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설화                                - 삼국사기 권45.-

    본 문

고구려의 성(城)밖에 온달(溫達)이라고 불리우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들창코에 사팔뜨기인 아주 추하게 생긴 사나이었다. 누구든지 한 번 보기만 하면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고는 못견딜 만큼 괴상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추한 외모와는 달리 세상의 물정을 모르고 자라난 착하고 곧은 마음씨의 사나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가는 성 안에 내다 팔고 눈이 먼 늙은 모친을 봉양하고 있었다. 항상 다 떨어진 옷과 떨어진 신발을 끌고 거리를 거침없이 다녔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어느 새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쯤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임금님을 평강왕 또는 평원왕이라고 하였는데, 그 평강왕에게는 공주가 한 분이 있었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그 공주는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그래서 유모를 골탕을 먹이곤 했다. 그래서 왕은 늘 공주에게 다음과 같은 농을 건네시었다.

" 그렇게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으면 이제 어른이 되어도 사대부 집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줄까 ? "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주도 곧잘 울었지만 왕의 이런 농담도 그때마다 되풀이되었다. 더구나 마음이 즐거울 때면 왕은 공주를 무릎에 올려앉히고 " 어이, 온달의 부인, 또 우셨나? " 하고 조롱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온달의 부인>이 공주님의 별칭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그 울음보 공주도 이팔청춘을 맞이하게 되었다. 왕께서는 신하 중에서 명문가인 상부(上部)의 고씨를 골라서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고씨에게의 출가를 공주가 완강히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아니, 네가 애비의 말을 듣지 않을 셈이냐?"

평강왕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그 유순한 성품에 이렇게까지 꾸짖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께서는 평소에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필부(匹夫)조차도 거짓말을 꺼려하는 법이옵니다. 그러하온데 만민의 대왕이 되옵신 아바마마께옵서는 어이하여 스스로 하옵신 말씀을 어기시나이까. 딴 곳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겠나이까. 제발 소원이오니 온달에게 시집보내주시옵기 바라옵니다."

평강공주의 말은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장난삼아 한 희롱이 그렇게까지 깊은 뿌리를 박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다. 여러 신하와 어울려서 갖가지 얘기로써 도리를 설명하고 뜻을 바꾸려 하여도 온달에게 아니라면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유순하신 평강왕께서도 드디어 진노하시었다.

"애비를 따르지 않는 불효녀를 자식으로 생각하진 않겠다. 아무 데나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내 눈앞에서 하루 빨리 사라져 버려라."

평강공주는 드디어 궁중에서 쫓겨나 온달의 집을 찾아 나섰다.

온달의 어머니와 온달을 만난 평강공주는 백 년의 가약을 맺고자 한다는 말을 하였으나, 모자는 믿지 않으며 승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주는 끝까지 설득을 하게 되고 드디어 모자는 고집이 꺾이어서 혼례식의 시늉만 내고 그날부터 공주는 온달의 처가 되었다.

공주는 곧 황금 팔깍지를 팔아서 논밭과 집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소와 말을 샀다. 또 가재 살림도구까지 아쉬운 것 없이 장만하였다. 어제까지는 바보 천치라고 손가락질받던 굶주림의 가난뱅이 온달도 오늘부터는 여러 종복을 거느린 주인이 되었다.  그날부터 온달은 무예를 익히고, 책을 장만하여 공부도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 낙랑의 언덕에서 사냥을 베풀고 천지산천의 신을 떠받드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 날은 임금님이나 신하 그리고 오부의 군사들이 모두 그에 따랐는데, 백성 중에서도 무예에 뛰어난 자는 그 행사에 끼도록 허락되어 있었다.

어떤 해의 일이었다. 이 행사에 낯선 무사 한 명이 탐스러운 말을 타고 참가하였는데 언제나 선두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잡은 짐승도 제일 많아서 비교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왕은 그 사나이가 온달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하였는데, 온달은 자원하여서 선봉대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대승리를 얻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 논공(論功)을 함에 있어, 한결같이 온달의 공을 으뜸으로 사뢰었기에, 왕은 큰 상을 베풀고, "너는 과연 내 사위로다." 하고 그의 손을 잡고 치하했다.

그때부터 왕의 사랑은 한층 온달에게 쏠렸고, 온달의 권세는 나날이 더하여 갔다. 평원왕이 죽고, 그 아들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온달은 신라 땅 아차성에서 적군과 부딪쳐 싸우게 되었다. 한때는 전세가 유리하여 적군을 무찔렀으나, 전쟁이 한참 치열할 동안에 화살에 맞아서 그 큰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 싸움터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온달의 유해는 곧 도성으로 운반되었다. 그런데 막상 장례를 지내려고 하니 관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떠날 때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장수로서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임. 비현실적 요소이기도 함.)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죽고 삶이 이미 결판이 났사오니, 돌아가소서."

