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불언(蛇福不言)                            - 작자 미상 -

   본 문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있는 과부가 남편도 없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신이한 행적), 나이 십이 세가 되어도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도 못 하므로 사동(蛇童)〔혹 사복(蛇卜)이라고도 하고, 또 사파(蛇巴) · 사복(蛇伏)이라고도 하지만, 모두 사동을 말한다. 일어설 줄 모르는 뱀귀신을 타고 났다고 하여 사람들이 지어 부른 이름이다.〕이라고 불렀다.

▶ 사복의 신이한 탄생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효(元曉)가 고선사(高仙寺, 경주에 있던 절)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다(사복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암시).

"그대와 내가 옛날에(전생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사복의 어머니를 가리킴)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는, / "좋다." / 하고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布薩, 불교의식의 하나, 출가한 이에게 스님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계경을 들려주고 죄를 참회시켜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일)시켜 계(戒, 불교에서 승려가 지켜야 할 모든 행동 규범)를 주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사복이 사(詞)가 너무 번거롭다고 하여 원효는 고쳐서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불교의 윤회관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삶과 죽음은 상반된 의미이지만, 불교의 관념에서 삶이 죽음과, 죽음이 다시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함으로써, 삶과 죽음을 나누어 어느 한쪽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사복과 원효의 만남과 행적

이에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했다.

"지혜 있는 범(사복의 어머니)을 지혜의 숲 속(연화장 세계, 극락 세계를 가리킴)에 장사 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偈, 승려의 귀글 = 두 마디가 한 덩이씩 되게 지은 글)를 지어 말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사라수(상록수의 일종) 사이에서 열반(涅槃)하셨네.

    지금 또한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부처님이 산다는 장엄한 세계)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樓閣)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 버린다(어머니와 함께 사복이 연화장 세계로 입멸함). 이것을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 사복의 게송과 연화장 세계로의 입멸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량사(道場寺)라 하여, 해마다 삼월 십사일이면 점찰회(占察會, 점찰경에 의한 법회)를 여는 것을 상례(常例)로 삼았다. 사복이 세상에 영검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편찬자(일연)의 논평, 지나치게 사복을 숭배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김).

찬(讚, 인간의 훌륭함과 사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글)해 말한다.

    잠자코 자는 용이 어찌 등한하리.

    세상 떠나면서 읊은 한 곡조 간단도 해라.

    고통스런 생사가 본래 고통이 아니어니,

    연화장 세계는 넓기도 하여라.

▶ 사복에 대한 후대인의 평가와 찬

   작품 정리

갈래 : 설화(불교 설화)

◆ 성격 : 불교적, 초월적, 서사적

◆ 제재 : 사복 어머니의 장례

◆ 주제 : 삶과 죽음의 이치

             진리는 누구에게나 어디에든 있다는 깨달음

◆  특징

1) 불교의 윤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

2) 신이하고 환상적인 요소가 나타남.

3) 원효의 민중 불교적 성격이 나타남.

4) 게나 찬을 통해 진리를 요약적으로 제시함.

   생각해 보기

이해와 감상

'사복불언'은 원효 대사와 관련된 불교 설화로, 제목을 풀이하면서 '사복이 말하지 않다'의 뜻이다. 신분이 미천한 사복이 원효에게 전생을 일러 주고, 생사의 이치를 말로 번잡하게 만드는 원효의 잘못을 시정해 주는 것 등으로 미루어, 설화를 편집한 일연의 민중 불교적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설화에서는 다음 몇 가지의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진리(부처)란 누구에게나 있고, 어디에든 있다는 가르침이다. 하층민인 사복이 원효보다 먼저 성불을 한 것이나, 사복이 '띠풀의 줄기'를 뽑은 자리에 연화장 세계가 열린 것으로 묘사한 것은 인상적이다.

둘째,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생(生)과 사(死)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회관은 원효의 '사(詞)'에 잘 나타나 있는데, 원효는 태어나지도 말고 죽지도 말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삶과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득도하여 해탈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 진리와 말의 관계이다. 사복이 12세가 되도록 말을 못 했다는 점, 원효의 계(戒)에 대해 사복이 '사(詞)가 너무 번거롭다.'라고 한 점, 찬(讚)에서 '잠자코 자는 용', '읊은 한 곡조 간단도 해라' 등을 밝힌 것에서 진리는 번잡한 말로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  '사복불언'에 삽입된 '게(偈)'와 '찬(讚)'의 의미와 기능

산문 서사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시(게와 찬)를 삽입함으로써, 속세의 중생들에게 전달하려는 궁극적인 의미를 집약적으로 제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게'에서는, 석가모니의 열반이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지금 그와 같은 사람(사복의 어머니)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고 말함으로써, 불법에 정진하여 열반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찬'에서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을 기반으로 현실을 가치 있게 살아갈 때, 연화장 세계와 같은 궁극적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  '사복불언'에 나타나 있는 사복과 원효의 관계

사복과 원효는 전생의 인연으로 사복의 어미를 함께 장사 지낸다. 이는 전생의 인연이 소중하여 현생에까지 이어지니,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또, 사복은 원효에게 전생을 일러 주고,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한 원효의 말을 복잡하고 가식적이라고 깨우쳐 주는 존재이다. 원효는 대덕 고승이지만, 그 역시 사복이라는 존재와 연결되어 삶과 죽음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깨우치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따라서 원효보다 사복이 더 높은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세속적으로 하층 계급임에도 먼저 득도하고 극락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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