마오."

"아니 또 맞었구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보오. 형님댁을 건너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짊어지고 오다가 요 너머 강정(강가의 정자) 모퉁이에서 도적놈에게 다 빼앗기고 매만 실컷 맞고 왔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머리> : 집에 온 흥보의 사정을 짐작한 흥보 아내의 슬픔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家貧)에는 사현처(思賢妻, 현명한 아내를 생각함)요 국난(國難)에는 사양상(思良相)이라(<사기>의 '위세가'에 나오는 구절로, 집안에서는 아내가 중요하고, 나라에서는 재상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흥보 아내가 생각하기를 자신은 남편의 굶주림을 보면서도 아무 힘도 되어 주지 못하는 못난 아내여서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우준하면(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어리석고 굼뜨면) 중한 가장 못 먹이고 어린 자식을 벗기겠소. 차라리 내가 죽을라요. 밖으로 우루루루 뛰어나가 서까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구 여보 마누라. 마누라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둘이 서로 부여잡고 퍼더리고(팔 다리를 아무렇게나 내어 뻗고) 앉아서 울음을 우니 흥보 자식들도 슬피 운다.

<…후략…>

박녹주 창본- 

  교과서 학습활동 풀이 

1. 이 글은 소리로 듣는 판소리 대본이다. 그러데 이 글에서 보듯이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읽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당대의 청중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서 울고 웃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 판소리에서 한시문이나 중국의 고사와 관련된 어휘 및 구절이 빈번하게 구사되는 현상과 관련하여, 이를 판소리 향유층의 문제 혹은 판소리의 이데올로기적 표상과 연간지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설명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가지기는 하나, 이를 언어 습득이나 언어 활동의 측면에서 보면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은 낱낱의 '문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낱말을 그 뜻에 결부시켜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평민들이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그 '문자적 표기'를 모른다는 의미이지 그 의미까지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언중들은 당시의 언어생활에서 한시의 한 구 또는 한 행, 혹은 전체 차원에서도 그 낱낱의 개별적인 의미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굳어진 의미의 덩어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시문이나 고사 관련 어구들은 특정한 상황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면 즉각 동원될 수 있는 하나의 의미 덩어리로 갈무리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오늘날의 언중들이 지식 수준에 상관없이 외래어는 물론이고 몇몇 외국어까지 우리말과 다름없이 구사하고 있는 현실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한자어들도 당대의 언중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당대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는 이해의 어려움은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2. 다음 글을 읽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흥보가' 혹은 '박타령'은 많은 창본이 전하는데 신재효의 '박타령', 이선유의 '박타령', 그밖에 한농선의 '박타령', 박봉술의 '흥보전' 등이 유명하다. 이런 현상은 판소리가 특정한 대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 광대의 가감삭제가 자유롭다는 특성 때문이다. 즉, 개작(改作)을 거친 이본이 다시 하나의 판소리로 공감을 얻으면서 유통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1) '박타령'의 전승 과정에서 여러 이본들이 만들어진 이유를 말해 보자.

→ 판소리는 정해진 대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소리 창자는 판소리를 익히는 과정에서 대본을 암기하기는 하나 창을 하는 경륜이 쌓이면서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대목을 골라 그 부분을 변형할 수 있고, 판소리를 하는 상황이나 장()에 따라 즉석에서 내용을 달리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서 새로운 이본이 탄생한다. 또한 판소리 향유 계층 중에는 직접 판소리 창본을 기록하여 보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신재효'이다. 이러한 청중들에 의해 새로운 이본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2) '박타령' 외에 전승 과정에서 여러 이본들이 만들어진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 '춘향전'을 예로 들면, '춘향가(남창)', '춘향가(여창)', '별춘향전', '열녀춘향수절가', '남원고사', '옥중화', '증상연예옥중가' 등의 여러 이본의 형태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춘향전이라는 말과 더불어 '춘향전군()'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이 중 가장 많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것은 '남원고사'이다.

이러한 춘향전군의 작품들은 대개 전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춘향의 신분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그 종류가 다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열녀춘향수절가'의 경우는 춘향을 남원부사였던 성참판과 월매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설정한다. 또한 춘향은 하늘의 점지로 태어난 존귀한 존재로 설정한다. 신재효의 '남춘향가'와 '옥중화'도 이러한 계통에 속한다. 춘향전의 여러 이본을 조사하면서 판소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변형되면서 형성된 적층 문학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3) 오늘날 소설 작품의 '생산-유통-소비'와 판소리의 그것이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토의해 보자.

→ 판소리는 숱한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구비 문학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이 아니고 수많은 서민 대중들이 모두 작자인 셈이다. 그리고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맞추어 작품을 변개시키게 된다. 이 점 또한 판소리의 작자가 당대의 언중들임을 말해 준다. 곧 판소리나 판소리계 소설은 오늘날의 소설처럼 작자와 독자가 정확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작자(청자)와 독자(청중)의 경계가 없이 작자가 곧 독자가 되고, 독자가 곧 작자가 되는 형태로 유통되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각종 시리즈 유머가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유통되면서 새롭게 가공되고 창조되는 모습과 유사하다.

반면에 소설 작품은 한 번 책으로 출간되면 그것을 임의로 고치거나 새로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작자가 치밀한 계산으로 설정한 상황과 사건, 인물이 소설 작품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임의로 고치면 일관성과 유기성을 잃어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른 바 '저작권'의 문제까지 있어서 독자가 작자의 역할을 일부라도 수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독자는 오직 독자일 따름이다.

요컨대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은 작품의 유기성을 다소 손상을 받더라도 독자(청중)들의 능동적 참여를 허락함으로써 대중적인 공감대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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