그러자 비로소 관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장례를 지낼 수가 있었다.(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평강 공주에게서 이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고, 평강 공주에 대한 온달의  깊은 사랑이 느껴지는 구절임.) 온달이 죽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었는데 특히 왕의 슬픔은 한층 더하였다.

    작품 정리

◆ 해설

온달 설화는 신분이 고귀한 공주가 스스로 미천한 바보 총각을 찾아가 결혼을 하고 남편을 영웅으로 성장시켜 공을 세우게 하는 과정이 실감나고 짜임새 있게 그려지고 있다. 공주는 과단성과 비범성이 있는 인물이다. 공주의 신분으로서 과감히 궁궐을 버리고 온달을 찾아 나섰을 뿐만 아니라, 온달과 그의 모친이 신분의 차이를 들어 혼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그들을 지성으로 설득하였고, 명마를 고르게 하여 온들을 영웅으로 입신케 하는 등 특출한 지혜와 안목을 지녔다. 또 온달이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죽었을 때, 그의 관이 움직이지 않자, "죽고 삶이 결정났으니 돌아가자."고 하여, 초탈한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써 이인(異人)의 풍모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세상에서 바보라고 했던 온달이 공주의 도움을 받아 영웅적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사람을 신분이나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부분이다.

 '온달'은 역사서인 <삼국사기> 열전의 하나이므로 그 내용은 객관적 사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유(類)이야기 자체는 설화로 민간에 전승되었다. 예컨대 숯을 구워 살아가던 총각이 우연히 찾아온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살면서 부자가 되고 출세도 했다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승되어 왔다.

이 글의 원문은 '삼국사기'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글이다. 이 글에는 당시 민중들의 애국심, 충성심, 무용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미천한 출신인 주인공이 시련을 겪은 후 숭고한 인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잘 드러나 있다. 백제의 '무왕설화'도 같은 계열의 작품이다.

이를 소재로 최인훈이 [온달]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은 소설과 희곡을 겸용한 특이한 형태이다.

 

◆ 요점정리

⑴ 성격 : 설화(서사), 전(傳)의 형식의 설화

⑵ 문체 : 역어체, 설화체

⑶ 출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5 열전.

⑷ 의의 : 역사적 사실의 문학적 형상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작품

⑸ 주제 : 평강 공주의 내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주체의식

 

◆ 온달 설화의 주제의식

이 설화의 주제는 부녀 간의 갈등을 통해서 부권 중심의 전통적인 도덕률을 비판하고 스스로의 독자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의 주체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여성 자체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성취와 아버지의 인정에 의한 것이므로, 일정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그리고 온달설화는 유기적 대립구조로 형상화되었을 뿐 아니라, 바보 온달과 울보 공주에 대한 표면적 인식의 한계가 온달 장군과 주체적 삶을 실현한 공주에 의하여 극복됨으로써 기존 질서의 허위를 비판하고 근대적인 민중 의식과 여성 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당대의 설화 문학이 가지는 민중적 미의식과 역사를 개척하려는 민중적 역사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온달 설화의 유형적 성격

<삼국사기> 열전의 온달조는 민간 전승을 통해서 형성된 설화가 편찬자에 의하여 다듬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전되는 '바보 온달 전설' 은 문헌에서 전하는 것과 거의 같으나, 공주가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쳤다는 내용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고소설 '온달전'의 줄거리도 이와 같으나 문학적 형상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열전에서 보다 민중 의식이 한층 두드러져 있다. 갈등 구조상 동일 유형인 민담에서는 세 딸을 둔 아버지와 자기 복에 먹고 산다고 하여서 쫓겨난 셋째 딸과 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숯구이 총각이 등장하므로, 인물과 배경은 다르나 그 구조와 주제는 전설과 다름없다. 화소들이 <무왕 설화(武王說話)> 와 유사하여 동일 유형으로 간주되기도 하나, 이 설화가 남녀간의 신분적 갈등을 다룬 것이라면 '온달 설화'는 부녀간의 갈등을 다룬 것이다.

                                                                  -임재해, '온달 설화의 유형적 성격과 부녀갈등'에서

◆ 참고 자료 [ 열전(列傳) ]

사마천의 <사기열전>에서 확립한 문학의 한 양식이다. 인물의 행적을 서술하는 전(傳)의 한 형식으로, 특히 역사적으로 후세에 거울이 될 만한 특출한 인물들을 서술의 대상으로 하였다. 열전은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正史)의 한 체제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문학과 역사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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